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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1화 (1/136)

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1화

하진은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32년 인생에 첫 던전 사고로도 모자라 에스퍼 능력 폭주 목격이라니.

“젠장, 백자안! 정신 차려!”

“하필이면 던전 안에서 터질 건 뭐냐고!”

저 새끼 왜 약 안 먹었어! 화려한 금발을 휘날리며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남성이 소리쳤다.

검은 머리에 아이돌처럼 생긴 이도 마찬가지로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먹었어! 그냥 터질 게 터진 거라고!”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폭주로 인한 피해를 막느라 바빠 보였다.

한 에스퍼는 능력 폭주로 인해 난동을 부리고 있고, 한 팀인 듯한 세 에스퍼는 섣불리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다.

“제길, 하필 민간인이 같이 있을 때라니. 이도윤, 네가 저 사람 보호해.”

붉은 기가 상당한 갈색 머리의 말에 검은 머리, 이도윤이 하진의 곁에 다가왔다.

“지금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니 내 뒤에 얌전히 있어요.”

앳된 얼굴과 달리 상당히 불손한 어투였다. 하진은 서른둘 먹고 짐짝 취급을 당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긴박한 상황 탓에 대답할 겨를도 없었다.

그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저걸 도와 말아.’

하진의 인생에 둘도 없을 일생일대의 최대 난제였다. 폭주 중인 S급 에스퍼를 구할 것이냐, 보고만 있을 것이냐.

어째서 민간인에 불과한 하진이 이러한 고민을 해야 하는 걸까.

“지금 당장 출동할 수 있는 A급 가이드 없어?”

“다른 것도 아니고 폭주야. S급 폭주에 A급 가이딩이 먹힐 것 같냐? 그냥 가이드 죽으라고 떠미는 것밖에 안 되지.”

“아 씨, 망할!”

왜냐하면…….

“시발, 왜 S급 에스퍼는 있으면서 S급 가이드는 없는 거냐고!”

지금 저들이 현재 애타게 원하는 S급 가이드가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 * *

“꺄아아악!”

“사, 살려줘…… 사람 살려!”

“으아앙! 엄마아……!”

“하아…….”

난장판 속에서 하진은 한숨을 쉬었다.

외근 나왔다가 갑자기 던전 발생이라니 이게 무슨 봉변인가 싶었다.

평범하게 살아가길 바란다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최선을 다해 남들처럼 평범한 생활을 영위해온 지도 어언 32년.

학창 시절에 적당히 중상위권보다 조금 더 높은 성적을 유지하고, 남들 다 가는 대학을 졸업해, 남들과 똑같이 회사 생활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평범한 삶임은 부정할 수 없을 거였다.

그런데 외근을 위해 잠시 회사 밖을 나와 지하철 안으로 들어온 순간 던전이 생성되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도망은커녕 시도도 해보지 못하고 갇혔다.

순식간이었다. 눈에 익은 공간이 잡아먹히고 어둡고 칙칙한 넓은 동굴 안에 갇히자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혼란에 빠졌다.

‘역시 휴대폰은 터지지 않는군.’

던전에서 채굴한 광물로 만든 게 아닌 평범한 기계는 던전 내부에서 기능을 상실한다는 걸 알면서도 하진은 괜히 한 번 휴대폰을 작동시켜 보았다.

‘그나마 지하철인 걸 감사히 여겨야 하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중 던전이 발생했으니 분명 신고는 빠르게 들어갔을 것이다.

두근두근. 하진은 긴장으로 빠르게 뛰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켰다. 우선 겁에 질려 울음을 터트리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을 진정시키기로 했다.

이렇게 시끄러웠다간 에스퍼들이 구조하러 오기도 전에 몬스터에게 잡아먹힐 게 분명했다.

“여러분. 다들 진정하십시오.”

적당히 나직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하진에게 쏠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모으는 힘이 있었다.

그 덕에 학창 시절부터 회사 생활 중인 지금까지도 중요한 발표가 있으면 그 담당은 모조리 하진의 몫이기도 했다.

하진은 자신에게 몰린 시선이 익숙한 듯, 긴장한 기색 없이 말을 이었다.

“지하철 내부에서 발생한 던전이니 신고는 빠르게 들어갔을 것입니다. 곧 있으면 에스퍼들이 구하러 올 테니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이 올 때까지 조용히, 몬스터를 자극하지 않고 버티는 겁니다.”

그 말에 혼란에 빠진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희망을 느꼈다.

“그, 그래요. 젊은이 말이 맞아. 다들 조용히 합시다.”

한 사람, 두 사람 동조하기 시작하자 소란이 잦아들었다.

“히끅, 흐으응, 엄마아…… 무서워…….”

하지만 아직 이 상황을 이해하고 인내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못한 아이들은 달랐다. 아이들의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크게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을 서둘러 달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눈초리가 따갑게 세 사람을 찔러댔다.

“괘, 괜찮아. 곧 사람들이 구하러 와줄 거야. 응? 뚝 하자.”

아이 엄마는 점점 몰리는 시선에 당황하여 일그러진 얼굴로 아이를 연신 달랬다.

하지만 아이는 이미 제 엄마의 불안함을 느꼈고, 공포에 비명을 지르는 어른들을 보았다. 아무리 달래도 쉽사리 진정하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흑, 흐아앙…….”

아이는 결국 제 엄마의 품에 얼굴을 묻고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그나마 분위기와 어른들의 시선에 주눅 든 아이의 울음소리치고는 매우 작은 소리였으나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사람들에게는 천둥과도 같이 느껴졌다.

“거, 애 좀 조용히 시켜요……!”

“이러다 몬스터가 나오면 어쩔 거야.”

불안을 느낀 사람들이 그들을 압박할수록 아이는 더욱 크게 울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불안과 분노 또한 커졌다.

하진은 점점 과열되는 분위기에 한숨을 내쉬었다.

‘두어 개 남았을 텐데.’

다행히 당 충전을 위해 사두었던 사탕이 남아 있었다.

막대 사탕 두 개를 꺼낸 하진이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아이와 엄마 바지를 꼭 붙잡은 채 울기 직전인 또 다른 아이의 앞에 섰다.

“자. 이거 먹고 있으면 멋있는 언니 오빠들이 와서 금방 구해줄 거야. 조금만 참고 기다리자.”

무서움에 벌벌 떨어도 아이는 아이였다. 두 아이는 하진이 내미는 막대 사탕에 금방 관심을 쏟았다.

막대 사탕을 까서 직접 손에 쥐여주자 콧물을 훌쩍이면서도 막대 사탕을 곧장 입에 넣었다.

간간이 코를 훌쩍이는 소리만 남고 조용해지자 하진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씩씩하네.”

그 말에 한 아이는 제 눈가에 남아 있던 눈물까지 바로 닦아냈다. 왜냐면 자신은 씩씩하니까. 입안에 퍼지는 딸기우유 맛에 무섭던 것도 어느새 훨훨 날아간 듯했다.

아이 엄마는 아이들을 달래준 하진에게 감사의 표시로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그에 고개를 젓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 하진은 눈길을 돌려 주변을 살폈다.

바위도 뭣도 없는 그저 휑하기만 한 동굴이었다. 물론 동굴이라고 하기엔 거대 지렁이가 땅굴을 파놓은 것처럼 천장이 끝도 없이 높긴 했지만, 어쨌든 동굴 형태의 던전이다.

‘숨을 곳도 없으니 몬스터가 나오면 그대로 떼죽음이겠군.’

아이에게 한 말과는 달리 냉정한 판단이었다. 어쩌겠는가. 아이를 달랠 땐 희망적인 척했어도 상황 판단에는 냉철해야 하는 법.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위가 휑한 만큼 어디서 몬스터가 나타나든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거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벌써 10분이 넘게 흘렀으니 에스퍼들이 지하철에는 도착했을 게 분명했다.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던전으로 들어오는 입구를 찾는 데에 시간이 걸리는 것이리라.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하진을 포함한 사람들은 주위를 살피려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구구궁.

그때, 동굴 전체를 울리는 진동이 발밑을 타고 올라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여태 침착함을 유지하던 하진은 물론이고, 조금씩 흩어졌던 사람들까지 당황하기 시작했다.

“뭐, 뭐야!”

“모, 몬스터? 몬스턴가?”

사람들은 숨을 곳을 찾기 위해 허둥지둥거리며 움직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발밑에서 느껴지는 진동은 거세지기만 했다.

발밑에서 느껴지는 땅의 진동은 점점 심해지는데 몬스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게 무슨 뜻이겠는가. 머리로 해답을 내리기도 전에 본능처럼 깨달은 하진은 곧바로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다들 피해요!”

하진이 소리치기 무섭게 단단한 돌바닥이 우직, 하는 소리와 함께 갈라지더니 폭탄이 터지듯 터졌다.

쿠어어어!

“으아악!”

폭발하듯 터진 땅 사이로 몬스터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혼비백산하며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젠장! 땅 밑에서 나오다니!’

지렁이 형태에 날카로운 이빨이 상어처럼 얼기설기 자라나 있는 몬스터는 내달리며 도망치는 사람들을 쫓아 움직였다.

기다랗고 커다란 몸은 조금만 움직여도 금세 머리가 저 멀리 도망친 사람에게까지 닿았다.

“히익, 으악! 살려줘!”

도망치던 사내는 열심히 발을 놀렸으나 안타깝게도 몬스터의 입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차마 말로 표현하기 끔찍한 소리가 동굴을 울리자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입을 다물었다.

“나, 난 살고 싶어!”

하지만 그것도 잠시, 먼저 충격에서 벗어난 다른 사내가 떨어지지 않는 발을 겨우 움직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남자에게 밀쳐지는 바람에 넘어진 사람들이 곧장 덮쳐오는 몬스터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흐아아악!”

하지만 비명은 도망친 사내에게서 터져 나왔다. 어찌 된 일인지 몬스터가 코앞에 엎어진 사람들은 두고, 도망치는 사내를 쫓은 것이다.

하진은 그 이상 현상을 놓치지 않았다.

있는 기관이라고는 이빨이 잔뜩 달린 입밖에 없는 몬스터이니 코앞에 있는 사람들을 보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으나, 그렇다면 어째서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도망치는 사람을 쫓아간 것인가.

‘설마…….’

떠오른 가설에 하진은 손에 쥐고 있던 가방을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힘 있게 집어 던졌다.

가죽 가방이 공중을 날아 먼 곳에 풀썩하고 떨어지기 무섭게 몬스터가 몸을 날려 가방을 찢어발겼다.

“그런 거군…….”

첫 월급을 타고 산 나름대로 추억이 담겼다면 담긴 가방이지만, 하진은 아까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목숨값을 아낀 거라고 여긴다면 싼 축에 속했다.

침을 꿀꺽 삼킨 하진은 사람들이 다시 움직이기 전 얼른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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