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41화
“지금 적이 교육장까지 침입했다는 말씀입니까?”
바로 턱밑에 비수가 도사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하진을 혼자 두었다는 사실에 알파 팀의 안색이 제각기 변했다.
누군가는 분노로, 또 누군가는 자책감에 젖었다. 그러나 다른 표정에도 공통된 감정이 존재했다. 범인을 향한 증오.
협회장이 살기에 짓눌려 기침을 터트리자 그들은 억지로 다시 살기를 눌렀다. 그 살기가 향해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 가이드만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죠? 애초에 왜 함께 간 거고요.”
백자안이 날카롭게 물었다. 한지우라면 그 또한 이름을 알고 있었다. 하진이 있기 전, 유일하게 S급 에스퍼를 가이딩할 수 있었던 A급 가이드.
백자안을 비롯한 알파 팀은 S급 에스퍼 중에서도 능력이 뛰어나 그 가이딩이 효과를 보지 못해 그 이후로는 만난 적도 없지만 말이다.
“그 부분은 아직 우리도 파악하지 못했네. 기절해서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
똑똑.
“협회장님. 한지우 가이드와 김진서 사원이 정신을 차렸다고 합니다.”
밖에서 들린 목소리에 알파 팀이 몸을 일으켰다.
“가시죠.”
협회장은 한숨을 삼켰다. 알파 팀을 끌고 갔다간 누가 봐도 추궁하는 거로밖에 보이지 않을 텐데 그렇다고 이들이 얌전히 기다리라는 자신의 말을 들을 것 같지도 않았다.
결국 협회장은 알파 팀을 대동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먼저 향한 곳은 하진과 한지우를 불러내고 산길로 향했던 김진서 사원이 있는 독방이었다.
정신 조종 계열 에스퍼의 짓일 수도 있었다. 그 또한 그에 당한 걸 테지만, 혹시 모르니 협회 직원들은 최대한 자세하게 김진서를 조사했다.
“잘 모르겠다는 말만 하지 말고 좀 더 생각해 보게. 기억이 끊어지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 수상한 인물은 없었는지 말일세.”
“저, 저, 정말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마치 누가 기억을 통째로 드러낸 것처럼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요…….”
반복되는 대화에 취조하던 직원도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런 일련의 대화를 지켜보던 백자안이 협회장에게 말했다.
“한지우 가이드 보러 가죠.”
대답은 어느새 따라붙은 비서에게서 나왔다.
“한지우 가이드는 충격이 커 아직 안정이 더 필요한 상태입니다.”
“그래서요? 지금 하진 형보다 더 중요한 게 있나요?”
위협은 없었다. 그저 묻는 것뿐이었다. 표정 또한 멀끔하기만 했다. 그러나 백자안과 눈을 마주한 비서는 마치 뱀 앞에 선 개구리가 된 듯 숨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백자안.”
차진우가 부름에 백자안이 시선을 돌리자 그제야 멈췄던 숨을 다시 쉴 수 있었다.
“콜록! 허억!”
“……가지.”
협회장은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지금은 이들을 자극해선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는 속으로 혀를 찼다. 하진의 존재가 저들에게 소중해질 거라는 걸 몰랐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저들에게 목줄을 채우기 위해 S급 에스퍼 전체를 케어할 수 있는 하진을 우선적으로 알파 팀에 붙인 것은 본인이었다. 하지만 그건 전부 하진을 협회에 묶어둘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했던 선택이었다.
그런데 그런 하진을 제 앞마당 수준을 넘어서 뱃속이나 마찬가지인 곳에서 빼앗기다니.
협회장은 속이 쓰린 수준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칼에 찔린 기분이었다.
그 속내를 미처 감추지 못한 협회장의 발걸음은 거칠었다. 현 상황만 놓고 보았을 때 한지우는 용의자이기보단 피해자에 더 가까웠기에 그가 있는 곳은 조금 더 경비가 삼엄한 곳이었다.
“한지우 가이드, 협회장님과 알파 팀이 왔습니다. 들어가겠습니다.”
큰 충격을 받았다는 말이 사실인지 한지우의 안색은 파리했다. 이리저리 굴렀는지 붕대와 밴드로 치료한 그는 영락없는 피해자이자 환자의 모습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같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못 했어요.”
한지우는 마치 하진이 납치당한 게 자신의 탓인 것처럼 입술을 깨물며 비통해했다.
누구도 아무런 능력도 없는 가이드를 탓하지 않을 텐데 그는 죄스러워 어쩔 줄 몰랐다.
“일단, 한지우 가이드라도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일세.”
하진의 납치로 기분이 좋지 않았던 협회장은 한지우의 태도에 조금이나마 기분이 나아졌다.
하마터면 S급보다는 못하나, 얼마 없는 소중한 A급 인재마저 잃을 뻔하지 않았나.
협회장은 뒤에서 점점 거세지는 기세에 헛기침하며 한지우에게 물었다.
“더 쉬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워낙에 긴급한 사항이니 몇 가지 질문을 좀 해야겠네.”
“저는 괜찮습니다.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요.”
“그럼 기억이 끊기기 전에 무슨 상황이었는지 설명 좀 해주겠나?”
한지우는 마치 그때의 일을 떠올리는 게 부담스러운 듯 입술을 질끈 물었으나 이내 표정을 굳히곤 입을 열었다.
기억이 없다는 말만 반복하는 이에게서는 들을 수 없는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알파 팀은 말의 허점을 찾기 위해 집중했다.
“차가 멈췄고, 아무것도 없는 산길이라 하진 형과 경계하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저희를 불러냈던 직원분이 저를 차 밖으로 끄집어내셨어요.”
한지우는 다음 말을 잇기 전,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하진 형이 저를 도와주려고 했는데 서주안…….”
한지우가 필요하다면 그의 이름을 제일 먼저 팔아넘길 거라는 걸 알면서도 서주안은 제 정체를 함구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서주안?!”
협회장이 놀라 두 눈을 크게 떴다. 예상치 못한 이름이라 놀란 게 아니었다.
오히려 하진이 납치당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건 반정부의 진영이었다. 그중에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단연 서주안의 이름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놀라는 것인가.
“반정부 놈들 중에 정신 조종 계열 에스퍼가 있었다고……?”
협회에서 미처 그것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진 게 문제였다. 협회장은 상황의 심각성에 주먹을 쥐었다.
어떻게든 이 일을 해결해야만 했다. 자신의 무능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사태를 질질 끌었다간 제 명성에 누가 될 게 분명했다.
“우선 이야기를 마저 듣죠.”
차진우가 흥분한 협회장을 진정시켰다. 그에게 중요한 건 협회장의 무능 따위가 아니었다.
협회장이 바뀌든 말든 하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고 그를 구하는 게 더 중요했다.
차진우의 말에 협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정했다. 설명을 이어가라는 고갯짓에 한지우의 입이 다시 열렸다.
“서주안이 나타난 걸 보고 저라도 어떻게든 도망쳐서 상황을 알리려고 했는데 저도 모르게 기절해 버렸고요. 서주안이 형을 데려가는 걸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가 범인이 아닐 리가 없었다. 협회장이 비서에게 당장 반정부 놈들 아지트를 급습하라는 명령을 내리려 할 때였다.
“그런데 그쪽은 왜 부른 건데?”
파리한 안색의 한지우를 시종일관 뚱한 얼굴로 지켜보던 한승호가 툭 질문을 던졌다. 그 말을 들으니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하진이 등급 외 가이드라고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건 등급 측정 시 함께 했던 이들뿐이었다.
아무리 S급 가이드와 A급 가이드가 비교도 되지 않는다지만, 반정부 측에는 A급 가이드조차도 귀했다.
당연히 A급 가이드인 한지우도 탐냈어야 했는데 굳이 불러내 놓고 한지우는 데려가지 않은 게 이상했다.
제게 꽂히는 S급 에스퍼들의 시선에 한지우의 몸이 어쩔 수 없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나 한지우는 굳이 그 떨림을 감추지 않았다.
조금 의심스럽더라도 확증이 있지 않은 이상, 가이드인 자신이 핍박받을 이유가 없었다.
한지우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런 질문을 예상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저, 저도 그게 의아해서 계속 고민했어요. 왜 하필 나일까. 아무래도 제가 요즘 형과 같이 다니는 모습을 지켜봐 왔던 게 아닌가 싶어요.”
“네가 하진 형과 같이 다녔다고?”
하진이 친하게 지내는 이가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던 한승호는 하진이 교육장에 들르는 날이면 오던 연락을 떠올렸다.
[카페에 있다가 가겠습니다. 동행인이 있고 저녁 전에 갈 테니 얌전히 기다리세요.]
늘 누군가와 함께 한 건 아니었지만, 삼 분의 일 정도는 동행인과 함께 있다는 문자가 오곤 했다.
“설마 그 동행인이라는 게 너야?”
상황 설명이라고는 없는 불친절한 질문이었지만, 하진이 에스퍼에게 문자를 보내는 걸 몇 번인가 봤던 한지우는 용케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 운동 끝나고 같이 있었던 사람을 말하는 거면 제가 맞아요.”
한승호의 물음에 대답한 한지우는 다시 하려던 말을 이었다.
“하진 형은 주로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하시는데 저랑은 자주 같이 다녀주셨던 건 저를 이용한 게 아닌가 싶어요. 모두를 안심시킬 용도로요.”
실제로 하진이 의심하지 않기도 했으니 그 말에는 신빙성이 넘쳤다.
한지우는 죄책감으로 범벅된 얼굴로 말했다. 목소리에는 물기가 가득 서려 있어 누가 보더라도 그가 죄책감에 허덕이고 있는 것으로 볼 것이었다.
“다 제 탓이에요. 제가, 제가 좀 더 의심을 해야 했는데……! 평소 알던 직원분의 호출이라 안일하게 굴었어요.”
결국은 무너져 눈물을 터트리고 말자 더는 질문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지 않았다. 물론 한지우의 눈물은 알파 팀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가이드를 끔찍이 아끼는 협회장이 나서서 자리를 파해버리니 더는 추궁할 수도 없었다.
“오늘은 이만하지.”
“하지만 협회장님.”
차진우가 대표로 나섰으나 협회장은 단호했다. 범인이 누군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서주안을 비롯한 반정부 진영이 한 짓이라면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것은 그놈들을 치고 하진을 되찾는 것이었다.
“이하진 가이드를 구출하는 것이 먼저일세.”
하진을 걸고넘어지니 알파 팀도 더는 고집 피울 수가 없었다. 하는 수없이 그들은 협회장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한 자락 의심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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