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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2화 (2/136)

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2화

“다들 움직이지 마세요. 저 몬스터는 땅에서 느껴지는 진동으로 인간을 찾는 것 같습니다.”

애초에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낸 것도 시끄러워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불안에 떨며 발을 가만히 두지 못해서였던 듯했다.

실제로 몬스터는 하진의 목소리에도 반응하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말에 작은 진동이라도 생길까 싶어 고개도 끄덕이지 못했다. 그저 몬스터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가만히, 계속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몸을 반쯤 일으키려던 사람, 다리가 불편한 노인, 집중력이 짧은 아이들이 긴 시간 몸을 가만히 두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다들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버텼음에도 결국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춤 몸을 움직이고 말았다. 그러기 무섭게 고개를 돌린 몬스터가 사람들을 향해 길고 커다란 몸을 뱀처럼 움직였다.

“꺄아아악!”

하진은 아랫입술을 잘근 씹었다. 그러고는 생각할 것도 없이 자신의 오른쪽 무릎을 높게 올리더니 그대로 쾅 하고 땅을 내리쳤다.

보다 더 큰 진동에 몬스터의 방향이 하진 쪽으로 바뀌었다. 쿠구구궁 하는 소리와 함께 몬스터가 빠르게 달려들었다.

젠장, 뭐 저렇게 빨라! 빠르게 쏘아지는 몸체에 하진은 곧바로 몸을 날려 굴렀다.

몬스터의 머리가 그대로 땅에 박혔지만, 하진은 안심하지 않고 몸을 일으켜 내달렸다. 그리고 역시나 땅에 처박혔음에도 마치 모래 속에서 움직이듯, 몬스터는 힘도 들이지 않고 박힌 머리를 빼내어 곧장 하진을 쫓았다.

“헉, 허억……!”

하진은 최대한 사람들과 떨어진 반대편을 향해 달렸다.

머리가 가까워졌다 싶으면 스턴트맨이라도 되는 듯 몸을 날려 피하다 보니 어느새 깔끔하게 정리한 머리는 다 흐트러졌고, 정장 또한 흙먼지투성이가 되었다.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은 이젠 목이 아플 지경이었다.

‘젠장, 운동을 좀 더 할걸!’

삼십 줄에 들어서고서는 체력 관리가 필요하다 느껴 운동을 시작했지만,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더 이상 몬스터를 피하기 위해 몸을 날릴 힘이 없었다. 점점 느려지는 하진의 뒤통수에 쫙 벌린 몬스터의 아가리가 가까워진 순간이었다.

‘이대로 죽는 건가…….’

이렇게 죽는 건 평범한 죽음인 걸까.

하진은 우습게도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그런 생각을 했다.

‘세상에 던전 사고로 인해 죽는 피해자들은 많으니 이 정도면 평범한 죽음이겠지.’

그래도 누군가를 구하고 희생한 삶이니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날카로운 이빨에 분쇄될 고통을 대비하기 위해 눈을 감는 순간이었다.

“눈 감고 달리면 넘어지세요.”

코앞에서 들린 목소리에 눈을 뜨기도 전, 누군가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 전속력으로 달리던 하진의 몸을 받아낸 이는 조금도 밀려나지 않았다.

오히려 다리가 풀려 넘어지려는 하진의 허리를 단단히 붙잡아오기까지 했다. 당황한 하진이 고개를 들었다.

자신도 성인 남성 평균 이상으로 키가 작다고는 할 수 없는데도 하진을 품에 안은 남자는 그보다도 머리 하나는 더 큰 키를 가지고 있었다.

에스퍼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잘 버텨 주셨어요.”

백자안은 고개를 내려 놀라움에 눈을 크게 뜬 하진과 시선을 맞추었다. 잠시 하진을 바라보더니 이내 부드럽게 웃었다.

우습게도 그 미소에 안심이 된 하진은 저도 모르게 짧은 한숨을 내쉬며 에스퍼의 가슴팍에 이마를 기댔다.

어깨도 아니고 가슴팍이라니.

에스퍼로 각성하면 제각기 다른 이능력은 물론이고 신체 능력까지도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던데 이런 데에서까지 차이가 느껴지는구나 싶었다.

키에에엑!

잠시 멍하니 있던 하진은 뒤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그제야 자신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상기했다.

뒤를 돌아보니 바로 지척까지 다가왔던 몬스터가 무형의 힘에 붙잡히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뒤틀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저걸 저렇게 간단히…….’

자신은 죽을힘을 다해 달려도 도망치는 게 고작이었고, 그마저도 실패로 끝날 참이었는데.

누구는 웃는 얼굴로 그 몬스터를 가지고 놀고 있으니 참 세상만사 불공평했다.

“제가 붙들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과 합류하세요.”

“감사합니다.”

다리에 힘이 돌아온 하진은 에스퍼에게서 몸을 떼어냈다. 그러고는 서둘러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에스퍼들이 왔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청년, 얼른 와요. 이제 우리 탈출할 수 있대.”

“어휴, 고생했어요. 온몸이 흙투성이네.”

하진이 주의를 끈 덕에 다른 사람들은 무사했다. 그들은 다가오는 하진을 보며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던전 안에 들어온 에스퍼는 총 넷이었다. 몬스터를 상대하는 한 명과 시민들을 통솔하는 셋.

하진은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파장에 잠시 걸음을 멈췄으나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그들에게 다가갔다.

‘깜짝 놀랐네.’

가이드이긴 하나 한 번도 에스퍼를 본 적이 없는 하진은 이렇게 불길하게 날뛰는 파장을 처음 보았다.

가이드라면 본능적으로 에스퍼의 파장을 느낄 수 있는데, 등급이 높은 가이드일수록 더 자세하게 느낄 수 있다.

정확한 검사를 받은 적은 없으나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S급일 거라는 하진의 경우도 불안정한 파장을 가진 에스퍼들의 상태를 보는 것만으로도 낱낱이 알 수 있었다.

쉽게 비유하자면 환자를 진단하는 의사가 된 기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다분히 직관적인 판단이지만 말이다.

“오셨으면 이거 받으시고 설명 들으세요.”

“네.”

하진은 검은 머리에 아이돌처럼 예쁘장하게 잘생긴 에스퍼, 이도윤이 건네는 금속 책갈피처럼 생긴 물건을 받았다. 하진의 손가락 두 개를 합친 정도의 작은 크기였다.

하진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걸 손에 쥐고 있었는데, 처음 보는 물건에 이게 뭔가 들여다보고 관찰하고 있었다.

“탈출 키트입니다. 이걸 반으로 쪼개면 곧바로 던전 밖으로 나가실 수 있을 겁니다. 바깥에는 협회에서 나온 사람들이 있을 테니 그들의 안내를 받으시면 됩니다.”

“저, 저기요!”

말을 마친 이도윤이 그대로 등을 돌리자 아이 엄마가 황급히 그를 불러 세웠다.

“무슨 일이죠?”

“하나가 모자라요. 저희는 애들까지 세 식구인데…….”

“네?”

시종일관 뚱하던 이도윤은 그 말에 이내 인상을 쓰며 뒷머리를 털었다.

“탈출 키트는 나눠드린 게 전부입니다.”

“네?! 그, 그럼 저희는…….”

세 식구 모두가 함께 탈출할 수 없다는 사실에 그녀는 절망에 빠져 이도윤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없던 탈출 키트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상황을 눈치챈 다른 사람들은 눈이 마주칠까 제각기 고개를 숙이거나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무리 안타까운 상황이라 해도 자신의 목숨을 버릴 용기는 나지 않았다.

주위를 살피던 아이 엄마는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물을 글썽거리며 손을 발발 떨던 그녀는 이내 무언가 결심한 듯 입을 꾹 깨물더니 입을 열었다.

“얘들아, 엄마 말 잘 들어.”

그녀는 결연한 표정으로 제 아이들과 마주했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아이를 구하기로 선택한 것이었다.

물론 에스퍼가 넷이나 있으니 살아남을 수도 있지만, 에스퍼들과 달리 민간인은 던전 내부에 퍼진 공기 속 독소만으로도 죽을 수 있는 연약한 몸이었다.

아직 던전을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괜찮을 것이라고 마냥 낙관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모두가 에스퍼의 등장에도 쉬이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까닭이었다.

탈출 키트를 쥐고 있는 이들이 함부로 입을 열지 못하던 그때, 하진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래, 나가면 엄마 말씀 잘 들으렴.”

하진은 아이의 손에 자신의 몫을 쥐여주었다. 막대 사탕을 줄 때처럼 가볍기 그지없는 손길이었다.

“오.”

멀찍이 떨어져 있던 이도윤은 그런 하진의 행동에 작게 감탄했다. 덤덤하게 제 목숨 줄이나 다름없는 물건을 타인에게 건네는 얼굴에 자연스레 시선이 갔다.

“이, 이걸……!”

하진을 올려다보는 아이 엄마의 얼굴에는 기쁘고 놀라운 한편 미안함도 섞여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하진은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제가 남는 게 살 확률이 더 높겠죠. 게다가 에스퍼가 네 분이나 계시는데 설마 죽기야 하겠습니까. 탈출이 조금 늦어지는 것뿐입니다.”

덤덤한 말투에 아이 엄마는 결국 눈물을 터트리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시간이 없습니다. 다들 탈출하세요. 그쪽은 이쪽으로 오세요. 그쪽 말대로 에스퍼가 넷이나 있는데 설마 민간인 하나 못 지키겠어요.”

이도윤의 말에 하진은 남은 사람들과는 반대로 에스퍼들에게 다가갔다.

‘파장이 좋지 않은 에스퍼들과 함께 있는 게 불안하긴 하지만…… 괜찮을 거다.

저 에스퍼의 파장을 보아하니 S급은 되어 보였다.

‘파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런 걸 알 수 있다는 건 신기하네.’

물론 엮이고 싶진 않지만 말이다. 그때, 마지막 남은 아이 가족이 탈출하기 전 아이가 하진에게 인사를 남겼다.

“아저씨, 고맙습니다!”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하진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엄마 말씀 잘 들어.”

“네!”

황금빛을 두르며 아이 가족까지 탈출하자 동굴 안에 남은 민간인은 하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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