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25화
아무리 하진이 무신경하다 한들 다 큰 성인 남성들이 자신을 사이에 두고 유치하게 싸워대는 꼴까지 감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뒤에 금붕어 똥처럼 졸졸 쫓아오는 두 사람을 달고 주방으로 향한 하진은 제 몫의 밥을 담았다.
“백자안 씨도 먹을 겁니까?”
“네. 제 것도 퍼주세요.”
애교스러운 목소리에 한승호의 얼굴이 구겨진 호일처럼 일그러졌으나 그도 여기에 와서까지 싸우면 하진이 화낼 거라는 걸 알고 입을 다물었다.
“나도 먹을래.”
그저 질 수 없다는 듯 끼어들 뿐이었다.
그렇게 세 사람의 식사는 조용히 시작되었다. 하진은 식사 시간엔 식사에만 집중하는 편이었고 다른 둘은 하진이 입을 다무니 딱히 입을 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진에게는 퍽 편안한 식사 시간이 이어졌다.
“윽-”
그러던 중 제대로 식히지 못한 국을 먹던 하진이 통증을 느끼고 신음했다.
붓고 찢어진 입술이 다 낫지 않은 상태라 밥 먹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뭐야. 어디 아파?”
하진의 신음에 고개를 번쩍 들었던 한승호의 눈에도 그 상처가 훤히 보였다.
왜 아까는 보지 못했는가 싶을 정도로 눈에 띄는 상처가 입술에 있었다.
“왜 입술이 찢어졌어? 근데…… 백자안 저 개새끼는 왜 기분 좋아 보이지? 어? 말 좀 해봐.”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었다.
하진이 다쳤으면 똥개처럼 낑낑대야 할 백자안이 기분 좋아 보이는 데다가 심지어는 얼굴까지 붉히고 있으니 누가 봐도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차진우도 아는 마당에 딱히 숨길 생각은 없지만, 막상 한승호가 진심으로 분해하자 백자안과 키스로 가이딩하다가 입술을 찢어 먹었다고 말하기가 좀 그랬다.
그러나 거리낄 게 없는 백자안은 그런 한승호의 질문은 무시하고 하진에게 수줍게 물었다.
“형, 많이 아프세요? 제가 나중에 약 발라 드릴게요.”
“……아뇨. 괜찮습니다.”
하진은 대답하면서도 힐끔힐끔 한승호를 살폈다. 왜 자신이 가이딩한 거로 눈치까지 봐야 하는지 답답했으나 배신감을 느끼기라도 하는 한승호를 보고 있자니 눈치를 보게 됐다.
괜히 자신이 차별한 것 같지 않나.
한승호는 제 짐작이 사실로 밝혀지자 충격에 빠진 듯했다. 하진은 그가 복스럽게 퍼먹던 수저도 내려놓고 자신의 입술을 뚫어지라 보는 시선이 불편했다.
“그러니까, 둘이 키스한 거야?”
“……폭주로 입은 내상을 치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진에게는 말이 어 다르고 아 다른 거지만, 한승호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쨌든 백자안 새끼랑 입술 비벼댔다는 거잖아. 혀도 섞고!”
한승호는 그게 그렇게도 억울한지 끝에 가서는 언성까지 높아졌다.
잘못한 것도 아닌데 따지듯이 소리까지 지르니 화가 날 만도 하건만, 하진은 그가 서러운 똥강아지처럼 저러고 있으니 딱히 화도 안 났다.
그 와중에 입에 든 것은 꼭꼭 씹어 넘기는 게 장하다고 해야 할지.
갑자기 한승호가 밥도 다 먹지 않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마 백자안이 했으니 자기도 해야 한다며 억지로 입을 맞추려는 건가 싶어 긴장하는데 한승호의 걸음이 현관으로 향했다.
“설마 지금 가이딩받으려고 내상 입으러 가는 건 아니겠죠?”
한승호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소리 없는 대답이 저렇게 뜻이 분명할 수가 없었다. 하진은 어이가 없어서 이마를 짚었다.
‘내가 어쩌다가…….’
아무리 어리다, 어리다 했어도 이렇게까지 유치할 줄이야. 문제는 저게 농담이거나 같잖은 협박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보통은 행동보다 말이 먼저 나오지 않나?’
뭔 성격이 저렇게 급한지, 어떻게 키스 안 해주면 다쳐서 올 거라는 협박 대신 일단 다쳐서 오면 키스해줄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들 수 있는 건지.
하진은 우유부단하거나 쉽게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회사나 학교에서는 모두 하진을 어려워했다. 성격이 워낙에 칼 같아서 말이다.
아무리 그런 하진이라도 키스로 가이딩받겠답시고 스스로 다치러 가는 미친놈을 상대하는 건 버거웠다.
결국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선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진은 말을 꺼내기 전에 잠시 고민했다.
아무리 가이딩에 불과하고 동성과의 접촉이 아무렇지 않다고 해도 자신이 너무 가볍게 구는 건 아닌지 말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 큰 청년이 차별당했다고 애처럼 서러워하면서 저 스스로 다쳐오는 꼴을 볼 바에야 그냥 입 한 번 맞추고 말아야겠다 싶었다.
“하아……. 일단 밥마저 먹읍시다. 먹고 해줄 테니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승호가 빛처럼 제자리에 돌아와 숟가락을 들었다.
어쩐지 얄미워져서 해주지 말까 하는 유치한 생각이 들었으나 그랬다간 또 나가서 다쳐오겠지 싶어 하진은 체념했다.
“쟤가 뭐가 예쁘다고요.”
백자안이 옆에서 볼멘소리를 했으나 진심으로 하진을 뜯어말릴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하진이 하는 말을 거역할까.
어차피 키스를 받을 거라면 한승호를 딱 죽기 직전까지 팰 수는 없을지 진지하게 고민할 뿐이었다. 그 한 소리를 끝으로 얌전히 식사를 이어 나갔다.
한승호는 서둘러 식사를 마치더니 빠르게 화장실로 가 칫솔을 입에 물었다.
식사 후 바로 키스를 요구할 정신머리는 아니라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으나 하진은 결연한 얼굴로 양치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좀 민망해졌다.
그런 하진을 지켜보는 백자안의 표정은 계속해서 뚱해졌지만, 하진은 눈치채지 못했다.
“형은? 양치 안 해? 난 상관없는데.”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양치하는 한승호가 물었다. 입가에 거품을 잔뜩 묻혀도 번들거리는 눈빛 때문에 전혀 귀엽지가 않았다. 하진은 고개를 젓고 제 칫솔에도 치약을 묻혔다.
이렇게 대놓고 키스하기 위해 사전작업을 하고 있으려니 전에 없던 회의감이 찾아왔다.
‘이게, 맞나……?’
그러나 이제는 발을 뺄 수도 없었다. 한승호의 저 눈을 보라. 간식을 앞둔 강아지의 눈도 저렇지는 못할 것이다.
먼저 양치를 끝마친 한승호는 옆에서 하진의 양치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자연스럽게 하진의 손이 느려졌다.
하지만 아무리 질질 끌어도 결국은 양치에 불과했다. 한 시간은커녕 십 분도 끌지 못하고 입을 헹구자마자 한승호가 달려들었다.
“자, 잠시.”
어찌나 빠른지 하진이 순간의 기재로 한승호가 아니라 자신의 입을 막은 건 정말이지 잘한 짓이었다.
그러나 한승호는 손등에 가로막혀 불만스러운 것도 잠시 이내 그것마저도 좋다는 듯 그 위에 입을 맞추고 심지어는 혀를 내어 핥기까지 했다.
“기다려.”
손등에서 느껴지는 미끄덩한 혀 놀림에 소름이 쫙 돋은 하진이 반말로 단호하게 멈춰 세우자 불만스럽게 눈을 치켜뜨고 지켜보던 백자안이 한승호의 뒷덜미를 잡아끌었다.
“승호야, 개새끼도 아니고 형이 그만하라잖아.”
“넌 놓기나 해, 이 새끼야.”
백자안에게 일갈한 한승호가 백팔십도 다른 태도로 하진에게 물었다.
“왜. 이제 와서 안 하면 안 되냐고 해봤자 안 봐줄 거야.”
‘그래. 그래 보인다.’
하진은 한숨을 쉬었다.
“화장실 말고 다른 곳으로, 윽-”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한승호가 하진을 들고 날랐다. 백자안이 미처 대처하기도 전에 빠르게 움직인 한승호는 제 방에 들어와 침대에 하진을 내려놓았다.
쾅쾅.
“한승호. 문 부수기 전에 열어.”
그 짧은 사이에 문도 잠갔는지 밖에서 백자안이 문을 두드렸지만, 한승호는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반쯤 드러누운 하진의 위에 올라탔다.
이미 백자안을 통해 이 자세의 위험함을 배운 하진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키스만, 키스만 하는 겁니다. 그 이상 건들면 한승호 씨 더는 안 봅니다.”
“칫. 알았어.”
역시나 노리는 게 따로 있었는지 한승호가 작게 혀를 찼다. 하진은 앞으로 에스퍼들은 적어도 이쪽 방면에선 믿어선 안 되겠다고 머릿속에 새겨두었다.
“그럼 이제 입 벌려.”
그렇게 말하면서 기다리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아랫입술을 눌러 벌린 한승호가 혀부터 밀어 넣었다.
입술이 닿기도 전에 혀부터 닿는 감각에 하진이 몸을 움찔 떨었다.
하진은 혀가 들어오는 느낌이 두 번째라고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하마터면 민망한 신음까지 흘릴 뻔했으나 조금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밀어붙이는 한승호 덕에 신음조차도 새어 나가지 못했다.
급박하게 입안을 유영하며 하진의 혀를 제멋대로 가지고 놀던 한승호는 이내 급한 불을 껐다는 듯 슬쩍 입술을 떼어내 하진의 숨통을 트여주었다.
“흐읍, 하아…….”
이제 고작 키스가 두 번째인 하진은 코로 숨을 쉬어야 하는 것도 몰랐다. 알았더라도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탓에 숨쉬기 벅찼을 것이다.
어떻게 살기 위해 틈틈이 숨을 쉬긴 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 탓에 한승호의 입술이 떨어진 지금, 숨을 몰아쉬는 하진의 가슴팍이 빠르게 오르내렸다.
“이제 다 쉬었지?”
“끝이 아니었……!”
어깨를 밀어낼 새도 없이 다시 한승호가 다가왔다. 그나마 다시 이어진 키스는 아까와는 달리 부드러웠다. 영화에서 보던 연인의 키스가 떠오를 정도로.
입술로 입술을 물기도 하고 급박하기만 하던 아까와는 달리 부드럽게 얽혀드는 혀는 새로운 자극이었다.
“흐읏…….”
그게 문제였다. 백자안과의 키스도 분명 자극적이었다. 숨 쉴 틈이 없어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지금의 하진은 숨까지 고른 덕에 너무도 제정신이었다. 그러니까 저 자극이 온전히 다가왔다는 뜻이었다.
하진을 온몸으로 자극하던 백자안과 달리 한승호는 오로지 키스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하진 또한 온전히 키스가 주는 자극에 몸을 떨어야 했다.
‘젠장. 요즘 애들은 다 이런가.’
경험이 없으니 자신이 예민한 건지 이들이 잘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
잠깐 다른 생각에 잠기기 무섭게 한승호가 아프지 않게 혀를 물어왔다.
살짝 누른 정도에 불과하기에 아프지는 않았으나 오히려 그게 자극이 되어 하진은 저도 모르게 신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러자 하진의 모든 것을 눈에 담겠다는 듯 가늘게 눈을 뜨고 있던 한승호의 미간이 구겨지더니 부드럽기만 하던 키스가 다시 격해지기 시작했다.
“흐읏, 응……!”
하진을 눕힌 채 키스를 이어가던 한승호는 입술을 떼지 않은 채 하진을 번쩍 안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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