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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33화 (33/136)

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33화

하진의 다리 사이에는 차진우가 자리하고 있었고, 차진우는 그것도 부족하다는 듯 하진의 허리를 받쳐 들고 자기 쪽으로 잡아당겼다.

그 움직임이 무엇을 뜻하는지 하진도, 차진우도 잘 알았다.

차진우는 금방이라도 하진을 잡아먹을 듯 눈을 번들거리면서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이성을 붙잡고 물었다.

“지금이라도, 하진 씨가 말씀만 하시면 여기서 멈출 수 있습니다.”

이불을 움켜쥔 손등에 불거진 핏줄이 그가 얼마나 인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에 하진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분위기에 휩쓸려 차진우가 그대로 멈추지 않았더라면 하진 또한 쉽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건 싫다는 듯 하진의 허락을 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하진 또한 진지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분위기에 휩쓸려서 어쩔 수 없다는 핑계 없이, 온전히 자신이 원한다는 이유로 관계를 가지고 난 후에 괴로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 것인가.

하진의 몸을 달아오르게 했던 열기는 점점 가라앉는 반면 차진우는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는 듯 여전히 참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하진이 그만하자는 말 한마디면 그는 조금의 아쉬움도 보이지 않고 물러날 것이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에스퍼에게 가이드가 어떤 존재인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아는 것과 이해는 달랐다.

하진은 그들에게 자신이 더없이 중요한 존재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죽을 때까지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갑자기 하진이 에스퍼로 각성하지 않는 이상은 그럴 것이다.

하진은 차진우와 마주하고 있던 시선을 움직여 아무것도 없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이윽고 대답했다.

“내가 싫지 않다고 하면요?”

여전히 저들이 왜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집착하는지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하진이 생각해야 할 건 그게 아니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저 이 선을 넘었을 때 자신이 후회하지 않을 것인가. 그거만 생각하면 되었다.

단순히 몸이 달아서 이런 결정을 내린 건 아니었다. 물론 완전히 그렇지 않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팀이 바뀌지 않는 이상, 하진은 이들과 몇 년이고 함께해야 한다.

앞으로 이런 상황이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하진은 솔직하게 자신이 쾌락에 약한 인간이라는 걸 인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접촉이 에스퍼에게도 좋다는 것 또한 인지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방식으로 가는 게 좋지 않겠는가.

물론 그렇게 마음먹었다고 해서 당장에 몸을 내주지는 않을 것이지만, 적어도 상대가 차진우인 지금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천장을 향했던 시선이 똑바로 마주 향하자 차진우의 눈빛이 한층 더 깊게 가라앉았다.

“……그럼 멈추지 않겠죠.”

분명 부드럽게 흘러나온 목소리인데 어쩐지 굶주린 짐승이 낮게 목을 울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 잘못 선택한 건가?’

이도윤은 너무 어리고, 백자안이나 한승호는 이미 키스만으로도 멈추지 못하는 걸 봐버렸다.

그렇기에 하진은 자신의 감정을 한계까지 참아내면서도 저의 선택을 존중하려는 차진우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건데.

뭔가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선택은 돌이킬 수 없는 법. 하진의 입에서 허락이나 다름없는 말이 떨어진 순간, 차진우의 손이 움직였다.

단정히 갖춰 입은 하진의 상의 안을 파고든 손이 가슴과 배를 지분거렸다.

마치 그의 몸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손끝으로 기억하겠다는 듯한 움직임에 하진의 허리가 부르르 떨렸다.

차라리 옷을 벗겼더라면 덜 창피했을 텐데 옷은 한 꺼풀도 벗기지 않고 이리 매만지고 바라봐오니 괜히 얼굴이 더 달아오르는 듯했다.

“흡……!”

차진우의 손끝이 배 한가운데를 가르듯 움직이며 배꼽을 스치자 하진이 숨을 들이켰다.

‘젠장…….’

수치스러우면서도 가슴이 뛰고, 등허리에는 소름이 돋고, 차진우의 손끝이 닿는 곳마다 몸이 움찔움찔 튀었다.

하진은 제가 이렇게나 예민한 사람이었는지 다시 한번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문제라기보단 이들이 문제라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

잡아먹을 것 같은 눈빛을 한 더없이 야하게 사람을 만져대는데 이 분위기에 넘어가지 않는 게 더 이상한 거라고 하진은 합리화했다.

“으, 흣…….”

마치 실험 결과를 지켜보는 것처럼 번들거리는 눈으로 하진을 내려다보며 그의 몸 구석구석을 지분거리던 차진우에 하진의 아래 또한 점점 힘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차진우의 손은 집요하게 상체에서 맴돌았다. 아직 이곳을 다 맛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듯했다. 혹은 이런 행위가 처음일 하진을 배려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하진은 생각이 달랐다. 맞닿은 하체에서 느껴지는 열기가 옮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는데 연신 애먼 곳만 만져대니 오히려 감질났다.

무엇보다도 만져질 때마다 부족하다는 듯 허리를 움찔거리는 자신의 모습이 제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해버리면 했지. 그런 생각이 들자 오히려 먼저 손을 뻗게 되었다. 상의 안을 파고든 손을 잡아 빼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차진우의 팔이 굳어버렸다.

“싫으시다면…….”

“그게 아니고, 후우…….”

생각은 했어도 막상 입 밖으로 꺼내자니 민망했다. 몇 번인가 입술을 달싹이던 하진은 얼굴에 오르는 열기를 느끼고는 슬쩍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그냥, 그냥 하자고요.”

감히 말하지만, 차진우의 인생에서 이보다 자극적인 순간은 없었다.

이 사람은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까. 상처 입히기 싫어서 자제하는 중인 괴물을 오히려 부추기고 들다니.

이를 꽉 깨문 차진우는 손을 뻗어 침대 옆 서랍을 열었다. 이젠 하진이 싫다고 해도 멈출 자신이 없었다.

* * *

하진에게는 퍽이나 다행스럽게도 협회로 갔던 이도윤이 생각보다 일이 커졌는지 이틀이 더 지나서야 돌아온 덕에 하진과 차진우 사이에 있었던 일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팀장이랑 형 좀 친해진 거 같다?”

그러나 한번 선을 넘은 이들 사이의 분위기 변화까지 들키지 않을 수는 없었다. 에스퍼와의 관계가 얼마나 힘든지 몸소 체험한 하진은 최대한 멀쩡한 척을 해야만 했다.

“아무래도 나이도 비슷하고, 조용한 것도 잘 맞으니까요.”

하진이 태연하게 대답하는 동안 차진우는 배부른 포식자처럼 느릿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릴 뿐이었다.

이도윤은 무언가 있다는 의심을 지우지 못했지만, 결국 둘 사이에 있었던 일은 알아내지 못했다.

푹 젖은 시트는 진즉에 세탁했다.

잔뜩 쉬었던 하진의 목소리와 뻐근하던 몸도 이도윤이 자리를 비운 사이, 차진우의 돌봄을 받으며 어느 정도 정상 궤도를 찾았기 때문이다.

허리 마사지를 할 땐 어쩔 수 없이 분위기가 야릇해지기도 했지만, 차진우는 하진이 원하지 않으면 손대지 않는다는 말을 끝까지 지켜냈다.

아무튼 그날의 일은 둘만의 비밀로 남게 되었다.

애매하게 남아 있던 뻐근함마저도 털어낸 하진은 운동복을 꺼내 입었다.

‘체력을 키워야 해.’

차진우와의 관계 이후 더욱 체력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 하진이었다.

물론 관계를 위해 체력을 늘리려는 건 아니었다. 원래도 운동을 다시 하려고 했는데 그 중요성을 더욱 깊이 깨달은 것뿐.

“저는 교육장에 가 보겠습니다.”

“왜?”

하진이 방에서 나오기 무섭게 고개를 들었던 이도윤이 잽싸게 달려와 그의 곁에 붙었다.

“체력 단련실이 있다고 해서 운동 좀 하려고요.”

“확실히…… 체력이 조금 더 늘었으면 싶긴 했습니다만.”

거실엔 이도윤 혼자뿐인 줄 알았는데 부엌에서 나온 차진우가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이도윤은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괜히 그때 일이 떠오른 하진이 슬쩍 차진우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연륜이라는 게 있는 그는 오히려 눈을 반으로 접으며 미소 지을 뿐이었다.

‘앓느니 죽지.’

결국 그 시선을 먼저 피한 건 하진이었다. 그때 일을 떠올리면 민망함에 얼굴이 붉어지는 저와 달리 차진우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니 누가 봐도 승자가 정해진 싸움 아니겠는가.

그런 차진우도 그와의 관계가 처음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하진이었다.

“아무튼 다녀오겠습니다.”

“데려다줄까?”

“……상관없겠죠.”

자기가 데려주고 싶다는 듯 눈을 반짝이는 이도윤에 하진은 결국 거절하지 못했다.

차진우와의 관계를 숨기기로 한 이후 어쩐지 이도윤에게 더 약해진 하진이었다.

“아싸. 팀장은 오지 마요!”

옷을 입기 위해 제 방으로 뛰듯이 가면서도 차진우를 견제했다. 차진우는 그런 견제가 우습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도윤이 제 방으로 쏙 들어가자마자 손을 뻗어 하진의 목으로 손을 뻗었다.

“여기, 뒤집혔네요.”

만질 의도 따위는 없다는 듯 뒤집힌 부분만 정리하고 떨어지는데 목덜미를 슬쩍 스치고 멀어지는 손끝에 하진의 어깨가 움찔 튀었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하진에 차진우가 낮게 웃었다.

“그렇게 보면 입 맞추고 싶은데, 해도 됩니까?”

“되겠습니까?”

하진의 일갈에도 차진우는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평상시의 무뚝뚝한 얼굴인데 그게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옷을 다 갈아입은 이도윤이 나왔다.

“……교육장까지만 같이 가는 거라는 거 알고 있죠?”

데이트라도 나가는 것 같은 복장에 하진이 떨떠름하게 되묻자 이도윤이 미간을 구겼다.

얼굴을 붉히는 것까진 안 바라도, 잘 어울린다는 말 정도는 들을 줄 알았는데 너무한 반응이었다.

“알거든? 할 말이 그거밖에 없어?”

“잘생겼네요.”

“어, 뭣, 뭐, 뭐 당연하지.”

원하는 대답이 이게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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