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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17화 (17/136)

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17화

안내를 받아 도착한 교육실 안으로 들어서자 강사로 보이는 이가 하진을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앞으로 이하진 가이드의 교육을 담당하게 된 이수연이에요.”

“이하진입니다. 제가 좀 늦었나 보군요.”

“하하, 아니에요. 저야 수업 준비 때문에 일찍 온 거고 딱 맞춰 오셨어요.”

분위기를 풀어줄 간단한 대화를 주고받은 하진은 앞자리에 앉았다. 하진이 수업받을 준비를 마치자 이수연 또한 잡담을 멈추고 수업을 시작했다.

“일단 이하진 가이드가 어느 정도 알고 계시는지 파악해야겠는데…… 흠. 그런데 협회장님께선 이하진 가이드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전제하에 수업을 준비하라고 하셨단 말이죠?”

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모르는 건 아니지만, 어쭙잖게 알고 있다고 할 바에야 그냥 아예 모르는 상태로 수업을 듣는 게 나았다.

“네. 협회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수연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른다고 순순히 긍정하는 하진을 잠시 신기한 듯 봤다.

“아, 죄송해요. 그럼 바로 수업 시작할까요?”

하진에게 준비해온 수업 자료를 건넨 이수연이 수업을 시작했다.

“에스퍼와 가이드가 언제 생겨났는지에 대해선 궁금하지 않으실 테고, 협회장님께서도 최대한 빠르게 실전에 투입할 수 있게 하라고 하셨으니 이하진 가이드에게는 실제로 가이드에게 필요한 수업을 진행해 드릴게요.”

그 말대로 이수연은 에스퍼는 뭐고 가이드는 뭐고 하는 진부한 내용 대신 가이드에게 필요한 지식을 전수해 주었다.

강압적으로 구는 에스퍼를 대처하는 법이라든가, 드문 경우지만 던전에 함께 들어가거나 위험에 처했을 때의 가이드라인이라든가 말이다.

생각보다 쓸모가 많아 보이는 지식과 의욕적인 선생의 태도에 하진 또한 눈을 맞추며 집중력을 보였다.

생각보다 많은 양의 지식이 쏟아졌지만, 다행히 새로운 수칙을 익히는 정도의 수준이라 하진이 머리를 싸매고 익혀야 하는 지식은 없었다.

게다가 이수연의 과감한 선택에 따라 실생활에선 그다지 쓸모없는 정보들을 제외하고 나니 첫 번째 수업에서 나갈 진도를 생각보다 빠르게 끝나버렸다.

이수연은 잠시 무언가 고민하는 듯 턱을 매만지더니 하진에게 물었다.

“첫 수업이 생각보다 빨리 끝났는데 이대로 끝낼까요, 아니면 다음 진도를 나갈까요?”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수업을 빨리 끝내는 편이 좋다고 여기서 수업을 끝냈을 것이나 하진은 평범을 추구하면서도 남들과는 좀 다른 사람이었다.

“선생님만 괜찮으시다면 계속하시죠. 저는 작은 거라도 빨리 알았으면 해서요.”

“세상 모든 가이드들이 이하진 가이드 같았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들은 강의 시간에도 집중 못 하면서 어떻게든 빨리 끝내고 싶어서 안달이거든요.”

보통과는 다르다는 말에 습관적으로 반응해 몸을 움찔 떨었으나 그렇다고 말을 바꿀 생각은 없었다.

이제부턴 하진도 많은 게 바뀌어야 하니 평범한 사회인에 대한 집착도 어느 정도는 버려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애초에 등급부터가 평범하지 않기도 했고.

“자, 그럼. 수업을 계속하기 전에 십 분 정도 쉬는 시간을 가지죠.”

잠깐 쉬는 정도야 하진도 환영이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잠시 물 좀 마시고 오겠습니다.”

“다녀오세요.”

정수기를 찾은 하진은 냉수를 넘기며 가만히 있느라 뻐근해진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풀어주었다.

‘확실히 나이는 못 속이겠군.’

절대 늙었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지만 이십 대 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달랐다. 나름대로 건강 관리를 이어왔으나 고작 몇 시간 집중한 걸로 어깨와 목이 굳어버렸다.

굳은 몸을 풀어주는 데에 집중한 하진에게 누군가 다가갔다.

“이봐요, 아저씨.”

뒤를 돌아보니 아까 입구에서 마주쳤던 이들 중 가장 열심히 하진을 노려보던 이였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주위에 따까리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나 보다.

“무슨 일이십니까?”

한지우는 멀리서 볼 때는 미처 몰랐던 하진의 냉한 인상에 잠시 멈칫했다. 이내 그 사실마저도 자존심이 상한 듯 일부러 하진에게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아저씨가 처음이라 잘 모르나 본데 어딜 가나 그곳만의 규칙이 있거든요? 등급 높다고 잘난 체하지 말고 규칙을 따르시라고요.”

보통의 사람이라면 나이가 몇이건 새로운 장소에 가면 움츠러드는 경향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게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런 방식으로 새로 들어오는 가이드들의 기강을 잡아 왔던 한지우는 하진도 남들과 다를 것 없는 반응을 보일 거라 생각했다.

“그 규칙이 뭡니까?”

“뭐?”

그러나 하진은 조금 달랐다. 아니, 다르다기보단 좀 더 똑똑하다고 봐야 했다. 하진이 비록 아는 게 없어 지금 이렇게 기본적인 수업을 듣고 있지만,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모르는 건 정보일 뿐, 자신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게 아니더라도 새삼 이 나이 먹고 딱 봐도 저보다 열 살은 더 어려 보이는 젊은 친구가 하는 같잖은 서열질이 무서울 리가 없었다.

실제로 주먹질이 날아오는 것도 아니고 저들끼리 동네 대장 노릇을 하며 살아온 철부지가 뭐가 무섭겠나.

“그 규칙이 뭐냐고 물었습니다만.”

한지우의 입이 꾹 다물렸다.

그가 말한 규칙은 암묵적으로 정해진 그들만의 놀이인 셈이었다. A급, 그리고 같은 A급 중에서도 능력이 가장 좋은 한지우의 눈치를 보고 알아서 길 것.

아무리 철이 없다고 해도 그걸 제 입으로 설명할 만큼 철이 없지는 않았다.

여태까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조금만 압박하면 알아서들 눈치를 봤는데 그는 하진이 눈치는커녕 눈도 깜짝하지 않으니 괜히 모욕을 당한 기분을 느꼈다.

게다가 하진이 직접 말하지는 않았으나 이미 S급 가이드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어떻게 제 입으로 등급에 따라 눈치 보고 살라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한지우부터 하진의 눈치를 봐야 하는데 말이다.

한지우는 전날 협회장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하진 가이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인재일세. 절대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말게. 여태까지는 눈감아 줬지만, 이하진만큼은 절대 안 되네.’

‘시발……. 내가 숙여야 한다고? 저딴 아무것도 모르는 머저리한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다. 등급이 다를 뿐, 한지우 또한 S급 에스퍼의 가이딩이 가능했다. 그런 자신이 하진이 S급 가이드라는 이유로 뒷전이 되어야 하냔 말이다.

꽉 문 치아에서 으드득하고 이가 갈리는 소리가 울렸다.

반면에 하진은 그냥 규칙이 뭔지 물었을 뿐인데 모욕을 당한 것처럼 노려보며 꽉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떠는 한지우를 보며 제가 뭘 잘못했나 곰곰이 생각했다.

‘하긴, 제 밥그릇을 뺏은 놈인데 곱게 보일 리도 없겠지.’

어떻게 보면 반 정도는 정답이었다. 그게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한지우는 이제 하진을 무작정 싫어하게 됐으니까.

하진은 아무런 대답도 없는 한지우를 기다려 주다가 쉬는 시간이 다 지났음을 알고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수업에 들어가야 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깔끔하기 그지없는 인사였으나 원래 한번 미운털이 박히면 그 사람의 모든 게 미워 보이기 마련이었다.

한지우는 자신을 무시하고 지나치는 하진을 불러 세우지도 못하고 그저 그의 뒤를 노려보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산산이 부서진 자존심이 발밑에 뒹굴었다.

‘두고 봐……! 내가 그 잘난 코를 짓눌러 줄 테니까.’

껍데기뿐인 복수를 되새기며 한지우가 성난 걸음걸이로 자리를 떠났다.

“오셨네요. 그럼 수업 다시 시작할까요?”

“네.”

하진의 기억 속에선 어느새 한지우의 형상이 흐릿하게 사라졌다.

“그럼 이번에 알려드릴 건 가이딩하는 방법이에요.”

하진이 고개를 기울였다. 가이딩하는 방식이 따로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수연의 설명이 이어지고 있었다. 질문은 나중으로 미뤄두고 하진은 우선 설명을 들었다.

“가이드에게는 저마다 다른 가이딩 총량이 존재하는데 그래서 무작정 가이딩을 퍼부었다간 금방 한계에 도달하고 말죠. 그래서 협회에선 자신이 가진 총량 내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볼 수 있는 가이딩 방법을 연구했죠. 지금부터 이하진 가이드도 배우게 될 거예요.”

‘지금이라도 그냥 말할까.’

하진은 던전에서 알파 팀을 가이딩할 때도 힘을 아끼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가이딩을 불어넣는 법을 알았기에 그저 재우기 위해 이수연의 표현대로 무작정 퍼부었다.

그렇게 네 명을 잠재웠으나 하진은 지치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힘들지도 않았다. 몬스터를 피해 뛰어다녀서 육체의 피로를 느낄지언정 가이딩으로 인한 피로는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이수연의 설명을 들으니 모든 가이드가 다 같은 게 아닌 듯했다.

‘일단 시키는 대로 하자.’

괜히 혀를 가볍게 놀려서 소란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남들 하는 만큼만. 딱 그만큼만 할 것이다.

“우선 에스퍼의 파장이 어떻게 퍼져 있는지 익혀볼까요?”

조교가 될 에스퍼를 불렀다는 이수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열리고 남자 한 명이 들어왔다.

“자, 최동혁 에스퍼는 돌아앉아 주시고, 이하진 가이드는 최동혁 에스퍼의 등에 손을 대고 가이딩을 흘려보내 보세요. 그냥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가이딩이 에스퍼의 파장을 타고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하진은 최동혁의 등에 손을 올려 최대한 약하게 가이딩을 불어넣었다. 저번처럼 했다가 또 재우기라도 하면 큰일이었으니까.

그 때문에 하진의 미간이 처음으로 구겨지자 힘들어서 그런 거라 오해한 이수연이 옆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힘들면 언제든 멈춰도 되니까 일단은 파장이 어떻게 퍼져 있는지를 대강이라도 느껴보세요.”

에스퍼의 파장이 어떻게 신체에 퍼져 있는지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건 가이딩을 불어넣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그보다 힘든 건 가이딩을 약하게 내보내는 것이었다.

하진은 최대한 약하게 가이딩을 움직여 에스퍼의 신체 내부를 둘렀다.

협회장의 욕심을 봐선 알파 팀에 하진을 묶어 두었다고 해도 다른 S급 에스퍼들의 가이딩을 맡기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걸 고려하고 연봉을 높게 책정한 거지만 말이다.

그러니 가이딩을 조절하는 법을 익혀야 하는데…….

쿵.

“최동혁 에스퍼?!”

가이딩을 받던 최동혁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대로 머리부터 떨어졌는데 에스퍼는 에스퍼인 건지 바닥이 거미줄처럼 쫙쫙 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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