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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8화 (8/136)

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8화

은근슬쩍 성을 떼고 친근하게 부르는 차진우였으나 설명에 집중한 하진은 알아채지 못했다.

에스퍼 반대 단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에스퍼들을 통제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과격파 단체였다.

이들도 뉴스에 자주 출연하는 단골이었다. 던전으로 인한 사고를 제외하면 백이면 백, 반정부 혹은 에스퍼 반대 단체가 일으킨 사고였다.

그들은 에스퍼 대부분이 정부에 소속되어 관리받고 있음에도 그들은 거기서 만족하지 못했다.

에스퍼들을 민간인과 분리하여 거의 가둬두다시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이었다.

“무력은 반정부 세력보다 약하다고 하나 오히려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에스퍼가 없는 세력이니까요. 에스퍼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하진 씨를 노릴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에스퍼와 달리 가이드에게 상냥하지 않을 거고요.”

“하아…….”

설명을 듣고 나니 한숨을 참을 수 없었다. 좋은 일 한번 한 것뿐인데 이렇게 복잡한 일에 끼게 될 줄이야.

‘얌전히 납치만 하면 다행이겠지.’

그 과정에서 하진의 주변인을 인질로 삼거나 소란을 위해 건물을 터트리기라도 하면 애먼 사람들이 죽고 다치게 되는 것 아닌가.

설마 이 죄책감을 노리고 저런 말을 꺼낸 건가. 하진의 시선이 차진우에게 향했다.

그는 제자리에 선 채 한 발자국도 다가오지 않았으나 눈으로는 연신 하진의 얼굴을 살폈다.

그 모습이 뭐랄까, 사람을 상대로 이렇게 표현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사람보다 커다란 군견이 주인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셰퍼드.”

“예?”

차진우는 마치 셰퍼드를 떠올리게 했다. 잘생긴 얼굴도 그렇고 각 잡힌 자세도 그렇고 말이다.

비밀을 숨기기 위해 사람을 멀리하는 하진은 대신 동물을 가까이했다. 그들은 자신이 손댄다고 해도 가이드임을 알지도 못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결벽증이라는 핑계 때문에 키우는 건 고사하고, 가끔가다 직원이 강아지를 데려와도 만져볼 수도 없었지만 말이다.

사람을 개 취급해선 안 되지만 한번 닮았다고 여기니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

하진은 제게 문제가 생겼나 싶어 점점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이 되는 차진우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사람을 개 취급하다니. 반성하자.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차진우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세 세력이 하진을 노리고 있다고 봐야 했다. 그중 가장 자신에게 온건한 세력은 정부였다.

‘아버지는 피하라고 했지만…….’

반드시 한 세력과 손을 잡아야 한다면 정부가 나았다. 제게 가이딩을 받은 에스퍼들이 있는 곳이기도 했고, 가장 안전한 곳도 정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차진우 씨 말은…….”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말을 꺼내던 차였다. 순식간에 다가온 차진우가 하진을 안아 들고 높게 뛰어올랐다. 눈 한 번 깜박하는 사이 일어난 일에 하진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이게 무슨……?”

“고개 숙여요.”

상황을 살피기 위해 고개를 드는 하진은 제 뒤통수를 부드럽게 누르는 손길에 다시 그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어야 했다.

“저격입니다. 고개 들지 말고 절 꽉 안고 계세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콘크리트 곳곳에 총알이 박히는 무서운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움직이다니, 생각보다 빠르군. 혀를 차며 그렇게 중얼거린 차진우는 연신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고 막아내면서 무전을 쳤다.

“알파 팀의 차진우다. 가이드와 접선 중 저격당했다. 8시 방향 건물 옥상이다. 당장 건물 안의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지원 바란다.”

[알겠다.]

살기 위해 차진우의 목을 끌어안은 하진은 한숨을 삼켰다. 이렇게 되면 제가 무슨 대답을 하든 평범한 일상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하지 않은가.

차진우의 방문으로 인해 회사 내 화제의 중심이 된 걸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총을 쓰는 걸 보아하니 에스퍼 반대 단체인가 보군요.”

차진우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냉정하게 사태를 파악하는 하진을 보며 작게 감탄했다. 역시 그의 가이드다웠다.

그러나 차진우가 감탄하건 말건 하진은 총기 금지 국가에서 총이 웬 말인가 싶어 아연할 뿐이었다.

“예. 대부분이 민간인으로 이루어진 단체라 주로 저런 무기를 사용하죠.”

피슉.

그 순간 총알이 정확히 하진의 머리가 있던 공간으로 파고들었다.

물론 차진우로서는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었으나 가이드를 향한 위협에 심기가 불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좌표를 알려준 지가 언젠데 아직 저격수 하나 처리하지 못해서 하진이 위협당하게 한단 말인가.

“8시 방향 건물로 간 사람이 없는 건가? 왜 아직 저격이 날아오는 거지?”

다시 한번 무전을 하기 위해 차진우는 하진을 한 손으로 안았다. 한 손임에도 안정된 자세에 하진은 조금 기분이 묘해졌다.

에스퍼가 일반인과 다르다는 건 알고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성인 남성인데……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건물 안에 KEs 놈들이 가득합니다!]

무전을 통해 총성이 들려왔다. 군대 제대 이후 들어볼 일이 없었던 총성에 하진이 자연스레 긴장했다.

머리를 노리는 총알을 보면서도 느껴지지 않던 현실감이 한 걸음 물러서자 훅, 하고 느껴졌다.

그 근육의 움직임을 알아챈 차진우는 작게 혀를 찼다. 잘 보여도 모자랄 판에 그의 가이드를 불안하게 만들어 버렸다.

“쯧, 알파 팀, 뭐 하고 있는 건가.”

무전을 통해 차진우의 불편한 심기가 느껴지자 여태 반응 없던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는 중~]

“신속하게 처리해라. 가이드가 위협당하고 있다.”

[뭐?! 그럼 진작 말했어야지!]

[저격수 처리 완료.]

그 말이 들려오기 무섭게 쏟아지던 총알이 멈췄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나 난생처음 목숨의 위협을 받은 하진은 섣불리 차진우의 품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차진우는 당연히 제 품에 안겨 있는 가이드를 내려놓을 생각이 없었고 말이다.

서른도 넘은 남자가 남자의 품에 아이처럼 안겨 있는 게 창피하긴 했으나 누구라도 대낮에 총알 세례를 받는다면 이런 반응일 것이다.

무전은 계속 이어졌다. 기계음이 섞여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알파 팀이라고 했으니 그때 봤던 에스퍼들일 거였다.

[뭐야. 백자안. 넌 언제 거기 갔냐?]

[네가 무전 꺼놓고 농땡이 피울 때.]

[야, 씨! 그걸 무전 켜고 말하면 어떡해, 이 새끼야!]

차진우는 무전을 통해 들려오는 아옹다옹에 곧바로 무전을 꺼버렸다. 하진 또한 마침 시끄럽다고 생각하던 차였기에 반가운 행동이었다.

“KEs 놈들은 에스퍼 하나 없는데 소식이 빠르단 말이야. 음음, 반성해야겠어.”

그때 차진우와 하진의 것이 아닌 목소리가 들렸다. 하진이 그를 인식하기도 전에 몸 전체에서 부양감이 느껴지더니 후끈한 열기와 빛을 머금은 불길이 쏘아졌다.

“윽.”

아무리 상대를 향하는 불길이라고 한들, 민간인에 불과한 하진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열기였다.

하진이 결국 참지 못하고 품에 얼굴을 더욱 깊게 묻으며 신음하자 순식간에 불길이 사라졌다.

차진우는 방심해선 안 되는 상대의 등장에 저도 모르게 능력을 사용했다가 황급히 능력을 물리고는 하진을 살폈다.

“괜찮으십니까?”

그러자 순수한 놀람만을 담은 음성이 끼어들었다.

“와, 천하의 차진우가 안절부절못하네. 그 가이드가 그렇게 대단해? 아주 절절매는 꼴을 보아하니 진짜 S급이라도 되는 모양이네.”

“서주안…….”

하진을 살피던 차진우가 남자의 빈정거림에 서늘한 목소리를 내었다. 사용하는 능력과는 반대되는 차가운 목소리였다.

후끈한 열기가 가라앉자 하진은 다시 고개를 돌릴 수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꽁지머리의 남자는 하진과 눈이 마주치자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하진이 그를 무시하고 차진우를 바라보자 그의 표정이 무섭게 굳어 있었다. 보아하니 정부 소속은 아닌 듯했다. 그 와중에 갑자기 나타난 걸 보면 에스퍼일 테니…….

“반정부 소속?”

쉽게 자신의 정체를 알아채는 하진에 서주안이 진심으로 감탄했다.

“오, 예쁘게 생긴 데다가 똑똑하기까지? 다 갖췄네, 다 갖췄어. 그런 무서운 아저씨 말고 젊고 탱탱한 나랑 같이 갈래? 잘해줄게.”

생긴 건 건실하게 생겼으면서 하는 말은 꼭 여자 꼬드기는 양아치 같았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하진은 그런 타입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쪽이 누군 줄 알고 따라갑니까.”

그러자 서주안은 그게 문제냐는 듯 태연하게 자기소개나 했다.

“아, 내 소개를 안 했네. 난 서주안이야. 이제 나랑 갈래? 빈말이 아니고 진짜 잘해줄게. 물론 다른 쪽으로도 잘하니까 원하면 얼마든지 말해.”

‘이젠 하다 하다 성희롱까지 당해보네.’

그의 넉살 좋다 못해 느물거리기까지 한 성격에 하진이 작게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자신과는 맞지 않아 보였다.

하진이 싫다고 대답하기도 전에 차진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로서는 하진의 짧은 대답조차도 들려주고 싶지 않았다.

지금만 해도 하진의 안전만 아니었더라면 당장에 서주안의 입을 찢어버렸을 것이다.

“서주안. 쓸데없는 소리 말고 꺼져라. 혼자서 네가 날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차진우가 그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목을 긁고 나오는 목소리는 짐승의 그것 같았다.

그게 자신을 향하는 게 아닌 걸 아는 하진도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는데 정작 그 대상인 서주안은 여전히 빙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오늘은 인사만 하러 온 거야. 그렇게 무섭게 굴면 가이드 도망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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