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4화 (4/136)

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4화

‘후우…….’

하는 수 없이 하진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웃어 보였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차라리 저들 장단에 한 번 맞춰주는 게 나았다.

하지만 하진이 미처 알지 못했던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자신의 웃는 얼굴과 웃지 않을 때의 얼굴이 어마어마하게 다르다는 것이었다.

무뚝뚝한 성격에 잘 웃지 않아 냉정해 보이기까지 한 하진은 의외로 웃을 때면 그 이미지가 뒤바뀌었다.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자연스레 함께 올라간 광대에 눈매가 곱게 휘어질 때면 마치 봄바람이 부는 듯 살랑거리는 얼굴이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바쁘실 텐데 고생이 많으십니다.”

당장이라도 사약을 내릴 것 같던 서늘한 얼굴이 등나무 아래에서 난을 치는 선비처럼 변하자 네 사람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서니 이 정도 고생은 당연합니다.”

그나마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차진우가 그 말을 받았다. 하진은 팀장의 무게가 느껴지는 차진우의 처지에 공감과 동정을 느꼈다.

다른 직종이지만 동병상련을 느낀 그는 곧바로 미소를 지우지 않고 몇 마디 더 나누며 분위기를 완전히 풀어냈다.

“그 고생이 어떻게 당연한 거겠습니까. 덕분에 이렇게 무사한데요.”

적당히 체면을 세워주자 분위기가 완전히 풀렸다. 그리고 때마침 마지막, 보스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의 가장 깊숙한 곳에 도달했다.

“여기선 이하진 씨께서도 저희의 지시를 따라주셔야 합니다. 할 수 있겠습니까?”

“네.”

살고 싶으면 얌전히 따라야지 별수 있겠는가. 하진은 거슬리는 넥타이를 풀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가시죠.”

“오, 터프한데.”

이도윤의 웃음기 섞인 말에 차진우가 적당히 하라는 듯 작게 미간을 구겼다. 그에 찔끔한 이도윤이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려버렸다.

보스 몬스터를 코앞에 뒀다기엔 상당히 편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하진이 넥타이까지 벗은 게 머쓱할 정도로 보스 몬스터는 에스퍼들 앞에서 꼼짝도 못 했다. 지시고 뭐고 하진이 무언가를 할 필요도 없었다.

S급. 그 이름이 가진 힘은 막연히 상상하던 것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보이지 않는 힘이 땅을 헤집어 처음 마주했던 몬스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이 동굴을 다 채울 크기의 몬스터를 끄집어내더니 눈을 아프게 하는 전격이 번쩍였다.

우르릉. 굉음이 울리자, 멀찍이 떨어져 있는 하진이 있는 곳까지 공기가 찌릿해졌다.

따가움에 몸을 움찔 떨자 만일을 대비해 곁에 남아 있던 이도윤이 제 겉옷을 벗어서 어깨에 걸쳐주었다.

“입고 있어요. 에스퍼 유니폼에는 어느 정도 방어 효과도 있으니까.”

“고맙습니다.”

같은 성인 남성인데도 어찌나 덩치 차이가 나는지, 하진은 겉에 입은 정장을 벗을 필요도 없이 곧바로 이도윤이 걸쳐준 유니폼 상의에 팔을 끼워 넣었다.

‘확실히 찌릿한 게 더는 안 느껴지네.’

한결 살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보스 몬스터는 착실히 사냥당하고 있었다.

전격이 지나간 자리가 무형의 힘에 의해 산산이 조각나고 그 조각이 검붉은 불길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광경은 영화보다도 현실감이 없었다.

“흐아암.”

하지만 비현실적이라는 하진의 감상과는 달리 저러한 광경에 이골이 난 이도윤은 하품이나 쩍쩍해댔다.

“시시하네.”

그 말과 함께 보스 몬스터는 뼈 한 조각 남기지 않고 불길에 아스라이 녹아내렸다.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켠 이도윤은 하진을 끌고 세 사람에게로 향했다.

“던전 클리어. 다들 복귀 준비한다.”

“네에.”

하진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외근 나온 도중이었지만 그냥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무리 하진이의 성격이 무던하고 주위 환경에 영향을 덜 받는 편이라고 해도 그도 사람인지라 오늘 있었던 일을 마냥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돌아가서 씻고…… 자고 싶다.’

쿵.

그 순간, 동굴 전체가 쿵 하고 울렸다. 던전 밖을 나갈 준비를 하던 이들 모두 갑작스러운 상황에 경계하기 시작했다.

“……뭐야.”

“윽, 으극…….”

“백자안 저거 왜 저래.”

보스 몬스터를 잡을 때만 해도 멀쩡하던 그가 갑자기 머리를 부여잡고는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도윤, 민간인을 보호해라.”

차진우의 말에 이도윤이 하진을 안고 훌쩍 백자안에게서 멀어졌다. 하진이 멀찍이 떨어진 걸 확인한 차진우는 몸을 덜덜 떨기 시작한 백자안에게 외쳤다.

“백자안! 정신 차려!”

“으욱, 흐악……!”

백자안은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온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더니 이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흐아아악!”

하진은 보았다. 그에게서부터 퍼져 나오는 파장을.

S급 에스퍼의 폭주였다.

“전원. 백자안에게서 떨어져라!”

“아, 미친! 저 새끼 어쩐지 오늘따라 나대더라니!”

남은 에스퍼들은 보스 몬스터를 잡을 때와는 다르게 긴장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백자안이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자 무형의 힘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 힘이 어찌나 강한지 분명 눈에 보일 리 없는 무형의 힘인데도 주변 공기가 어그러지는 것이 하진의 눈에도 보일 정도였다.

‘미치겠네…….’

던전에 휘말린 거로도 모자라 에스퍼 폭주라니.

거기다 다른 등급도 아니고 S급이었다. 그때까지도 만일을 대비해 이도윤의 품에 안겨 있던 하진은 순간 높게 뛰어오른 것에 놀라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저 미친놈이 눈에 뵈는 게 없나…….”

이도윤이 높게 뛰어오르기 무섭게 두 사람이 서 있던 자리가 움푹 파였다.

백자안의 이능력이 염동력이라 공격당하는 줄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진은 그대로 폐차장의 폐차처럼 찌그러질 뻔했다는 사실에 식은땀을 흘렸다.

이도윤은 당장이라도 백자안을 막아선 차진우와 한승호 쪽에 합류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대로 하진을 내려놓았다간 눈먼 백자안의 공격에 당해 죽을 게 뻔했기에 하는 수 없이 그를 계속 안아 든 채 피해 다녔다.

“근데 저 형은 왜 이쪽만 공격하는 거야!”

에스퍼가 폭주하면 이성을 잃는 게 가장 일반적인 반응인데 어째서인지 백자안은 이성을 잃은 상황에서도 하진을 노리고 있었다.

처음엔 착각인가 싶었으나 본인을 가로막는 에스퍼를 뚫고도 이쪽을 향해 공격하는 것을 보아하니 착각이 아니었다.

이도윤은 반격도 못 하고 하진을 안아 든 채 이곳저곳을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저 형 왜 저래! 이봐요. 혹시 자안 형이랑 아는 사이예요? 뭐 원수였어?”

그러면 차라리 억울하지라도 않지. 백자안과는 오늘이 첫 만남인 하진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깊이 고민했다.

아까 가슴에 부딪혔던 게 기분 나빴던 걸까. 그래서 폭주한 김에 자신을 죽이려는 걸까 하는 억측까지 들었다.

“그럴 리가요. 평범한 회사원이 S급 에스퍼와 알고 지낼 일이 뭐가 있습니까.”

“그럼 저거 왜 저래…….”

하진이 하고 싶은 말이었다. 대체 하진이 뭘 했다고 앞을 막아서는 두 사람을 떨쳐내면서까지 달려든단 말인가.

백자안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차진우와 한승호를 상대하면서도 시선만은 하진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마치 먹잇감을 놓치지 않는 포식자와 같은 시선이라 하진은 접촉을 조심해야 하는 것도 잊고 저도 모르게 자신을 안아 든 이도윤에게 달라붙었다.

“왜 저를 노릴까요.”

“나도 모르, 윽, 좀 제대로 막아!”

두 사람이 미처 방어하지 못한 틈으로 염동력이 파고들었다. 하진을 최우선으로 지켜야 했던 이도윤은 반격도 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그 공격을 피하는 데에 집중했다.

그들은 고전하고 있었다. 그들이 약해서가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제정신이 아닌 사람을 제압하는 건 힘든 일인데 살상력까지 갖춘 에스퍼를 제압하는 건 얼마나 더 힘든 일이겠는가.

폭주를 막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폭주한 에스퍼를 때려눕혀 제압하는 방법이었고, 나머지는 가이딩으로 진정시키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과격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방식이었다.

제 능력을 조절하지 못하고 날뛰는 에스퍼를 때려눕혀야 하니 폭주한 에스퍼는 물론이고 제압하기 위해 투입된 에스퍼들도 크게 다칠 수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폭주가 터졌다 하면 뉴스로 나오니 아무리 관심을 두지 않으려 해도 접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하진은 역시 그 방식이 너무 폭력적이고 위험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남는 방법은…… 여태 숨겨왔던 제 정체를 드러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진은 망설였다.

정체를 드러내면 필연적으로 가이드로 등록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지금의 평범한 삶은 끝이라고 봐야 했다.

최초의 S급 가이드.

그 이름이 주는 무게감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진의 아버지가 하진이 평범하길 바랐던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4)============================================================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