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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13화 (13/136)

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13화

“이게 왜 결과가 안 나오는 거지?”

“문제가 있나요?”

“원래 검사는 10초면 끝납니다. 그런데 왜 이러는 건지…….”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던 송 박사가 중얼거렸다.

“가이드가 아닐 때만 결과가 안 나오는데 이상하네…….”

딱히 그를 겨냥한 말이 아니었으나 하진은 그 말을 듣자 아차 싶었다.

‘가이딩을 했어야 했는데.’

하진은 작게 입안을 깨물었다. 낭패였다.

학교에서 시행하는 검사에서는 가이드라는 사실을 들키면 안 되었기에 가이딩을 차단하는 버릇을 들였던 게 이런 실수로 돌아왔다.

처음 가이딩을 차단한 것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의무적으로 시행하는 검사에서였다. 검사를 앞두고 여덟 살의 하진은 어떻게든 검사를 피하고자 노력했었다.

그러나 그 어린 나이에 정부가 시행하는 검사를 피할 방도는 없었고, 결국 하진은 오늘처럼 측정기 앞에 서야 했다.

그때 하진은 가이딩을 숨기고 싶다고 강하게 염원했고, 그 염원이 통한 것인지 하진은 검사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침착하자. 아직 들킨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가이딩하면 이상하게 여길 게 분명했다. 하진은 태연함을 유지하며 송 박사에게 물었다.

“기계가 잠시 오작동을 일으킨 게 아닐까요?”

“그럴 리가 없는데……. 으음, 잠시만 실례합니다.”

송 박사는 하진이 잠시 뒤로 물러나자 자리에 앉아 기계의 여기저기를 만지기 시작했다.

“스읍, 미안합니다. 원래 이런 일이 잘 없는데……. 다시 해보시죠.”

고개를 끄덕인 하진이 이번엔 가이딩 차단하지 않은 채 기계를 잡았다. 그러자 조금 전까진 잠잠하기만 하던 기계가 제대로 돌아가며 가이딩을 측정하기 시작했다.

삐. 삐. 삐!

“오오……!”

“역시 기계에 잠시 문제가 있었나 봅니다.”

그제야 제대로 작동되는 측정기에 송 박사가 멋쩍음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측정을 마친 기계가 결과를 프린팅하기 시작하자 그의 신경은 온통 그곳으로 쏠렸다.

프린팅이 끝나기 무섭게 송 박사의 손이 재빠르게 종이를 낚아챘다. 그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빠르게 눈을 굴려 종이를 읽었다.

“흐억! 아, 아니, 이건!”

좀처럼 놀라는 일 없는 송 박사가 잔뜩 흥분해선 소리까지 지르자 밖에서 기다리던 에스퍼들이 더는 참지 못하고 뛰어 들어갔다.

“아니?! 험험.”

얼결에 선수를 빼앗긴 협회장 또한 어쩔 수 없다는 듯 따라 들어갔다. 사실 그도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송 박사의 열띤 반응이 그만큼 호기심을 불어넣었다. 어쩌면 한국을 넘어 전 세계 최초가 될 S급 가이드에게 대체 무슨 일이 생겼단 말인가.

헐레벌떡 무거운 몸을 움직여 뛰어간 협회장이 송 박사를 재촉했다.

“이보게, 송 박사. 대체 무슨 일인가. 왜 그렇게 놀란 건가.”

그러나 송 박사는 협회장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하진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아! 이 사람 참! 어떻게 된 일이냐니까!”

결국 채신머리없이 송 박사를 재촉하고 나서야 그가 드디어 협회장을 돌아보았다.

“협회장님! 이걸 보십시오!”

협회장에게 결과 종이를 넘긴 송 박사는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온 세상 사람들이 들으라는 듯 떠들어댔다.

“등급 측정 불가라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S급이 떴다 해도 놀라울 판에 등급 측정 불가라니!”

희열과 놀람으로 가득한 눈동자는 마치 세기의 발견을 눈앞에 둔 학자의 눈빛 같았다.

“이하진 씨!”

“네.”

그 세기의 발견이 본인인데도 하진은 태연히 대답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송 박사는 지금 제가 눈으로 확인한 결과가 사실인지 믿어지지 않았다.

송 박사는 하진을 불러놓고도 아무 말도 못 한 채 종이와 하진만 번갈아 보기만 했다.

호들갑스러운 반응에도 하진은 덤덤했다. S급이든 그 이상이든 자신의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친, 그게 가능해……?”

지켜보던 이도윤이 저도 모르게 욕을 뱉었으나 지적하는 이는 없었다. 이건 욕이 나올 정도로 놀라운 일이 맞았다.

등급 측정 불가.

오류나 착오로는 뜰 수 없는 결과였다. 가이드가 아닐 경우에 아예 기계는 작동하지 않는다. 그런데 등급 측정 불가라니. 역사적으로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결과였다.

S급조차도 뛰어넘은 가이드. 현 과학 기술로는 측정이 불가능한 가이드라는 뜻이었다.

협회장의 눈이 탐욕으로 번뜩이던 반면, 에스퍼들은 잠시 흥분했다가도 금방 침잠해졌다.

이득을 좇아야 하는 협회장과 달리 가이드 그 자체에 목을 매는 에스퍼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S급만 되었어도 충분했을 것이다. 아니, S급만으로도 이미 차고 넘쳤다. 그런데 등급 측정 불가라니.

그렇지 않아도 불필요한 주목을 끌고 있는 하진이 더욱 위험해질 수 있다는 뜻이지 않나.

“등급 측정 불가라니. 무슨 뜻이죠?”

얌전히 상황을 지켜보던 하진이 입을 열었다.

차를 타고 오면서 들었던 이야기로는 등급은 F급부터 S급까지밖에 없다고 들었는데 ‘등급 측정 불가’는 뭐란 말인가.

하진을 제외한 이들이 놀람을 감추지 못하는 걸 봐선 뭔가 특별한 거 같긴 한데 정확한 설명이 필요했다.

마침 검사 결과지를 들고 있던 협회장이 대답했다.

“아, 그건…….”

잠깐. 이걸 이대로 알려줘도 되나?

협회장은 잠시 불현듯 솟아난 욕심에 말끝을 흐렸다.

혹시라도 하진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제 몸값에 간을 보려고 하거나 협회장인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려 들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든 탓이다.

‘아니지. 차라리 그 정도면 다행이지. 다른 나라로 망명하려 들면…….’

그러나 협회장이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새로운 발견에 잔뜩 흥분한 송 박사가 하진의 질문에 열변을 토해냈다.

“말 그대로! 이하진 씨의 가이딩은 현 과학 기술로는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뜻이죠!”

‘이 멍청한……!’

협회장은 아직 하진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정하지 못했는데 모든 걸 털어놓은 송 박사의 행동에 소리를 지를 뻔했다.

할 수만 있었다면 송 박사의 머리를 때려서라도 그 입을 막고 싶었으나 뒤에서 에스퍼들이 입을 다물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 이제는 이하진의 에스퍼가 된 S급들 말이다.

‘망할, 에스퍼들은 두고 왔어야 했는데.’

송 박사만 있었다면 어떻게든 하진을 적당히 속여먹을 수 있었겠으나 에스퍼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속이기는커녕 시도도 할 수 없게 되었다.

협회장과 에스퍼 간의 지위만 놓고 따진다면 자신이 우위에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협회장이 직위로 찍어 누를 수 있는 이들이 아니었다.

B급만 되어도 인간 같지 않은 힘을 보이는데 그 위로 A급과 S급이 도대체 몇인가.

협회장이 그들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것도 협회가 가이드를 제공하기 때문이었다.

어릴 때 데려온 가이드들을 키우다시피 한 게 협회이니 가이드들이 아무리 안하무인이어도 오랜 시간 받아온 교육에 따라 협회의 명령은 꼬박꼬박 따랐을 것이었다.

그런 가이드에게 목줄을 건네준 에스퍼들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진은 좀 달랐다. 머리가 굵어지다 못해 사회생활에 잔뼈마저 굵어진 서른둘이라는 나이에 협회에 온 데다가 그 등급마저도 측정 불가다.

그라면 본인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금방 알아챌 게 분명했다.

협회장은 곧장 생각을 바꾸었다.

‘그래. 어차피 속이는 건 오래 가지도 못했을 거고, 결과마저 좋지 않았을 거다.’

괜히 자신을 속였다는 걸 알게 되기라도 하면 그땐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다. 협회장은 등급 측정 불가에 대한 설명을 듣는 하진에게 시선을 던졌다.

잠시 욕심에 눈이 멀었지만, 협회장은 인정했다. 이대로라면, 아니 이미 하진의 가치는 협회장인 자신을 뛰어넘었다.

차라리 무슨 일이 있어도 협회에 머무르게 해야 한다.

협회장이 다짐하는 사이에도 송 박사는 연신 입을 털어댔다.

“에스퍼와 가이드가 나타난 이래로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습니다.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도요!”

“대단한 거였군요.”

“말하면 입 아프지! 이하진 가이드만 있다면 현대 과학 기술은 물론이고 학문까지도 한 단계, 아니, 몇 단계고 발전할 수 있어요!”

송 박사는 마치 그 발전을 이루는 게 본인이 될 것처럼 흥분했다.

‘저 미친 영감탱이가!’

잘 대해 주겠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권력 자체를 하진에게 넘겨주겠다는 뜻은 아니었는데 송 박사가 입을 터는 바람에 천천히 하진을 달래려던 계획이 망하게 생겼다.

“오, 그 정도로 대단한가요?”

하진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제게 필요한 정보를 송 박사에게서 털어내고 있었다. 역시나 다른 가이드처럼 만만하게 볼 사람은 아니었다.

협회장은 얼른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망할 송 박사의 입을 막아야 했다.

아니, 막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젠 하진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알랑방귀라도 뀌어야 했다.

“하, 하하. 이하진 가이드 축하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이하진 가이드로 인해 우리나라가 안전해질 것은 물론이고,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겠어요.”

하진은 내민 손을 마주 잡았다.

‘되게 애쓰시네.’

협회장의 예상대로 하진은 송 박사와의 대화를 통해 대강이나마 자신의 가치를 파악했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현 과학 기술을 몇 단계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데 모를 수가 없었다.

그나마 협회장에게 다행이라면 하진은 자신이 어떠한 가이드건 딱히 그걸 이용해서 뭘 해볼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목숨이 노려지는 게 아니었더라면 제 능력이 이 정도임을 알았더라도 숨겼을 거다.

어쨌거나 이왕 오게 된 거 돈이라도 많이 벌어야지 싶었던 거지, 딱히 이 능력을 이용해서 권력을 잡거나 제 한 몸을 희생에서 대단한 결과물을 낼 생각도 없었다.

‘먹고살 정도면 되지.’

“미약한 힘이지만 도움이 될 수 있다니 다행입니다.”

협회장으로서는 무척이나 다행이게도 하진은 협회장이 내민 손을 잡아주었다. 그러나 도장을 찍기 전까지는, 아니 하진 정도 되는 가이드라면 도장을 찍어도 완전히 협회에 소속되었다고 안심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일단은 여기에 정을 붙이게 만들어야겠군.’

멀리 갈 것도 없이 마침 협회장의 뒤에는 에스퍼들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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