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32화 (32/136)

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32화

눈이 마주친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멀끔한 낯으로 하진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그러나 멀쩡한 척하는 얼굴과는 달리 몸은 그럴 수 없었는지 신발을 벗고 바닥에 발을 디디는 순간, 차진우의 다리가 휘청였다.

“엇.”

깜짝 놀란 하진이 황급히 몸을 받쳐 안았다.

생각보다 훨씬 묵직한 무게에 하진의 몸도 휘청거렸으나 금방 중심을 잡은 차진우가 오히려 그의 허리를 감아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도와주려다가 오히려 도움을 받아버려 민망해진 하진이 헛기침하며 떨어지려는데 차진우의 단단한 팔이 놓아주지를 않았다.

“진우 씨?”

“죄송합니다. 조금만…… 조금만 이러고 있겠습니다.”

나직하게 읊조리는 목소리가 며칠간의 철야 근무를 끝내고 겨우 침대에 몸을 뉘었을 때의 그것과 너무도 닮아 있어서 하진은 그를 밀어내지 못하고 얌전히 안겨 있었다.

“많이 힘들었습니까?”

“후우, 임무 자체는 힘들지 않았으나 중간에 반정부 놈들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고생 좀 했죠.”

“그럼 가이딩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혼자서 에스퍼 여러 명을 상대했으면 분명 가이딩이 필요한 상태일 게 분명했다.

그러나 하진이 손을 들어 올리기 무섭게 차진우가 그를 더욱 깊게 끌어안더니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요. 지금은 조금만 더 이러고 있고 싶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이딩하는 게 상태를 호전시키는 데 더 도움이 될 것 같은데도 차진우는 고개를 저었다.

하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차진우가 너무 지쳐 보여서 그의 말을 따라주기로 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이대로 서서 잠든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하진을 끌어안고만 있던 차진우가 그제야 몸을 떼어냈다.

“가이딩하실 거면 제 방으로 가시죠.”

가이딩도 하지 않았는데 차진우는 마치 가이딩을 받은 사람처럼 멀쩡히 걸었다.

‘괜찮아진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저건 괜찮아진 게 아니라 익숙할 뿐인 거다.

그는 하진이 없는 동안에는 약이나 한지우의 미약한 가이딩에나마 의존해왔을 것이다. 폭주는 막을 수 있지만, 결코 그 고통을 해소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진을 만나기 전까지 계속 그랬다면 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을 이렇게 살아온 것일까.

하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해도 딱히 동정할 필요는 없었다. 상대가 바라지 않는 동정은 불쾌할 뿐이니까.

하진은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었다. 가이딩 말이다.

차진우의 방은 1층에서도 현관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했다. 따라 들어가자 그야말로 딱 차진우가 떠오르는 방이라는 감상이 들었다.

쓸데없는 물건은 없고, 개인 물품조차도 거의 없다시피 한 방은 그 주인도 자주 드나들지 않아 깔끔하게 정리된 모델 하우스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일단은 먼저 씻어야 할 것 같으니 잠시 앉아서 기다려 주십시오.”

“예.”

앉을 곳이 마땅치 않아 부득이하게 침대에 앉은 하진은 시선을 둘 곳을 찾아 이곳저곳을 헤맸다.

딱히 구경할 것도 없어서 하릴없이 시간만 보내는데 욕실 문이 벌컥 열리고 차진우가 나왔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하진이 기다리는 게 신경 쓰여 일찍 나온 것인지 머리도 제대로 말리지 못해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여기 앉아보세요.”

“예?”

차진우는 그 뜬금없는 말에 반문하면서도 착실히 하진이 가리킨 곳에 앉았다.

침대에 앉은 하진의 앞, 바닥에 앉자 그가 손에 들린 수건을 가져가더니 차진우의 머리에 덮었다.

“바닥에 물 다 떨어지잖아요. 일단은 머리부터 말리죠.”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차진우는 알겠다고 하면서도 결국 자신이 하겠노라 수건을 가져갔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하진이기도 하고 조심스럽게 머리를 쓰다듬듯 말리는 손길을 멈추게 하고 싶지 않아 얌전히 제 머리를 맡겼다.

“하아.”

별 특별할 것도 없는 손길인데도 차진우는 몸이 나른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쩐지 잠이 오는 기분이라 눈을 감고 한껏 나른한 느낌을 만끽하는데 한참 이어지던 손이 멈추었다.

“진우 씨?”

하진의 부름에 대답하고 싶지만 정말로 잠에 들기라도 한 것처럼 눈이 떠지지 않고 입술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자는 건가. 가이딩해야 하는데.”

정말 자는 건가 싶어 조심스레 얼굴을 뒤로 젖혔다. 머리를 받친 하진의 손이 차진우의 뺨에 닿았다.

그의 눈꺼풀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가 느껴지는 걸로 보아하니 하진의 얼굴이 지척에 있는 게 분명했다.

“흠, 내상을 입었는지도 확인해야 하는데.”

차진우는 이대로 손을 뻗어 하진우의 뒤통수를 잡아당겨 입을 맞추면 어떻게 될까 하는 충동을 느끼면서도 하진이 어떤 행동을 할지 궁금해 그 충동을 참아냈다.

“자는 사람한테 이러는 건 좀 그렇지만…….”

작게 속삭이는 말이 차진우의 입술에 떨어지고, 곧이어 입술이 닿았다.

자는 차진우를 깨우지 않기 위해서인지 아주 조심스럽고 가벼운 접촉이었다.

하진은 윗입술에 차진우의 아랫입술이 닿고, 아랫입술에 그의 윗입술이 닿는, 어딘가 어긋난 것 같은 감각에 낯설어하면서도 입술을 떼지 않았다.

혼자서 여러 명의 에스퍼를 상대했으니 능력을 과하게 사용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차라리 차진우가 잠든 지금이 적기일지도 몰랐다. 백자안이나 한승호나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밀어붙여 댔으니 말이다.

망설이기만 하던 하진은 이내 혀를 움직여 차진우의 입술을 벌리고 들어갔다. 서로의 얼굴이 반대로 놓인 상태라 그런지 더욱 이상한 감각이었다.

하진의 혀가 닿는 감각이 느껴지자 바닥에 놓여 있던 차진우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조심스럽게 움직여 제자리에 얌전히 놓인 제 혀를 감싸는 하진을 느낀 차진우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손을 들어 하진의 뒤통수를 감쌌다.

“읏!”

단단하게 그러나 결코 강압적이지는 않게 하진의 뒤통수를 감싸 누른 차진우는 언제 나른했었냐는 듯 입을 벌리고 하진을 한껏 받아들였다.

하진은 당황해 굳어버린 혀를 부드럽게 감쌌다가도 아랫입술을 강하게 빨아들이는 그의 행동에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젖은 살덩이가 만들어내는 질척한 소음이 한참 이어졌다.

“으응…….”

차진우는 숨이 막힌 하진이 결국 제 어깨를 두드리고서야 하진을 놓아주었다.

차진우는 숨을 몰아쉬는 하진을 올려다보았다. 꺾인 고개 탓에 하진이 거꾸로 보였지만, 달아오른 뺨과 촉촉하게 젖은 입술, 그리고 평소와 달리 흐트러진 표정만큼은 선명했다.

“아, 가이딩했어야 했는데.”

숨을 고르던 하진이 자신의 실책에 혀를 찼다. 처음도 아니고 애초에 가이딩을 위해 먼저 입을 맞췄으면서 자는 줄 알았던 상대가 반응했다는 이유로 당황해서 가이딩도 까먹다니.

‘익숙해지게 오히려 키스를 더 자주 해야 하나.’

에스퍼들에게야 반가운 소식이지만,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혹시 미쳤냐고 물어볼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하게 된 하진이었다.

하진의 말을 들은 차진우는 꺾인 고개를 바로 하고 몸을 일으켰다. 침대에 걸터앉은 하진의 몸을 들고 안쪽에 밀어 넣은 차진우는 그 다리 사이에 제 몸을 끼워 넣었다.

두툼한 차진우의 몸뚱이가 들어오자 자연스레 하진의 다리가 한껏 벌어져 민망한 자세가 되었다. 그러나 그걸 신경 쓰는 건 하진뿐이라는 듯, 차진우는 그의 뺨을 감싸고 다가갔다.

“그럼 다시 하죠. 키스.”

“잠깐, 쉬는 시간을, 으음.”

하진이 타임을 외쳤으나 더는 참기 힘들어진 차진우는 멈추지 않았다. 가이딩이 없는 키스일 뿐인데도 어쩐지 갈증이 이는 기분이었다.

덮치듯 눌러오는 차진우 때문에 애매하게 허리가 꺾인 하진은 어떻게든 버티려 했지만, 결국은 바들바들 떨다가 침대에 등을 기대고 누울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팔로 침대를 짚고 있다지만, 위를 덮친 사내를 견디면서 버틸 정도로 하진은 힘이 넘치지 않았다.

아무튼 그 덕에 또 한 번 입술이 떨어졌는데 하진은 이번에도 키스에 정신이 팔려 가이딩을 까먹었다는 사실에 이젠 화가 날 지경이었다.

자신이 이렇게까지 멍청한 사람이었나? 십 대 사춘기 소년도 아니면서 고작 키스에 정신이 팔려 해야 할 일을 까먹는다는 것은 하진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오기가 생긴 하진은 다시 한번 키스를 위해 다가오는 차진우의 뒤통수를 손으로 잡아당겼다.

하마터면 치아가 부딪히는 불상사가 생길 뻔했지만, 상대가 누구인가. 요령 있게 코앞에서 멈춘 차진우 덕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코와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이내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눈을 감고는 서로의 입술을 찾았다.

여전히 혀가 닿는 감각은 익숙해지지 않아 차진우의 뒤통수를 감싼 하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머리카락을 헤집고 두피를 누르는 손끝의 힘에 오싹함을 느낀 차진우는 미간을 구기며 더욱 깊게 입을 맞췄다.

하진은 이쯤 되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아무래도 이 쾌락을 추구할 뿐인 행위에 착실히 그 의도를 따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쉽게 말하자면 지금 차진우와 나누는 키스가 좋았다는 뜻이다.

‘그래도 세 번은 안 되지.’

차라리 그냥 키스할 생각으로 하진이 먼저 시작한 것이면 모를까, 가이딩을 목적으로 시작한 키스였다.

아직 가이딩은 하지도 않고 세 번째 키스가 이어졌다는 건 하진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하진은 입천장을 긁는 차진우의 혀끝에 발가락을 움츠리면서도 가이딩을 불어넣었다.

닿은 혀끝에서 느껴지는 가이딩에 차진우의 움직임이 더욱 격해지고 그로 인해 숨이 차 헐떡이면서도 하진은 가이딩을 멈추지 않았다.

“흐읏, 으응…….”

어느새 두 사람을 부둥켜안은 채 침대를 뒹굴고 있었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3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