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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34화 (34/136)

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34화

하진은 얼굴을 붉히고 뚝딱거리는 이도윤을 보며 눈썹을 들썩였다. 그러다 시간을 확인하고는 그에게 말했다.

“이만 가죠.”

“……어.”

하진은 차진우에게도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남기고 숙소를 나섰다. 그때까지도 뚝딱거리던 이도윤은 밖을 나서기 무섭게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하진의 곁에 섰다.

“운동 얼마나 할 건데요?”

“글쎄요. 일단 가서 생각할 건데, 기다리지는 마세요.”

“쳇.”

이전에 우연히 마주쳐 둘만의 시간을 보냈던 게 퍽 좋았던 이도윤은 이번에도 팀장이 없는 틈을 타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자 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하진에 의해 사전에 막히고 말아 혀를 찼다.

이미 에스퍼들을 데리고 다닐 바에 한지우를 데리고 다니겠다고 마음먹은 하진은 말을 물리지 않았다.

지금이야 이도윤밖에 없으니 괜찮지 않나 하겠지만, 그때도 어떻게 알았는지 에스퍼들이 몰려들었던 걸 하진은 잊지 않았다.

혹시 모르지 않나. 한승호와 백자안도 이도윤처럼 복귀하는 길에 우연히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지.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별거 아닌데 뭐.”

이도윤이 감사 인사에 아닌 척 턱을 치켜들었다.

“저녁 전에는 돌아갈 테니 기다리지 말고 돌아가는 겁니다.”

“……알았다고.”

혹시나 싶어 한 번 더 말한 거였는데 정말로 몰래 기다릴 생각이었는지 이도윤이 힘없이 걸음을 돌렸다. 그 모습이 퍽 안쓰러워 보였다.

유일한 자유 시간을 포기할 순 없었던 하진은 그저 나중에 간식이라도 사 가야겠다 마음먹을 뿐, 그를 붙잡지 않았다.

멀어지는 이도윤을 뒤로하고 하진이 끝내 교육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천천히 걷던 이도윤이 다시금 쳇 하고 혀를 차더니 어깨도 펴고, 느리던 발걸음도 원래대로 되돌렸다.

게임으로 따낸 소원권이 있긴 했으나 그건 좀 더 중요한 순간에 쓸 생각이라 오늘은 여기서 물러나는 이도윤이었다.

* * *

일전에 한지우가 알려준 체력 단련실로 들어서자 역시나 시선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구심점이나 다름없는 한지우가 태도를 바꿔서 그런지 그들 또한 힐끔힐끔 쳐다만 볼 뿐, 다가오거나 말을 걸지는 않았다.

하진은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몸부터 풀었다. 몸을 달구고 기구 운동을 시작한 하진은 그로부터 본인이 생각해둔 시간까지 운동에만 매진했다.

뽀송했던 몸이 점점 땀으로 젖었고, 오랜만에 시작한 운동에 숨도 거칠어졌다.

마무리 운동을 마치고 러닝머신에서 내려오던 하진은 체력 단련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지우와 시선이 마주쳤다.

살갑게 인사를 주고받을 사이는 아닌 것 같아 못 본 척 지나가려는데 한지우가 먼저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형 계셨네요.”

그냥 지나가려 했던 게 미안해질 만큼 반겨주는 한지우에 하진이 돌리려던 발걸음을 멈췄다.

“예. 한지우 씨도 운동하러 왔나 봅니다.”

“요즘 몸이 뻐근한 게 운동을 안 해서 그런가 싶더라고요.”

“저는 끝난 참이라 먼저 가 보겠습니다.”

자연스레 멀어지려는 하진을 뒤로 한지우가 따라붙었다.

“숙소로 바로 돌아가시나요?”

“아뇨. 조금 돌아다녀 볼까 합니다.”

그러자 한지우가 잘 됐다는 듯 말했다.

“그럼 같이 가요. 제가 저번에 맛집 소개해 주겠다고 했잖아요. 마침 점심때니까 제가 살게요.”

“예? 아뇨, 그럴 필요는…….”

하진이 당황하며 거절하려 하자 한지우가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저보다 조금 작은 하진을 내려다보았다.

“말로만 한 사과로는 마음이 안 편해서 그런데 같이 먹어주시면 안 돼요……?”

하진은 고민했다. 에스퍼를 데리고 다닐 바에야 한지우를 데리고 다니겠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런데 그게 지금이 될 줄은 몰랐지.

‘하지만 좋은 핑계가 되긴 할 텐데.’

연락을 하지 않으면 찾겠답시고 쫓아올 것이고, 혼자 돌아다녀도 위험하다고 쫓아올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가이드라도 누군가와 함께 다닌다고 하면 불평하면서도 쫓아오지는 못할 것 같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숙소에 남아 있는 사람 중 하나가 차진우여서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한승호와 이도윤, 이도윤과 백자안, 백자안과 한승호, 이 조합이었다면 애초에 시도도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한지우가 이리 나오는 걸 봐서는 지금을 넘긴다고 하더라도 언제고 한 번은 하진과 식사하겠다고 벼를 것 같았다.

그리고 먼저 반성하고 숙이고 들어오는 이의 제안을 계속해서 거절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났다.

“그럼 그렇게 하죠. 그런데 운동하러 이제 막 도착한 거 아닙니까?”

누가 봐도 운동복 차림이라 그리 물으니 한지우는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운동은 나중에 해도 되는걸요. 형은 씻으셔야 하죠? 기다릴게요.”

그 잠깐 사이에 땀이 식어 끈적거렸다. 하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샤워실로 향했다.

땀을 씻어낸 후, 젖은 머리의 물기만 대충 닦아내고 나온 하진은 한지우의 안내에 따라 길을 걸었다.

물론 연락이 없으면 언제고 찾아올 에스퍼들에게 먼저 연락해 상황을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지우의 이름은 말하지 않았으나 가이드라고 하니 그들도 한발 물러났다.

이도윤의 경우엔 자신을 돌려보내 놓고 다른 놈팡이랑 노는 거냐고 투덜거렸다.

그래서 돌아갈 때 간식을 사가겠다고 하니 누굴 애로 보냐면서 화를 내면서도 뭐가 먹고 싶다고 솔직하게 덧붙여왔다.

한지우의 안내에 따라 들어간 식당은 맛이 제법 훌륭했다.

씹을 때마다 느껴지는 고기의 육즙에 하진이 작게 감탄하자 한지우가 입을 열었다.

“맛있죠?”

이번만큼은 하진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 눈앞의 돈가스는 하진이 먹어본 것 중 가장 맛있었다.

다음에 외식할 일이 있으면 이곳에 와 다른 메뉴를 먹어보는 것도 좋을 듯했다.

한지우는 걱정했던 것과 달리 제법 좋은 식사 상대였다.

식사 중에 불필요한 대화는 자제하면서도 그렇다고 아예 입을 다물어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지 않았다.

그리고 대화를 할 때는 개인적인 주제는 피하고 가볍게 얘기할 수 있는 주제만을 꺼내 하진이 대답하기도 편하게 했다.

한지우에 대한 인식이 좋아질수록 하진은 신기해했다.

‘이렇게 괜찮은 청년도 질투에 미치면 그렇게 바뀔 수 있구나.’

게다가 한지우는 하진이 아직은 자신에게 선을 긋는 걸 잘 아는 듯했다.

식사를 마친 후, 그는 이도윤에게 줄 간식을 사러 가는 카페 근처까지만 함께 했다.

한지우에 대한 그의 인식이 바뀌었다는 걸 대화를 통해 알았을 텐데도 적당한 선이라는 게 뭔지 아는 태도였다.

신기한 일이었다. 가이드로 이곳에 오기 전까지 하진의 인간관계는 늘 이렇게 담백했다.

함께 식사를 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지만 개인적인 시간은 공유하지 않는 그런 관계.

그런데 하진의 인생에 나타난 에스퍼들은 담백의 ㄷ자도 모르는 이들이었다.

아무리 안전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이곳에 온 뒤로는 에스퍼가 없이 보낸 시간을 다 합쳐도 24시간이 되지 않는다는 게 놀랍기만 했다.

물론 그 마음을 귀찮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목숨보다 소중하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님을 알았으니 그런 그들에게 하진의 생활 패턴을 고집하는 것도 이기심일 거다.

‘그래도 한 번씩 이런 자유 시간은 가질 수 있어야지.’

하진에게 있어 한지우의 호감도가 조금 더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 * *

제 숙소로 돌아온 한지우는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먹은 것을 죄다 토해냈다. 소화라고는 전혀 되지 않은 음식물들이 위액과 함께 쏟아져 나와 목구멍이 따끔거렸다.

“웩, 케헥.”

더는 나올 게 없을 때까지 토했지만 여전히 속이 울렁거렸다.

하진에게 연신 살랑살랑 웃고, 같이 식사까지 했다는 사실에 속이 계속 뒤집힌 탓이었다. 생각보다 더 심한 거부 반응에 본인조차 놀랄 지경이었다.

그러나 한지우는 하진의 경계를 완전히 무너뜨릴 때까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그 순간을 상상하면 소화를 시키지 못하고 체하는 것 정도야 싸게 먹히는 거였다.

생리적으로 눈물이 고인 눈으로 한지우는 과거를 더듬었다.

* * *

한지우의 하루는 엉망진창이었다. 사실 그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하진이라는 존재가 나타난 이후부터는 항상 그랬으니까. 그런데 오늘은 유독 더 엉망진창이었다.

하진과 대화한 이후 한지우는 가이딩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다며 한 소리 들었다.

그냥 혼이 났다면 차라리 화도 나지 않을 텐데 하필이면 그를 꾸짖은 에스퍼는 일전에 하진의 수업에 들어갔던 에스퍼였다.

“그 가이드 다시 만나고 싶다…….”

차라리 가이딩이 엉망이라는 소리를 듣는 게 더 나았다.

그러나 그 에스퍼는 마치 한지우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먼 곳을 바라보며 다른 이를 그릴 뿐이었다.

“시발, 그놈의 이하진!”

부글부글 끓는 속에 한지우는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대체 그놈의 S급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이러는 것일까.

“그 약을 먹으면…….”

나도 S급이 될 수 있겠지.

한지우가 찬물을 맞은 사람처럼 화들짝 놀랐다. 효과가 어떤가를 떠나서 반정부 놈과 손을 잡았다가 들키면 어떻게 될 줄 알고 그런 생각을 하는지.

한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쓸데없는 생각을 날려 보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그건…….”

그러나 미약하게 남아 있던 망설임이 자꾸 한지우를 부추겼다.

성공만 한다면 이전의 삶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걸 뛰어넘어 이하진의 것을 손에 쥘 수도 있을 것이다.

감히 어느 누구도 자신을 다른 누구와도 비교하지 못할 것이고, 가이딩을 위해 수많은 에스퍼가 머리를 조아리고 애정을 갈구할 것이다.

“어때? 이제 좀 마음이 생겼나?”

있어선 안 될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이번만은 놀라지 않았다. 한지우는 기묘하게 번들거리는 눈으로 서주안을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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