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티아 (113)화
(113/130)
그라티아 (1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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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그들은 거실의 작은 소파에 함께 앉았다.
칼릴은 몸을 비스듬히 돌리고 셔츠를 벗었다. 그의 나신에서는 아직까지도 희미하게 피 냄새가 맴돌았다.
아리안은 그의 가슴팍에 감긴 붕대를 풀고 몇 시간 전에 꿰맸던 상처를 다시 살폈다. 상처는 잘 아물고 있었다. 그는 칼릴에게 진통제와 소염제를 먹이고 실밥을 뽑아냈다.
아리안을 잠자코 바라보던 칼릴이 입을 열었다.
“날 숨긴 게 발각되면 제아무리 너라고 해도 로마 공회에서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텐데.”
아리안은 상관없어, 하고 생각했지만 대답하지는 않았다.
정오가 되자 눈발은 더 거세졌다.
그들은 시리얼에 우유를 부어 먹었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눈이 그쳤고 구름이 약간 걷혔다. 천둥은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라디오를 틀자 일기 예보가 나왔다. 기상 캐스터는 빠르고 흥분된 어조로 기상 이변이 세기말적이며 이 폭설은 며칠을 더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세기의 도래를 불과 삼 주 앞둔 지금, 환경학자들은 이러한 기상 이변이 프레온 가스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