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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62화 (62/136)

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62화

아니다. 고도의 수법으로 자신을 화나게 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그냥 미친놈이라서 이러는 거였다.

대체 본인이 좋으면 상대도 좋을 거라는 막무가내식 생각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걸까. 남들의 평범한 기준에 맞춰 인생을 살아온 하진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좋았겠습니까? 하지 말라는데 억지로 했잖습니까.”

더는 참지 못하고 까칠하게 말이 튀어 나갔다. 그러자 밖에서 들리던 강아지의 목소리도 잠잠해졌다.

설마 화가 난 걸까? 접촉 가이딩까지 했는데 화를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싫어할 줄은 몰랐는데…….”

하진의 예상대로 강아지는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가 입을 다문 이유는 하진이 자신에게 화가 나서였다. 여태껏 누군가가 자신을 욕하고 미워하는 게 중요했던 적은 없었다.

그래봤자 피라미들이 하는 짓이 자신에게 타격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하진은 달랐다. 그가 화를 내니 어떻게 해야 하면 좋을지 모를 어린애가 된 기분이었다.

“그, 화 안 내면 안 돼?”

한 번도 누군가의 비위는커녕 눈치도 본 적 없는 강아지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여전히 뭐가 잘못된 건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하진이 화를 내지 않았으면 했다.

“내가 왜 그래야 합니까? 피해자는 난데 말이에요.”

여전히 냉정한 반응에 강아지는 어떻게든 그의 화를 풀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뭘 더 해줘야 하지? 정원에도 데려갔는데. 진짜 밖으로 데려가 주면…….’

생각을 이어 나가던 강아지는 순간 자신이 떠올린 방안에 고개를 저었다. 다른 건 다 해줄 수 있지만, 밖으로 데리고 나갈 수는 없었다.

알아본 바에 의하면 여전히 협회는, 적어도 알파 팀은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하진을 찾고 있었다.

강아지는 하진을 빼앗길 수 있는 확률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게 천에 하나, 만에 하나의 확률이라고 해도 말이다.

절대 하진을 빼앗길 수 없다. 자신도 결국은 어쩔 수 없는 에스퍼라고 비웃어도 어쩔 수 없었다.

아무튼 밖으로 나가는 걸 제외하고서 하진의 화를 풀 만한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던 때였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최지형이 돌아왔다.

“너…….”

뒤에서 들리는 걸음 소리에 강아지가 인상을 와작 구겼다. 최지형은 평소와 달리 그 눈빛에도 기죽지 않고 맞섰다.

“하, 하진 씨를 귀찮게 하지 마.”

“……네가 뭔데?”

그렇지 않아도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하진을 꼬드겨 옆자리를 차지했던 걸 벼르고 있던 참이었다.

그에 그치지 않고 마치 자신이 뭐라도 된 양, 하진을 보호하려 들기까지 하자 더는 그냥 넘어갈 수 없어졌다.

강아지는 아예 몸까지 돌려 최지형을 바라보고 섰다. 분노가 직접적으로 향하자 최지형의 몸이 움찔 떨렸으나 무언가 큰 다짐이라도 한 것처럼 도망치진 않았다.

“……마음에 안 들어.”

그 모습이 오히려 강아지의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 음침하고 소심하고 겁도 많아 항상 쭈그러들어 있던 최지형이 감히 자신에게 맞서고 있었다.

그것도 마치 하진을 자신으로부터 지키겠다는 듯이 말이다.

“하진 씨는 내, 내가 지킬 거야.”

“감히 내 걸 뺏어가겠다고?”

안에서 듣고 있던 하진은 내가 왜 당신 것이냐고 끼어들고 싶었으나 그럴 분위기가 아니기에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저 싸우려거든 다른 곳으로 가서 싸워주길 바랄 뿐이었다.

‘아니지. 싸우면 안 되지.’

하진 때문에 에스퍼들끼리 싸웠다는 소문이 퍼지면 분명 자신이 그들에게 무슨 짓을 했다고 의심할 게 분명했다.

실제로 강아지에게는 접촉 가이딩을 해버렸으니 그 사실을 들켜선 안 됐다.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하진은 벌컥 문을 열었다.

역시나 그의 예상대로 강아지는 덤벼들기 직전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하진 씨!”

최지형은 마치 하진이 자신을 구하려고 스스로를 희생에 마왕의 손아귀에 제 발로 걸어가려 하는 왕자를 보듯이 하진을 불렀다.

“뭐야. 들어가 있어. 금방 끝낼 테니까.”

강아지는 소란을 일으키겠다는 말을 아주 당당히 하고 있었다. 일단은 이 상황부터 막아야겠다 싶어진 하진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뭘 끝내겠다는 겁니까. 싸우지 마세요.”

앞을 막고 선 하진을 보며 강아지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살벌한 얼굴로 최지형을 노려볼 때와는 딴판이었다.

“왜 막아? 지금 저 새끼 편드는 거야?”

“싸우지 말라는 거잖습니까. 소란 일으키지 마세요.”

유치하게 편을 가르는 말에 하진이 어린애 달래듯 하자 강아지가 더욱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저 자식을 뒤에 세우고 날 보고 섰잖아!”

“아니, 이건 그쪽이 말을 걸어서 그런 거잖아요.”

하진은 대답하느라 그쪽을 보고 선 것뿐인데 그걸 두고 징징대는 강아지에 어이가 없어졌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하진이 최지형의 편을 들었다는 생각에 억울하고 서러워진 강아지는 결국 분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를 뛰쳐나갔다.

나가서 괜한 소란을 일으키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으나 부디 그러지 않기만을 빌며 하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으세요……? 괜히 저 때문에…….”

“아…… 예. 뭐.”

걱정하는 사람치고는 발갛게 상기된 얼굴에 하진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설마 강아지가 한 말을 믿는 걸까.

“제, 제가 지켜드렸어야 하는 건데.”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그 말을 믿었나 보다. 최지형은 마치 고백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수줍어서 하진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하진은 이 오해를 바로잡을지 말지 고민했다.

‘이것도 나름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최지형을 이용할 생각이었는데 이런 작은 오해는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나 싶었다. 하진은 잠깐의 고민 끝에 굳이 오해를 풀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나 때문에 최지형 씨가 고생한 건 아닌가 싶네요.”

“그, 그럴 리가요!”

최지형은 절대 그렇지 않다며 손과 함께 고개를 붕붕 내저었다. 안경이 흐트러지고서야 움직임을 멈춘 그는 하진이 픽 웃자 단번에 얼굴을 붉혔다.

“저, 저는 그럼 제 방에 있을게요.”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황급히 돌아서는 몸짓이 어딘가 이상했으나 하진은 금세 잊었다.

* * *

며칠 푹 쉬면 다시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한지우의 상태는 여전히 좋지 못했다.

삼 일째 두문불출하며 집에서 강박적으로 휴식만 취한 한지우는 틈만 나면 거울을 확인했으나 그의 안색은 여전히 거무죽죽했다.

극한으로 몰려 불안에 떨며 취하는 휴식이 제대로 된 휴식일 리 없는데도 한지우의 생각은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다.

“왜 안 낫는 거야……!”

영양제는 물론이고 몸에 좋다는 음식들까지도 억지로 챙겨 먹었는데도 도무지 좋아질 기미가 없는 몸 상태에 한지우는 손톱을 물어뜯었다.

또 언제 가이딩해 달라고 찾아올지 몰라 그의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렇게 다시 이틀이 지났을 때였다. 이 정도 쉬었으면 충분할 법도 한데 한지우는 기어코 또 한 번 코피를 쏟고 말았다.

가이딩은 전혀 하지도 않았는데 쏟아지는 코피에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 *

협회에는 이상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에스퍼들, 특히나 S급 에스퍼들의 폭주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차올랐고 파장 또한 불안정했다.

그에 연구원들은 다급히 사태 파악에 나섰지만, 좀처럼 실마리가 잡히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S급 가이드인 한지우가 있으니 아직 폭주한 에스퍼는 없지만, 문제가 터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S급 가이드가 세 명쯤 더 있었으면, 아니지. 이하진 가이드만 있었으면 가이딩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

폭주 직전의 에스퍼를 가이딩한 후, 휴식을 취하는 중인 한지우와 달리 하진은 알파 팀을 한꺼번에 가이딩할 수 있으니 그가 있었더라면 이렇게 언제 터질지 모를 폭주에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었을 거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이하진 가이드는 S급 네 명을 가이딩하고도 멀쩡했다는데 한지우 가이드는 왜 한 명으로도 저렇게 힘들어하는 거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일거리에 잠시 잊고 있었던 의문이 다시금 물 위로 올라왔다.

그렇지 않아도 점심 식사 후에 찾아온 노곤함에 일하기 싫었던 박지원 대리는 함께 일하는 동기에게 물었다.

마침 그는 한지우를 이동시키는 일을 맡았으니 뭔가 알지도 몰랐다.

“성진 씨, 주성원 에스퍼 때, 한지우 가이드 이동시키는 역할 했었지?”

“응, 그랬었지.”

나른한 오후에 일하기 싫은 건 하성진 대리도 마찬가지였는지 곧장 대답이 돌아왔다.

박지원 대리는 주변에 누가 있는지 확인하고서는 의자를 움직여 그에게 다가갔다.

“혹시 뭔가 이상한 거 없었어?”

대뜸 하기에는 수상스러운 질문에 하성진 대리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쳐다보자 박지원 대리가 본인이 품고 있던 의문을 그에게도 공유했다.

“생각해 봐. 이하진 가이드는 알파 팀을 가이딩하고도 멀쩡했다는데 한지우 가이드는 같은 S급에, 한 사람 가이딩한 건데도 힘들어하잖아. 이상하지 않아?”

그녀의 말을 들으니 이상하긴 했다. 특히나 하성진의 경우, 한지우가 코피를 쏟는 것까지 목격하지 않았는가.

그땐 별것도 아닌 일로 소란을 피웠다가 괜히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봐 입을 다물었는데 생각할수록 이상하긴 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말해도 되려나…….’

하성진은 고민했다. 지금이라도 보고를 올릴 것인가, 계속 입을 다물고 있을 것인가. 그는 마침 제 동기가 그 주제를 꺼냈으니 의견을 구하기로 했다.

“음, 실은 마음에 걸리는 게 있긴 한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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