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19화
이수연은 지금 인생 최대로 흥분한 상태였다. 그야 누구라도 S급 에스퍼의 폭주 수치가 순식간에 0으로 치닫는 걸 실시간으로 보았더라면 이런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이건 정말 대단한 거예요! 대단하다는 말로도 모자랄 정도로요!”
“그렇군요.”
“S급 가이드의 능력이 이 정도군요. A급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예요! 에스퍼도 A급과 S급 차이가 이렇지는 않을 거라고요!”
‘그렇겠죠. 저는 측정 불가라고 떴으니까요.’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어 하진은 그저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교육 담당인 줄 알았던 그녀가 사실은 연구실 소속의 과장 직급이었다니.
이렇게 흥분하는 게 이해가 갔다.
‘송 박사라는 사람이랑 똑같네. 사제지간인가?’
하진은 흥분하거나 제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사람을 대하는 것에 퍽 익숙했다.
멀리 갈 것 없이 회식만 했다 하면 술에 취한 상사들이 그러곤 했다. 했던 말 또 하고, 하진과는 상관도 없는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거나 말이다.
이수연과 그들을 비교하는 건 그녀에게 미안한 일이긴 했으나 그 말을 다 정성스레 반응해 주기엔 하진은 이미 송 박사라는 인물을 한차례 겪은 후였다.
“하진 형이 피곤해하시는 거 같은데 이만 가봐도 될까요?”
“네? 아직 묻고 싶은 게 많은데…….”
백자안이 용케 하진이 지루해하는 걸 눈치채고 그를 데려가려 하자 이수연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어떻게든 그를 붙들어보려 했다.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면 되잖아요. 송 박사 그 할아버지한테 물어봐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시도는 조금 전 일로 앙금이 남아 있던 이도윤에 의해 불발되고 말았다.
해맑게 웃던 어린 청년은 어디 가고 싸늘하게 생긴 새침한 청년이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미 많은 에스퍼를 가이딩한 걸로 아는데 아직 물을 게 남았습니까?”
거기에 차진우까지 말을 얹자 이수연은 하진을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럼 다음 수업 때 봬요. 다음 수업은 사흘 후에 있을 거예요.”
“예.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네. 이하진 가이드도 오늘 고생하셨어요.”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한승호와 이도윤이 달라붙어 하진을 건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들이 그랬듯 김수혁 또한 한참 잠들어 있을 게 분명하지만, 괜히 쫓아와 귀찮게 구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건물 밖을 나와서도 멈추지 않고 곧바로 차에 태워진 하진은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 얼떨떨했다.
“뭔 교육을 에스퍼를 데리고 해? 미쳤나.”
“대장, 그냥 하진이 형 교육은 와서 하라고 하면 안 돼요? 베타 팀 팀장 저 꼴 나서 소문나는 건 순식간일 텐데.”
한승호와 이도윤이 투덜거리고 백자안은 하진의 옆에 꼭 붙어 있었다. 말은 안 했지만, 그도 역시나 그들의 말에 찬성하는 쪽인 듯했다.
물론 차진우라고 해서 왜 안 그러고 싶겠는가.
그도 하진의 곁에 다른 에스퍼가 늘어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안 되겠습니다. 저는 딱히 특별대우로 주목받고 싶지 않거든요.”
이미 시선이란 시선은 다 몰렸는데 무슨 소릴 하는 거지?
상대가 하진만 아니었다면 이미 입 밖에 튀어나왔을 말이었다. 그러나 하진은 꿋꿋했다.
“그러니 그런 부탁은 하지 마세요.”
좀처럼 남에게 이래라저래라 참견하는 법이 없는 하진이 단호하게 못을 박았다. 사실 하진이라고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겠는가. 이수연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에스퍼들이 왜 이러는지도 이제는 알았다.
이수연과의 수업을 통해 가이딩을 받은 에스퍼는 매칭률이 높을수록 제 가이드에게 깊은 애정을 느끼고 집착하는 경향이 짙다는 사실도.
아마 이들은 경쟁자를 늘리는 게 싫은 걸 테지.
그러면 하진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사람의 시선이 몰리는 게 무서워서, 주변에 에스퍼가 늘어난다는 이유로 숙소에만 처박혀 있어야 하는가?
이미 한차례 떠밀리듯 제 삶을 포기했는데 오히려 더 자유롭지 못하다면 굳이 이곳을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끄응…….”
알파 팀은 절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겠는가. 경쟁 에스퍼가 늘어나는 게 죽기보다 싫지만, 하진의 말을 거스를 수 없는 것을.
* * *
“이건 진짜 대단한 발견이라니까요?! 송 박사님이 왜 나한텐 이걸 안 알려주셨지? 무려 S급 에스퍼를 한 번에 재웠다고요! 심지어 매칭률 테스트도 안 했는데!”
“쉿! 쉿! 과장님, 제발 조용히 좀……!”
하진을 안내했던 박현준 대리가 주변을 살피며 그녀의 입을 막았다.
그제야 제가 너무 큰소리로 떠들었다는 걸 자각한 그녀였으나 입을 다문 것도 잠시, 못 참겠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마 아까에 비해 목소리가 작아졌다.
“근데 진짜 대단하네요. 저게 S급이구나. 차원이 다르네요.”
박현준 대리도 그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솔직히 이하진 가이드만 있어도 S급 에스퍼로만 이뤄진 팀은 전부 관리가 가능할지도 모르겠어요.”
“모르는 게 아니라 진짜 가능할걸요? 아무리 낮은 등급부터 시작했다지만, 에스퍼를 여섯이나 가이딩하고도 멀쩡했잖아요. 심지어 김수혁 에스퍼는 수치도 높아서 가이딩이 많이 들어갔을 텐데도 말이에요.”
도란도란 이야기가 이어지는 곳에서 멀지 않은 복도 뒤에서 한 사람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한지우가 하진이라는 이름에 발이 바닥에 붙은 것처럼 꼼짝 않더니 그 자리에서 그들의 대화를 모두 훔쳐 들었다.
‘S급 에스퍼가 모조리 그 인간 차지가 된다고?’
단순히 가능성을 이야기했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한지우에게는 충분한 위협이 되었다.
하진의 존재로 인해 한지우의 입지가 많이 좁아진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나 하진이 아무리 S급이라고 해도 혼자서 협회 내 모든 S급 에스퍼를 감당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아직 자신에게도 기회가 있다고 여겼는데.
단단히 쥐고 있는 줄 알았던 기회를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한지우는 이제는 들을 가치도 없는 잡담이나 나누는 두 사람에게서 조용히 등을 돌렸다.
조금은 급한 걸음걸이와 꽉 쥐어 희게 질린 주먹이 그가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는 거야.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몇 없는 A급 가이드, 그중에서도 가장 가이딩 능력이 뛰어난 한지우였다. 다른 A급은 가이딩조차 하지 못하는 S급을 가이딩할 수 있는 유일한 이가 자신이었다.
협회가 그에게 거는 기대가 얼마나 컸던가.
처음 S급 가이딩에 성공했을 때는 협회장이 직접 그의 노고를 치하했었다. 협회의 그 누구도 한지우를 무시할 수 있는 이가 없었다.
‘그런데 그 새끼가 모든 걸 망쳤어.’
처음 그에 대한 소문을 접했을 땐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 정보의 출처가 협회라는 사실에 한지우는 속이 뒤집혀 결국 토까지 하고 말았었다.
S급 가이드. 그 누구도 저에게 그 단어가 주는 절망이 얼마나 큰지 모를 것이다.
어디로 갈지도 정하지 않고 무작정 걸음을 옮기던 한지우가 순간 멈춰 섰다. 가슴속에 불처럼 솟구치는 분노에 씩씩거리던 그는 결국 광인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아아아악! 씨발! 그 개새끼 때문에! 아악!”
오늘 있었던 일은 빠르게 협회장에게까지 닿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지우의 입지는 점점 좁아질 터.
그렇지 않아도 이하진 때문에 그에게 눈치를 줬던 협회장이다. 이 소식을 들으면 그 태도가 더 달라지면 달라졌지, 절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S급 에스퍼들 또한 굳이 저에게 가이딩받으려 하지 않겠지.
하진이 없었을 때야 한지우의 가이딩이 없으면 아무리 약을 먹어도 폭주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부족하더라도 한지우의 가이딩을 찾았다.
하진이라는 대체재, 아니 제대로 된 약이 생겼으니 한지우는 끈 떨어진 연이나 다름없었다.
“안 돼, 그건 안 돼……! 젠장!”
화를 참지 못한 한지우가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다.
그때 한지우의 손이 벽에 닿기 전 끼어든 손이 있었다.
“어이고, 진정해 친구. 가이드가 벽을 때려봤자 손밖에 더 부서져?”
한지우는 아무도 없었던 공간에 나타난 존재에 화들짝 놀라며 소리가 난 곳에서 멀찍이 떨어졌다.
“너…….”
“어? 우리 초면인데 나 알아?”
“서주안…….”
협회 소속이라면 누구나 아는 얼굴이었다. 만일을 대비해 협회에 소속된 이들은 모두 다른 진영의 주요 인물들의 상세 정보는 의무적으로 외워야 했으니 말이다.
“미친 새끼, 여기가 어디라고 드나들어? 너도 S급 가이드에 관심 있냐?”
한지우는 S급 가이드를 입에 담으며 이를 갈았다. 그러나 살벌하게 노려보는 시선에도 서주안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오히려 고개를 끄덕여댔다.
“당연한 소리를. 협회 소속 S급 에스퍼들도 가이딩에 허덕이는데 우리라고 넉넉하겠어? 우리는 밑에 등급들도 가이드가 없어서 난린데.”
우리는 더 노력해야 하거든. 한지우는 적진 한가운데 있는 사람치고는 여유로운 어투에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하다 하다 반정부 놈까지 하진을 찾아대니 더는 화낼 기력도 없어지는 듯했다. 한지우는 자연스럽게 등을 돌렸다. 하진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그는 가이드였다.
근처에 도와줄 이라고는 보이지도 않는 상황에서 서주안과 대치하고 있어 봤자 좋을 게 없었다.
‘이대로 자연스럽게…….’
그러나 순순히 보내줄 서주안이 아니었다.
“어? 어디 가?”
여유로운 태도가 오히려 더 무서웠다. 언제든 한지우 같은 건 손가락으로도 죽일 수 있는 게 에스퍼니까.
물론 미친 게 아니라면 제 손으로 가이드를 죽일 에스퍼는 없다지만, 불안한 건 불안한 거였다.
‘시발, 이하진인지 그 새끼한테나 갈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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