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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7화 (7/136)

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7화

학교라면 모를까 그는 회사원이었다. 그것도 대리라는 직함을 단, 어느 정도 짬이 찬 회사원.

제 평판과 앞으로의 승진을 위해서라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음을 털어놓아야 했다.

하진이 방문하지 않았다는 거래처 직원의 전화에 화가 단단히 났던 부장은 하루의 휴식으로는 근육통이 다 낫지 않아 골골대며 출근한 하진의 꼴과 가벼운 접촉 사고가 있었다는 거짓말에 화를 누그러뜨렸다.

그 후 며칠은 회사 일만으로도 바빴기 때문에 하진은 점차 에스퍼들에 대한 생각은 어느새 잊었다.

인생에 다시없는 경험이었지만, 눈앞에 들이닥친 현실 앞에선 금방 잊혀갔다.

……그랬어야 했는데.

“이하진 씨.”

점심도 못 먹고 보고서를 수정하던 중이었다. 하진은 자신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언제나 무표정인 하진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는 부디 며칠째 쉬지도 못하고 모니터를 들여다보느라 뻑뻑한 눈이 결국 맛이 간 것이기를 바랐다. 그도 아니면 던전 후유증이 이제 일어나는 것이거나.

그러나 눈앞의 사내가 환상이거나 다른 사람과 착각한 것이라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차진우. 그가 왜 제가 일하는 회사에, 그것도 제 자리 앞에 서 있는가.

‘미치겠네…….’

찾아올 거라는 생각을 못 한 건 아니었다. 지난 며칠 동안 아무런 일도 없었기에 제 흔적을 찾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안심했었다.

머피의 법칙도 아니고 안심하기 무섭게 찾아올 건 뭐란 말인가.

그는 친구라는 핑계도 댈 수 없게 에스퍼 정복을 갖춰 입고 있었다.

신수가 훤한 에스퍼의 등장에 점심 식사 후, 졸음을 참으며 일하던 직원들의 눈이 말똥말똥해졌다.

“대리님, 아는 분이세요?”

특히나 하진의 옆자리에 앉은 후배가 아주 눈을 빛내고 있었다. 나쁜 이는 아니지만 어지간한 소문은 다 저이를 통해 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진은 침음을 삼켰다.

‘이제 회사에 소문 다 나겠군. 날 찾아온 에스퍼가 있었다고.’

곧장 자리에서 일어난 하진은 부장에게 양해를 구한 후 차진우를 끌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에스퍼는 어딜 가도 사람의 시선을 끌어모으는지라 결국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까지 가서야 걸음을 멈췄다.

“어떻게 알고 오신 겁니까.”

아무리 무던한 하진이라고 할지라도 이번만큼은 덤덤하게 넘길 수 없었다. 누구 회사 생활 말아먹으려고 작정했나.

성질이 나 조금 거칠게 잡았던 팔을 놓자 그마저도 아쉬운지 차진우가 멀어지는 손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왜 왔는지 묻지 않는군요.”

물을 필요가 뭐 있겠는가. 가이드를 찾아온 걸 텐데. 하진은 대답하지 않았으나 차진우는 상관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이하진 씨, 아니 이하진 가이드. 부디 저희의 가이드가 되어 주십시오.”

“거절하겠습니다.”

반듯하게 숙인 머리를 앞에 두고 하진은 일말의 재고도 없이 칼같이 대답했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었다면 대신 안타까워했을 만큼 냉정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차진우는 그가 거절할 걸 예상했는지 당황하지도 않았다.

“그날 이하진 씨의 가이딩을 받고서 파장 검사를 하니 수치가 0으로 떨어졌습니다. 이건 어떠한 가이드도 해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전문적인 이야기가 나오자 하진은 입을 다물었다. 하진은 가이드이긴 하지만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그저 손을 잡고 진정시켜야겠다는 생각만으로 파장을 안정시킨 게 다인데, 수치가 0으로 떨어진 건 뭐고 이게 다른 가이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건 또 뭐란 말인가.

‘가이드에 대해 뭘 알아야 대답을 하지.’

자신의 능력이 다른 가이드들과는 다르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적어도 강제로 재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진은 고민했다. 괜히 아는 게 없는 티를 내서 불리해질 바에야 입을 다무는 게 낫지만, 막상 제 일이 되니 무시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눈앞의 남자는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차라리 뭐라도 아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진은 결국 고민하던 질문을 했다.

“……가이드는 에스퍼의 파장을 가라앉히는 역할을 하는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왜 다른 가이드들은 수치를 0으로 만들 수 없다는 거죠?”

거짓말이었다면 애초에 이렇게 찾아오지도 않았을 거고, 저러한 정보를 하진에게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에스퍼와 가이드 사이에는 매칭률이 있다는 걸 아십니까.”

“들어는 봤습니다.”

거짓말이다. 에스퍼니 가이드니 자신과 관련 없는 일이라 생각한 하진은 남들도 다 아는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편이었다.

하지만 아예 아무것도 모른다는 인상을 심어줬다가 홀라당 끌려갈까 싶어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한 하진이었다.

“같은 가이드라고 해서 모든 에스퍼의 파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등급이 높을수록, 매칭률이 높을수록 가이드는 에스퍼의 파장을 더 수월하게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매칭률이 30퍼센트 미만이면 아예 효과를 볼 수 없고, 그 이상이 되면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는 있지만, 90퍼센트가 넘지 않는 이상 그리 뛰어난 효과를 볼 수도 없습니다.”

쉽게 비유하자면 며칠을 굶은 사람에게 고작 밥 몇 숟갈 먹여주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알아듣기 쉬운 비유에 고개가 절로 끄덕였다.

하진은 저도 모르게 차진우의 설명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치를 0으로 낮출 수 있는 건 이론상으로는 매칭률이 100퍼센트인 가이드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하진 씨께선 저희 네 사람 수치를 모두 0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참으려 했지만, 한숨이 나와 결국 작게 내쉬고 말았다.

아무리 하진이 그들에 대해 아는 게 없어도 저렇게 설명하는 것까지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바보가 아니었다.

‘그냥 진정만 시키려고 했던 건데.’

“어쩌면 이하진 씨는 매칭률 따윈 상관없는 가이드일지 모릅니다.”

‘어쩌면’이라고 했으나 차진우도 하진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 무작정 회사로 찾아온 것이겠지.

하진은 제 생각보다 일이 복잡해지자 이마를 짚었다.

‘그냥 죽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말았어야 했나. ……아냐. 그래도 그건 아니지.’

잠시 몹쓸 생각까지 해버린 하진은 고개를 휘휘 저어 쓸데없는 상념을 털어냈다. 이미 저지른 일을 이제 와서 되돌릴 수는 없었다.

지금은 이 남자를 어떻게 얌전히 돌려보내고 자신에게서 관심을 끊게 하는지가 중요했다.

“후우, 저는 일단 가이드가 될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평범한 회사원이고 앞으로도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갈 겁니다. 그러니 돌아가 주세요. 이렇게 찾아오지도 마시고요.”

“……이하진 씨는 아무것도 모르시는군요.”

‘어떻게 알았지.’

좀처럼 당황하는 일이 없는 하진이 움찔하고 말았다. 티 내지 않는다고 노력했는데 다 티가 났던 걸까.

하지만 차진우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골치 아파 보였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당황한 하진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부모님을 제외하고는 누군가에게 저런 시선을 받아보는 게 처음인 하진은 당황스러웠다.

제가 뭘 했다고 연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라본단 말인가.

‘내 가이딩이 그렇게 좋았나.’

“제가 실례를 무릅쓰고 회사로 찾아온 이유는 저희가 이하진 씨를 찾아냈으니 다른 세력들도 하진 씨를 찾을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세력이요?”

제 정체를 알게 되면 일이 복잡해질 거라는 건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었다.

S급 에스퍼를 넷이나 재운 가이드를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었다.

하진은 살면서 제대로 가이드 등급을 측정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자신이 S급 가이드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다.

그래,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하진이 막연하게 가늠했던 것보다 심각한 듯했다. 차진우가 설명을 이었다.

“네. 반정부 세력에 대해서는 알고 계실 겁니다.”

아무리 관심 없는 하진이라도 알았다. 단어 그대로 에스퍼와 가이드를 정부에 귀속시켜 던전 처리에 이용하는 걸 반대하는 세력을 뜻했다.

그들은 에스퍼와 가이드 권리 향상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지만, 실제로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권리 향상을 위해 가이드를 납치하고, 정부 세력과 싸우기 위해 테러를 일으키다시피 하는 이들을 아무런 힘없는 민간인과 가이드들이 어떻게 좋아할 수 있을까.

에스퍼 중에서 권력욕이나 과시욕이 짙은 이들이나 반정부 세력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대부분 저렇다 보니 사람들은 반정부 세력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눈살을 찌푸리고, 나타났다 하면 무조건 자리를 피했다.

“그뿐만 아닙니다. 에스퍼 반대 단체 또한 하진 씨를 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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