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59화
“콜록, 콜록! 허억, 미쳤, 미쳤습니까?!”
손끝이라도 닿을까 봐 피할 때는 언제고 갑자기 입을 맞춘단 말인가. 하진은 도무지 이 미친놈의 행동 양식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미친놈이니 경계해야지, 조심해야지 하고 마음먹는 것도 너무 막연했다.
더군다나 여태 하진이 겪어본 에스퍼라고는 알파 팀이 전부였던 터라 안일한 것도 있었다. 그들은 그 성격 급한 한승호조차도 자신이 막으면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도 참았다.
그런 이들을 상대하다가 강아지처럼 어깨를 때리고 거부 반응을 보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욕심대로 행동하는 이를 만나니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다짜고짜 이게 무슨 짓입니까!”
“아…… 존나 좋네. 한 번만 더 하자. 진짜 꼴려. 왜 그 새끼들이 미쳐 돌아버리는지 알겠네. 시발, 이렇게 좋은 걸 지들만 했다고?”
그러나 하진이 화를 내도 무언가에 홀린 듯 몽롱한 강아지는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다시 하진에게 스멀스멀 손을 뻗었다.
“꺼지라고……!”
하진은 최선을 다해 강아지를 밀어냈다.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폭력까지 썼으나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피하기 위해 돌린 고개가 거칠게 붙들리고 또다시 입술이 닿았다.
혀가 입술을 가르고 들어와 이곳저곳을 탐하자, 그러고 싶지 않은데도 자꾸 숨소리에 질척질척한 소리가 섞여 하진의 귀를 찔러댔다.
‘젠장, 이 미친 개새끼가!’
강아지는 절대 멈출 것 같지 않았다. 상의 안으로 불쑥 들어온 손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연신 배를 쓸고 허리를 만지작거리고, 이윽고 가슴까지 올라온 손을 느낀 하진은 결국 강아지에게 가이딩할 수밖에 없었다.
살갗이 맞닿은 곳은 넘쳤다. 접촉을 통해 조절하지 않고 가이딩을 불어넣으니, 그러기 무섭게 강아지의 몸에 힘이 풀리며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잠든 것이다.
“허억, 후우, 젠장…….”
하진은 어떻게든 접촉 가이딩만은 피하려 했던 계획이 망가지자 욕을 지껄였다.
가이딩을 요구하지 않는 것부터가 아직 하진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았다는 뜻인데 가이딩을 해버렸으니 하진에게 경계의 시선이 더 몰릴 게 분명했다.
어떻게든 이 사실을 숨겨야 했다. 숨기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싶지만, 그래도 노력은 해야 했다.
‘그나마 이들이 다 모이는 경우는 드문 것 같으니 강아지만 조심시키면 된다.’
하진은 애써 불안한 마음을 다스렸다. 강아지 한 사람쯤이라면 입막음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진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강아지는 땅에 얼굴을 처박은 자세 그대로 계속해서 푸푸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가이딩을 조절하지 않고 퍼부었으니 강아지가 깨어나려면 아직 한참은 더 남았다는 것이었다.
거의 반나절에서 한나절까지도 잠드는 것 같았는데 그때까지 이곳에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깨우는 게 가능은 한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한 시간 이내에 강아지를 깨울 만한 방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 하진 씨? 아지야……?”
‘젠장, 저놈은 또 왜 여기 있는 거지?’
설상가상이라고 하나. 그렇지 않아도 강아지 일로 머리가 아픈데 최지형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강아지를 피해 다녔으면 끝까지 피해 다닐 것이지 왜 갑자기 제 발로 찾아온단 말인가. 하진은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쏘아붙이고 싶었다.
“하진, 어?”
그 또한 S급 에스퍼라고 기척을 읽는 게 퍽 쉬운 일인지 최지형은 지나치지 않고 하진을 찾아냈다.
하진을 발견하곤 환하게 웃으려던 최지형이 하진의 바로 발밑에 엎어진 강아지를 발견하고는 놀라 입을 꾹 다물었다.
어찌나 놀랐는지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리는 게 하진의 눈에도 보일 정도였다.
“어, 어? 이게 무슨……?”
하진은 이제 다 틀렸다고 생각했다. 여차하면 자신들을 가이딩으로 재울 수 있다는 걸 들켜버렸으니 이 상황을 그냥 넘길 리 없었다.
‘젠장……. 가이딩으로 꼬드겨 볼까?’
그답지 않은 생각이었으나 어차피 다 들킨 마당에 시도해서 나쁠 건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하진이 조심스럽게 방사 가이딩을 퍼트리려 할 때였다.
최지형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조심조심 엎어진 강아지를 피해 하진에게 다가갔다.
“괜, 찮아요?”
‘이건 또 뭐지.’
하진은 그가 강아지에게는 흘깃 눈길만 한 번 줄 뿐, 오히려 저를 더 살피고 챙기려 드는 모습에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희망에 머리를 굴렸다.
아무래도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최지형은 하진에게 마음을 준 듯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꼴을 보고서 하진을 먼저 챙길 리가 없었다.
누가 봐도 하진이 강아지를 재운 꼴인데 손을 뻗기만 하면 닿을 곳에 서 있을 리가 없었다.
‘어쩌면…….’
최지형을 이용하면 지금의 일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의 능력에 대해서 아는 건 없지만, 어쨌거나 S급 에스퍼이니 상황을 무마시킬 수 있는 능력 정도야 있을 것이다.
짧은 순간에 빠르게 생각을 마친 하진은 최지형을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최지형 씨.”
최대한 순하게, 위협적이지 않아 보이게 연기하는 게 어려웠으나, 하진이 조금만 눈썹을 늘어뜨려도 무슨 일이냐며 달려오는 게 에스퍼였다.
“무, 무슨 일 있었어요?!”
누가 봐도 어색한 표정 연기인데도 콩깍지가 제대로 씌었는지 최지형은 제 이름이 불리자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하진을 살폈다.
하진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 반응에 안도감을 느끼며 방금 있었던 상황을 그에게 설명했다.
강아지가 갑자기 덮쳐서 입을 맞췄다는 부분에서 최지형이 무섭게 정색하는 건 영 익숙하지 않았으나, 말을 끝마치기 무섭게 그는 다시 소심한 청년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이 사실이 퍼지면 저를 향한 감시가 더 심해지겠죠.”
“그, 그건…….”
최지형이 차마 말을 끝맺지 못하고 말끝을 흐리자 하진이 다 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나도 그 정도는 압니다. 당신들이 아직 날 믿지 못해서 가이딩도 받지 않고 있는 걸 내가 모를까 봐요.”
덤덤하게 흘러나온 말에 최지형은 마치 본인이 잘못한 사람인 것처럼 안절부절못했다.
하진은 그런 최지형을 외면한 채 말을 이어 나갔다. 그의 시선이 닿지 않을수록 최지형이 더욱 안절부절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게 되면 이런 짧은 산책마저도 금지당하겠죠. 그건 좀, 아쉽네요.”
그 말만큼은 진심이었다. 안 그래도 갑갑한 곳에서 이 잠깐의 자유마저도 금지당하게 되면 아쉬운 걸 넘어서 미쳐버릴지도 몰랐다.
굳이 연기하지 않아도 될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자 최지형은 더는 견딜 수 없다는 듯 외쳤다.
“제가! 제가 해결할게요!”
엎어진 강아지를 밟는 줄도 모르고 하진의 곁에 다가온 최지형이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갑자기 잡힌 손에 놀라 그를 바라보자 최지형은 마치 굉장한 사명감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굳게 결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려고요? 강아지 씨 상태라면 누가 팬다고 해도 내일까지는 잠들어 있을 텐데. 그렇다고 잠든 사람을 데리고 나가면 감시 카메라에 다 찍힐 거예요.”
하진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해결 방안을 떠올리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그 탓이었다.
지금 그들이 자리 잡은 곳에는 운이 좋게도 감시 카메라가 없지만, 바로 복도로 나가기만 해도 감시 카메라가 쫙 깔려 있었다.
사람은 피해서 갈 수 있다지만, 수많은 카메라의 시선은 어떻게 피할 것인가. 최지형은 그 의문에 마지막으로 망설이듯 입술을 어물거리더니 이내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말했다.
“제 능력이면 가능해요.”
그렇게 말한 최지형은 잠시만 기다리라며 몸을 돌려 밖으로 향했다. 5분 정도가 지났을 때쯤에 돌아온 그는 이제 나가도 된다며 해맑게 말하고는 강아지를 들쳐 멨다.
그가 뭘 했는지 알 수 없는 하진은 불안했으나 최지형이 강아지를 들쳐 메고 나간 이상, 이곳에 있어봤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결국 그 또한 바깥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카메라를 끄고 오기라도 한 것일까. 하지만 나가자마자 살핀 카메라는 여전히 작동 중이라는 듯 빨간불이 들어와 있었다. 그럼 대체 뭘 하고 왔다는 걸까.
하진은 불안함과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앞서 걷는 최지형에게 물었다.
“정말로 괜찮은 거 맞습니까? 카메라가 여전히 작동 중인 것 같은데요.”
“나, 나중에 설명해드릴게요. 일단은, 돌아가요.”
그렇게 말하니 더는 물어볼 수도 없었다. 하진은 여전히 신경 쓰이긴 했지만, 얌전히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하진이 다시 물어본 건 거주 공간에 돌아와 강아지를 방에 아무렇게나 집어넣고 나서였다.
“이제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요?”
물론 최지형이 그에게 하나하나 설명할 의무는 없지만, 하진은 뻔뻔하게 설명을 요구했다. 최지형 또한 당연하다는 듯 설명을 했고 말이다.
그는 하진이 제게 관심을 보이는 게 그리도 좋은지 쑥스럽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자신의 능력에 대해 털어놓았다.
“실은, 제 능력이 최면, 세뇌라서요……. 저희가 정원 나선 순간부터 이곳으로 돌아오기까지 찍힌 영상은 조작해 두라고 감시실에 있는 직원을 세뇌해 놨어요. 그러니까 거,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겉모습만 본다면 순하고 소심한 청년일 뿐인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에 하진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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