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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18화 (18/136)

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18화

‘뒤로 넘어갔으면 내가 저 꼴이 됐으려나.’

잠시 소름이 돋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잠들었어……?”

쓰러진 최동혁을 살핀 이수연이 얼떨떨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녀는 머리를 처박고도 새근새근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든 최동혁을 내려다보다가 하진을 올려다보았다.

그 시선이 마치 정말로 네가 한 짓인지를 묻는 것 같아 하진은 슬쩍 시선을 피했다.

“……많이 피곤하셨나 보군요.”

“…….”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유야 모른다고 치고 잠든 최동혁을 다른 곳으로 치워버리고 다른 에스퍼를 불러 실습을 이어 나갔으나…….

쿠웅.

쿵. 쿵. 쿵.

최동혁 이후로 네 명의 에스퍼가 더 쓰러지듯 잠들었다. 하진도 더는 피곤을 핑계 삼을 수도 없었다.

맞은편에서 쏘아지는 따가운 시선을 피하고 있으려니 그녀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이번엔 A급 에스퍼였는데 또 잠들었네요.”

“크흠.”

“아무래도 이대로는 안 되겠어요. S급 에스퍼를 불러야겠어요.”

알파 팀을 제외하면 처음 보는 S급 에스퍼였다. 이젠 쓰러진, 아니 잠든 에스퍼가 들려 나가고 새로 들어오는 게 퍽 익숙해졌다.

“실례하겠습니다. 알파 팀입니다.”

새로운 얼굴이 들어올 거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놀랍게도 익숙한 얼굴들이 강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알파 팀이라는 말에 하진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교육장 내부에 들어온 건 처음인지 신기한 듯 여기저기 구경하던 이들이 하진과 눈이 마주치자 쪼르르 달려왔다.

“다른 놈들한테 가이딩했다며! 형!”

“하진 형한테 소리 지르지 마. 다른 에스퍼를 부른 사람한테 뭐라고 해야지.”

한승호의 호통에서 하진을 보호하듯 선 백자안이 서늘한 눈으로 이수연을 노려보았다.

“나도 아직 제대로 못 받아본 가이딩을 머저리 새끼들이 먼저 받았다 이거지?”

이도윤은 형들에게 순서를 빼앗긴 게 아직도 억울한지 이를 갈았다.

‘개판이네.’

한평생 이렇게 주위가 소란스러운 적이 없었는데 가이드임을 밝힌 이후로는 조용한 순간이 없는 듯했다.

“알파 팀, 지금 바로 하진 씨에게서 세 걸음 떨어진다.”

“왜!”

그렇지 않아도 교육이 길어져서 몸이 달아 있었는데 눈앞에 두고도 떨어지라니.

특히나 한승호가 눈을 부라렸으나 차진우의 지긋한 눈빛에 결국 입을 비죽 내밀면서도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이제 고작 이십 대 중반, 그리고 막내는 이십 대 초반이었다. 그들은 미성년자 혹은 이제 막 성인이 되었을 때 처음 만나 한 팀이 되었다.

그런 그들에게 차진우는 엄한 큰아버지 혹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무서운 장남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진은 겨우 조용해진 주변에 고개를 끄덕여 차진우에게 감사를 표했다.

“하진 씨의 교육이 빨리 끝나기를 바란다면 조용히 하고 협조하도록.”

“눼에…….”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한 차진우가 이수연에게 시선을 던졌다.

“아! 그럼 순서대로 이하진 가이드 앞에 앉아 주시겠어요?”

“나! 이번엔 내가 먼저야.”

이도윤이 기다렸다는 듯 잽싸게 하진의 앞에 앉았다. 차 안에서 순서를 빼앗겼던 게 그렇게도 한이 남았는가 보다.

하진은 너른 등에 손을 올리고 가이딩하려 했다.

“잠깐만요!”

그때 무언가를 보던 이수연이 손을 들어 막았다.

“아, 왜요!”

드디어 쟁취한 기회를 또 누군가가 막으려 하자 이도윤이 와락 성을 냈다. 그러나 S급 에스퍼 앞에서도 이수연은 기죽지 않고 제 할 말을 했다.

“이도윤 에스퍼는 안 되겠어요.”

그 말에 이도윤은 제대로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고 억울함에 몸을 뒤틀다가 소리치듯 말했다.

“왜요?! 난 왜 안 되는데?”

“폭주 수치가 낮잖아요. 이러면 제대로 된 결과가 안 나온다고요. 폭주 수치가 어느 정도 높은 에스퍼여야 해요. 지금 알파 팀은 수치가 전부 안정적이니 다른 에스퍼를 부를게요.”

예전에는 폭주 수치가 높다고 사람을 폭탄 취급해대더니 이제는 폭주 수치가 낮아서 안 된다고 하니 이도윤은 억울하다 못해 허탈해졌다.

하진은 축 처진 이도윤의 어깨를 보다가 등을 두드려 그의 시선을 돌렸다.

“……왜요.”

하진에게는 어린애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이도윤이 최선을 다해 입술을 집어넣었으나 그게 참 맘처럼 쉽지 않았다.

미처 다 집어넣지 못한 입술이 튀어나온 모습을 보며 하진이 제 옆자리를 두드렸다.

“다른 사람이 올 때까진 시간이 있으니까요.”

한 손을 내밀며 하는 말에 이도윤이 쏜살같이 자리를 옮겨 손을 꼭 잡았다.

“헤헤.”

‘그렇게도 좋을까.’

까칠하게 생긴 얼굴이 확 풀어지며 해맑게 웃으니 참 보기가 좋았다. 하진이 참지 못하고 픽 웃어버리자 그 웃음이 더 해맑아졌다. 하진은 잡은 손을 통해 가이딩을 흘려보냈다.

이번엔 절대 재우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약하게 흘려보내는데 어쩐지 이도윤은 멀쩡해 보였다. 그러니까 굳이 가이딩을 약하게 조절하지 않아도 될 정도 같았다.

실제로 약하게 조절하던 가이딩을 평소와 같이 불어넣었으나 오히려 더 편안해 보일 뿐, 딱히 잠들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그때 차 안에서 두 사람을 가이딩할 때도 재우지 않았었지. 대체 무슨 차이지?’

“이수연 과장님. S급 에스퍼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하진이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새로운 S급 에스퍼가 도착했다.

하진의 고개가 먼저 돌아가기도 전에 이도윤을 비롯한 알파 팀이 서늘한 얼굴로 문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 또한 강의실에 있는 알파 팀을 발견하고는 인상을 구겼다.

하진은 현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팀이 다르더라도 같은 에스퍼가 아닌가. 왜 이렇게 서로 날을 세우는 걸까.

“가이드만 있는 게 아니었나? 알파 팀 얼굴까지 보게 될 줄이야.”

“알파 팀 가이드인데 그 곁에 알파 팀이 있는 건 당연하겠지. 김수혁 팀장.”

“언제까지 알파 팀의 가이드로 남아 있을 줄 알고.”

김수혁이 으르렁거리는 뱉은 말에 차진우는 평소와 같은 얼굴로 대답했다.

“적어도 베타 팀이 알파 팀이 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되겠지.”

자존심을 긁는 말에 울컥했으나 교육장 내에서 소란을 피워 봤자 좋을 게 없었다. 혀를 찬 김수혁이 표정을 바꾸고 하진에게 다가왔다.

“얘기 들었습니다. S급 가이드시라고요. 김수혁이라고 합니다. 베타 팀 팀장을 맡고 있고 S급 에스퍼죠.”

“이하진입니다.”

내민 손을 잡고 악수하자 김수혁의 얼굴에 흥미가 생겨났다가 거짓말같이 사라졌다.

‘가이딩 차단이 되는 건가? 대단하군.’

맨살과 닿았음에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손을 한 번 쥐었다 편 김수혁이 수연의 안내대로 하진의 앞에 등을 보이고 앉았다.

무방비해진 등 뒤에 알파 팀이 있다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티를 냈다간 겁이라도 먹었냐는 말이 조롱처럼 쏟아질 것이다.

‘그 꼴은 못 보지.’

그렇지 않아도 실적에서도 능력에서도 미세한 차이로 밀리는 베타 팀이었다.

그 팀의 팀장인 김수혁이 알파 팀에게 그리 좋은 감정이 있을 리 없었다. 실제로 등에 칼이 꽂힌다고 해도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여서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우월감을 심어줄 순 없었다.

“김수혁 에스퍼 폭주 수치 아슬아슬하네요. 그럼 이하진 가이드, 가이딩 부탁드려요. 이번엔 최대한 천천히 부탁드릴게요.”

“예.”

하진은 김수혁의 등에 손을 얹고 가이딩했다. 몸속의 파장을 타고 움직이는 가이딩을 느낀 김수혁이 크게 몸을 떨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 기분이 어떨지 충분히 공감하는 알파 팀이 만일을 대비해 몸을 긴장시켰으나 다행히 김수혁은 얌전하기만 했다.

‘쯧. 또 쓸데없는 날벌레가 붙겠군.’

하진이 S급 이상이기에 구원받을 수 있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하진이 S급이 아니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더라면 그들과의 만남도 성사되지 않았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모순적으로 굴었다.

특히나 폭주 상태에서 하진의 가이딩을 받았던 백자안은 숫제 김수혁을 죽일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진에게 영향이 갈 것을 걱정해 살기라고는 내지 않으면서 눈빛만은 한없이 차갑고 사나웠다.

“백자안.”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무리 살기가 없다고 해도 S급이나 되는 에스퍼가 누구 하나 죽일 것처럼 굴고 있는데 그 분위기에 멀쩡할 민간인은 없었다.

백자안의 눈빛에 하진을 마주 보고 선 이수연의 안색이 안 좋아지자 차진우가 그를 만류했다.

노려보지 말라는 뜻이었는데 그럴 자신은 없는지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살 것 같은지 이수연의 안색이 한결 편해졌다.

차진우는 이로써 에스퍼의 출입을 더욱 철저히 막아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고, 아직은 미래의 일이지만 그 짐작은 들어맞았다.

반면 하진은 제 등 뒤에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가이딩에 집중하고 있었다. S급은 확실히 다른지 다른 이들과는 달리 쉽게 잠들지 않았다.

다섯 명이나 거치면서 하진이 익숙해진 것도 있지만, 확실히 아까 이도윤을 가이딩할 때도 그렇고 S급은 달랐다.

등급에 그렇게 큰 차이가 있는 건가 싶었는데 이렇게 몸소 체험하게 될 줄은 몰랐다.

‘연습 상대로는 괜찮네.’

만약 한 번만 더 잠들었다면 그냥 포기하려고 했는데 다행이었다. 그때였다.

“아직 멀었어?”

“읏.”

훅 다가온 한승호가 옆에서 불쑥 얼굴을 내미는데 그 순간 귓가에 스친 숨결에 그만 깜짝 놀라 가이딩이 왈칵 들어가고 말았다.

마치 폭주한 백자안을 재우려고 작정하고 가이딩했을 때처럼 말이다.

쿵.

“아.”

나직한 신음에 한승호가 놀라기도 전에 김수혁의 몸이 앞으로 넘어가더니 그대로 최동혁과 마찬가지로 바닥에 처박혔다.

쿵 하고 찍힌 바닥이 쩌적쩌적 갈라졌다.

“어, 어어? 어어어?”

그러나 실시간으로 수치 변화를 살피던 이수연은 그 모습에 놀랄 새가 없었다. 수치 측정기에 박힌 눈이 끝도 모르고 크기를 키웠다.

하진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음성에 차라리 눈을 감았다.

‘뭐 하러 그 고생을 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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