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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37화 (37/136)

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37화

“거기 가게 주인분이 유명한 호텔에서 파티쉐로 있으셨던 분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분이 여기까지 와서 굳이 가게를 차리나요?”

그렇지 않아도 궁금하던 부분이었다. 아무리 한국의 모든 에스퍼와 가이드들이 거주하는 곳이라고 해도 대도시의 인구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터였다.

손님이 많지 않음에도 어떻게 이런 많은 가게가 유지되고 있는 것인지.

하진의 의문은 한지우가 해소해 주었다.

“협회에서 지원금을 많이 주거든요. 에스퍼와 가이드가 따로 돈을 내고 사 먹기도 하지만 협회에서 그와 비교도 되지 않는 돈을 달마다 줘요. 그래서 이 동네에 가게 한번 차려 보겠다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많아서 경쟁률이 세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줄은 몰랐다. 확실히 그런 식의 경쟁이 형성되었으니 입점하는 가게들 수준이 높은 것도 이해가 갔다.

“그럼 이곳에 있는 모든 가게들이 다 맛집이라는 거 아닌가요?”

“아.”

그의 의문에 한지우가 입을 다물었다. 하진의 눈치를 살피던 그는 조심스레 다시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형이랑 어떻게든 친해지고 싶어서…….”

“괜찮습니다. 나쁜 의도를 가지고 그런 것도 아니고요.”

한지우의 작은 거짓말로 인해 손해 본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친해져 보려고 그런 것이니 딱히 화날 것도 없었다.

한지우는 대수롭지 않아 하는 하진의 반응에 안심했는지 다시 표정이 살아났다.

“헤헤, 다행이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가게를 나와 조금 걷다가 헤어졌다.

“저는 그럼 이쪽으로 가볼게요. 오늘 맛있는 거 사주셔서 감사해요, 형.”

“그래요. 다음에 봅시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는 하진의 뒤로 한지우의 시선이 아주 잠시 머물렀다.

* * *

숙소로 돌아온 한지우는 주먹을 꽉 쥐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조급함과 흥분이 밀려와 진정해야 했다.

‘성급하게 굴지 마. 마지막까지 신중해야 해.’

“후우…….”

그러나 연신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하는 것과 달리 목표까지 단 한 걸음을 남겨두었다는 사실에 손끝은 여전히 흥분으로 잘게 떨렸다.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이제 이 짓도 조금만 더 하면 끝인데 말이다.

한지우는 이를 까드득 물었다. 하진이 나타나고 그의 능력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마자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그는 그동안 빌붙었던 것들이 저를 마치 끈 떨어진 연 취급하며 서서히 멀어지다 못해 은근슬쩍 그를 무시하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었다.

하진이 워낙 남들과 교류하려 들지 않아서 그렇지, 한지우는 제 곁을 맴돌며 어떻게든 눈에 들려고 노력하던 이들이 이제는 하진의 곁에서 똑같이 하는 꼴을 몇 번이나 보았다.

그뿐만 아니라 하진을 비롯한 협회의 모두를 속이기 위해 한지우가 혼자를 자처했을 때는 얌전해진 그를 비웃고 조롱하지 않았나.

그러나 이제 그것도 끝이 보였다.

한지우는 한시도 품에서 떼어놓지 않았던 약통을 꺼냈다. 처음 건네받았을 때 확인을 위해 열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손도 대지 않았던 뚜껑을 열고 약을 꺼냈다.

일반 약과 다를 바 없이 생긴 이 작은 크기의 약만 있으면 한지우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한지우는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 80퍼센트의 확률. 높은 확률이지만 목숨을 내걸기에는 낮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지우는 그 확률에 모든 것을 내걸었다.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몸을 던지는 것이 나았다. 한지우의 눈동자가 기이한 욕망으로 번들거렸다.

망설임 없이 물과 함께 약을 삼킨 한지우는 쿵쾅쿵쾅 시끄러운 심장을 무시하며 침대에 누웠다.

서주안의 말에 따르면 약을 복용하면 고통이 느껴질 거라고 했다.

“억……! 끄, 윽! 으극!”

생각을 마치기 무섭게 찾아온 고통에 한지우가 입을 벌리고 꺽꺽댔다. 너무 고통스러우니 되레 비명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온몸이 부서지면 이렇게 아플까. 한지우는 뼈마디가 전부 부서지는 고통에 온몸을 비틀며 괴로워했다.

그 와중에도 들켜선 안 된다는 생각에 제정신이 아니면서도 이불을 끌어와 입안에 욱여넣었다.

뒤늦게 터져 나온 비명은 이불에 감추어졌다. 환한 대낮임에도 깜깜한 방 안에 고통에 신음하는 짐승 같은 소리가 옅게 울렸다.

그렇게 얼마나 괴로워했을까.

한지우에게는 억겁이나 다름없는 시간이 지나고 고통이 잦아들었다. 그러나 그는 환상처럼 남아 있는 통증에 연신 몸을 움찔거리며 괴로워했다.

“끅, 개애새끼…….”

한지우의 귓가에 좀 아플 거라고 하던 서주안의 목소리가 윙윙거렸다. 이게 어떻게 좀 아픈 수준이란 말인가.

약을 먹고 죽는 놈들은 약의 독성에 죽는 게 아니라 고통이 너무 심해서 쇼크사하는 걸 것이다.

한지우는 한결 가신 통증에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시간을 확인하자 고작해야 십 분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뿐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식은땀을 줄줄 쏟아낸 한지우는 핑 도는 눈앞을 무시하고 가이딩을 움직여 봤다.

“하, 하하.”

무슨 지랄을 해도 늘어나지 않았던 총량이 두 배나 늘어났다. 한지우는 이번엔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을 막기 위해 손을 들었다.

어디서 맛보지 못했던 통쾌함에 한지우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굳이 검사를 해보지 않아도 S급이 되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였다.

웃음을 참느라 푹 숙였던 고개를 든 한지우의 눈빛이 위험하게 빛났다.

* * *

마음 같아선 곧바로 작전을 실행하고 싶었으나 그래선 안 됐다.

한지우는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다독였다. 약 기운이 몸에서 모두 배출되기까지 사흘이라는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단 사흘. 그 시간만 견뎌내면 되었다. 깊게 숨을 내쉰 한지우는 멀리서 보이는 하진에게 다가갔다.

구겨지려는 얼굴을 한껏 펴며 인사를 건네자 미소 지으며 받아주는 꼴이 멍청해 보였다.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닙니까?”

“네?”

실없는 말을 늘어놓던 한지우가 눈썹을 움찔 떨었다. 들킬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순간적으로 들킨 건가 싶어 심장이 내려앉았다.

“얼굴이 상한 것 같은데 아픈 거 아닌가요?”

한지우는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그의 상태를 하진이 알아챘다는 것에 긴장했다. 긴장할 필요가 없는데도 고지가 눈앞이어서 그런지 감정이 조절되지 않았다.

“괘, 괜찮아요. 잠을 좀 설쳤을 뿐이에요.”

“그런 거라면 다행이지만요.”

그리 말하면서도 하진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한지우의 얼굴을 살폈다.

멀끔한 얼굴로 관찰해대는 시선에 한지우의 속이 울렁거렸다.

이러다간 공든 탑을 제 손으로 무너트릴 것만 같아 그는 시선을 피하며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저는 그럼 가던 길 가볼게요.”

“아, 예. 다음에 보죠.”

하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뒤돌아선 한지우는 서둘러 사람이 없는 곳으로 향했다.

벽을 짚고 한참을 눈을 감고 숨을 고른 그는 깊게 숨을 내쉬며 땀을 훔쳤다.

그 스스로도 갑작스러운 감정 변화에 당황스럽기만 했다. 약의 부작용 중 하나인 걸까.

약 기운이 사라지는 것까지 계산해 미리 먹은 것인데 하진의 앞에서 감정 조절이 어려워지다니. 이건 문제였다.

“아냐. 아니야. 괜찮아. 할 수 있어.”

한지우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고작 부작용 따위로 계획을 말아먹을 수 없었다.

이미 서주안의 존재를 협회에 숨긴 이상,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다.

반쯤 자란 손톱을 손바닥에 강하게 박아 넣자 따끔한 통증과 함께 정신이 들었다. 다시 한번 깊게 숨을 내쉰 한지우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해진 얼굴로 자리를 벗어났다.

오늘은 일단 더는 하진을 만나지 않기로 했다.

몸이 좋지 않다고 했으니 최대한 그를 피해 다니며 교육장을 돌아다니며 내부 인사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은은하게 각인시켰다.

이미 그의 평가는 한차례 뒤바뀌었다.

표독스럽고, 욕심 많고, 성질 더러운 한지우가 하진의 존재로 인해 기가 죽었다더라. 성질머리를 고쳐먹었다더라.

그에게 당한 게 많은 이들은 등급으로 권력 쥐고 흔들더니 본인이 똑같이 당했다고 조롱했으나 그런 낮은 등급의 가이드들이 하는 평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의 조롱은 간지럽지도 않았다.

중요한 것은 협회 직원들과 에스퍼들의 생각이었다. 그들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하는 듯했으나 이내 이전보다 훨씬 다루기 쉬워진 한지우를 반겼다.

어떤 이는 대놓고 갑작스러운 심경 변화에 대해 묻기도 했다.

예전이었다면 사납게 노려보며 쏘아붙였을 그가 얌전히 하진과의 일을 이야기하며 반성을 논하자 사람들은 놀라면서도 그 변화를 믿기 시작했다.

못 믿을 것도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한지우는 완벽하게 혼자라고 확신할 수 있는 자신의 숙소가 아닌 모든 곳에서 얌전하게 굴었고, 심지어는 숙소에서도 소란은 자제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한지우가 이렇게 얌전해진 지도 꽤 시간이 지났으니 여기서 하진이 사라진다고 해도 그를 향한 의심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한지우 가이드, 잠시 시간 괜찮으세요? C급 에스퍼 가이딩이 급하게 필요한 상황인데…….”

홀로 걷는 한지우에게 협회 직원이 다급하게 다가왔다. 성격이 많이 죽은 걸 알아 급하게 부탁하면서도 혹시나 예전처럼 화내면 어쩌나 걱정하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럼요. 빨리 가죠.”

확실히 예전의 한지우였더라면, 아니 솔직하게 반응할 수만 있다면 그는 C급이면 C급 가이드를 찾아야 하는 게 아니냐고 쏘아붙였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그럼 얼른 가시죠.”

그러나 하진이 사라지게 되고, 자신이 S급으로 성장했음을 밝히고 난 후에 손에 쥐어질 것들을 상상하면 이 정도 연기는 얼마든지 이어 나갈 수 있다.

한지우는 느른하게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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