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티아 (85)화 (85/130)

#85

아리안이 눈을 감았다. 칼릴의 손이 아리안의 턱을 잡아 좌우로 가볍게 흔들었다. 그 기세를 못 이겨 아리안은 결국 눈을 다시 떴다. 칼릴이 그의 눈을 내려다보면서 천천히 삽입했다가 뒤로 물러나기를 거듭했다.

“으으응, 아으, 아, 아. 아. 아. 아!”

“후우, 후욱…!”

칼릴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양쪽으로 벌어진 어깨가 들썩였다. 굵은 목 줄기로 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손가락을 목깃 안쪽으로 집어넣어 힘껏 잡아당겼다. 셔츠가 찢어지며 쇄골 사이가 드러났다. 그곳으로 땀이 고여 있었다.

그가 아리안의 엉덩이 양쪽을 와락 움켜잡았다. 그러고는 구멍이 따라서 벌어질 정도로 거세게 벌리고서는 자기 몸을 더 붙였다. 삽입이 약간 더 깊어지며 그의 얼굴이 마치 고통스러운 것처럼 쾌감으로 일그러졌다.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그가 몸을 물려 삽입을 풀었다. 절반쯤 들어갔던 것이 느리게 빠져나오며 아리안의 엉덩이가 요동쳤다.

“아으으응…!”

칼릴은 그 엉덩이를 세게 붙잡아 고정시키고 자신의 성기를 그 사이에 다시 눌러 비볐다. 그리고 한 손으로 자신의 것을 빠르게 수음했다. 도무지 흥분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는 이것을 강간으로 만들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아리안은 이 짓을 좋아했다. 그 숱한 밤이 전부 연기였다고? 그는 그 정도로 멍청이가 아니었다.

그는 아리안의 몸 위에서 사납게 헐떡거리며 한참 자위했다. 그 끝에 아리안의 사타구니로 정액이 쏟아졌다. 아리안이 멍한 얼굴로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칼릴의 온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가 호흡을 고르면서 아리안의 아랫배를 더듬어 쏟아진 정액을 긁었다. 그것이 벌어진 가랑이 사이로 흘러 떨어지며 회음부를 타고내렸다.

칼릴이 갑작스레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는 양손으로 거칠게 자신의 벨트를 풀어 던지고 튜닉을 벗었다. 그리고는 벗은 튜닉을 바닥에 깔고 그 위로 아리안의 몸을 굴렸다. 아리안은 깩 소리도 내지 못하고 튜닉 위로 납작하게 엎드렸다. 칼릴이 답답한 듯이 셔츠 목깃을 더 넓게 당겨 찢으며 아리안의 등 위로 덮쳐 올라갔다. 찢어진 셔츠 사이로 가슴팍이 드러났다. 두툼하게 근육이 오른 가슴팍은 땀으로 번들거렸다. 그는 아리안의 몸을 등 뒤에서 끌어안고 무게를 실어 납작하게 눌렀다.

“하아, 하아, 무거워. 무거워….”

아리안이 속삭였다. 그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사실 저항해 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만 칼릴은 다르게 생각했다.

칼릴은 아리안의 엉덩이 위로 자신의 하반신을 바짝 붙였다. 엉덩이 틈에 남근을 짓누르며 한 손으로 아리안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손가락에 입술이 걸렸다. 포동포동한 입술 틈으로 손가락을 넣었다. 아리안이 예전처럼 그것을 빨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아리안은 그러는 대신에 그것을 뱉어 내려고 입술을 우물거렸다.

“그만해… 내가 잘못했어….”

그는 여전히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칼릴은 대답하지 않았다. 분기와 성욕이 같이 폭발했다. 남근이 곧 다시 솟아올랐다.

그는 숨을 몰아쉬면서 아리안의 몸을 비스듬히 옆으로 돌리며 다리를 벌어지게 했다. 바닥은 딱딱했다. 적어도 튜닉이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막아 주기는 할 것이다.

그는 다시 아리안의 몸속으로 삽입해 들어갔다. 구멍이 꽉 조여지며 귀두를 빨아들였다. 쾌감이 뒤통수를 찡 울렸다. 그의 숨이 더 거칠어졌다.

아리안이 훌쩍거리면서 손을 뒤로 뻗어 칼릴의 허리께를 더듬었다. 글쎄. 만류의 의도였을지는 모르겠으나 칼릴에게는 깃털 같은 애무로밖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 이 순간에는 더더욱.

“미안해, 그만해, 흐으, 무서워. 내가 잘못했어… 나중에, 나중에 하면 안 돼? 나중에 다시… 지금은 안 돼….”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그를 설득하려는 모양이었다. 칼릴은 넘어가지 않았다.

“무서워. 무서워….”

아리안이 계속 흐느꼈다.

칼릴은 아랑곳 않고 서서히 삽입을 깊게 했다.

아리안의 몸이 굳어지자 멈춰서 물러났다가 몸이 이완되면 다시 그 안으로 침입했다.

삽입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칼릴은 영원 같다고 느꼈다. 지옥에서, 또는 천국에서의 영원.

둘 다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젖은 몸통은 빈틈없이 맞붙은 채였으며 가장 은밀한 부위가 서로 합쳐져 있었다. 칼릴은 자신의 몸에 남아 있는 천 조각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졌으나 그것을 떼어 낼 여유는 없었다.

“후으, 후욱….”

잇단 호흡이 쏟아졌다. 칼릴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목에 힘줄이 선명하게 도드라지고 팔뚝으로 핏줄이 타고 올랐다.

뭉툭한 선단이 아리안의 좁은 몸속, 구부러지는 그 끝에까지 도달했다. 아리안의 두 뺨은 붉었고 눈은 몽롱했다. 눈꼬리에 눈물이 그렁거렸다. 속눈썹은 이미 축축했다. 다리 사이처럼.

“그… 만….”

아리안이 가냘픈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제 안 들어가… 이제는… 아…!”

칼릴은 들은 체하지 않았다. 그는 아리안의 허리에 팔을 감아 아랫배를 들어 올리며 단번에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남근이 여태까지 열린 적 없던 좁은 몸속을 비집어 열었다. 아리안의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졌다. 녹색 눈에 초점이 짧게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비명 대신에 희멀건 몸뚱이가 꿈틀꿈틀 경련했다.

칼릴은 그 순간 아리안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아리안을 뒤에서 꽉 덮어 누른 채 손으로 아리안의 턱을 잡아 돌렸다.

얼굴 절반이 드러나며 투명한 눈물 막으로 덮인 한쪽 눈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입술 반쪽이 달싹였다. 칼릴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얼굴을 더 가까이 가져다 댔다. 입술이 붙을 듯이 가까워졌다.

“미안해….”

고작 그 말이었다.

“그날 당신에게 약을 쓴 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미안하면 해독제를 가져와.”

칼릴은 낮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으읏… 그건….”

아리안의 눈에서 에메랄드 부스러기 같은 눈물방울이 굴러떨어졌다. 그 알갱이에 그의 녹색 동공 표면이 반사되며 그것은 진짜 에메랄드처럼 보였다.

“그 약은 일회성이었어. 약효가 남아 있을 리 없어… 그 이후로도… 그랬잖아. 약을 쓴 건 내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칼릴은 더 기다리지 않고 곧장 머리를 내려 변명을 주워 삼키는 그 입술을 덥썩 눌렀다.

어차피 당장 아리안이 해독제를 가져온다 하더라도 지금 이 짓을 멈출 수는 없을 것이다.

아리안의 입술 사이에서는 말도 안 되는 맛과 향기가 났다. 칼릴은 홀린 듯이 그의 입술과 혀를 빨아들였다. 허리가 저절로 쾌감을 쫓아 움직였다.

맞붙은 입술 사이로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칼릴이 아리안의 몸속으로 파고들 때마다 아리안의 몸이 꿈틀거렸다. 칼릴은 그를 꽉 끌어안은 채 느릿느릿 움직였다. 끝없는 거짓말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이것을 강간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이 짓은… 한 번으로 끝나지도 않을 테니까. 굳이 일을 힘들게 만들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칼릴은 아리안의 몸을 완전히 돌려 더욱더 깊게 키스했다.

입술이 붙으며 아래쪽도 함께 붙었다. 하나로 녹는 듯했다.

아리안의 벌어진 다리가 허공에서 흐느적거렸다. 칼릴은 그 다리를 잡아 자신의 가슴팍을 끌어안게 했다. 그리고 양손을 아리안의 등 밑으로 밀어 넣어 딱딱한 바닥이 그의 등을 상처 입히지 않도록 들어 올렸다.

“흐으, 으응, 으, 으읏, 아, 아, 아, 아아, 아….”

아리안이 엉덩이를 조이면서 그를 쥐어 짜냈다. 쾌감이었다. 그가 아리안의 가장 깊은 곳으로 치달릴 때마다 아리안이 몸을 비틀면서 다리로 그의 가슴팍을 더 끌어당겼다.

그럴 줄 알았어.

칼릴은 그렇게 속삭였다.

네가 이 짓을 좋아하는 걸 알았어.

그 말이 입 밖으로 실제로 나갔는지 생각에서 그쳤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정사는 길고 집요했다. 그만큼 달콤했으니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 짓이 끝났을 때 아리안은 기절하듯이 의식을 잃었다.

칼릴은 여전히 그의 몸에 파묻힌 채 달착지근한 여운을 즐겼다.

그는 손을 뻗어 이마에 달라붙은 아리안의 붉은 머리카락을 떼어 넘겼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은 약간 버석거렸다. 피부에는 윤기가 돌았다. 지난 3년간 단 한 번도 맛본 적 없는 안정감이 그를 깊게 감쌌다.

‘그 마녀의 말이 이번만큼은 맞았어.’

그는 아리안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의 손은 그가 의식하지 않은 사이에도 멈추지 않고 아리안의 머리카락과 얼굴을 쓰다듬었다.

벽돌 틈을 웅웅거리는 바람이 통과했다. 냉기가 스며 나왔다.

칼릴은 바닥에 깔린 옷자락을 들어 아리안의 벗은 어깨를 덮었다가, 다음에는 자신의 가슴팍 안쪽으로 더욱 깊게 아리안을 끌어당겼다가, 마지막으로는 그를 그냥 튜닉으로 감싸 안아 들었다.

그는 좁은 감옥을 빠져나왔다. 그의 발치에 내팽개친 자물쇠와 열쇠가 채여 굴렀으나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래. 상관없는 일이다.’

그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비록 아리안이 그에게 독약을 먹였지만 거기에 휘둘리지만 않는다면 될 일이 아닌가.

그 독약의 해독제는 아리안 자체인 셈이었으니, 아리안이 곁에 있기만 한다면 거기에 휘둘릴 일도 없으리라.

말하자면 살아 있는 벤조디아제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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