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66화
하진은 좀 더 철저하지 못했던 자신을 탓했다.
“그, 그렇게 보지 마세요. 하진 씨가, 바, 바란 거잖아요.”
최지형은 하진이 무섭게 노려보는데도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에게 손을 뻗었다. 차갑게 질린 손이 붙잡히자 팔 전체에 저릿함이 퍼지며 눈앞이 하얗게 물들었다.
“흐, 윽!”
참지 못하고 고통에 찬 신음을 터트리자 최지형이 더욱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시체처럼 차가워진 하진의 손을 아무렇지도 않게 주무르고 만지작대며 제 욕심을 채웠다.
“하진 씨의 손, 부드러워요…….”
기어코 얼굴을 내려 하진의 손에 제 얼굴을 비비더니 깊게 파묻고 호흡하는 최지형이었다.
하진은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뜨겁고 축축한 숨결에 인상을 썼다.
움직일 때마다 저릿저릿 아파 오는 팔을 들어 피해 보려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피가 통하지 않는 손을 강하게 잡아 오는 바람에 하진이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손과 발이 저리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저린 단계는 이미 넘어선 지 오래고, 이젠 손과 발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차라리 감각까지 사라지면 좋을 텐데 최지형이 주물럭거릴 때면 따끔따끔한 통증이 살아난다는 게 문제였다.
“좀 떨어져……!”
결국 생리적으로 고인 눈물을 흘려보낸 하진이 최지형을 밀어내려 했다. 서른둘이나 먹고 아파서 울었다는 게 자존심이 상하긴 했으나 가이드를 울렸다는 사실에 충격받고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있었다.
“하아…… 하진 씨, 우, 우는 게 너무 예뻐요.”
그러나 죄책감은커녕 그의 변태성을 자극하기라도 했는지 최지형은 하진의 눈물에 몸을 떨 정도로 황홀해했다.
“저, 저 때문에 우는 거죠? 정말 좋아요……. 하, 하진 씨에겐 저, 저만 있으면 돼요.”
심지어는 하진의 몸을 덮치듯 누르더니 혀를 길게 빼어 눈물 자국을 핥았다.
“무슨……!”
혀의 감촉에 몸서리친 하진이 아픈 것도 잊고 몸부림을 치는데도 최지형은 오히려 하진의 얼굴을 붙잡고는 눈가까지 착실히 거꾸로 핥아 올라갔다.
눈가에서 느껴지는 축축함에 하진이 눈을 질끈 감았다.
‘망할……! 가이딩은 왜 안 되는 거야!’
눈을 뜬 순간부터 가이딩하려 했지만, 무슨 개수작을 부렸는지 아까부터 가이딩이 시도조차 되지 않았다. 마치 억지로 누군가에 의해 막힌 듯한 느낌이었다.
하진은 개도 아니면서 제 눈물을 모조리 핥아 먹을 기세로 붙어 있는 최지형에 진저리치면서도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약이라도 먹인 건가?’
가장 먼저 가이딩을 억제하는 약이 떠올랐으나 하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럴 리는 없어.’
함부로 약을 먹였다가 제 몸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아쉬운 건 저들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최지형이 미친 또라이 변태 새끼라고 해도 그 정도 생각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설마 팔다리를 묶은 것과 연관이 있는 건가?’
그것도 확신할 수 없었으나 지금으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있었다. 빌어먹게도 철저한 변태 새끼 때문에 하진이 애꿎은 제 입술만 괴롭혔다.
‘이걸 어떻게 풀어내지?’
눈물을 흘려도 좋다고 헉헉대는 변태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는 사이 만족할 만큼 핥았는지 최지형이 떨어졌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몸을 일으킨 최지형은 아예 하진의 위로 덮치듯 올라탔다. 그 행동이 뜻하는 바를 알 수 있었다.
“하진, 씨……. 하진 씨 때문에 저, 이렇게 됐어요. 채, 책임지세요.”
최지형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허리를 움직였다. 옷과 옷이 마찰하는 수준이지만, 묵직함 속에서 느껴지는 불룩함에 기분이 더러웠다.
벗어나려고 몸을 움직이면 오히려 눈을 감고 바르르 떨면서 좋아할 뿐이라 하진은 반항도 할 수 없었다.
“……최지형 씨. 이러지 마세요.”
그는 이러다간 최지형에게 덮쳐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것만은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했다.
하진은 욕하고 침을 뱉어버리고 싶은 걸 꾹 참고서 최지형을 설득하려 들었다.
“하다못해 이 끈만이라도 풀어주세요. 손발이 떨어져 나갈 거 같다고요. 가이딩해줄 테니 이 끈 좀…….”
하진이 호소하자 최지형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에 하진은 더욱 아픈 척 눈썹을 늘어뜨렸다.
“혹시…… 가이딩이 안 되는데 이 끈 탓입니까? 도망치지 않을 테니 풀어 주십시오. 아니면 하다못해 느슨하게라도…….”
하진이 인생에 다시없을 명연기를 펼쳤으나 넘어오는가 싶었던 최지형은 굳건하기만 했다.
“그건 안 돼요.”
단호하게 떨어진 부정에 참을성을 잃은 하진이 울컥했으나 마지막까지 설득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다시 한번 참아냈다.
“왜죠? 그러면 이 끈 때문에 가이딩을 받을 수도 없을 텐데 관계를 해서 뭐 하죠?”
한 번 방사 가이딩을 맛본 최지형이 가이딩을 포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하진의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사, 상관없어요. 저는 하진 씨만 있으면, 그걸로 조, 좋아요.”
최지형이 하진의 생각 이상으로 변태였던 것이다. 최지형은 충격에 빠진 하진의 뺨을 부드럽게 감싸며 눈을 마주했다.
“사, 사랑하는 사이에 가이딩은 주,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대체 언제 그와 자신이 사랑하는 사이가 된 건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그걸 따지기도 전에 조심스레 눈을 감은 최지형의 얼굴이 조금씩 가까워졌다.
금방이라도 입술이 닿을 기세라 고개를 돌리려 안간힘을 썼으나 역시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하지 못하도록 강하게 붙들어오는 힘에 눈물이 고일 뿐이었다.
‘젠장. 이놈이고 저놈이고……!’
이제는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졌다. 하진은 차마 이 상황을 눈뜨고 지켜볼 수 없어 차라리 눈을 감아버렸다. 그때였다.
“최지형 이 개새끼야! 이하진 네가 들고 갔지!”
폭탄이라도 터지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벽 한쪽이 허물어지며 강아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단언컨대 강아지가 이렇게나 반가운 적은 처음이었다.
굳이 그를 부를 것도 없이 강아지의 시선은 곧바로 하진과 그 위를 덮친 최지형에게 꽂혔다.
두 사람의 자세를 본 강아지는 까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악물더니 순식간에 최지형의 멱살을 잡았다.
어찌나 빠르던지 하진의 눈에는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몸을 누르던 묵직한 무게가 사라지자 하진은 다시 손과 발을 꼼지락거리며 어떻게든 피가 통하도록 했다.
그사이 키가 비슷한 최지형의 목을 잡고 대롱대롱 들어 올린 강아지가 낮은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켁, 콜록!”
“말해, 이 새끼야! 뭐 하는 짓거리냐고!”
목을 잡아 놓고 잘도 말을 할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최지형을 향한 괘씸함이 남아 있었기에 하진은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강아지는 대답은커녕 숨이 막혀 콜록거리는 최지형을 혐오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이내 던지듯 내려놓았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엎어진 최지형이 한참을 콜록거렸다.
“강아지 씨!”
그 틈을 타 하진이 강아지를 불렀다. 최지형의 능력은 세뇌와 최면이었다. 이미 전적이 있는데 강아지라도 그 능력을 피해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일이었다.
“어! 괜찮아?”
강아지는 하진의 부름에 휙 고개를 돌리고는 마치 히로인을 구하러 온 영웅이라도 된 듯 든든하게 곁을 지켰다.
지금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납치범 주제에 같잖다고 코웃음을 쳤겠지만, 지금만큼은 강아지가 정말로 든든하게 느껴졌다.
“이것 좀 풀어주세요. 손발이 떨어져 나갈 것 같습니다.”
하진이 힘겹게 팔을 들어 보였다. 손바닥은 이미 거무죽죽했고, 팔뚝까지 퉁퉁 부어 있었다. 귀하디귀한 하진의 몸에 이상이 생긴 것에 강아지가 눈을 크게 떴다.
“이런 시발! 저 미친 새끼가!”
이대로라면 손발이 떨어져 나갈 거 같다는 하진의 말이 사실이 될 게 뻔했다. 강아지는 자신이 상상하고도 소름이 돋아 몸서리쳤다.
“금방 끊어줄게.”
‘드디어……!’
끈만 풀게 되면 계획이고 뭐고 당장에 탈출할 것이다. 총을 든 연구원들도 이 순간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어차피 이들을 재우면 더는 이곳에 있을 수 없었다.
‘차라리 에스퍼 반대 단체를 피해 숨어다니는 게 더 낫겠군.’
손발을 끊어먹으려는 변태 새끼보다는 차라리 그게 나았다.
“어지간히도 꽉 묶었네. 아프겠다.”
팽팽하게 동여맨 매듭을 끊어내기 위해 강아지가 손을 올린 그때였다.
“콜록, 아, 안 돼…….”
그새 기침을 가라앉힌 최지형이 입을 열었다. 무슨 개소리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하진이 강아지를 재촉했다.
“아지 씨, 저 아픕니다.”
일부러 성도 떼고 부르자 강아지의 고개가 다시 하진에게 돌아왔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이름으로만 불린 게 좋은지 헤실헤실 웃었다.
“어어! 당장 끊어줄게!”
“지금 그 끈 풀면 도망갈 텐데?”
헤실거리며 웃던 강아지의 얼굴이 굳었다. 당장이라도 끈을 끊어낼 것만 같았던 손에 힘이 풀리고 고개가 다시 최지형에게 돌아갔다.
“강아지 씨……!”
하진이 다급한 마음에 강아지를 불렀지만, 그보다 최지형의 말이 이어지는 게 먼저였다.
“도망가면 잡을 수는 있어?”
더듬지도 않고 매끈하게 이어진 말에 강아지가 결국 완전히 손을 떼어냈다. 하진은 이를 악물었다.
그들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자신이 우스웠다. 경계심을 늦춘 바람에 이렇게 되었으면서 또 이들을 믿고 있는 자신의 꼴이 어이가 없었다.
그러는 중에도 강아지와 최지형의 대화는 이어졌다.
“너, 어쩔 생각이냐?”
최지형의 말에 설득되어 하진을 구하는 걸 포기했지만, 강아지는 여전히 최지형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진을 독점할 생각이었다면 데리고 도망을 갔어야지.
강아지의 질문에 최지형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소심하고 음침하던 최지형은 어디 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원래 계획은 하진 씨를 독차지할 생각이었는데……. 너한테 들켜버렸네. 그냥 도망이나 쳤어야 했는데.”
하진은 마치 이중인격인 것처럼 바뀐 최지형의 모습에도 헛웃음조차 흘릴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저들끼리 손을 잡고 사이좋게 하진을 유린할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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