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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58화 (58/136)

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58화

“쳇, 치사해.”

“치사하면 방사 가이딩도 하지 말까요?”

“아니! 아냐. 계속해줘. 나 아직 수치 덜떨어진 거 같아.”

방사 가이딩마저도 거둬간다는 소리에 강아지가 기겁했다. 처음 맛봤던 방사 가이딩과는 달랐다. 그땐 찍어 누르는 가이딩에 느낄 새도 없이 잠들었었다.

그런데도 남은 잔향에 몸서리칠 정도로 좋았는데 제정신으로 맛보는 가이딩을 그보다 더 좋았다.

일부러 더 녹아들 수 있도록 최대한 옅게 가이딩을 뿌린 하진은 적당한 선에서 멈췄다. 공기 중에 남은 가이딩도 있고, 너무 수치를 낮췄다간 나중에 방해가 될 수 있었다.

하진을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하던 가이딩이 사라지자 강아지가 아쉬움에 나직한 숨을 터트렸다.

공기 중에 남은 가이딩을 어떻게든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제 몸 안에 집어넣은 강아지는 하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접촉 가이딩 하면 끝내줄 거 같은데…….’

마치 하진을 잘 차려진 밥상 보듯 쳐다보던 강아지는 혼신의 힘으로 충동을 참아내었다.

“이제 가자.”

먼저 돌아선 강아지의 뒤를 따라가며 하진은 제 생각이 맞았다는 걸 확인했다. 방사 가이딩이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접촉 가이딩보다는 덜 자극적인 게 틀림없었다.

‘조금 전 내가 한 게 접촉 가이딩이었으면 지금쯤 아마 저 인간 밑에 깔려 있었겠지.’

하진이라면 껌뻑 죽는 알파 팀도 접촉 가이딩을 할 때면 충동을 이기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 그들이 그럴진대 눈앞의 남자가 그 충동을 굳이 참아내진 않을 것 같았다.

하진은 이 방사 가이딩을 이용하기로 했다. 쓸 일이 없을 거라는 말까지 들었는데 인생사 참 알 수 없었다.

강아지를 따라간 곳에는 정원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큰 공간이 있었다.

무슨 수를 썼는지 태양 빛으로 느껴지는 햇빛이 쏟아지고, 천장이 있어야 할 자리에 하늘이 있었다.

“여기는, 바깥인 겁니까?”

하진은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강아지에게 물었다. 그는 하진의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크게 웃으며 답했다.

“하하하! 안타깝게도 바깥은 아니야. 본부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공간이지. 우리도 사람인데 햇볕 좀 쬐고, 바람도 쐬어야 할 거 아냐. 나 정도 에스퍼쯤 되면 나가는 거야 문제도 아니지만, 다른 놈들은 아니니까.”

하진은 어느 정도 이곳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아무리 에스퍼들의 능력이 다양하다지만, 그것만으로 이런 공간을 만들어내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탈출이 문제가 아니었군.’

이 정도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는 걸 협회가 과연 알고는 있을까? 하진이 그곳에서 긴 시간을 보낸 건 아니지만, 어쩐지 아닐 거라고 확신할 수 있는 기분이었다.

‘전면적으로 협회와 반정부 세력이 맞붙게 되면…….’

하진은 협회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힘 자체는 협회 측이 강할 테지만, 이런 식의 기상천외한 기술력을 갖췄다면 무슨 한 수를 숨기고 있을지 몰랐다.

‘부디 내가 예민한 거면 좋겠는데…….’

“구경 안 해?”

생각에 잠긴 하진이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하니 강아지가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었다.

숨결이 느껴질 만큼 다가온 이에 반사적으로 물러나자 노골적으로 강아지가 상처받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하진은 못 본 척 그를 무시했다.

“할 겁니다, 구경. 아무 곳이나 돌아다녀도 상관없는 거겠죠?”

“엉~”

어차피 출입구는 강아지가 지키고 있을 것이니 그가 어디를 가든 상관없었다. 하진 또한 이곳이 바깥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인공적이라고 할지라도 오랜만에 맛보는 햇빛과 바람을 편하게 즐기기 위해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찾으려는 것뿐이었다.

잘 가꿔놓은 공원을 걷는 기분에 현실은 변함없다는 걸 알아도 기분이 나아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진은 힘이 쭉 빠지는 어깨에 그제야 자신이 몸을 긴장한 채 굳히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강아지와 어느 정도 멀어진 곳에 있는 벤치에 앉아 눈을 감았다. 만약 강아지가 바깥이라고 거짓말을 한 거라면 그대로 믿어버렸을 정도로 현실감 넘치는 곳이었다.

‘아, 졸리다.’

햇볕을 쬐고 있으려니 슬금슬금 졸음이 밀려왔다. 몸도 노곤하게 풀어지고, 이대로 딱 삼십 분만 잠들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다.

“자려고?”

잠이 싹 달아났다. 하진은 늘어트렸던 몸에 힘을 주고 일으켜 세웠다.

“……왜 따라왔습니까?”

모처럼의 평온한 시간을 방해받은 하진은 저도 모르게 까칠하게 물었다. 그에 강아지가 잔뜩 상처받은 척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내가 오면 안 되는 곳에 왔나? 반응이 왜 그래? 사람 서운하게.”

조금만 더 깊게 잠든 상황이었더라면 우리가 무슨 사이라고 서운해하냐고 쏘아붙였겠지만, 그 정도로 깊게 잠들진 않았던 하진은 속으로 한숨과 함께 그 말을 삼켜냈다.

‘좀 편하게 쉬나 했더니 다 물 건너갔군.’

하진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강아지는 하진의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꾸물꾸물 은근하게 엉덩이를 움직여 제 곁에 붙는 모습을 지켜보던 하진은 다른 곳으로 가버릴까 아주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금세 또 따라올 게 훤해서 그냥 다시 눈을 감았다. 잠은 달아나 버렸지만, 햇볕이 좋아서 괜히 말다툼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이 순간을 즐기고 싶었다.

“어? 자는 거야?”

그래서 강아지가 옆에서 조잘거리며 말을 붙여도 하진은 반응하지 않았다.

옆에 있는 건 말하는 강아지다.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았다. 실제 이름이 강아지이니 그렇게 생각하기 더 편했다.

“진짜 자네……?”

나른한 상태다 보니 숨소리가 잠든 상태와 흡사해 가까운 상대의 숨소리나 심장 소리 정도는 파악할 수 있는 S급 에스퍼조차도 속아 넘어가고 말았다. 물론 하진은 속일 생각도 없었지만 말이다.

강아지는 아예 자세까지 하진을 보는 방향으로 틀어 앉아서는 본격적으로 그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작은 얼굴에 보기 좋게 자리 잡은 이목구비를 하나하나 뜯어보는 게 왜 이리 재밌는지 모를 일이었다.

‘오, 속눈썹 완전 길어. 이쑤시개 올리면 올라갈 거 같은데.’

그 순간, 바람이 불어와 하진의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앞머리가 속눈썹에 걸리고 말았다.

간지럽기도 하고 불편한 감각에 하진의 고운 미간이 구겨졌다. 그러자 강아지는 생각이라는 걸 하기도 전에 손을 뻗어 조심스레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자연스레 구겨졌던 미간이 곱게 펴지는 것을 눈앞에서 직관한 강아지는 어쩐지 가슴 안쪽이 간지러운 기분에 손을 들어 벅벅 간지러운 쪽 가슴을 긁었다.

‘진짜 예쁘게 생겼네…….’

속눈썹 구경을 마친 강아지의 시선은 점점 아래를 향했다. 곧게 뻗어 낮지도, 그렇다고 너무 높지도 않은 코를 또 한참 동안 구경하던 그의 시선은 힘이 풀려 가볍게 벌어진 입술에 닿았다.

입술을 물어뜯는 버릇은 없는지 립밤이라도 바른 것처럼 매끄럽고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분홍색을 띠고 있는 입술이었다.

벌어진 틈새로는 잘 관리한 고른 치아가 보였다. 조금 더 안쪽에는 말랑한 혀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꿀꺽.

강아지는 어쩐지 하진의 입술을 보고 있노라니 목이 타는 듯했다. 그렇다면 그의 입술에서 시선을 떼면 될 일인데 이상하게 그게 쉽지가 않았다.

마치 이능력에라도 걸린 것 같은 기분이었으나 그런 게 아니라는 것쯤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강아지는 고민에 빠졌다. 저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붙이고, 벌어진 틈으로 제 혀를 들이밀어 아무것도 모르고 얌전히 놓여 있는 혀를 유린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선을 넘었다간 돌아올 수 없을 거라는 본능이 보내는 경고에 자꾸 망설이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 없이 사는 강아지라고 할지라도 본능이 보내는 경고까지 아무 생각 없이 무시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미약하게나마 이성을 붙들고 있으려는 머리와는 달리 그의 몸은 솔직하게 점점 하진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고개를 젖힌 채 눈을 감고 있던 하진의 얼굴 위로 그늘이 드리웠다. 구름이라도 지나가는 중인 건가 싶었지만, 이내 이곳엔 구름 한 점 없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럼 이건 뭐지? 확인을 위해 눈을 뜬 순간이었다.

“뭐, 읍!”

하진은 자신을 덮치듯 양팔 사이에 가둔 채 훌쩍 다가와 있는 강아지를 발견하곤 놀라 입을 열었으나 그가 입을 맞추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

어깨를 붙잡고 연신 밀어내려 애썼지만, 강아지는 그 미약한 힘은 느끼지도 못했다는 듯 키스에 집중했다.

“응, 으웁…….”

뒤로 넘어간 고개가 더 이상 꺾이지 않게끔 버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웠다. 그러나 하진이 신음하건 말건 키스에 이성을 놓아버린 강아지는 하진이 힘들거나 말거나 제 욕심 채우기도 바빴다.

오히려 점점 힘이 빠져 뒤로 넘어가는 고개를 받쳐 들고는 더욱 깊게 입을 맞추는 게 아닌가.

숨 쉴 틈 따위는 주지 않고서 맞닿은 코끝이 뭉개질 정도로 부딪쳐오는 강아지에 하진은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읏……!”

말 그대로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 고개를 틀어 벗어나는 데 성공한 하진은 연신 기침을 해대며 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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