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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63화 (63/136)

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63화

한지우가 코피를 줄줄 쏟았던 일에 대해 말하자 박지원의 눈이 커지고, 입이 떡 벌어졌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하성진의 어깨를 찰싹 때리고 말았다.

“성진 씨, 미쳤어? 그걸 보고 안 하면 어떡해!”

협회에서 가이드의 건강과 안전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런데 S급 가이드씩이나 되는 이의 상태를 숨겼으니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성진은 앓는 소리를 내며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으으, 역시 했어야 했던 거지? 난 뒤졌다…….”

“지금이라도 얼른 보고해요. 나중에 일 터지고 나면 진짜 잘리는 걸로는 안 끝나. 차라리 지금 된통 깨지고 마는 게 낫지.”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에스퍼들의 파장이 불안정한 지금, 한지우의 건강 상태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쓴소리를 듣고 나니 그제야 진즉에 보고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찾아왔다.

“하아, 얼른 다녀올게요. 보고서 작성할 시간도 없다.”

하성진은 동기의 배웅을 받으며 상사의 사무실로 향했다. 부디 잘리지만은 않기를 바라며 말이다.

“뭐?! 이 미친놈아! 그걸 왜 이제 말해?!”

“윽, 죄송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하성진은 불같이 쏟아지는 상사의 화에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상사, 한태식 부장은 뒷골이 뻣뻣해지는 느낌에 더는 소리도 치지 못하고 끅끅 넘어가는 소리만 냈다.

한참을 속으로 분을 삭이던 한태식은 하성진을 한 대 때려주고 싶다는 듯 쳐다보았으나 다시금 참아낸 후, 명령했다.

“당장 한지우 가이드 숙소로 사람 보내. 그리고 에스퍼들 파장 검사도 다시 하고. 한지우 가이드 상태가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하성진 대리는 이 일 마무리되면 다시 보자.”

“……예.”

하성진은 뒤로 미뤄진 징계에 울상을 지으면서도 착실히 몸을 움직였다.

당장에 뛰어간 그는 팀원들에게 연구원을 대동해 에스퍼 파장 검사를 새로 실시하라고 이른 뒤, 발걸음을 돌렸다.

한지우의 상태를 직접 눈으로 봤던 장본인이었기 때문에 그가 직접 의료진과 함께 한지우의 숙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한지우 가이드, 하성진 대리입니다! 계세요?”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도 안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그에 하성진의 얼굴도 하얗게 질려갔다.

설마 그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만약 그렇다면 그는 끝장이었다.

다급해진 하성진은 다시 문을 세게 두드렸다.

“한지우 가이드!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대답 없으시면 문 열고 들어가겠습니다!”

그럼에도 안에서는 어떠한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하성진은 강제로 문을 열기 위해 주변을 살펴야 했다.

‘C급이라도 에스퍼 한 명 데리고 올걸!’

가이드 숙소, 그것도 S급을 위한 숙소인지라 문고리조차도 튼튼하기 그지없어 일반인인 하성진이 맨몸으로 문을 부수기란 요원했다.

큰 돌 같은 건 없나 찾아보는데 때마침 잠겼던 문이 열리고 한지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지우 가이드! 안에 계셨군요!”

한지우의 생사를 확인한 하성진의 얼굴이 밝아지든 말든, 한지우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무슨 일인데요.”

한바탕 코피를 수습하는 중에 이들이 찾아온 터라 한지우의 안색은 전보다도 창백했다. 이전 상태보다도 안 좋아진 그를 보며 하성진은 역시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아무래도 일전에 코피를 흘리신 게 신경 쓰여서 말입니다. 건강에 문제가 있으신 거 같아 검사를 위해 의료진을 모셔왔습니다.”

“뭐……? 아니, 왜 멋대로……!”

한지우는 버럭 소리를 지르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말을 꺼내 보았다.

“괜찮은데요. 필요 없어요.”

“지금 안색 안 좋으세요. 눈 밑이 거뭇하고 입술에도 핏기가 없으신 걸 보아하니 빈혈기도 있으신 거 같은데 검사가 꼭 필요합니다.”

더는 도망칠 곳이 없었다. 역시나 하얗게 질린 몰골로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해봤자 아무런 설득력도 없었다.

오히려 지켜보고 있던 의료진이 심각한 얼굴로 끼어드는 모습에 한지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부디 서주안의 말대로 약 기운이 체내에 흡수됐기를 기도하는 일밖에 없었다.

한지우 한 사람에게 열 명 가까이 되는 의료진이 달라붙었다. 그들은 조심스럽지만 신속한 손길로 한지우의 눈꺼풀을 뒤집고, 혈압을 재고, 피를 뽑았다.

주사가 닿는 순간, 한지우는 꺼지라고 소리치고 싶은 것을 참아내야 했다. 검사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닌데 소란을 피워 의심을 살 수는 없었다.

그는 한 번 속았음에도 불구하고 서주안의 말을 거짓이 아니기를 바라야 했다.

간단한 진단을 마친 의료진은 저마다 심각한 얼굴로 한지우와 하성진을 보았다.

“아무래도 병동으로 이동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병동이요?”

그 말에 두 사람 모두 놀라고 말았다. 하성진은 제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한지우의 상태에 징계가 더 커질까 봐 걱정했다.

어떻게든 한지우의 상태를 되돌려놔야 할 이유가 생겼다.

“어, 얼른 가죠.”

“그냥 약 먹고 쉬면 괜찮아지는데요.”

한지우가 마지막까지 미약하게 반항해 보았으나 강경한 태도에 막히고 말았다. 그들은 혹시라도 큰 병일까 봐 걱정되어서 그러는 것뿐이라고 최선을 다해 그를 달랬다.

“한지우 가이드 말대로 피로가 누적되어 그런 걸 수도 있죠. 그런데 그걸 알아내려면 일단 제대로 검사를 해야 하니까요.”

한지우는 입안의 살만 잘근잘근 씹어대며 도망치지도 못하고 그들의 뒤를 따랐다.

병동에 도착한 그들은 한지우를 병실에 넣어두고 곧바로 채취한 피를 검사기에 돌렸다.

검사 결과는 3분 정도면 나오기에 그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한지우에게 이것저것 말을 걸며 상태를 파악했다.

“일단은 피검사 결과를 확인한 후에 나머지 검사를 해보죠. 아, 마침 나왔네요.”

그 말에 의사 한 명이 검사지를 확인했다.

“응?”

그러더니 갑자기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며 검사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그런 동료의 반응에 다른 의사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정 선생, 왜 그래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아니, 결과가 이상한데요?”

그 순간 한지우의 심장이 쿵 떨어지더니 전신을 울릴 것처럼 크고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귓가에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리고,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하얗게 머리가 표백되었다.

그런 한지우의 반응을 발견하지 못한 의사들은 검사지를 들고 있는 정 선생에게 되물었다.

“뭐가 이상하다는 거예요?”

“이, 이게 이럴 수가 있나?”

정 선생은 그때까지도 직접 본 것을 믿지 못했다. 그의 당황한 시선을 받은 한지우는 숨이 턱 멎는 기분에 시선을 피하지도 못했다.

“대체 뭐가 이상하다는 거냐니까.”

“차라리 줘요. 직접 볼 테니까.”

제대로 된 대답을 듣지 못해 답답해진 의료진이 결국 정 선생에게서 검사지를 뺏어 들었다. 그리고 곧 그들의 반응도 정 선생과 다를 바가 없어졌다.

“이게 무슨…….”

그들의 시선이 정 선생과 마찬가지로 한지우에게 향했다. 그 시선에는 경악과 당황스러움이 한데 섞여 있었다.

“한지우 가이드…….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한지우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추궁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데도 한지우에게 계속 물었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이런 결과가…….”

경악한 채 같은 말만 반복하는 이들 중에서도 그나마 정신을 차린 이가 있었다.

“가이딩 파장 검사도 다시 해보죠.”

파장 검사라는 말에 굳어 있던 한지우가 발버둥 쳤으나 병자나 다름없는 몸은 금방 제압당했다.

오히려 그 반응에 무언가 있다는 것을 직감한 의료진은 서둘러 파장 검사를 실시했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또한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검사지를 확인한 의료진은 이젠 탄식조차 뱉을 수 없었다. 협회에서 일하며 별꼴을 다 본 그들도 이런 결과는 처음이었다.

검사지에 나타난 한지우의 파장은 기형적이었다. 한 차례에 그치지 않고 여러 번 측정했는데 그때마다 다른 값이 나왔다. 한마디로 파장이 시시각각으로 들쭉날쭉 널을 뛰었다는 뜻이었다.

에스퍼도 아니고, 가이드의 파장에는 그렇게 큰 변화가 있을 수 없었다.

대체 언제부터 파장이 이랬던 걸까. 이런 말도 안 되는 파장으로 에스퍼들을 가이딩했으니 그들의 상태가 이상한 것도 당연했다.

애초에 한지우가 재검사를 요청했을 때, 등급 측정만 하고 끝내선 안 됐던 거다. 심각해진 분위기에 아직 결과를 확인하지 못한 하성진이 불안에 떨었다.

“크, 큰일입니까?”

그 속에는 우리, 아니 저 X 됐나요? 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한숨을 내쉰 정 선생은 복잡한 마음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인과 관계는 제쳐두고 결과만 말하자면, 한지우 가이드의 등급은 자연적으로 오른 게 아니라 인공적인 방법으로 올린 것으로 추측됩니다. 처음 보는 약물이 피에서 검출되었으니 아마 약을 이용한 것이겠죠.”

억지로 등급을 올리자 몸이 따라가지 못했다.

한지우는 느끼지 못하고 펑펑 가이딩해 댔지만, 그때마다 그의 신체는 부족한 가이딩을 체력에서 끌어다 썼고, 그 결과 버티지 못한 몸이 축나고 만 것이다.

부작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한지우의 체내에 남은 약물은 파장에도 영향을 주었다. 결과마다 들쭉날쭉 바뀌는 파장이 그 증거였다.

그의 가이딩을 받은 에스퍼들의 파장이 불안정해지고 폭주 수치 또한 이전과 달리 빠르게 차오르는 것도 그 때문일 게 분명했다.

“그, 그러니까…….”

설명을 들은 하성진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뒷말은 이어지지 못했지만, 정 선생은 다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차마 그가 끝맺지 못한 말을 이었다.

“예……. 동시다발적으로 에스퍼 폭주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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