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티아 (84)화 (84/130)

#84

입술이 닿았다. 손이 함께 몸을 쓰다듬었다. 솔기가 뜯어져 넝마가 된 옷 쪼가리를 아리안의 몸에서 떼어 낸 손이 우악스럽게 이곳저곳을 주물렀다. 아리안의 몸은 그가 기억하는 것보다 조금 더 여위었고 조금 더 길쭉해졌다. 그러나 우아하고 부드러우며 때로는 날렵한 그 선만은 여전했다.

그 불변을 알아차리자 칼릴의 뇌에서는 더는 인내심이 작용하지 않았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달려들었다. 옷을 찢어발겨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나신을 혀와 손으로 허겁지겁 어루만졌다. 그러나 그가 아리안의 다리 사이에 도달했을 때 그는 아리안이 전혀 흥분하지 못했음을 알아차렸다.

싸늘한 충격이 그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그는 아리안의 무릎을 잡아 가랑이를 활짝 당겨 벌렸다.

“으, 으읏….”

아리안이 울먹거렸다.

“그만해….”

칼릴의 예리한 시선이 벌어진 다리 사이를 훑었다. 그의 성기는 칼릴과 대조적으로 조금도 흥분하지 못하고 얌전히 누워 있었다.

눈으로 확인하자 충격이 분노가 되었다. 손을 뻗어 그것을 거칠게 쓰다듬었다.

“아!”

아리안이 아픈 듯이 소리 질렀다. 다소곳하게 누운 줄기를 우악스레 주무르고 쓰다듬으며 귀두 끝을 어루만졌다. 아리안이 몸을 비틀었다.

“아파, 아파….”

아리안은 크게 소리 지르지도 못하고 어깨를 들썩였다. 어둠 속에서 반짝거리는 눈물이 보얀 뺨을 타고 흘렀다.

칼릴은 그 이상 참지 못하고 몸을 숙여 그것을 덥석 입에 넣었다. 히, 하고 아리안에게서 비명이 되다 만 신음이 터졌다. 그가 칼릴의 머리를 마구 밀었다.

“왜, 왜 이래, 왜 이러는 거야. 그만해, 그만해….”

전에는 좋아했잖아, 이렇게 해 주면 자지러졌으면서… 칼릴은 그렇게 속삭이려 했다. 그러나 그것을 입으로 말하는 대신 그 입으로 아리안의 것을 애무했다. 다소곳하고 예쁜 모양의 페니스를 입술 안쪽으로 거세게 흡입했다. 손으로 뿌리를 꾹 조이며 귀두를 빨아들이자 아리안의 허리가 벌벌 떨리면서 사타구니가 양옆으로 벌어졌다.

“아, 아아….”

아리안이 안 돼, 하고 작게 흐느꼈다. 그러나 부드러운 입 안에서 자극당한 페니스가 천천히 경도를 갖추기 시작했다.

칼릴은 멈추지 않고 차가운 돌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거세게 그것을 계속해서 빨아들였다. 벽에 등을 기댄 아리안의 몸이 부들부들 경련했다.

“아, 안….”

그의 발끝이 오므라들면서 엉덩이가 들썩였다. 이 집요한 구강성교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쾌감을 일깨웠다. 양쪽 모두에게. 기어이 아리안이 허리를 뒤틀면서 엉덩이를 한껏 조였다.

“으응… 그만, 그만! 아…!”

칼릴은 들썩거리는 작은 엉덩이를 양손으로 와락 움켜잡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빨았다. 입 안으로 선액이 후루룩 흘러들어 오며 그가 머리를 움직여 페니스를 더욱 깊게 삼킬 때마다 첩첩거리는 음탕한 소리가 방 안에 요란스레 울렸다.

기어이 아리안의 몸이 극에 올랐다. 아리안이 입술을 깨물면서 머리를 뒤로 젖혔다. 흰 목덜미에 근육이 뻣뻣하게 서며 벌어진 허벅다리가 경직되었다.

“아, 아아, 아, 아… 아아아아아아….”

칼릴의 입 안에서 페니스가 꿈틀거렸다. 귀두 끝이 정액을 쏘았다.

그야말로 오랜만의 분출이었다. 정액은 진하고 농후했다. 칼릴은 그 체액을 한 방울도 흘릴 수 없다는 듯이 남김없이 빨아 삼켰다.

부들거리는 아리안의 손이 칼릴의 머리를 잡아 밀려고 했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금빛 머리칼 사이를 손가락이 헤집었다. 칼릴은 신경 쓰지 않고 미친 사람처럼 아리안의 페니스에 달라붙어 남은 체액을 흡입했다. 쭈웁, 쭈웁, 하는 소리가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아리안의 발끝이 꿈틀댔다. 힘을 잃고 풀린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사정의 쾌감은 그동안의 금욕 기간의 길이만큼 강렬했다.

가슴팍이 위로 쌔액쌔액 오르락내리락했다.

칼릴은 그제야 흡족해서 입을 떨어트렸다.

아리안은 그의 젖은 입술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칼릴이 일부러 그 시선을 마주 보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정액이 튄 입술이 음탕하게 움직였다. 아리안이 기어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칼릴이 두 무릎 두 손을 바닥에 짚고 그의 위로 기어 올라갔다. 짐승이 덮쳐 오르는 듯한 무게감에 아리안이 몸을 떨었다. 눈물이 또 샘솟았다. 그 위로 칼릴의 입술이 눌렸다. 그가 아깝다는 듯이 눈물을 핥아 삼켰다. 그 순간 양옆으로 산맥처럼 벌어진 너른 흉곽이 쾌감을 이기지 못한 듯이 부르르 떨렸다.

“하아아….”

칼릴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손이 아리안의 뺨을 더듬었다. 초점이 사라진 푸른 눈이 아리안을 내려다보았다. 아리안은 두려운 듯이 그 파도처럼 흔들리는 시선을 피했다. 뺨을 더듬던 손이 우악스레 아리안의 턱을 잡아 다시 돌렸다. 억지로 눈이 맞았다.

“내가 좋다고, 날 좋아한다고 했잖아. 거짓말이라도 네 말에 책임을 져. 너희 ‘높은 자들’은 그렇잖아?”

그 속삭임에 아리안이 움츠린 고개를 간신히 저었다.

“아니야, 이, 이제 안 그럴게. 미안해. 이제 앞으로는 안 그럴게. 이제 안 좋아해….”

겁에 질린 목소리가 칼릴을 찔렀다. 칼릴은 흐흥, 하고 억지로 비웃음 소리를 냈다.

“그럼 그런 척이라도 해.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 말에 아리안이 흐윽, 하며 억눌린 흐느낌을 토해 냈다.

“아니야. 그런 거… 미안해. 그 약은….”

“이제 상관없어.”

칼릴은 더 이상 그 약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 아리안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는 고개를 숙여 아리안의 목줄기를 물었다. 그 목이 파르르 떨렸다. 그대로 칼릴은 아리안의 냄새를 맡았다. 남루한 차림으로도 숨기지 못한 정순하고도 고혹적인 냄새였다. 그가 숨을 들이켤 때마다 아리안의 심장이 팔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그 상태로 자신의 옷자락을 풀어 벌렸다. 이미 완벽하게 발기한 남근이 튀어나왔다.

“후우, 후우, 후욱….”

그는 숨을 고르면서 그것을 아리안의 아랫배에 대고 꾹 눌렀다. 흥건하게 젖어 불거진 귀두가 흰 아랫배를 미끄러져 배꼽에 꾸욱 눌렸다. 아리안의 몸이 움찔 떨었다. 미끌미끌한 선단이 배꼽 주변을 천천히 오가며 문질렀다. 야릇한 감촉에 아리안의 아랫배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 마….”

“이제 와서 뭘 정숙한 척이지? 어차피 넌 진짜 사제도 아니잖아.”

칼릴이 비웃으면서 아리안의 양다리를 번쩍 들어 올려 어깨에 짊어졌다. 아! 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아리안의 상체가 밑으로 떨어졌다. 칼릴의 손이 그 뒤통수를 받아 안았다. 바닥에 누운 아리안의 위로 칼릴이 올라탔다.

그는 저녁 연회 자리에서 입었던 옷차림 그대로였다. 셔츠의 목깃은 굵은 목을 단정하게 감싸고 있었으며 튜닉의 소매와 가슴팍에는 자수가 놓여 있었다. 그 값비싼 천 아래로 남자의 흉곽이 흥분으로 빠르게 오르내렸다.

“후우….”

칼릴이 거칠게 숨을 내쉬며 자신의 바지 자락 사이로 꺼낸 성기를 아리안의 다리 사이에 눌렀다. 그것은 이미 아무 도움 없이도 삽입할 만큼 단단하게 발기한 채였다.

금방이라도 아리안을 난폭하게 겁간할 것처럼 굴었던 남자가 삽입을 망설였다. 그가 한 손으로 자신의 남근 뿌리를 쥐고 아리안의 사타구니에서 배꼽 아래까지 비벼 눌렀다. 그리고 반대편 손바닥으로 아리안의 뒤통수를 안아 고개를 들어 올리게 했다. 어쩔 수 없이 아리안의 시선이 곧 자신의 몸을 찢고 들어올 것에 닿고 말았다.

“흐읏….”

아리안이 겁에 질린 신음을 흘렸다.

그 페니스는 이미 번들번들 젖어 있었다. 굵직한 몸통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한쪽으로 묵직하게 휘어져 있었는데 그것은 칼릴의 반듯한 얼굴에 부조화스러운 만큼 위협적으로 보였다.

아리안은 과거 그가 자신을 상처 입히지 않기 위하여 그 남근 뿌리에 끼웠던 고리를 간신히 기억해 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저것은 성교를 위한 것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위험천만했다. 아리안은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는 손을 뻗어 칼릴의 아랫배를 애써 밀었다.

“하, 하, 하지 마아.”

두려움에 목소리가 절로 더듬거렸다.

“못 해, 못 할 거야….”

칼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구잡이로 삽입하지도 않았다.

아리안의 두 다리를 각각 벌려 어깨에 짊어진 채로 진득하게 귀두 끝으로 아래를 비볐다. 선액으로 찐득거리는 귀두가 회음부와 음낭 사이를 애무했다. 구멍 앞을 오가는 선단이 체액을 더 흘렸다. 곧 그것으로 아리안의 다리 사이가 흥건하게 젖어 들었다.

그 애무는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어느 순간 아리안의 몸에 힘이 움찔 풀리며 아래가 벌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칼릴이 허리에 힘을 주어 몸을 붙였다. 두툼한 귀두 끝이 좁게 오므라든 구멍을 벌리고 불쑥 들어왔다.

아리안은 비명 대신 숨을 빠르게 들이켰다. 가슴팍이 애처로울 정도로 부풀어 오르면서 아랫배가 홀쭉해졌다.

“흐읍, 흐으… 흐으으….”

헐떡이는 신음이 이어졌다. 칼릴은 더 깊게 삽입하는 대신 다시 몸을 물렸다. 귀두 끄트머리만이 거기에 닿을 정도로 빼냈다가 다시 쑥 밀어 넣었다. 그런 식으로 여러 번을 반복했다.

“하아, 하아, 하아, 아….”

아리안의 몸은 이제 땀으로 흥건하고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래를 야트막하게 오가는 귀두 탓에 야릇한 쾌감이 피어올랐다. 그것이 고통의 자리를 대신했다.

구멍이 저절로 벌름거렸다. 그것을 알아차린 순간 칼릴은 조금 더 깊게 삽입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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