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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67화 (67/136)

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67화

최지형은 손가락을 두 개만 펼친 채 말을 이었다.

“너한테 두 가지 선택지를 줄게. 하나는 나랑 싸우고 하진 씨를 독차지한다.”

상상만 해도 달콤한 모양인지 강아지가 침을 삼켰다.

“다른 하나는?”

최지형이 대답하려는 순간이었다.

쿵!

건물 전체를 울리는 엄청난 진동과 함께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웨에에엥! 뇌에 직접 때려 박는 듯한 굉음에 하진이 눈을 질끈 감았다.

[긴급 상황! 습격이다! 에스퍼들 모두 집합!]

“뭐……?”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당황했다. 그러나 금방 평온을 되찾은 최지형이 강아지를 보며 말했다.

“나머지 하나는 나랑 손을 잡는 거야. 이런 상황은 예상 못 했지만, 차라리 잘됐네. 결정해. 이대로 나와 싸울 건지 아니면 손을 잡을 건지.”

“강아지 씨. 날 도와줘요.”

하진은 자존심도 접고 애원했다. 접촉 가이딩한 전적이 있는 강아지이니 설득이 먹힐 거라 여겼다.

실제로 강아지는 하진의 말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고통스러워하며 도와달라고 하자 당장이라도 손을 뻗고 싶어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손을 뻗지는 않았다.

설마 하는 불안감에 심장이 마구잡이로 뛰었다. 하진은 가이드를 향한 에스퍼의 맹목적인 애정을 믿었다. 하지만 그 애정의 맹점은 알지 못했다.

강아지도 다른 때였더라면 최지형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진이 원하는 게 무엇이든 다 들어줬을 테지만.

“……하지만 도망은 안 돼.”

그러나 그로 인해 하진이 자신의 곁을 떠난다면 들어줄 수 없었다. 강아지는 이제야 서지한이 예전에 한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어째서 가이드가 하루가 멀다고 우는 모습에 안절부절못하면서도 그 뜻을 이루어주지 못했는지, 어째서 가이드라는 존재 하나에 병신이 되어버렸는지 이젠 알 것 같았다.

“뭐라고……?”

반면에 하진은 최지형의 편에 붙어버린 강아지에 충격을 받았다. 애초부터 저쪽과 한편이긴 했으나 자신의 애원을 무시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래, 똑같은 미친놈이라 이거지.’

미친놈을 상식선에서 생각하면 안 되는데 자신이 상식인이다 보니 자꾸 남들도 같은 선에서 생각하게 되었다.

강아지는 하진의 날카로운 시선을 마주할 수 없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인 것도 잠시, 최지형이 서서히 하진에게 다가가기 시작하자 다시 고개를 들었다.

소심하기만 했던 모습은 다 거짓말이었는지 최지형은 오히려 헤실헤실 웃으며 바르작거리는 하진에게 다가갔다.

그의 발걸음이 가까워질수록 하진의 움직임은 더 거칠어졌다. 손이 떨어져 나가든 말든 어떻게 해서든 이 끈을 풀어내야만 했다.

‘젠장! 가이딩만 됐어도……!’

방사 가이딩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저 두 사람을 재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하진은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끝없이 가이딩을 방출하기 위해 노력했다.

마치 꽉 막아놓은 곳을 뚫어야 하는 막막한 기분이었다. 꿈쩍도 하지 않는 가이딩을 억지로 움직이느라 하진의 온몸에서 식은땀이 뚝뚝 흘렀다.

가이딩하는 게 이렇게 힘든 적은 처음이었다. 강제로 차단된 가이딩을 움직이는 게 아프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하지만 하진은 겉과 속에서 느껴지는 통증에도 멈출 수 없었다.

‘순순히, 당해줄 것 같아……?’

하진은 너무 많이 휘둘렸다. 비단 지금의 상황만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그의 인생은 타인에 의해 늘 휘둘리기만 했다.

지금껏 모든 걸 자신이 선택한 척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아버지의 유언에 휘둘리고, 자신을 노리는 세력을 피하고자 정부를 선택해야 했고, 지금은 납치에 감금까지 당했다.

그런 와중에 저들 멋대로 자신을 묶어두고 강제로 취하려 드는 꼴을 하진이 얌전히 지켜볼 리가 없었다.

하진은 끊임없이 저항했다.

발산되지 못하고 몸속에서 맴도는 가이딩은 마치 끝을 막은 채 물을 틀어놓은 호스처럼 터질 듯이 부풀어 올라 몸 어딘가가 펑 하고 폭발해버릴 것만 같았다.

“크흑, 헉……!”

하진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괴로워하는데도 최지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숨을 헐떡이면서도 끝까지 자신을 노려보는 하진을 바라보며 황홀경에 취한 듯 몸을 떨었다.

“아아, 하진 씨……. 이대로 쌀 것 같아요. 당신은 정말이지 최고예요……!”

습격이라면 분명 하진을 구하러 온 이들의 소행일 텐데도 다급하기는커녕 욕망을 우선시하는 모습이 역겨웠다.

실제로 허리를 툭툭 퉁기며 얼굴을 붉히는 꼴을 보자니 혐오감에 힘이 풀릴 지경이라 하진은 차라리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자신의 내부에 맴도는 가이딩이 더 잘 느껴졌다. 주인의 뜻을 따르기라도 하듯 가이딩은 당장이라도 나가고 싶다는 듯 거칠게 내부를 휘저었다.

아주 미세한 틈, 그것만 있다면 해낼 수 있을 텐데 도무지 그 틈이 보이질 않았다.

저벅, 저벅.

마치 그 상황을 안다는 듯 최지형이 느린 걸음으로 하진에게 다가갔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임에도 느릿한 걸음에 한참 동안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잘 안 되죠? 굳이 힘 빼지 말아요. 그러지 않아도 손발을 묶은 끈은 풀어줄 거예요.”

그러나 하진은 눈을 뜨지도, 벗어나려는 노력을 멈추지도 않았다. 헛수고든 뭐든 그걸 판단하는 건 자신이 할 터였다.

“이것 참……. 괜히 힘 빼면 힘들어지는 건 본인인데. 기운 없이 우리 둘 모두를 받아낼 수 있겠어요?”

“……그만 떠들어. 빨리하고 풀어주기나 해.”

느긋한 최지형과는 달리 강아지는 여전히 하진의 묶인 손발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럴 만도 했다. 하진의 손발은 보는 이가 다 괴로울 정도로 퉁퉁 붓고,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으니까.

하진을 보내줄 수 없어 그의 도움을 외면했다.

그랬으면서 이미 하진에게 모든 마음을 줘버린 강아지는 지금도 고통을 느끼고 있는 모습에 안절부절못했다.

하진은 똑같은 놈이면서 걱정하는 척하는 강아지의 역겨운 태도에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이 상황에 수긍하는 것 같아서 어떻게든 견뎌냈다.

반면에 최지형은 강아지의 재촉에도 여유로웠다. 그는 오히려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나도 그러고 싶지. 그런데 하진 씨가 내 말에 대답을 안 하네. 혹시 네가 알려줬어?”

그 말에 순간 떠오른 기억이 있었다. 스치듯 물어본 말이었고, 하진이 도망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알려줬었다.

돌아보며 묻는 말에 강아지가 입을 다물었다. 그 반응에서 답을 읽은 최지형은 귀찮게 되었다는 듯 혀를 차면서도 여전히 느긋한 태도였다.

그야 시간은 하진의 편이 아닌 자신의 편이었으니까.

최지형은 조금 남은 거리를 단숨에 좁혔다. 그리고 식은땀에 젖어 달라붙은 하진의 앞머리를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마치 만지면 부서지는 설탕 공예를 다루듯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하진 씨, 계속 고집 피우면 하진 씨만 다쳐요.”

접촉 가이딩을 피해야 한다는 이유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참아야 했던 접촉이었다. 손끝에 닿은 하진의 살결은 땀에 젖어 축축하고 차가웠다.

그러나 최지형은 이보다 좋을 순 없다는 듯 입술을 깨물며 절정을 참아냈다. 고작 이 정도 접촉에 사정할 순 없었다.

그가 첫 사정은 하진의 깊은 안쪽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흐으…….”

하진의 살결을 만지자 여유가 사라졌다. 고작 얼굴을 쓰다듬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좋은데 그의 안에 들어가면 얼마나 좋을까. 최지형의 마음이 급해졌다.

“하진 씨, 내 말 들어요. 안 그러면 아프게 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의 첫 경험인데 아프게 하고 싶진 않아요. 응?”

약에 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뺨을 쓰다듬는 손을 떼지 않고서 최지형은 하진을 재촉했다.

“…….”

“네? 다시 말해줄래요?”

최지형은 무언가 작게 읊조리는 하진의 입술에 귀를 가져다 댔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상관없었다.

그의 능력은 그저 상대의 대답을 듣기만 하면 사용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설사 하진이 욕을 한다고 해도 그건 자신의 말에 대한 대답이 될 것이다.

가져다 댄 귓가에 하진의 숨결이 느껴졌다. 얼굴을 쥔 손은 그대로라 고개만 돌린다면 그와 입을 맞출 수도 있었다. 상상만으로도 입안이 마르고, 침이 고였다.

아직까지도 고통이 상당한지 하진은 숨을 고르지 못하고 여전히 거칠게 숨을 쉬었다. 그 틈으로 하진의 나직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좆 까, 이 새끼야…….”

내가 이겼어.

대답을 들은 최지형이 능력을 사용하려는 순간이었다. 하진의 얼굴에 닿은 손에서부터 이루 말할 수 없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각이 온몸에 퍼졌다.

본능적으로 이게 가이딩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최지형은 감히 하진에게서 손을 뗄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자신의 모든 계획이 무너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아…… 아아…….”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이 충족감에서 어떻게 멀어지려 할 수 있을까.

최지형은 온몸에 채워지는 충족감에 눈물 흘렸다. 다만 슬픈 것은 다시 눈을 떴을 때 하진이 자신의 곁에 없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풀썩.

최지형이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잠들었음에도 그의 눈가에선 계속해서 눈물이 쏟아졌다. 그러나 최지형이 눈물을 흘리든 콧물을 흘리든 하진이 알 바가 아니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하진은 강아지를 보았다. 시선이 마주친 강아지가 어깨를 움찔 떨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진이 기어코 가이딩 차단을 이겨냈다는 것을.

만약 가이딩이 눈에 보였더라면 그의 몸 주위로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가이딩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꿀꺽.

저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갔다. 하진의 가이딩이 얼마나 황홀한지 그는 알지 않은가. 덫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에게 닿고 싶어서 안달 난 몸이 자꾸 그에게 향하려 했다.

“강아지 씨, 마지막으로 부탁하겠습니다. 이것 좀 풀어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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