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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50화 (50/136)

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50화

“저, 한지우 가이드.”

“네?”

“혹시 몸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죠? 만약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바로 얘기해 주셔야 해요.”

그에게 이상이 생겨 가이딩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싶어서 안절부절못하는 연구원들을 보며 한지우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그래, 에스퍼들 반응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자신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요. 물론이죠.”

한지우는 저열한 만족감을 감추기 위해 부러 환하게 웃었다.

연구원은 기분 좋아 보이는 가이드의 기분을 거슬리게 하고 싶지 않아 차마 그럼 왜 가이딩 횟수를 줄이는지 묻지 못하고 돌아섰다.

횟수가 줄었다고 해도 알파 팀만 상대하던 하진보다는 나았다.

두 사람을 비교했다는 자각도 없었다.

하진의 등급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워낙에 소수였던 터라 그들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하진을 S급 가이드로만 알고 있었다.

S급 가이드가 하진뿐일 때는 그가 알파 팀만 관리하는 것을 의아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한지우가 S급이 되고, 여러 에스퍼들을 가이딩하는 모습을 보이자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럼 이하진은 어째서 알파 팀만을 관리한 것이지?

등급 측정 불가 가이드인 하진을 협회와 깊게 연관시키기 위한 협회장의 술수였으나 일반 연구원들이 그 의도를 알 리가 없었다.

그들은 그저 하진이 가장 강한 에스퍼만을 선택해 가이딩하기 위해 그런 선택을 했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불평불만 없이 에스퍼들을 가이딩하는 한지우가 있는데, 굳이 이하진을 찾기 위해 협회 업무 전체를 멈춰야 하나? 그런 생각이 점점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반정부 측의 범행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그 누구도 입에 담지는 않았다. 그러나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마음은 점점 겉으로 티가 나기 마련이었다.

또다시 일주일이 지나고, 수색을 떠났으나 역시나 허탕만 치고 돌아온 백자안은 새로 얻은 정보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협회로 돌아온 참이었다.

곧장 수색실로 향하는 백자안은 예전과는 조금 달라진 분위기를 느꼈다.

‘……다급하지 않군.’

그랬다. 처음과 달리 저들에게선 더 이상 조급함이 보이지 않았다. 수색을 멈춘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협회는 하진을 찾기 위해 수많은 인력을 동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력을 다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백자안의 시선이 책상 위에 널브러진 서류들을 훑었다.

반정부 세력의 위치를 추정하는 서류들도 있었지만, 간간이 하진을 찾는 일과는 관련 없는 서류들도 보였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다음 장소.”

“네?”

시선은 여전히 책상 위를 향하고 있어서 말을 받은 이가 곧장 알아듣지 못하고 되묻고 말았다.

백자안의 시선을 따라간 그는 책상 위에 놓인 다른 서류를 발견하곤 기겁했다.

잠깐 보려고 올려놓았을 뿐인데 하필 이 타이밍에 백자안이 도착하다니 낭패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백자안이 쳐다보는 앞에서 그 서류를 모르는 척 치워버릴 용기는 없었던 연구원은 어떻게든 수습하기 위해 반정부 세력을 조사한 자료를 뒤졌지만, 당장 내놓을 게 없었다.

‘젠장, 망했어!’

연구원들이 절대 하진을 찾는 일에 소홀한 것은 아니었다. 더는 찾을 수 있는 곳이 없기에 다음 장소를 내놓으라는 저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하필 이걸 올려놔선……!’

다른 서류가 없었더라면 이제 더는 찾을 수 있는 곳이 없다, 말 그대로 전국을 다 뒤졌는데도 없다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산처럼 쌓아놓은 다른 업무와 관련된 서류를 들켜버린 입장에선 모든 게 변명이 될 뿐이었다.

‘제발, 제발 죽지만 않게 해주세요…….’

연구원은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기도를 올리고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 그게 말입니다. 찾을 수 있는 곳은 다 찾아봤어요. 이젠, 더 뒤져볼 곳도, 커헉!”

역시는 역시라고, 더는 하진을 찾아볼 만한 곳이 없다는 말이 다 끝내지도 못했는데 백자안에게서 무서운 기세가 흘러나왔다.

백자안의 심정에 비하면 백 분의 일도 되지 않는 화였으나, 책상물림인 연구원이 그 기세를 어떻게 이겨내겠는가.

“꺼윽, 배, 백자안, 에스퍼……!”

연구원은 마치 중력이 자신을 강하게 누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숨이 턱턱 막히고, 산소가 부족해지자 눈앞이 점점 하얗게 물들어갔다.

이러다 정말 죽는 게 아닌가 싶어 눈물이 핑 도는 순간, 목을 조르는 것 같았던 힘이 사라졌다.

“커헉! 콜록, 콜록!”

끈 떨어진 인형처럼 힘없이 책상에 엎어진 연구원은 침이 뚝뚝 떨어뜨리며 거칠게 기침하며 숨을 삼키기 바빴다.

죽을 수도 있었다는 공포에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벌벌 떨렸다.

“없다고.”

하지만 죽을 것 같은 와중에도 저 목소리만은 선명하게 들렸다. 사람 한 명 골로 보내려고 했던 것치곤 아무런 감정도 없는 목소리였다.

연구원은 기침을 멈추지 못한 채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자신이 안일했다. 가이드에게 절절매는 에스퍼가 얼마나 위험한지 이미 잘 알면서도 S급 가이드가 하나 더 있다는 이유로 안일하게 굴었다.

‘무슨 변명을, 아니,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저 괴물을 건드리지 않을 수 있지?

연구원은 새하얗게 표백된 머리를 어떻게든 굴리려 했으나 죽을 고비를 맛봤던 뇌는 좀처럼 똑똑하게 굴지 못했다.

이러다 백자안이 또 화를 내고, 이번에야말로 자신을 죽이려 들면 어쩌나 싶은 순간, 그가 입을 열었다.

“정말로 전국을 다 뒤진 게 맞습니까?”

‘죽이지, 않는 건가……?’

멀쩡하게 묻는 모습에 잠시 넋을 놓았던 연구원은 백자안과 눈이 마주치자 전기가 통한 듯 번뜩 정신을 차리고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매, 맹세코! 찾을 수 있는 곳은 다 찾았습니다. 위성은 물론이고, 크흠, 혹시나 투명화 능력을 이용했을 경우를 대비해 능력을 무효화시킬 수 있는 에스퍼를 전국 방방곡곡으로 보내 살폈지만, 정말로 없었습니다.”

연구원의 필사적인 설명에 백자안은 마치 무언가를 생각하듯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고는 더는 그에게선 볼일이 없다는 듯 발길을 돌렸다.

소리 없이 멀어지는 백자안을 보며 연구원이 안도하려는 그때, 돌연 그가 뒤를 돌았다.

그와 눈이 마주친 연구원의 전신에 다시 힘이 바짝 들어갔다. 어깨가 욱신거리는 것이 쥐가 난 게 분명했으나 아픈 티도 내지 못했다.

“뭐, 뭔가 더 궁금한 것이라도…….”

“두 번은 안 봐줍니다.”

백자안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따라 눈을 굴리자 잔뜩 구겨지고 찢어진 서류가 보였다.

그가 시간도 남는데 다른 업무나 좀 보자고 가져온 서류였다.

다시 고개를 들자 백자안은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연구원은 찢어진 종잇조각을 끌어모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반면 한 사람의 인생에 더는 없을 무시무시한 경험을 선사한 백자안은 곧장 다른 팀원들을 불러 모았다.

더는 찾아볼 곳이 없는 건 그들도 마찬가지였기에 모이는 건 금방이었다.

“별거 아니면 죽을 줄 알아라.”

한승호가 짐승이 목을 울리듯 낮게 일갈하자 백자안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평소에도 사이가 좋다고는 할 수 없는 두 사람이었으나 이렇게까지 긴장된 분위기는 처음이었다.

하진을 찾지 못한 지 벌써 몇 주가 흘러가니 알파 팀 사이에서도 기류가 심상치 않았다.

미리 가이딩은 받았으니 파장이 불안정해 생긴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파장이 안정적이어도 사라지지 않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만. 일단 뭐 때문에 불렀는지 듣지.”

다행히 차진우의 중재로 일순 날카로워졌던 긴장감이 해소되었다.

날것 그대로의 긴장감에 차마 입을 열지도 못하고 숨을 참고 있던 협회장이 깊게 숨을 내쉬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보아하니 자네들이 아주 나를 골로 보내려는 거군. 늙은이 심장에 못 할 짓이니 부디 내 앞에선 참아주게.”

그러자 바닥에 깔려 있던 미약한 긴장감까지도 사라졌다. 한결 더 살 것 같아진 협회장이 백자안에게 물었다.

“그래서, 굳이 협회장실에 모인 이유가 뭔가.”

“이 방 안에는 도청 장치가 없으니까요.”

그래도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능력을 이용해 방 안을 샅샅이 뒤졌다. 협회장은 짐짓 불쾌하다는 듯 되물었다.

“지금 협회 내에 배신자가 있을 거라는 뜻인가?”

“그건 모르죠. 배신자가 있을 수도 있고, 잠입해 있을 수도 있고.”

제 능력을 의심하는 발언에 협회장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반정부 세력이 가이드들이 사는 중심지를 드나들고 심지어는 내부를 뒤흔드는 것도 몰랐던 터라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이제 더는 찾을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보여주기식으로 세워놓은 건물들만 찾았을 뿐, 하진 형의 머리카락조차도 발견하지 못했어요.”

협회장이 낮게 침음을 흘렸다.

그로서도 답답한 문제를 백자안이 꺼내 들었다. 우연히 다른 S급 가이드가 생겨 숨통이 트였다지만, 하진을 마냥 이대로 둘 수는 없었다.

S급보다도 뛰어난 가이드를 위험한 반대 세력에 놔둘 수 있겠는가. 무조건 되찾아야만 했다.

‘……그도 안 되면 차라리 죽이든가.’

하진 정도 되는 가이드를 그대로 반정부 세력에 빼앗길 바에야 차라리 죽이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는 중에도 백자안이 말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러면 남은 건 이제 한 곳뿐이죠.”

“어디를 말하는 건가?”

“지하요.”

백자안은 거의 확신하는 듯했다. 반정부 세력의 본부가 지하에 있을 거라고. 그러나 그 말을 들은 협회장은 그다지 공감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혹시 모르는 건가 싶어서 말하네만, 이미 지하도 함께 수색 중이었네. 설마하니 그런 수도 생각하지 못했을까 봐.”

협회장의 말대로 이미 땅 밑까지도 수색 범위에 포함되어 있었다. A급만 되어도 깊은 땅속으로 들어가도 흙의 무게 정도는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기계로 구멍을 파내면 에스퍼들이 들어가 파장 감지 기계를 가지고 주변을 수색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온갖 곳에 구멍이라는 구멍은 다 냈음에도 불구하고 지하에서는 어떠한 파장도 감지할 수 없었다. 이미 지상을 전부 뒤진 만큼 지하 또한 수색한 후였다.

하지만 백자안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손가락을 들어 땅 밑을 가리키며 말했다.

“더 깊이 들어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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