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14)

2℃

어느덧 기말고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수업 시간에는 대놓고 시험 문제를 알려 주는 교사들의 노력에 마지못해 필기를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한들 결과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았다. 로또라도 당첨되지 않는 이상 연호가 대학에 진학할 일은 없었다. 주된 문제는 집안 사정도 문제이었지만, 다행히도 연호는 공부에 소질이 없었다.

‘저건 머리로 벌어먹고 살기는 글렀어.’

그래도 부모라고 아빠는 일찌감치 연호의 적성을 알아보았다. 연호는 어려서부터 수긍을 잘했기에 아빠 말에 상처를 받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뻤다. 아빠가 아직 연호에게 관심이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이제는 다 옛날 일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빠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정확한 나이도 알지 못했다. 사장님에게도 고등학생 자녀가 있는 걸 보면 아빠도 그와 비슷한 나이일 거라고 막연히 추측할 뿐이었다.

연호가 대놓고 사장을 쳐다보았다. 시선을 느낀 사장이 황급히 뒤를 돌았다.

“손님 온 거 아니었니?”

“네. 아니었어요.”

“…그래.”

설령 나이가 비슷하다 해도 그뿐이었다. 상념이 깊어질 때 즈음 주문이 들어왔다. 다행이었다. 연호는 기다렸다는 듯이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이제 그만 헛생각은 떨쳐 낼 시간이었다.

이번 배달 장소는 xx 대학교로, 경영관에 있는 대형 강의실에서 들어온 주문이었다. 연호가 계산을 하는 동안에도 안에서는 계속해서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알고 싶었다. 저 안에서 뭘 하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남우라는 미꾸라지 한 마리를 제외하면 본관 404호도 지금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404호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몇 만 원 어치 햄버거 세트나 치킨을 충분히 먹어 치울 만한 인원이었다. 안에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노트북과 프린트, 현수막, 포스터, 전지 등 각종 물건들이 넘쳐 났다. 사람들은 노트북을 보며 회의를 하기도 했고, 현수막을 펼쳐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대체 뭘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거지? 대학 가면 다들 노는 거 아니었나? 설명해 준다 해도 연호가 이해하지 못할 확률이 높았지만 궁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것 말고도 알고 싶은 건 많았다. 유진은 왜 같이 밥을 먹지 않는지, 유진이 왜 다른 사람들에게 밥을 사 주는지 따위가 궁금했다.

유진을 떠올린 탓일까.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 연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낯설지 않은 느낌에 오토바이로 걸어가던 연호가 그대로 멈춰 섰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상대의 윤곽을 읽어 냈다. 역시 연호가 아는 사람이 맞았다.

“형!”

남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유진이 형!”

대놓고 이름이 불리자 더는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휴식을 방해 받은 유진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유진이야 헬멧에 적힌 브랜드 로고를 알아본 것뿐이었지만 설마 연호가 이 정도 거리에서 유진의 얼굴을 식별할 줄은 몰랐다.

“눈 좋네요.”

인사라기에는 조금 미묘한 어투였다. 그렇다고 연호를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어서 연호는 말속에 숨겨진 가시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니, 알아차리지 않았다.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보다는 당장은 자신이 느낀 반가움이 우선이었다.

“양쪽 다 2.0.”

“…….”

“쩔죠.”

무슨 몽골 사람도 아니고. 눈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예상치 못한 사실에 유진이 감탄하는 사이 연호가 가까이 다가왔다. 헬멧과 마스크 때문에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유진은 어렵지 않게 연호의 기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 연호는 기분이 좋았다. 누가 봐도 그래 보였다.

꽤나 오랜만에 조우한 두 사람이었다. 허구한 날 본관 404호를 들락거려도 한 번을 마주치기가 어려웠는데 이렇게 우연히 유진을 만나게 될 줄이야. 연호는 순수하게 이 순간을 기뻐하고 있었다. 유진만 그렇지 않아 보였다.

“여기서 뭐 해요?”

“담배 피우러 나왔어요.”

유진이 담배에 불을 붙이다 말고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미소 띤 얼굴과 달리 손은 연신 담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연호를 발견한 순간부터 그랬다.

“여기서? 본관은 저쪽이잖아요.”

두 사람이 있는 곳은 경영관 근처였다. 바로 옆에 중앙 도서관이 있긴 했지만 본관과는 조금 떨어져 있었다.

“도서관에 있었어요.”

“공부했어요?”

“네.”

“형은 공부도 열심히 하는구나….”

가히 찬사에 가까운 감탄이었다. 노골적인 칭찬에 당황한 유진이 부정부터 하고 봤다.

“이 정도는 누구나 해요.”

“대학생은 다 그래요?”

“보통은요.”

모든 건 상대적이지만 저마다 기준은 다른 법이다. 유진의 기준은 자신의 형으로, 형에 비하면 이 정도 노력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형도 그 정도는 한다는 거 아니에요?”

“그건, 그런데….”

“와….”

연호가 눈을 빛내며 유진을 쳐다보았다. 순간 유진은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은 착각에 휩싸였다. 혹시 형이랑 착각한 건가? 제일 먼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건 유진이 가장 잘 알았다. 유진은 형을 닮지 않았다. 형처럼 될 수가 없었다. 유진이 기억하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다.

‘…지금이 몇 시야.’

유진이 처음으로 형을 찾아갔던 그날 밤, 형은 자고 있었다.

‘너 벌써부터 늦게 자면 키 안 큰다.’

쉽사리 잠이 깨지 않는 듯, 형은 몇 번이고 하품을 해 댔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한없이 늘어지는 목소리가 잔뜩 잠에 취해 있었다.

‘남자가 그 얼굴에 키라도 커야지 어떡하려고 그러냐.’

‘…….’

‘왜. 무서운 꿈이라도 꿨어?’

태평한 소리를 하는 형을 붙잡고, 유진은 물었다. 그때의 유진은 어렸고, 유진에게 있어 형은 절대적인 존재였다. 형은 뭐든 잘했고, 누구에게나 사랑받았다. 형이 하는 건 유진도 하고 싶었다.

‘나처럼…. 음….’

형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명쾌한 답변을 내놓았다.

‘열심히 해. 그럼 너도 할 수 있을 거야.’

‘얼마나?’

누구도 시킨 적 없고, 누구도 기대한 적 없지만 유진은 형처럼 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형처럼 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당연히 지금보다 열심히 해야지.’

그러니까 유진이 노력하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세상에는 노력만으로 안 되는 일이 훨씬 많았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이마저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유지하는 것, 유진의 노력은 고작 그게 다였다. 누군가에게 이런 식으로 치켜세워질 만큼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아, 맞다. 할 얘기 있었는데.”

다른 이유가 있다면 모를까. 연호가 이번에야말로 본론을 꺼내려는 모양이었다. 유진은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연호의 뒷말을 기다렸다.

“여기 세탁비요.”

연호가 주머니에서 웬 종이봉투를 꺼냈다. 얼마나 오래 가지고 다녔는지 잔뜩 구겨져 있었다. 얇은 봉투 너머로 비치는 밝은 황갈색이 내용물을 짐작하게 했다.

“…이게 다예요?”

유진은 액수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사실 확인할 필요도 없었지만 그 사실을 연호가 알 리 없었다. 유진의 말뜻을 다르게 받아들인 연호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어…. 네, 지금은요. 이번 달에 월급 받으면 더 드릴게요.”

“…….”

“아예 새로 살까 했는데 고르기가 너무 어려워서…. 근데 형은 뭘 입어도 다 예쁠 것 같아요.”

“…아니, 잠깐. 잠깐만요.”

“네!”

상황이 유진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연호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유진이 일방적으로 연호의 말을 끊어 버렸는데도 하나도 불쾌해 보이지 않았다.

“나한테 할 말 있다는 게, 세탁비 얘기였어요?”

“그럼요?”

도리어 반문을 당했다. 당황한 유진이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연호는 대답 없는 유진을 바라보며 꽤나 순수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형한테 궁금한 거 완전 많은데. 다 물어봐도 되는 건가?

“…세탁비는 받은 걸로 할게요.”

봉투를 돌려받게 된 연호가 충격받은 얼굴을 했다. 설마 하니 현금을 거절할 줄은 몰랐다. 역시 연호 눈에 비친 유진은 좀, 이상했다.

“왜요?”

오히려 유진은 그런 걸 묻는 연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사고였잖아요.”

연호에게 나쁜 의도가 없었던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진이 입은 피해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괜찮아요.”

그래도 괜찮았다. 옷이야 버리면 그만이고 기분이 더러웠던 것도 그때뿐으로, 이미 다 끝난 일이었다.

“할 얘기 끝났으면 먼저 가 볼게요.”

이대로 정말 끝인 건가? 충격이 가시지 않은 연호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이 힐끗 연호를 쳐다보더니 이내 완전히 등을 돌리며 돌아섰다.

“조심히 가요.”

도망치듯 자리를 떠나는 와중에도 유진이 다정한 인사를 던졌다. 습관이라는 건 무서워서 이제는 의식하지 않아도 상황에 맞는 친절한 배려가 튀어나오곤 했다. 최소한의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철저한 노력의 결과였다.

진짜? 진짜 이대로 끝이야? 유진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서도 어쩐지 믿기지가 않았다. 마지막에 유진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나는 거라곤 부드럽게 웃는 얼굴과 다정한 말투가 다였다.

혼자 남겨진 연호가 구겨진 봉투를 펼쳐 보았다. 봉투 속 현금이 지금보다 더 많았다면 유진이 이 돈을 받았을까. 잠시 고민해 봤지만 유진이라면 그러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연호라면? 과연 연호는 온몸으로 치킨 양념을 뒤집어쓴 채 상대방을 먼저 걱정해 줄 수 있을까. 대답은 쉬웠다. 연호라면 절대로 그러지 않았을 테다. 아니, 못 했을 테다.

세상에 저런 사람도 있구나…. 유진을 떠올리자 자연스럽게 가슴이 떨렸다. 떨리다 못해 심장이 다 따가울 지경이었다. 연호가 가슴 부근을 움켜쥐었다. 심장이 너무 아팠다.

***

연호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시간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시간이 안 갔다.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싫으나 좋으나 친구들과 함께해야 했지만, 수업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가 뿔뿔이 흩어졌다. 혼자서 생계를 책임지는 엄마에게는 시간과 여유가 없었고, 친구들은 하나같이 집이 멀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다는 건 체념에 가까운 감정이지 위로가 되지는 못했다. 빈집은 조용했고, 혼자서 보내는 시간은 유난히 느리게 흘러갔다. 그렇게 연호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첫 근무지는 중국집이었지만 돌고 돌아 지금의 매장에 정착하게 되었다.

“일찍 안 가 봐도 되니?”

“왜요?”

“공부해야지.”

“저요?”

사장도 연호도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먼저 입을 연 건 사장이었다.

“…지금 시험 기간 아니니?”

“맞는데 집에 가 봤자 할 것도 없어요. 돈이나 벌래요.”

조기 퇴근을 한다고 해서 근무 시간을 제할 리가 없었지만 본인이 그렇다 하니 더 이상 권유할 명분이 없었다. 연호는 빈말로도 서비스 정신이 투철한 직원은 아니었지만 꽤나 성실한 편이었다.

연호가 아르바이트에 성실히 임하는 이유 또한 단순했다. 그냥 일이 좋았다. 시간이 잘 가서 좋았고, 오토바이를 탈 수 있어서 좋았다. 적은 액수라도 생활비를 보탤 수 있어서 좋았고, 스스로 용돈을 벌 수 있어서 좋았다.

사실 그것뿐만이 아니긴 했다. 최근에는 학교에 가는 것보다 아르바이트가 더 기다려졌다.

배달을 마친 연호는 습관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 연호는 중앙 도서관 앞을 지나고 있었다. 얼마 전 우연히 유진을 마주쳤던 장소이기도 했다.

한 번의 우연한 만남 이후 연호는 대학교에 올 때마다 의식적으로 유진을 찾게 되었다. 연호에게는 우연을 바라는 것보다 직접 우연을 찾아 나서는 편이 더 쉬웠다. 가만히 앉아서 바라기만 하는 건 적성에 안 맞았다. 도서관 앞 흡연 구역을 유심히 바라보던 연호는 마침내 우연을 쟁취하는 데 성공했다.

“형!”

유진이 흡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서행하던 오토바이가 완전히 멈춰 섰다.

“오랜만이에요!”

줄곧 다음을 기다려 왔으니 연호의 입장에서는 오늘의 만남이 오랜만일 법도 했다. 물론 연호만의 생각이었다.

“눈이 참…. 좋네요.”

유진은 오늘도 종일 책과 씨름을 하다가 지금 막 바람을 쐬러 나온 참이었다. 이 순간만큼은 마음 편히 쉬고 싶었는데 또다시 방해를 받고 말았다. 상대가 상대인지라 불편함은 배가 되었다. 유진에게 연호는 미확인 물체나 다름없었다.

“형은 몇인데요?”

특별히 눈이 나쁜 게 아닌 이상 시력을 일일이 외우고 다니는 사람이 있을까. 영양가 없는 대화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유진이 알아서 대화를 끊었다.

“글쎄요. 사는 데 지장은 없어요.”

“어…. 궁금한데.”

별로 대단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연호는 눈을 빛내며 유진을 쳐다보고 있었다. 헬멧과 마스크로도 가려지지 않는 호의에 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질문을 던졌다.

“그게 왜 궁금해요?”

“아직 형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서요.”

그러니 유진에 대해 알고 싶다는 말이었다. 숨길 생각도 없고, 숨겨지지도 않는 노골적인 호의였다.

단순한 외모에 대한 호감이 아니라면 남은 건 단 하나, 유진의 형을 알고 있는 경우였다. 그러나 이 또한 연호와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았다. 연호는 지금까지 한 번도 유진의 형을 언급한 적이 없었다. 차라리 형에 대한 걸 물었다면 훨씬 대답하기 쉬웠을 텐데, 유진은 정작 자신의 시력이 정확히 몇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 것까지는 모르겠네요.”

“궁금했는데…. 알았어요.”

그걸로 시력을 주제로 한 대화는 끝이 났지만 끝은 곧 시작을 의미했다. 연호는 유진에게 궁금한 점이 아주 많았다. 겨우 이 정도로 질문이 사그라질 리가 없었다.

“형 담배 많이 피워요?”

“그냥 적당히.”

“형도 담배 피우는구나….”

“…….”

“형은 어디 거 피워요?”

연호는 보기보다 친화력이 남달랐다. 연호가 다가오자 유진은 그만큼 한 걸음 물러났다. 두 사람 모두 서로를 향해 움직였지만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연호가 다시 한 번 유진에게 다가가자 유진이 자연스럽게 연호를 피해 뒤로 물러났다. 그 의미 없는 행위가 몇 차례 반복되었다.

뒤늦게 거리감을 인식한 연호가 이번에도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을 내놓았다.

“나 담배 냄새 안 싫은데. 완전 괜찮아요.”

연호는 유진의 행동을 자신에 대한 배려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모습에 유진이 자기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전부터 생각한 거지만 연호는 보기와 다르게 굉장히 순진한 구석이 있었다. 도대체 유진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안다고 ‘형, 형’ 거리며 거리낌 없이 호의를 드러내는지, 그것부터 거슬리기 짝이 없었다.

연호는 사람을 대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이 사람이 나를 싫어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유진은 이런 유형의 사람을 알고 있었다. 알다 뿐일까. 아주 잘 알았다. 바로 옆에서 평생 동안 지켜봐 왔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사랑받는 게 익숙하거나, 사랑받는 게 당연한 사람들이 그랬다.

유진이 제자리에 멈춰 섰다. 어둠 속에 서 있는 연호는 온통 새카맸다. 헬멧을 비롯해 마스크와 겉옷, 머리카락까지 모두 짙은 검정색을 띠고 있어서 잘 보이지가 않았다.

조준이 필요했다. 유진은 아무런 의심 없이 자신을 올려다보는 새카만 눈동자를 향해 그대로 연기를 뱉어 냈다.

“콜록!”

예고도 없이 정면에서 담배 연기가 쏟아지자 연호가 반사적으로 기침을 했다.

“진짜네.”

“콜록, 네…?”

“담배 괜찮다면서. 괜찮아 보이네.”

연호가 콜록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매캐한 연기 너머로 부드럽게 웃고 있는 유진의 얼굴이 보였다. 연호가 예쁘다고 생각했던 그 미소 그대로였다.

“…이렇게 대놓고 피우는 게 어디 있어요.”

연호가 불퉁한 얼굴로 허공에 대고 손을 내저었다. 연호의 손길 몇 번에 담배 연기가 맥없이 사그라졌다.

“아씨, 완전 얼굴에다가….”

“…….”

“옆에다 뱉어요. 나한테 뱉지 말고.”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듯 꽤나 단호한 어투였다. 저렇게 대놓고 이야기를 할 줄은 몰랐던지라 유진은 조금 놀라고 말았다. 투덜거리며 손을 파닥거리던 연호가 단숨에 유진과의 거리를 좁혀 왔다. 유진이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지만 그마저도 연호에게 금방 따라잡히고 말았다.

“형은 저녁 뭐 먹었어요?”

유진의 의도와 달리 아까부터 끊임없이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유진은 대화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으니 이건 다 연호의 일방적인 노력 덕분이었다. 유진이 연호의 얼굴에 뿜어낸 담배 연기는 모두 공기 중으로 사라져 버린 후였다. 연호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얼굴로 유진을 쳐다보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시선 속에서 유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건 왜요?”

“그냥요.”

저렇게 물으면 보통은 이유를 말하지 못하고 대화가 흐지부지되기 마련이었다. ‘그냥’이라는 별 볼 일 없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당당하게 아무 이유가 없음을 주장하고 나서는 순간, 도리어 말문이 막힌 건 유진이었다. 유진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순순히 사실을 고했다.

“…샌드위치 먹었어요.”

“그게 끝?”

“커피도….”

샌드위치는 간식 아닌가. 연호가 진지하게 고민했다. 유진처럼 키가 커도 위가 작을 수 있는 건지 좀 궁금하기도 했다. 연호는 자신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유진을 새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오늘도 니트 차림이었다. 남우처럼 근육질 몸매는 아니었지만 키가 크고 골격이 커서 니트 종류가 무척 잘 어울렸다. 그조차 어른스러워 보였다.

“에이…. 왜 그렇게 부실하게 먹었어요. 공부하느라 그랬어요?”

유진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자 연호에게서 스스럼없는 감탄이 흘러나왔다.

“와, 형 진짜 멋있다….”

아니었다. 유진은 연호가 생각하는 것처럼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연호가 잘못 생각하는 거였다.

“공부는 얼마나 자주 해요?”

유진이 살면서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괴상한 질문이었다. 질문의 요지 파악이 어려워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섰다.

“그야, 당연히….”

…해야 하는…. 유진이 자신 없이 말끝을 흐리자 연호가 단번에 충격받은 얼굴을 했다. …이렇게 대답하면 안 됐던 건가. 유진이 속으로 자신의 대답을 곱씹어보는 사이, 연호가 생각한 그대로를 입 밖으로 뱉어 냈다.

“왜?!”

“…그럼 안 해요?”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이 잠깐의 대화를 통해 두 사람은 공부에 관한 한 서로의 의견이 일치하는 일은 앞으로도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어차피 연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연호가 본론을 꺼냈다.

“그럼 더 잘 챙겨 먹어야겠네. 내일은 꼭! 맛있는 거 먹어요.”

“…….”

“한남우가 우리 매장에서 시키자고 해도 무시해요. 형 먹고 싶은 거 시켜요.”

연호가 유진의 끼니 걱정을 자처하고 나섰다. 대체 왜? 유진이 담배를 피우다 말고 연호와의 지난번 만남을 떠올렸다. 그때의 연호는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유진의 지갑 사정을 걱정하고 있었다. 유진의 식사도 마찬가지였다. 유진이 무엇을 먹든 연호와는 관계없는 이야기였다. 유진은 여전히 연호에게 돈을 쓰지 않고 있었고, 억지로 잘 보이려 노력한 적도 없었다.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담배가 하릴없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유진은 더 이상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았다. 그저 생각하고 있었다. 연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어…. 배달 밀렸나 보다.”

휴대폰을 확인한 연호가 아쉬워하며 중얼거렸다. 줄곧 긴장하고 있던 유진은 내심 안도했다.

“조심히 가요.”

어떤 상황에서도 발현되고 마는 유진의 다정한 상냥함은 가히 놀라울 정도였다.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는 다정함을 본래의 성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문제였지만 연호에게는 처음부터 불필요한 논제였다.

“형은 말도 예쁘게 하네요.”

연호에게 다정함은 다정함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연호는 유진과 눈을 맞춘 채 씨익 웃어 보였다.

“나 오토바이 잘 타서 괜찮아요. 안전제일!”

다시 생각해 봐도 답은 같았다. 유진은 연호가 기뻐할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그저 이곳은 유진의 학교였고, 연호는 유진의 생활권에 애매하게 들어와 있는 사람일 뿐이었다. 딱 그 정도에 어울리는 대우를 한 것뿐인데 그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유진의 걱정을 자처하고 나서는 건지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형, 그럼 다음에 봐요.”

연호가 붙임성 없게 생긴 얼굴로 붙임성 있게 인사를 건네 왔다. 오토바이 앞에 다다른 연호가 유진에게 다시 한 번 손을 흔들었지만, 유진은 무시했다. 유진이 연호에게 등을 돌린 채 반도 피우지 못한 담배를 비벼 껐다.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처음 듣는 얘기였다. 유진은 들어서는 안 될 이야기를 들은 사람처럼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가, 결심한 듯 뒤를 돌아보았다. 당연하게도 방금 전까지 유진이 보고 있던 광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진의 뒤에는 연호가 있었고, 오토바이가 있었다. 그러니까 저건 연호가 한 말이 맞았다.

오토바이에 올라타는 연호의 동작이 아주 깔끔했다. 멀리서 봐도 몸이 가볍고 날렵한 게 느껴졌다. 어쩐지 기시감이 들었다. 저런 모습을 어디서 봤더라. 유진이 오래전 기억을 더듬었다.

생각났다. 경기장에서 본 형의 모습이 그랬다. 단순한 취미이자 학교 대표로 시작한 형의 시합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 진출로 이어졌고, 유진은 가족들의 손에 이끌려 형의 금메달을 관람해야 했다. 형은 운동도 잘했다. 못하는 게 없었다.

‘4등?’

유진의 성적을 전해 들은 형의 놀란 얼굴이 아직도 생생했다. 유진과 달리 선이 굵고 남자다운 얼굴은 땀이 흐르는 모습조차 잘 어울렸다. 도복을 벗은 형의 몸은 온통 근육으로 되어 있어서, 유진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중학생 때까지 성별에 대한 오해를 달고 살았던 유진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열심히 안 했구나?’

형이 도복을 갈아입으며 말했다. 유진을 보고 있지 않아서 형의 표정까지 볼 수는 없었지만, 형에게 악의가 없다는 건 확실했다.

‘맨날 늦게까지 안 자더니 공부도 안 하고 뭐 했어.’

빠르게 환복을 마친 형이 유진을 내려다보며 장난스럽게 타박했다. 남자다운 얼굴 위로 피어오른 개구진 미소는 누구에게나 쉽게 호감을 사곤 했다.

‘다음에는 더 열심히 해.’

‘…….’

‘가자. 배고프다.’

그 말을 끝으로 형의 메달을 축하하는 기념 파티가 이어졌다. 저녁 식사는 형이 좋아하는 소고기로, 생애 첫 전국 경시대회 출전으로 가벼운 위염 증세에 시달리던 유진은 끝내 고기를 삼키지 못했다. 형의 우승을 기뻐하는 가족들을 바라보며, 유진은 묻고 싶었다.

이 이상 어떻게 열심히 할 수가 있어?

결국 아무에게도 묻지 못했지만, 이제는 안다. 형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 그는 정답만을 말했다. 틀린 건 유진이었다. 유진은 감히 형을 목표로 삼았다. 애초에 그것 자체가 잘못이었다.

유진의 시야에서 연호의 오토바이가 사라질 때쯤, 유진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휴식 시간이 한참 전에 지나 있었다. 이제 그만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시험 기간과 상관없이 도서관에는 언제나 사람이 많았다. 역시, 이 정도 노력은 모두가 했다. 아니, 누구나 했다. 유진이 익숙하게 책을 펼쳤다. 어째서인지 자꾸만 연호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형의 목소리도 함께였다.

오늘도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

다들 관심도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막상 기말고사 철이 되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단체 벼락치기가 시작되었다. 연호도 마찬가지였다. 뒤늦게 교과서를 빌려와 별표를 따라 그리던 연호가 이내 책상 위로 엎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도 심심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지루함을 견디다 못한 연호가 교과서 귀퉁이에 끄적끄적 낙서를 했다. 친구 교과서였지만 연호도 친구도 그런 것에 개의할 부류는 아니었다.

“피방 누가 잡을래.”

아이들은 벌써 시험이 끝난 후 계획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연호는 단숨에 주최 후보자로 승격되었다. 그 분위기에 투덜거림으로 답했다.

“아, 왜. 저번에도 내가 갔잖아.”

“여기서 너보다 집 가까운 사람이 어디 있냐?”

“PC방 자리 잡는 거랑 집 가까운 거랑 무슨 상관인데.”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건 논리가 아니었다. 나만 아니면 돼, 모두의 간절한 염원이 연호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 빨리 방학이나 했으면 좋겠다.”

가장 중요한 PC방 문제가 해결되자 이제는 겨울 방학 타령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연호는 더더욱 공부가 하기 싫어졌다. 친구들의 대화도 한몫했다.

“너 방학하면 학원 다닌다며. 진짜 다닐 거야?”

“다녀야지 그럼 어떡하냐. 이대로는 죽어도 대학 못 가. 자격증이라도 있어야 돼.”

“…너 대학 가게?”

“미친놈아. 그게 그렇게 신기할 건 뭔데.”

친구를 놀리려고 그런 게 아니었다. 정말 놀라서 그랬다. 대학 입시를 위해 자격증을 딴다니, 기껏해야 게임 이야기를 하는 게 전부였던 친구의 입에서 나올 만한 소리가 아니었다.

PC방에서 시작된 대화는 진지한 진로 이야기로 바뀌었다. 이제는 아예 학교에서 나눠 준 입시 책자까지 등장했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연호의 말수가 점점 적어졌다. 이 주제에 한해서는 연호는 앞으로도 계속 할 말이 없을 예정이었다. 한참을 떠들어 대던 친구들이 잠자코 듣고만 있는 연호에게 질문을 했다.

“넌 진짜 대학 갈 생각 없어?”

친구의 물음에 연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말고 원서나 넣어 보지? 솔직히 우리 중에 대학 못 갈 사람은 없어.”

“…진짜? 나도?”

“어디를 가느냐가 문제지.”

“…에이 씨. 그게 그거잖아.”

연호는 내년에 3학년이 된다. 친구들의 대화가 점점 현실적으로 변해 가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연호라고 해서 눈앞의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변화라는 걸, 연호도 잘 알고 있었다.

단지 그냥 겁이 났다.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교실에 앉아 있는 지금도 이런 기분이 드는 걸 보면, 연호는 스스로가 아직 준비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졸업 후 친구들과 뿔뿔이 흩어지고 또 다시 혼자가 될 순간을 받아들일 준비가.

생각이 많아지자 자연스럽게 오토바이 생각이 났다. 연호에게 오토바이는 곧 아르바이트를 연상시켰다.

“벌써 왔니? 공부는 안 해도 돼?”

덕분에 요 며칠 사이 연호의 애사심이 극에 달했다. 출근 시간보다 일찍 오고, 퇴근 시간보다 늦게 갔다. 보다 못한 사장이 오지랖을 부렸지만 연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학교에서 해요.”

“…집에서도 해야 하지 않니?”

“대학 갈 것도 아닌데요 뭐. 청소할까요?”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잖니.”

사장의 말대로 아직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연호는 자신의 미래가 달라질 거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변화에는 비용이 따른다. 연호로서는 자신의 현실과 미래를 적당히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청소할게요.”

청소를 하기 위해 수납장을 열자 성의 없이 쌓여 있던 브로마이드 박스가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한때 아주 잠깐이나마 사장을 기쁘게 했던 한정판 브로마이드였다. 브로마이드를 찾는 주문이 많았던 건 첫날뿐으로, 이제는 남우를 포함한 몇몇 팬들만 꾸준히 주문하는 중이었다.

“내일이면 이벤트도 끝인데 많이 남았네.”

“찾는 사람도 없는데요 뭐. 치워 둘게요.”

“사람 얼굴이 있어서 버리기도 그렇고….”

연호는 사장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하며 이미 치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

외마디 탄식과 함께 사장이 돌연 박수를 쳤다. 연호는 불현듯 이유를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연호가 불안한 얼굴로 브로마이드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역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너, 너…!”

잘못 본 줄 알았건만, 남우의 눈에 일순 눈물이 고였다 사라졌다. 현관문 밖으로 나온 남우가 떨리는 손으로 브로마이드 상자를 받아 들었다. 한 개가 아니었다. 무려 여덟 개였다.

정작 연호는 떨떠름했다. 남우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기분이 나빠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우가 훌쩍이며 감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배달원님…. 그동안 오해해서 미안해요.”

“안 미안해해도 되는데. 이거 사장님이 주라고 해서 주는 거예요.”

“크…! 역시 남자는 의리지! 단골 의리였구나!”

이미 남우는 아무것도 듣고 있지 않았다. 연호를 바라보는 남우의 두 눈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듯 남우가 직접 행동에 나섰다.

“아, 만지지 좀 말…. 아, 미친! 뭐 하는 건데!”

두툼한 몸매를 자랑하는 남우가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있는 힘껏 매달려오자 절로 욕이 나왔다. 이제는 그조차 연호의 말버릇으로 생각하는지, 남우는 기분 나쁜 기색 없이 그저 웃고만 있었다. 현관문 앞쪽에 브로마이드 상자를 곱게 모셔 둔 채였다.

이렇게 좋아서 난리 법석일 줄 알았으면 갖다 주지 말 걸 그랬다. 남우의 품에 갇힌 연호가 몸부림을 쳤다. 한참 실랑이를 하는데, 연호의 시야에 먼지 하나 묻어 있지 않은 깨끗한 흰색 스니커즈가 들어왔다. 신발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이 이상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주인을 닮아 신발도 예뻤다. 신발의 주인을 알아차린 연호가 있는 힘껏 남우를 밀쳐 냈다. 그리고는 유진의 뒤로 달려갔다.

“…쟤 지금 뭐 하냐.”

남우가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유진이 대답 대신 연호를 내려다보았다. 연호는 유진의 뒤에 숨어 있었다.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연호에게 이상한 붙임성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형처럼 아무렇지 않게 거리를 좁혀 오는 모습에는 도무지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았다, 유진에게는 어려운 것들이 연호에게는 너무 쉬워 보였다.

“형. 저 사람이랑 친해요?”

연호가 남우를 가리키며 물었다. 연호는 여전히 유진의 뒤에 숨어 있었다. 유진이 연호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오래된 사이예요.”

“언제부터 알았는데요?”

“중학생 때부터.”

연호가 말을 할 때마다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연호는 뒤에서 유진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있었다. 무서울 만큼 가까운 거리감이었다.

“그게 오래된 거예요?”

“햇수로 거의 10년째니까 이 정도면 오래된 것 같은데.”

유진이 대답과 동시에 연호의 손을 떼어 냈다. 일부러 그랬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아주 자연스러운 몸짓이었다. 물러선 유진이 가볍게 니트를 털었다. 연호의 손이 닿아 있던 부위였다.

“…10년….”

연호가 충격받은 얼굴을 했다. 꼴을 보아하니 유진이 연호를 밀어서는 아니었다. 유진과 남우의 오래된 인연에 놀란 것 같았다.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여서 연호가 못마땅하게 투덜거렸다.

“뭐가 예쁘다고 그렇게 오래 알고 지냈어요.”

“딱히 예뻐서 그런 건….”

“너까지 그러면 내가 뭐가 되냐?”

대놓고 유진의 편을 드는 연호도 아니꼬웠지만, 이를 부정하지 않는 유진이 더 재수 없었다. 차마 화는 내지 못하고 남우가 소심하게 구시렁거렸다.

“둘이 아는 사이도 아닌데 왜 그렇게 유진이한테만 친한 척이에요? 유진이 몇 살인지는 알아요?”

“대학생이면 다 형이죠 뭐.”

곱씹을수록 이상한 말이었다. 남우가 다시 한 번 연호의 말을 되새기는 사이 일찌감치 이해를 마친 유진이 사실 확인에 나섰다.

“설마 고등학생이에요?”

“그런데요.”

“저게?!”

물건 취급을 당하고도 남우에게 반격하지 못한 건 모두 유진 때문이었다. 유진은 처음 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유진도 많이 놀란 것 같았다.

“고등학생….”

유진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 사실이 쉽사리 믿기지 않는 듯했다.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유진의 반응에 연호가 뚱하게 투덜거렸다.

“어리네.”

편견이라는 건 참 신기해서, 나이를 알고 나니 새삼 연호가 어리게 느껴졌다. 겉으로는 그래 보이지 않는데도 그랬다.

자신이 어린 건 사실이었기에 연호는 유진에게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쳐다보는 유진을 멀뚱멀뚱 올려다볼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연호가 유진의 시선을 피하는 일은 없었다.

“와, 존나 노안….”

남우가 끼어들어 말했다. 연호는 대번에 팩 쏘아붙였다.

“그쪽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저게 진짜.”

연호는 오늘도 대놓고 유진을 편애했다. 어째서인지 남우는 분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씩씩대는 남우는 신경 쓰지도 않고 연호가 말을 이었다.

“맞다. 나 형한테 물어볼 거 있는데.”

“안 알려 줄 건데.”

“너한테 안 물어볼 건데요. 유진이 형한테 물어볼 건데요.”

연호가 대놓고 유진을 지목했다. 시선은 여전히 유진에게 향해 있는 채였다. 연호가 고등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유진은 연호의 행동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종잡을 수 없는 면이나 당돌한 점, 아직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겁 없는 모습까지 전부 그 나이다웠다.

물론… 유진은 고등학생 때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맨날 404호에서 뭐 해요?”

고등학생인 연호에게 대학 생활은 미지의 세계였다. 아무런 의도도 느껴지지 않는 순수한 호기심과 연호의 나이가 유진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렸다. 유진이 순순히 대답했다.

“선거 준비해요.”

“무슨 선거요?”

“내년에 있을 총학생회 선거.”

유진의 말이 꽤나 생소하게 다가온 모양이었다. 연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행동조차 유진에게는 신기할 뿐이었다. 연호는 자신이 모르는 게 있어도 창피해하거나 어려워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드러내는 데 아무런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 유진과는 정반대 성격이었다.

“대학교에는 과가 많잖아요.”

“네.”

“그런 거 상관없이 대학교 전체의 회장을 뽑는 게 총학생회 선거예요.”

“…와.”

“…….”

“완전 멋있어요!”

아직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닌데 연호가 다짜고짜 눈을 빛내며 유진을 올려다보았다. 덕분에 유진은 이번에도 간신히 착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 패턴이 벌써 몇 번째였다.

아직도 유진은 연호의 의중을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연호는 어리다. 지금이야 어리니까 뭘 모르고 유진이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눈을 빛내고 있지만 결국에는 연호도 깨닫게 될 테다.

유진은 보잘것없는 사람이다. 그건 유진이 가장 잘 알았다.

딸을 낳고 싶어 했던 부모님의 바람대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유진이 결코 딸이 될 수 없는 것처럼, 겉모습이 아무리 화려해도 본질은 속일 수 없었다. 유진은 태어난 순간부터 모두의 기대를 무너뜨렸다. 연호가 유진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모르겠지만, 유진은 틀림없이 연호를 실망시킬 자신이 있었다.

실제로도 유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켜 왔다.

‘네가 유민이 동생이라고?’

‘어쩜. 둘이 하나도 안 닮았네.’

그 중에서도 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일이 가장 쉬웠다.

‘정말 아들이에요? 어머, 너무 아쉽다.’

‘둘째가 딸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필이면 남자애가 저래서 고민이 많으시겠어요.’

그 다음이 유진의 가족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유진의 부모님은 딸을 갖고 싶어 했고. 신은 그들의 바람을 반만 들어주었다. 유진의 가족을 알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그 사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래도 저런 첫째가 있으니 든든하겠어요.’

모든 건 언제나 형으로 귀결되었다. 익숙한 결론이었다.

“형이 회장이에요?”

과연 연호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유진은 연호가 자신에게 실망하게 되는 날이 머지않았으리라 확신했다. 그 마지막 모습을 기억해 두려는 듯, 유진은 가만히 연호를 눈에 담았다. 연호는 여전히 눈을 빛내며 유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회장 후보자예요.”

그게 그거 아닌가. 연호는 의아해하는가 싶더니 혼자서 어떻게 결론을 내린 건지 금세 찬사를 드러냈다.

“형이랑 잘 어울려요.”

“…후보자라니까요.”

“에이. 당연히 형이 되겠죠.”

“…….”

“형 같은 사람이 해야지 누가 해요. 와, 진짜 잘 어울려.”

연호가 도대체 무슨 근거로 자신을 맹신하는지 모르겠지만, 본인이 그렇다니 유진이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저거 완전 빠돌이 아니야?”

잠시 잊혀 있던 남우가 제3자로서 꽤나 객관적인 평가를 내렸다. 남우가 잊을 만하면 존재감을 드러내자 연호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그건 너고.”

“…야 이 새끼야!”

불시에 공격을 당한 남우가 금방이라도 뛰어들 듯 얼굴을 붉혔지만 두 사람이 부딪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제 집을 찾아가는 다람쥐처럼 연호가 냉큼 유진의 뒤에 숨었다. 꽤나 다급했는지 유진의 허리를 붙잡는 손길이 우악스럽기 짝이 없었다.

“누가 누구한테 빠돌이래. 자기 소개하는 줄.”

“너 조용히 안 해!”

난데없는 대접전이 펼쳐졌다. 연호가 유진을 방패 삼아 이리저리 남우를 피해 다녔다. 유진의 니트를 움켜쥔 연호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이번에는 아까처럼 쉽게 떼어 낼 수가 없었다. 유진이 애써 당혹감을 삼켰다. 그때였다.

킁, 옆구리가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시선을 내리자 유진의 흰 니트와 대조를 이루는 연호의 새카만 헬멧이 보였다.

“와….”

충격을 받은 듯 연호가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유진이 자기도 모르게 연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형한테 좋은 냄새 나요.”

“…….”

“형은 왜 냄새도 좋아요?”

이쯤 되니 ‘절대적’이라는 단어 이외에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연호가 유진에게 보이는 호의가 그랬다.

“…진짜 형 같은 사람도 있구나….”

연호가 감탄하듯 중얼거리며 빤히 유진을 올려다보았다. 형광등 불빛 아래 반질반질 빛이 나는 새카만 눈동자가 오롯이 유진을 향해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당황한 기색 없이 연호가 유진을 올려다보며 웃었다. 보고 있는 이로 하여금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미소였다. 내가 정말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그런 착각.

자꾸 착각에 빠지는 스스로가 무서웠다. 유진은 애써 시선을 피했다.

***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시험공부를 한답시고 의미 없는 글자들을 끄적거릴 때에는 하루가 유난히 느리게 느껴졌는데, 막상 시험이 시작하자 순식간에 모든 게 끝나 있었다. 역시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잠자코 연호의 이야기를 듣던 친구가 되물었다.

“시작의 반이 그런 뜻은 아니지 않나?”

“그럼 뭔데?”

“…음.”

연호의 물음에 친구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연호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준비됐지?”

“왜 맨날 나만 가는데.”

“너희 집이 제일 가깝잖아.”

“그러니까 그게 무슨 상관인데.”

이번에도 역시나 연호의 불만을 새겨듣는 이는 없었다. 시험 마지막 날, 그것도 마지막 과목만을 남겨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OMR 카드는 뒷자리의 친구가 대신 제출하기로 했다. 이제 컴퓨터용 사인펜만 주머니에 넣으면 언제라도 교실을 나갈 수 있는 상태였다.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지, 어차피 안 될 놈이기에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 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연호는 무사히 학교를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PC방이 몰려 있는 대학가에 가까워질수록 교복을 입은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연호가 이 일대의 유일한 고등학생이었다.

평일, 그것도 이른 시간에 연호는 가방도 없이 주머니에 있는 컴퓨터용 사인펜을 만지작거리며 대학가 한복판을 걷고 있었다. 교복을 입고 있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갖춰 입은 건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남학생들 사이에서 필수 아이템이 된 검정마스크까지 쓰고 있으니 양아치도 그런 양아치가 없어 보였다.

그것도 모자라 한창 기말고사 시즌에 일찌감치 PC방에 와 있는 꼴이 연호가 남들 눈에 어떤 학생으로 보일지는 불 보듯 뻔했다. PC방 사장이 연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알 만하다는 듯, 그가 자연스럽게 하대를 했다.

“혼자?”

“여섯 명이요. 한 시간씩 미리 넣어 주세요.”

연호는 언제고 취소될 수 있는 구두 예약을 하는 대신 미리 한 시간분을 결제해 놓는 치밀함을 선보였다. 그때였다. 대학생 손님 하나가 허겁지겁 들어왔다.

“여기 프린트 돼요?”

“아이고, 그럼요. 어서 오세요. 저쪽에 앉으시면 됩니다. 저리 좀 비켜 있어.”

사장이 그대로 연호를 쫓아냈다. 비켜 있으라고 해도 딱히 앉아서 기다릴 만한 곳도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연호가 출입문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창가로 향했다. 이대로 친구들이 올 때까지 시간을 죽일 셈이었다.

“xx대 학생이에요?”

“네.”

“아이고, 이렇게 공부 잘하는 아들을 둬서 부모님이 얼마나 자랑스러우실까.”

특별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손님이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요즘 xx대 학생들 무슨 일 있어? 왜들 이렇게 안 와. 우리 프린트 값이랑 저 밑에 제본집이랑 별 차이도 없더만.”

언제나 수업 시작 전에 긴박하게 출력을 해 가는 학생들에게 접근성은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건물 5층에 있는 PC방과 달리, 대부분의 제본집들이 1층에 있었다. 지금처럼 제본집에 손님이 너무 많은 경우를 제외하면 굳이 가격도 비싼 PC방까지 올라갈 필요가 없었다.

“종이 때문인가? 학생이 생각하기에는 이유가 뭐인 것 같아?”

그렇다고는 해도 차마 사실대로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색하게 사장의 시선을 피하던 손님이 때마침 연호를 발견했다.

“종이는 다 비슷한데…. 좀, 시끄러워서요.”

“아니, PC방이 다 시끄럽지 그럼.”

“그게 아니라…. 산만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래도 PC방에는 애들이 많으니까….”

시선의 끝에는 연호가 있었다. 마침내 대화를 끝내는 데 성공한 손님이 프린트를 챙겨 들고 후다닥 PC방을 나갔다.

“여섯 명 온다고?”

창가에 기대서 휴대폰 게임을 하던 연호가 고개를 들었다. 친히 연호를 찾아온 사장의 분위기가 어쩐지 험악했다. …내가 뭐 잘못했나? 놀란 연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모습에 사장이 단번에 인상을 구겼다.

“버릇 하고는…. 여기 고등학생들만 오는 데 아니야. 시끄럽게 하지 말고 바닥에 침 뱉지 말고.”

“안 뱉어요.”

“걸리기만 해 봐. 당장 바닥 청소 시킬 줄 알아.”

“안 뱉는다니까요.”

“너 어디 학교야?”

연호의 말은 듣지도 않고 다짜고짜 묻는 말이 그거였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른이 물으니 연호는 순순히 학교명을 말했다. 역시나, 사장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답변이었다. 그저 그런 특성화 고등학교에 다니는 양아치와 수업 준비를 하러 온 명문대생은 그 존재만으로도 극적인 대비 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들은 이야기가 있는 사장이 연호의 면전에 대고 끌끌 혀를 찼다.

“커서 뭐가 되려고….”

사장의 목소리는 빈말로도 작다고 할 수 없어서 바로 앞에 있는 연호에게도 아주 잘 들렸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여기만큼 핫도그와 라면이 맛있는 PC방도 없었다. 무엇보다 연호는 이런 상황에 익숙했다.

어른들은 대체로 연호를 좋아하지 않았다. 연호라고 해서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퉁명스러운 태도도 문제였지만 연호는 겉모습부터 오해의 소지가 다분했다. 결국 안과 밖이 모두 문제라는 소리였는데, 이 모든 걸 일일이 뜯어고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남들이 뭐라 생각하든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닌 거면 됐지, 뭐. 연호가 대수롭지 않게 방금 전 일을 흘러 넘겼다. 그렇지 않으면 방법이 없었다.

연호가 습관처럼 휴대폰 게임을 재개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재미가 없어서 금세 접었다. 답장 없는 친구들을 기다리다가 의미 없이 창밖을 내다보는데, 인영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남자는 남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올라갈 정도로 키가 컸고, 겨울 공기와 어울리지 않는 화사한 분위기를 풍겼다.

연호는 이런 분위기를 가진 사람을 딱 한 명 알고 있었다. 연호가 재빨리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외쳤다.

“형!”

음료수를 마시던 사장이 사레가 들릴 정도로 큰 소리였지만 정작 당사자는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연호가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외쳤다.

“유진이 형!”

효과가 있었다.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는지 빠르게 걸음을 옮기던 유진이 우뚝 멈춰 섰다. 연호의 목소리가 들리긴 한 듯 유진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게 보였다.

“형! 여기요!”

유진이 연호의 말대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유진의 얼굴이 온전히 연호에게 향했을 때, 연호는 비로소 유진과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했다. 그게 그렇게 기뻤다. 연호가 유진을 향해 있는 힘껏 손을 흔들었다.

유진이 연호를 무시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시끄럽게 뭐 하는 짓이야?”

보다 못한 사장이 창틀에 매달려 있는 연호를 잡아당겼다. 연호가 다시 창밖을 내다봤을 때 이미 유진은 사라지고 없었다.

…분명히 본 것 같은데. 연호에게는 유진이 너무 잘 보여서 유진이 연호를 못 봤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연호의 관점에서는 그랬다. 유진이 바빠 보였다거나 혹은 정말로 보지 못했을 경우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연호는 이번에도 유진을 보면서 유진을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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