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45화 (45/136)

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45화

“젠장…….”

이번에도 텅 비어 있긴 마찬가지인 공간에 차진우가 욕설을 뱉었다.

쉽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다. 그 서주안이니 말이다. 알고 있었다고 해도 막상 수색에 계속 실패하고 있으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차진우는 마치 자신을 놀리듯 텅 비어 있어 개미 한 마리도 없는 공간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이따위 공간쯤이야 능력만 전개한다면 먼지로 산화시킬 수 있지만, 현재 폭주 수치가 아슬아슬하기에 괜한 힘을 써선 안 되었다.

다른 가이드의 가이딩은 받고 싶지도 않고, 소용도 없었다. 그는 물도 없이 미약하게나마 가이딩 효과가 있는 약을 씹어 넘겼다.

‘기분 나쁘군.’

하진의 가이딩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불쾌하고 이질적인 힘이 억지로 날뛰는 기운을 가라앉혔다.

애써 더러운 기분과 통증을 털어내는데 협회에서 호출이 왔다. 당장 협회로 돌아오라는 협회장의 명령이었다.

협회장이 직접 부를 일이라면 분명 하진과 관련된 소식일 게 분명했다.

차진우는 그대로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어, 어! 차진우 에스퍼!”

조사를 위해 남은 직원들이 당황하여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하진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협회에 도착해 곧장 협회장실로 향하자 그가 가장 늦은 것인지, 이미 알파 팀 세 사람은 도착한 상태였다.

차진우와 눈이 마주친 한승호가 다리를 달달 떨면서 협회장을 향해 시선을 옮겨 눈을 부라렸다.

“팀장도 왔으니 이제 뭐 땜에 부른 건지 말이나 하시죠.”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어투였으나 지금의 한승호로서는 뒤집어엎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예의를 차린 것이었다.

“다들 고생이 많군. 일단 앉게.”

차진우 또한 숨 돌릴 틈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협회장을 향해 따지듯 물었다.

“급하게 부르신 만큼 긴급한 사항이겠죠.”

긴급사항이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협회장은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은 뒤 입을 열었다.

“안타깝지만 이하진 가이드에 대한 소식은 아니네.”

“……지금 장난해요? 그게 아니면 바빠 죽겠는데 왜 부른 건데요.”

희망 고문이라도 당한 듯한 기분에 이도윤이 울컥하자 차진우가 눈짓으로 그를 막았다. 협회장 또한 불쾌한 듯 보였다.

이도윤은 앞으로 튀어 나갈 것 같았던 몸을 퍽 소리가 나게 뒤로 당겨 등을 붙였다.

손주뻘이나 다름없는 이도윤의 무례한 행동에 협회장은 불쾌함을 느꼈으나 애써 감정을 눌렀다.

다른 에스퍼였더라면 그들이 S급이라 할지라도 화를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알파 팀만은 달랐다.

협회장에게는 S급 에스퍼 중에서도 가장 강한 이들만 모아놓은 알파 팀의 능력을 경계하면서도 필요로 했고, 알파 팀은 하진 때문에라도 협회의 울타리가 필요했다.

“자네들이 급하게 구는 것도 이해는 하네. 벌써 일주일이 넘도록 이하진 가이드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니 여간 불안한 것이 아니겠지. 게다가 그 시간 동안 제대로 된 가이딩을 받지 못한 채 능력을 펑펑 써대고 있으니 말일세.”

그게 문제였다. 이들은 지금 초조함에 폭주 수치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작 일주일 만에 폭주 수치가 아슬아슬해질 정도로 몸을 혹사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알파 팀 중 누구 하나 폭주를 일으킨다고 해도 놀랍지 않았다. 그래선 안 되었다. 그렇기에 협회장은 한지우의 소식을 전했다.

“한지우 가이드의 등급이 올랐네. S급이 되었어.”

누가 들어도 놀랄 만한 소식에도 알파 팀은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협회장의 말에는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가이딩받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살갗을 찌르는 기세가 느껴졌다. 수많은 에스퍼와 가이드를 손에 쥐고 있는 협회장조차 순간적으로 심장이 있는 쪽을 움켜잡을 정도였다.

하지만 협회장은 침음을 삼키면서도 그들을 진정시켰다. 이런 반응이 나올 거라는 예상이야 진즉에 했다.

“끄응……. 진정 좀 하게. 누가 가이드를 바꾸랬나?”

그나마 몸을 조이는 압박감이 사라졌다. 협회장은 잔기침을 터트리며 물로 속을 진정시켰다.

다른 직업이었더라면 진작 은퇴했을 나이에 이게 무슨 고생인가 싶었다.

“한지우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받게. 약만으로는 수치 관리가 힘들다는 걸 알잖나. 그렇다고 자네들이 쉴 것도 아니고 말일세. 그러다 폭주라도 하면 그때야말로 협회는 끝장인 거야.”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불붙은 채 돌아다니는 폭탄을 어느 누가 가만히 두고 볼 수 있을까. 그러나 알파 팀은 어딘가 석연치 않은 표정이었다.

“싫어요.”

협회장은 제가 생각하는 최악의 대답만은 나오지 않기를 바랐으나 어디 인생이 뜻대로 흘러가던가.

“싫……! 싫다니? 왜 싫단 말인가.”

이도윤의 뚱한 음성에 협회장이 버럭 소리를 지르려다가 참았다.

고집을 부릴 게 따로 있지. 폭주해봤자 좋을 게 뭐가 있다고 어째서 그런 걸로 고집을 부린단 말인가.

자신이 그들을 붙여 놓았지만, 하진이 대체 이 에스퍼 놈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찝찝하잖아요. 아직 그 새, 아니 그 자식이 어떻게 혼자만 멀쩡하게 돌아왔는지 의심도 안 풀렸는데 뭘 믿고 가이딩을 받아요?”

이도윤의 주장도 일리는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이 어디 평범한 상황인가.

한지우를 의심할 만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는데 심증만으로 고집을 부리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협회장은 마치 그를 철없는 어린애 대하듯 한숨을 숨기지 않았다.

“하아, 나 또한 그 부분을 잊은 건 아니네. 하지만 이도윤 에스퍼.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데 고집을 부리는 건가.”

애 취급에 울컥했던 이도윤도 그 말에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협회장이 더욱 엄하게 말을 이었다.

“이하진 가이드를 찾겠다면 폭주 수치 관리부터 해야지. 지금 나더러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밖으로 내돌리라고? 만약 민간인이 사는 곳에서 폭주하면 그땐 어떻게 책임질 건가.”

무어라 대꾸할 말이 없는 정론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도윤은 사라지지 않는 찝찝함에 결국 가이딩을 받겠노라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민간인인 협회장은 이해조차 할 수 없는 곳에서 오는 직감이었다.

한지우에게 가이딩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 생각만이 자꾸 가시처럼 이도윤을 찔러댔다.

“윽, 하지만……!”

그러나 협회장은 더는 듣지 않겠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S급 에스퍼를 상대로 반박할 여지도 주지 않고 제 의견을 밀어붙이는 모습은 그가 협회장이라는 직함을 괜히 가진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한지우 가이드 준비시켜 놓았으니 잔말 말고 가서 가이딩받게.”

애초에 그들의 의견을 들을 생각도 없었다는 조치에 이도윤은 물론이고 성격이 불같은 한승호까지 울컥했다. 그러나 그보다 차진우가 먼저 그들을 말리듯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순순히 대답하는 모습에 세 쌍의 눈동자가 꽂혔으나 차진우는 그들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협회장실을 빠져나갈 뿐이었다.

그다음으로 몸을 일으킨 건 백자안이었다. 그는 하진이 납치당한 이후로 같은 알파 팀들에게조차 입을 다문 채 밤잠도 없이 전국을 뒤져댔다.

지금으로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백자안이라는 뜻이었다.

백자안까지도 협회장실을 나가자 남은 두 사람도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네 사람밖에 없는 복도를 걸으며 이도윤이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팀장, 아무리 생각해도 그 새끼가 수상하다니까? 백자안 형도 의심했잖아!”

“조용히 해라.”

차진우가 이렇다 할 설득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기자 결국 터진 것은 한승호였다.

“이딴 식으로 구니까 개라는 소리나 듣는 거 아냐.”

그답지 않게 차분한 목소리였으나 그 안에 찬 감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격했다. 감당할 수 없는 분노를 무의식이 참아낸 것이었다.

한승호의 말에 차진우와 대립하고 있던 이도윤까지도 당황하고 말았다. 그러나 차진우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해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얼핏 태연해 보이기까지 한 태도였지만, 그들은 알았다. 그 누구도 침착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한승호는 더욱 답답했다. 평상시 백자안과 가장 많이 다퉈서 그렇지, 한승호는 차진우와도 맞지 않았다.

그저 팀장으로서는 일을 잘하고, 그와 부딪힐 일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폭주가 먼저인 건 맞지. 근데 저 영감탱이가 정말로 폭주 수치만 낮추라고 굳이 우리를 보내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마치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묵묵히 걷기만 하던 차진우의 걸음이 멈췄다. 한승호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만약 그 새끼가 우릴 가이딩하고도 멀쩡하면 그때도 저 영감이 이렇게 급박하게 굴까?”

분명 이하진은 다시없을 엄청난 가이드였다. 그렇기 때문에 협회의 모든 업무를 중단한 채 이하진 하나만을 찾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체가 가능한 S급 가이드가 생겨난 상황에서 과연 지금과 같은 수색이 이어질 것인가. 한승호는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한지우가 하진을 대신해 알파 팀을 가이딩할 수만 있다면, 여유가 생긴 협회장은 지금처럼 열성적으로 굴지 않을 것이다.

물론 하진을 반정부 측에 넘기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니 수색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수색에 동원되는 인원이 줄어들 것이다. 언제까지도 협회의 업무를 중단할 수 없는 노릇이라는 핑계를 대겠지만 말이다.

“그러겠지.”

차진우 또한 안다는 듯 대답했다. 그 또한 속이 말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막상 태평한 음성을 듣고 있자니 한승호가 울컥 올라온 화를 터트리려고 할 때였다.

“지금 그렇게……!”

“가이딩 안 받으면 어쩔 건데?”

오랜만에 듣는 음성에 세 사람의 시선이 백자안에게 돌아갔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45)============================================================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