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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51화 (51/136)

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51화

고작 A급 하나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깊이에 본부를 만들었을 리가 없다는 게 백자안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백자안의 주장을 차진우가 지원했다.

“꽤 신빙성이 있는 주장입니다. 여태 발견한 그들의 아지트 수는 비정상적으로 수가 적습니다. 그들의 세력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수치죠. 백자안 에스퍼의 말대로 지하를 더 깊이 수색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협회장의 표정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첫째로 저들끼리 결정 내리고 마치 자신에게는 허락만 하라는 식의 통보로 느껴져서, 둘째로는 이미 수색을 마쳤다는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는 태도 때문이었다.

둘 다 협회장 본인의 권위와 직결된 이유였다. 협회장은 굳이 심기가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이것들이 너무 오냐오냐해 줬더니 기어오르는군.’

그렇지 않아도 하진을 찾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협회의 처리하지 못한 업무가 쌓여만 갔다.

이런 곤란한 상황에 알파 팀이 협조는커녕 막무가내로 나오니 협회장은 심기가 불편했다.

그렇다고 가이드를 잃은 에스퍼들의 심기를 거슬렀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도 현실이었다.

여기서 협회장이 안 된다고 하면 저들은 아마 협회를 탈주해서라도 하진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진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협회로 돌아오지 않을 게 분명했다.

하진 또한 협회의 안일한 대처로 인해 피해를 보았으니 굳이 그들을 설득하지 않을 터였다.

‘쯧. 귀찮게 되었어.’

하진의 나이가 어렸더라면, 그래서 협회에 일찌감치 들어왔었더라면 이런 걱정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에스퍼의 탈주는 있을지언정, 가이드의 탈주는 여태껏 단 한 차례도 있었던 적이 없으니 말이다.

“후우……. 꼭 그렇게 고집을 부려야겠는가?”

협회장의 적절하지 못한 단어 선택에 성격이 불같은 한승호와 아직 어려 감정을 감추는 데 능숙하지 못한 이도윤이 울컥했다. 그러나 차진우가 사전에 차단하듯 먼저 입을 열었다.

“고집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면 그곳으로 가야죠.”

그 말에 화를 내려던 한승호와 이도윤이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차진우는 알파 팀을 이끄는 역할이다 보니 남들이 보기에는 가장 상식적이고, 침착해 보였다.

그러나 어리고 강한 에스퍼들을 이끄는 입장이라 해도 그가 어떻게 늘 상식적이고 침착할 수만 있겠는가.

적어도 같은 S급 에스퍼들은 잘 알았다. 적으로 돌리면 가장 귀찮고 무서운 게 차진우라는 것을.

한승호와 이도윤의 시선이 조금 차갑게 식었다. 그들은 어딘가 멍청하고 불쌍한 것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협회장을 바라보았다.

‘얼마 못 가겠네.’

두 사람은 협회장에서 시선을 떼어냈다.

이제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 비단 자신들의 심기를 건드려서가 아니었다.

이미 협회장은 협회 내부에 반정부 세력이 침투하는 것을 막지 못한 전적이 있었다.

하진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모두 정신이 팔려서 그렇지, 그 과정에서 협회의 기밀 정보들도 심심치 않게 털렸다는 걸 모르는 이가 없었다.

이미 그런 실책을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협회장은 지금도 그 알량한 권위에 목을 매고 있는 게 문제였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 저러는 거겠지.’

한승호는 무미건조하고 아무런 감상도 느껴지지 않았던 가이딩을 떠올렸다.

가이딩을 받고 있다는 건 확실히 느껴지는 데도 어떠한 감상도 들지 않았던 가이딩.

눈으로 가이딩하는 게 사람임을 확인하지 않았더라면 성능 좋은 기계를 만들어 냈다고 착각했을 것이다.

‘그것도 어쨌든 S급은 S급이니까.’

한지우가 없었더라면 아마 협회장도 그들만큼이나 다급했겠지. 한승호는 속으로 혀를 찼다.

하진과 함께 있었으면서 혼자 멀쩡히 돌아온 것도 그렇고, 갑자기 S급이 된 것도 그렇고 여간 수상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하진을 찾는 것이 더 급하기에 그에 대한 건 뒷전으로 둬야 하는 게 답답했다.

한승호가 생각을 이어 나가는 동안 차진우를 상대하고 있던 협회장은 물러서지 않을 기세에 결국 반쯤은 지는 척 굴어줄 수밖에 없었다.

괘씸한 것과 별개로 이들이 탈주하면 현재 협회의 상황에 매우 큰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하니까.

협회장은 대놓고 앓는 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

“끄응……. 자네들도 알겠지만, 협회엔 지금 당장 여력이 없네. 자네들이 말한 만큼 지하로 들어가려면 버틸 수 있는 이들이 현저히 줄어들어. 기껏해야 S급 정도나 가능하겠지.”

협회장은 목이 마른지 잠시 말을 끊고 물을 마셨다.

“하지만 S급 절반만 수색에 돌릴 수 있네. 그렇다고 해도 괜찮겠는가?”

숫자만 놓고 본다면 S급 에스퍼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높은 등급일수록 그 수가 적은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현재 협회에 속한 S급 에스퍼는 스무 명 정도였다.

S급이나 되는 이들이니 스무 명도 충분히 많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반으로 나누면 열 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 열 명만으로 전국의 지하를 뒤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하늘을 날고 땅을 뒤집는 S급 에스퍼라 할지라도 시간이 오래 걸릴 일이었다.

“아무리 S급 에스퍼라 할지라도 힘들 텐데.”

협회장은 안타깝다는 듯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얘기했다.

속내는 그게 아니라는 걸 알파 팀은 아주 잘 알았다.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상관없습니다. 인원을 꾸려주시죠.”

설명 협회장이 알파 팀만 수색을 허용한다고 해도 그들은 수락해야만 했다.

지금 여기서 협회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탈주해봤자, 하진을 찾는 일에 방해만 늘어날 뿐이었다.

* * *

“최지형 씨.”

“헉! 저, 저한테 말 거신 거예요?”

“……네.”

말을 걸 때마다 과하게 펄쩍 뛰고, 얼굴을 붉히는 최지형의 반응에 하진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고 싶은 걸 꾹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한결같을 수 있을까.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익숙해지기는커녕 말을 걸 때마다 더 심하게 반응하는 최지형이 하진은 이상했다.

단순히 심하게 소심한 모습 때문에 꺼려지는 게 아니었다. 최지형은 하진이 말을 걸거나, 다가올 때마다 심하게 얼굴을 붉히며 마치 흥분한 사람처럼 거칠게 숨을 쉬었다.

손까지 움찔거리는 게 더 다가가면 붙잡힐 것 같아 걸음을 멈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변태 같아.’

최지형을 보고 있노라면 과거에 몇 번 정도 겪었던 변태가 생각나서 더욱 꺼려졌다.

성인이 되고서는 거의 없었지만, 학생 때는 원조 교제를 권하거나 무작정 쫓아다니는 변태 새끼들이 몇 있었다. 어리고 예쁜 데다가 부모까지 없으니 그런 놈들이 유독 잘 붙었다.

그 변태들의 행동과 최지형의 반응이 유사하다면 그에게 미안해야 할까.

하진은 부디 그러기를 바랐다. 꼬드겨야 할 이가 변태 새끼라면 탈출이 막막해지니까.

“뭘, 뭘 도와드릴까요!”

최지형의 뭐든 맡겨만 달라는 힘찬 대답에 잠시 딴생각에 잠겼던 하진이 다시 집중했다.

변태든 뭐든 위험해지면 가이딩으로 재워버리면 된다. 서지한이 임무를 나간 지금 어떻게 해서든 최지형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했다.

“괜찮다면 저와 함께 산책 좀 가주시죠.”

“헉, 저, 저랑요? 아지랑 가는 거 아니었나요?”

강아지의 이름이 나오자 하진의 입꼬리가 조금 움찔 떨렸다.

원래는 생긴 것과 달리 어수룩한 그쪽을 노리려고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강아지는 정도 없었고,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가이드인 하진의 앞에서 자살한 가이드의 얘기를 꺼내며 아닌 척 경고를 하는 것만 봐도 미친놈이 따로 없었다.

그렇기에 하진이 변태일지도 모르는 최지형을 노리기로 선택한 것이고.

하진이 말만 걸어도 얼굴을 붉히고 어쩔 줄 몰라 하니 은연중에 유용한 정보가 튀어나올지도 몰랐다.

“그쪽은 지금 임무 나갔잖습니까. 아니면 저 혼자 돌아다녀도 되는 겁니까?”

마침 좋은 핑계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갑자기 그를 멀리하고 최지형에게 다가가면 이상해 보일 게 분명해 그게 걱정이었는데 말이다.

“그, 그, 그건 안 돼요…….”

최지형이 깜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하진은 별 기대도 하지 않았기에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같이 가주시죠.”

“그럴게요! 자, 잠깐만요.”

최지형은 아주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외치듯 말하더니 제 방으로 쏙 들어갔다.

허겁지겁 챙긴 겉옷을 입고 나온 최지형은 마치 에스코트하듯 하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 가요.”

하진은 그 손을 잡지 않았다. 내민 손을 무시하고 먼저 지나가자 스치는 시야로 최지형이 시무룩해진 게 보였으나 딱히 안쓰럽진 않았다.

벌게진 얼굴로 코를 벌름거리면서 손을 내밀고 있으면 누구라도 잡기 싫지 않을까.

산책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둘은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떨어져서 걸었다. 최지형은 그게 못내 신경 쓰이는지 하진을 힐끔거리다가 슬쩍 거리를 좁혔다.

그러고는 하진의 표정을 살피는데 그의 표정에 딱히 변화가 없으니 용기라도 난 건지, 이번엔 좀 더 과감히 거리를 좁혀들었다.

끝과 끝에 자리했던 두 사람의 거리가 줄어들어 어느덧 손을 뻗으면 잡힐 정도로 줄어들었다.

‘이상한 꿍꿍이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

아닌 척했지만, 생각보다 가까워진 거리를 신경 쓰고 있던 하진은 그가 이상한 행동을 할 낌새만 보여도 바로 가이딩할 생각이었다.

다행히 최지형은 이 거리만으로도 최대의 용기를 낸 것인지 벌게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인 채 따라 걷기만 했다.

‘이러는 걸 보면 또 그냥 제 나이처럼 보이는데…….’

얼굴이 벌게지고, 말을 더듬는 것쯤이야 과하게 긴장한 거라고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는데 하진은 이상하게 최지형을 경계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일전에 홀린 사람처럼 자신에게 손을 뻗던 그 모습이 뇌리에 박혀버린 듯했다.

그렇게 그 거리를 유지하며 전날 강아지와 걷던 일직선의 길을 걷고 돌아온 하진은 방으로 들어가기 전 최지형에게 인사를 건넸다.

“같이 가줘서 고맙습니다.”

작게 건네진 인사에 최지형이 제가 제대로 들은 건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헤실헤실 웃어 보였다. 그 모습이 퍽 순진해 보였다.

그리고 다음 날, 하진은 또다시 최지형에게 동행을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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