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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10화 (10/136)

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10화

저 하고 싶은 대로 살겠다고 남들이 다치거나 죽는 걸 상관도 하지 않는 놈이 평범한 놈일 리 없다.

“……갑시다.”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든 하진이 함께하겠다는 말에 네 사람의 얼굴이 환해졌다. 특히나 손을 잡은 한승호는 결혼을 앞둔 새신랑처럼 싱글벙글했다.

싸가지 없는 줄만 알았는데 제법 귀엽게 웃을 줄도 아네. 무례한 생각임을 알기에 하진은 속으로만 그리 생각했다.

“그럼 바로 협회로 가자!”

“아, 그전에.”

“왜?”

당장이라도 하진을 냅다 안아 들고 달리려던 한승호는 주인의 ‘기다려’ 명령을 들은 강아지처럼 멈춰 섰다.

분명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데 에스퍼들에게서 빨리 가자는 재촉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부장님, 퇴사하겠습니다.”

건물 밖으로 나와 제 부서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간 하진은 곧바로 부장에게 찾아가 말했다.

“으, 응? 하진 씨 그게 무슨, 아니 이 상황에서 할 말인가?!”

넌 무슨 퇴사하겠다는 말을 테러 사태에 하니? 그리 말하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하진은 당당했다.

앞으로 가이드가 되면 한동안은 바빠질 건 불 보듯 뻔했다. 그러니 시간이 있는 지금 말해두는 게 좋았다.

자발적 퇴사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는 게 아쉬운 부분이나 어떻게 보면 이직이나 다름없으니 괜찮겠지.

하진은 당황한 부장에게 이번엔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 말했다.

“제가…….”

근데 가이드인 걸 말해도 되나? 차진우를 쳐다보자 언제부터 보고 있었는지 곧바로 눈이 마주친 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이번에 가이드가 되어서 말입니다. 회사는 아무래도 다니지 못할 것 같습니다.”

“가, 가이드?!”

성인이 되기 전까지 정부에서 주기적으로 시행하는 검사를 통해 가이드 발현 여부를 파악하고 그렇게 정부의 소속되는 것이다.

최대한 어릴 때 가이드를 데려와 다른 세력에게 넘기지 않겠다는 정부의 뜻이었다. 그리고 보통은 그 시기를 넘겨서 발현하는 경우는 잘 없었다.

서른을 넘긴 하진이 가이드가 되었다니.

사실은 가이드임을 숨기고 있다가 밝히게 된 거지만,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그가 이제야 가이드가 된 거라고 받아들였다. 딱히 고쳐줄 필요는 없는 오해였기에 하진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좋은 핑계가 생긴 걸지도 몰랐다. 지난 세월 동안 정체를 숨기고 있었다고 괜히 미운털부터 박히고 시작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냥 갑자기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았다고 해야지.

“신속한 퇴사 처리 부탁드립니다. 사직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이대로 가면 그럴 시간이 나지 않을 것 같아서요.”

“어, 어. 그러겠네.”

부장은 물론이고 부서 사람들 모두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여 제대로 하진을 배웅하지도 못했다.

정작 폭탄을 터트린 하진만 멀쩡한 정신머리로 다들 잘 지내길 바란다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돌아섰다.

“이제 가시죠.”

상황을 지켜보던 에스퍼들은 아무래도 자신들의 가이드는 생각했던 것보다 엉뚱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러면 어떠한가.

천하의 악인이라 할지라도 그게 하진이라면 이들의 눈에는 좋은 점밖에 안 보일 텐데.

차진우가 정부 소유의 차를 끌고 오자 모두가 함께 올라탔다.

그 과정에서 하진의 옆자리를 차지하려는 보이지 않는 다툼이 있었지만, 하진이 자연스레 조수석에 타면서 다툼은 덧없게 끝나버렸다.

“아, 제가 이쪽에 타면 안 되는 건가요?”

하진은 상사의 차를 얻어 탈 일이 있을 때면 항상 조수석에 타다 보니 이번에도 습관처럼 조수석에 앉고 말았다.

아직 팀원도 아닌 자신이 마음대로 앉아도 되는가 싶어 하진이 다시 일어날 기세로 엉덩이를 들썩이자 세 사람은 아닌 척하면서도 기대하는 듯했다.

“아뇨. 어느 곳에 앉든 하진 씨 원하는 대로 하셔도 됩니다.”

차진우의 부드러운 만류에 하진이 그대로 안전벨트를 차자, 뒷좌석의 세 사람은 아쉬움을 삼키며 자리에 앉았다.

“가는 동안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셔도 됩니다.”

“음, 제 회사까지 찾은 사람들이니 제 집도 이미 다 들통났겠죠?”

“그뿐이겠어요? 이미 숨어 있는 놈들까지 있을걸?”

차진우와 하진이 둘이서 오붓하게 대화하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이도윤이 끼어들었다.

“제대로 인사하는 건 처음이죠? 이도윤이에요. 나 기억하죠? 던전에서 내가 지켜줬잖아.”

그는 뒷좌석에서 불쑥 튀어나온 손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 망설여졌다. 그러나 이대로 무시할 수도 없어 하진은 살짝 손을 쥐고 흔든 뒤 놓았다.

어쨌거나 이제 한 배에 탄 입장이 아닌가.

“아, 예. 이하진입니다. 잘 부탁해요.”

어딘가 정신이 팔린 것처럼 멍한 목소리였으나 아직 하진을 잘 모르는 이들로서는 눈치채지 못했다. 이도윤은 짧은 악수였으나 손을 잡았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지 씨익 웃었다.

“이도윤, 제대로 앉아라.”

“쳇, 하여튼 같은 팀이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팀원 좋은 꼴을 1분도 못 봐요.”

그야말로 사돈 남 말 하는 이도윤이었다. 그러나 하진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사람이 숨어 있을 거라고? 내 집에? 아니, 전세이니 온전히 하진의 집은 아니었다. 그게 더 큰일이었다.

“서, 설마 집을 부숴놓진 않겠죠?”

던전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던 하진이 말까지 더듬자 아옹다옹하던 네 사람까지도 심각해졌다.

“왜? 거기 뭐 중요한 거 있어? 팀장, 뭐 해. 당장 차 몰고 가자!”

“전세라서 부수면 물어줘야 하는데…….”

하진의 불안함이 함께 물들어 왁왁거리던 한승호는 그 말에 어이가 없어서 맥이 탁 풀려버렸다.

상대가 하진임에도 저도 모르게 허탈하게 되물었다.

“그게 문제냐고.”

“큰 문제죠. 퇴직금이 수리비로 날아가게 생겼는데. 그리고 집 주소까지 털렸으니 당장에 잘 곳도 문제고요. 설마 이미 날아간 건 아니겠죠?”

불안은 눈덩이처럼 굴릴수록 불어나는 법이었다. 하진의 머릿속에서 이미 상황은 최악으로 흘러갔다.

전셋집도 날아가고 옷이며 가구며 집안 살림 모든 게 날아가 버리면 하진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

그런 하진을 진정시킨 건 차진우였다.

“싸움이 일어나진 않았으니 집은 무사할 겁니다. 그래도 무슨 수작을 부려놨을지 모르니 우선은 거처를 옮기고, 짐을 가지러 가는 건 저와 함께 가시죠.”

“어어? 대장 그렇게 안 봤는데 얍삽하네? 그렇게 혼자 따라가겠다?”

차진우의 얕은 수작에 역시나 곧바로 이의가 제기되었다. 백자안은 입만 열지 않았을 뿐, 눈을 부라렸고, 한승호와 이도윤은 입을 모아 야유했다.

그러다 한승호가 하진에게 물었다. 자신들끼리 이러는 것보다야 결정권자에게 묻는 게 훨씬 빠를 터였다.

“S급 하나로 되겠어? 그 새끼들이 무슨 수작을 부려놨을지 모르는데 네 명 다 데려가.”

“바쁘신 분들을 제 개인 사정에 끼워 넣기가 좀…….”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 바쁘신 분들이 어떻게든 그 개인 사정에 끼고 싶어서 혈안인 줄 모르는지 하진은 한 명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좋지. 혼자 따라가면 하진과 데이트하는 기분도 들 거고, 거리감도 더 줄일 수 있을 테니 따라오지 못한 놈들이 아마 배 아파 죽으려 할 거다.

하지만 그게 자신이 아니면 무슨 소용인가. 50퍼센트의 확률도 아니고 25퍼센트 확률이다. 내가 선택되지 않는다면……?

남 좋은 일만 시킬 순 없다는 게 그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백미러로 시선이 마주치자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 하나 말하지 않아도 생각이 딱딱 들어맞는 것이 과연 알파 팀이었다.

한승호와 이도윤이 각자 몸을 앞으로 내밀고 하진을 꼬드겼다.

“에이, 그러다 뭔 일이라도 나면? 나중에 후회할 바에야 그냥 조금 요란스러워도 알파 팀이 같이 움직이는 게 낫지.”

“맞아요. 하진이 형이 아직 본인 몸값을 잘 모르는 모양인데 분명 협회에서도 혼자 가겠다고 하면 기겁하고 뜯어말릴걸요?”

하진은 제 양 귓가에서 속살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새삼스러움을 느꼈다. 분명 저번엔 아저씨라고 부르던 것 같은데.

아저씨라는 호칭이 좋은 건 아니지만, 막내로 보이는 이가 딱 봐도 스물 초반으로 보이는데 그 정도면 아저씨라고 불려도 딱히 할 말도 없었다.

가이딩이 그렇게나 좋았던 걸까. 호칭은 물론이고 태도까지 이렇게 바뀔 줄이야. 가이드인 하진은 평생 가도 모를 기분일 거다.

“여하튼 알았죠?”

“네?”

“‘네’라고 했어요. 집에 갈 땐 무조건 우리 네 명 데리고 가는 거예요.”

‘난 분명 네? 라고 물었는데.’

억지나 다름없었지만, 아무도 안 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제 안전을 위해서 S급 에스퍼가 넷이나 함께 하겠다는데 더는 거절할 명분도 이유도 없었다.

“고맙습니다.”

“고, 고맙기는…….”

“크흠.”

고맙다는 말 하나에 얼굴을 붉히는 모습을 보니 이제야 제 나이에 걸맞아 보였다. 아무래도 집채만 한 몬스터를 가지고 놀던 게 뇌리에 박혀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이는 어려 보여도 어딘가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였는데 말이다.

“그, 고마우면 가이딩 한 번만 해주든가.”

“와, 승호 형. 양아치야? 그거 하나 해주고 가이딩받아 가겠다고?”

한승호의 말에 곧바로 이도윤이 비난에 가까운 태클을 걸었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백자안과 차진우도 날카롭게 눈을 뜨고 한승호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 시선에 굴할 한승호였으면 알파 팀에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뭐, 왜, 뭐.”

하진은 잠시 장갑을 낀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앞으로는 가이드로 살아갈 테니 이런 장갑으로 손을 가릴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막연하게만 느껴지던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현실감이 느껴졌다.

하진은 소동으로 인해 조금 더러워진 장갑을 벗었다. 햇빛을 보지 못해 남들보다도 하얗고 고운 손이 드러났다.

‘……어쩐지 속은 시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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