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그는 여러 번 아리안의 몸속을 얕게 파고들었다가 빠져나가기를 반복했다. 아리안의 가랑이 사이가 팽팽하게 긴장되었다가 기어이 힘이 빠져 몸이 축 늘어졌다. 칼릴은 물을 담은 자루처럼 늘어진 몸에 키스를 퍼부었다. 이제 칼릴은 더 깊게 아리안의 몸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아리안이 젖은 눈을 들어 칼릴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다리는 한껏 벌어져 있었고 더 이상 발기되지 않을 정도로 혹사당한 페니스가 가랑이 사이에 늘어져 있었다. 그 끝은 짙은 분홍색이었으며 선단은 체액으로 번들댔다. 그 치태보다 칼릴을 흥분시킨 것은 아리안의 눈이었다. 무언가를 호소하는 듯한 처량한 눈이 칼릴을 멀거니 보고 있었다. 칼릴은 그 눈을 마주한 순간 더는 욕정을 참을 수 없었다.
“후우, 제기랄, 하아, 하아….”
그는 거칠게 헐떡거리면서 아리안의 몸속에 절반 정도 자신을 담근 채로 사정했다.
그 절정은 예기치 않았던 만큼 짧고 강렬했다.
자신의 몸속에서 남근이 오르가즘으로 꿈틀대는 것을 느낀 아리안이 힘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칼릴은 그 턱을 움켜잡아 키스했다. 키스하면서 허리를 움직여 더 아리안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사정을 마친 지 몇 초 되지 않아 그는 다시 발기했다. 남근이 발기하며 귀두의 굴곡이 뚜렷해졌다. 그것이 미끈하게 아리안의 몸을 갈랐다.
“아…!”
칼릴이 그의 입술을 놓아준 순간 아리안이 목을 젖혔다.
“칼릴, 제발….”
아리안이 두 손으로 칼릴의 어깨를 감싸 잡았다.
“고리를, 고리를 써 줘…. 너무 깊어, 아파….”
칼릴은 그 애원을 무시했다.
그는 아리안의 양다리를 번쩍 들어 올려 어깨에 짊어지고 삽입해 들어갔다. 두툼하게 발기한 페니스가 꽉 맞물리는 나사처럼 아리안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히, 익… 흐으, 아, 아아아아…!”
배를 채우는 압박감에 아리안의 눈꼬리에 눈물이 고였다. 속눈썹이 팔랑거리면서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칼릴이 몸을 숙여 그것을 빨아 마셨다.
한참이 지나 칼릴이 그에게서 빠져나왔을 때, 아리안은 이미 절반쯤 의식을 잃고 있었다. 칼릴은 아리안의 벌어진 다리 사이를 집요한 눈초리로 관찰했다. 깊은 곳까지 벌어진 구멍으로 정액이 흘러내렸다. 칼릴은 그곳이 다시금 점처럼 조밀하게 오므라들 때까지 바라보았다.
“하아, 하아… 아….”
그제야 아리안이 나지막한 신음 소리와 함께 의식을 되찾았다.
얼굴은 벌겋고 손발 끝은 분홍색이었다. 젖은 눈과 입술은 반질댔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은 그의 피부 위에서 선명하게 돋보였다.
칼릴은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아리안은 저항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칼릴의 왼쪽 가슴팍을 바라보았다. 다차원 무기가 남긴 날카로운 검상을 중심으로 크게 일그러진 흉터가 보였다. 그 흉터는 그의 왼쪽 반신을 뒤덮고 어깨에서 끝났다. 거기서부터는 온갖 종류의 조잡한 문신들이 이어졌다.
아리안은 그것을 향해 무심코 손을 뻗었다. 칼릴이 그 손목을 낚아채 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아!”
아리안이 놀라 비명을 질렀다. 칼릴은 비명 지르는 입술에 키스했다. 그들의 몸이 다시 겹쳐졌다.
칼릴은 좁은 침대가 불편하면서 동시에 편하다는 생각을 했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그들은 포개져 있어야만 했다.
“치료는….”
아리안이 기어이 또 칼릴의 상처를 향해 손을 뻗으면서 물었다. 칼릴은 이번에는 그 손가락 끝이 상처를 어루만지게 내버려 두었다.
“치료는 했어?”
아리안이 물었다.
칼릴은 그 질문이 우스웠다.
“지금 네가 하고 있지.”
칼릴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아리안의 손목 안쪽을 더듬었다. 연한 피부를 간지르듯 어르는 손길에 아리안의 목이 움츠러들고 숨이 가빠졌다. 가슴팍이 팔딱거린다. 칼릴은 그 심장 박동을 잠시 느끼다가 다시 아리안의 몸 위로 올라갔다.
아리안은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다음 날 칼릴은 아리안의 방을 옮기게 했다. 조금 더 그의 침실에서 가까운 방이었다. 그리고 다시 다음 날, 아리안은 한 번 더 방을 옮겼다. 또 다음 날, 다음 날, 그리고 그다음 날도… 열흘이 채 가기 전에 칼릴은 아리안을 자기 침실까지 끌어들였다. 칼릴의 침실에서 불과 열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은 아리안의 새로운 방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쓰이지 않게 되었다.
***
식탁은 조용했다. 분위기는 차분했고 대화 대신 식기 부딪치는 소리만 식탁 위를 맴돌았다.
새로운 군대 배치에 따른 보급로를 결정하는 문제로 격한 토론을 벌인 끝에 결론이 내려진 것이 고작 한 시간 전이었다. 내일부터는 다시 바빠질 것이다.
모두가 지쳐 있었으므로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을 깬 것은 오스발이었다.
“신관은 언제부터 치료를 다시 할 거랍니까?”
그 질문에 닛사의 미간이 일그러지고 부르조가 오스발을 쳐다보았다.
“신관이라니?”
부르조 노인이 먹던 비둘기 다리를 내려놓고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무도 그 혼잣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칼릴을 포함해서.
“전하.”
오스발이 조금 더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관에게 기도실을 내주셔야지요. 사제복을 입히고요. 언제까지 전하의 은혜에 기대어 지내게 둘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뻔한 소리였다.
파살리아에서 온 정체 모를 소년을 총애한다는 소문이 자칫 퍼지기라도 한다면 사람들의 의심을 살 것이다. 오스발의 말은 어차피 뻔한 상황인 거 겉치레라도 하자는 의미였다.
“아니. 신관이라니?”
부르조가 다시 웅얼댔다. 마찬가지로 대답은 없었다.
칼릴은 자신의 행동에 일일이 당위성을 부여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가 아리안을 자신의 방으로 끌어들이자마자 그의 가까운 부하들은 모두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리안이 칼릴의 침대에서 밤을 보내게 된 나날도 벌써 열 손가락을 넘어가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괜찮았다. 아직까지는.
“신관도 어차피 도르센 출신 아닙니까? 의심하는 자는 있겠지만… 뭐. 이대로라면 더 그렇겠지요.”
오스발이 그렇게 말을 마치고 칼릴을 바라보았다.
분위기가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칼릴이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식탁 모서리를 툭, 툭, 가볍게 두들겼다. 명백한 불쾌함의 표시였으나 충신은 물러나지 않았다.
도르센에는 신전이 없었다. 오라스테스의 전쟁이 끝난 뒤 파살리아나 다른 지역에서 신전이 꽤 최근까지 명맥을 이어 온 것과 달리 도르센의 신전들은 대부분 전쟁 직후 몰락했다. 전쟁에서 정화술을 쓸 수 있는 사제들이 거의 다 죽은 탓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전쟁은 끝났지만 도르센 인들은 여전히 방벽 너머의 그림자 마수들을 상대로 싸워야만 했다. 정화술을 쓸 수 없는 사제는 전장에 필요하지 않으니 도르센에서 사제의 필요성도 줄어들었다. 마법사나 의사들이 그 자리를 대신 채웠다. 남은 적은 숫자의 신전도 점점 축소되었고 서른 해가 지나며 더 줄어들어 이제는 자취를 감췄다.
도르센의 주인들은 신전을 허물어 병영과 창고를 지었다. 요새에 남은 것은 몇 개의 작은 기도실뿐이었다.
침묵하던 닛사가 입을 열었다.
“제가 신관의 거취를 챙기겠습니다.”
칼릴이 그녀를 거의 노려보다시피 응시했다. 닛사는 시선을 내리깔았으나 꿋꿋하게, 굴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전하. 오스발의 말이 맞습니다. 기도실이 필요하겠지요. 치료에 대한 얘기도 다시 나눠야 하구요.”
“부르조.”
칼릴은 그녀를 무시하고 고개를 돌렸다. 의문으로 눈동자만 굴리고 있던 노인이 펄떡 고개를 들었다.
“네, 네. 전하. 말씀하시지요.”
“네게 신관의 거취를 맡기겠다.”
“예, 예?”
부르조가 눈을 굴렸다. 닛사의 눈썹이 꿈틀거리고 오스발이 입을 꾹 다물었다. 부르조가 칼릴의 눈치를 살피다가 고개를 숙였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성심껏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칼릴은 거기서 말을 끝냈다. 그가 두 손으로 식탁을 짚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식당을 떠나갔다. 그가 떠나간 뒷걸음에 냉랭한 분위기만 맴돌았다.
남은 세 가신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결국 부르조가 어색한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손수건으로 입을 닦으며 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커흠. 흠! 그럼 나는 대공 전하의 명령을 따르러 이만….”
그는 쫓기듯이 식탁 앞을 떠났다. 공기가 묵직한 바윗덩어리처럼 폐를 내리누르는 듯한 식당에서 벗어난 노인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허 참, 도대체 무슨 일들인지….”
그가 중얼거리려던 차였다.
“부르조.”
뒤에서 닛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인이 턱을 당기며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샌가 그를 따라 나온 닛사가 거기 서 있었다. 닛사는 외모로 보기에는 부르조보다 스무 살은 젊은것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따라서 부르조는 닛사를 공손하게 대했다. 닛사 또한 젊은 시절부터 대공을 섬겨 온 부르조에게 존중을 표했다. 아무튼 두 사람은 힘을 합쳐 한 주인을 모시는 같은 입장이 아닌가?
“부르조. 우리 얘기 좀 합시다.”
그러면서 그녀가 앞서 걸었다. 부르조 또한 마침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에 당장 그녀의 곁으로 따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