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티아 (54)화 (54/130)

#54

“당신이 했던 것처럼 하면 되는 거지?”

그러면서 대뜸 손을 밑으로 뻗어 발기한 그의 것을 움켜잡았다. 발갛게 달아오른 손이 뜨거운 몸통을 꽉 쥐었다. 남근이 뱀처럼 그 손바닥 안에서 꿈틀거렸다.

대공의 시선이 아리안의 입술에 닿았다.

작은 입술. 새 부리처럼 조그마한 혀. 고작 손가락을 빠는 것만으로도 꽉 차 버리는 좁은 입. 대공이 낮게 웃었다.

그는 아리안의 손목을 움켜잡아 억지로 떼어 놓았다. 의아함이 실린 눈이 그를 올려다본 순간, 그가 아리안의 몸을 안아 들어 허벅지에 앉혔다.

엉겁결에 대공의 가슴팍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게 된 아리안이 뒤를 돌아보았다. 얼굴이 다시 터질 듯 붉었다.

“이 자세 싫어….”

아리안이 또 징징댔다. 대공은 들은 체도 않고 아리안의 무릎을 잡아 안쪽으로 누르며 찰싹 붙은 허벅지 살집 틈으로 성기를 끼워 넣었다.

“읏…!”

아리안이 화들짝 놀라 몸을 굳혔다. 번들거리는 귀두가 허벅지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왔다. 아리안의 눈이 커졌다.

“무, 무슨….”

“다리 꽉 붙이고 있어.”

그렇게 말한 대공이 아리안의 허리를 양쪽에서 조여 잡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굵직한 남근 몸통이 사타구니를 마찰할 때마다 아리안의 몸이 덜컥덜컥 흔들렸다. 자꾸만 허벅지가 벌어지려고 했다. 아리안이 결국 스스로 팔을 벌리고 다리를 끌어안아 꽉 붙였다.

아리안은 금세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페니스는 더는 발기하지 못했지만 조금씩 끄트머리가 젖어 가며 체액이 비쳤다. 어느 순간 그것이 실금하듯이 묽은 애액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그 야릇한 분출은 쉽사리 멈추지 않고 가랑이를 흥건히 적신 뒤 밑으로 흘러 떨어졌다.

아리안이 기어이 울음을 터트렸다.

“시, 싫어… 싫어… 나, 또, 아, 이상, 이상한, 아, 아아, 아, 아…!”

등 뒤에서 대공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더니 아리안의 몸을 와락 끌어안고 밑으로 깔아 눌렀다. 온갖 체액으로 미끄덩한 엉덩이를 우악스레 잡아 벌린 뒤 그대로 남근을 꽂아 넣었다.

“아악…! 아, 아아아아아아앗…!”

아리안이 길게 비명 지르면서 몸부림쳤다.

정교는 오래 이어졌다. 대공은 여러 번 자세를 바꿔 가며 아리안을 안았다. 마침내 그가 아리안의 몸속에 진득하게 사정한 뒤에 물러났을 때 아리안은 이미 거의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투명한 눈물 막이 떠오른 눈이 힘없이 깜빡이다가 기어이 빛을 잃고 까무룩 스러졌다.

***

발소리에 아리안은 잠에서 깨어났다.

의식을 되찾자마자 느껴진 것은 나른한 열감이었다. 포근한 깃털 이불이 그의 몸을 덮고 있었다. 아리안은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간신히 이불 밖으로 손을 끄집어냈다.

두 겹의 휘장이 모두 내려와 침대 안은 컴컴했다. 휘장 밖으로 나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아리안은 흐느적대는 팔을 간신히 들어 휘장을 살짝 열었다. 가느다란 틈으로 주홍색 불빛이 스며들어 왔다.

대공의 옆모습이 보였다. 그는 어두운 남색 옷을 입고 있었다. 평상시와 달리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튜닉이었다. 화려한 은색 자수가 그의 너른 등을 채우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자수는 어깨로 이어져 소매 끝까지 내려왔다. 소매는 파살리아의 옷과 달리 통이 좁은 것이었지만 충분히 화려했다. 지금 그는 파살리아 궁정 귀족처럼 보였다. 단지 보석 박힌 허리띠에 찬 검은 진짜였다. 검집은 장식 없이 투박했고 검 자루에는 손때가 묻어 있었다.

아리안은 무심코 홀린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눈치챘는지 대공이 그를 돌아보았다.

시선이 마주쳤다. 대공이 살짝 머리를 기울이더니 아리안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리안은 가까워지는 대공의 얼굴을 넋을 놓고 올려다보았다.

금빛 머리카락은 단정하게 뒤로 빗어 넘겨 반듯한 이마를 드러내고 있었으며 짙은 눈썹 아래 푸른 두 눈은 섬광처럼 선명했다. 완벽한 양감의 이목구비는 더하거나 뺄 곳 없이 균형적이었다. 아리안의 심장이 쿵쿵거리기 시작했다.

대공이 팔을 뻗어 휘장을 옆으로 밀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의 손이 아리안의 뺨을 어루만졌다.

“아픈 데는?”

그 질문에 아리안의 눈이 멍하니 깜빡였다. 몇 초쯤 지난 뒤에야 그의 뺨이 달아올랐다. 완벽하게 차려입은 대공과 달리 그는 알몸이었다.

아리안은 밀어 놓았던 깃털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가렸다. 대공이 그 모습을 보며 차분히 말했다.

“오스발에게 널 보살피라고 명령해 두었으니 여기서 쉬고 있어. 난 늦게 돌아올 거다.”

그 말에 아리안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이 대공을 버릇없게도 위아래로 훑었다. 대공은 그 무례한 시선을 그냥 넘겼다.

“연회에 가는 거지?”

“그래.”

대공이 아리안의 뺨에서 붉은 자국이 남은 목덜미로 손가락을 미끄러트리며 대답했다.

“나도 데려가.”

아리안이 머리를 기울여 그 손등에 뺨을 기대면서 대공을 올려다보았다. 필사적인 아양에도 대공은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안 돼.”

“왜? 데려가 줘… 내, 내가. 내가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뭘 열심히 했는데?”

그 반문에 아리안의 눈에 억울함이 담겼다.

“당신이….”

“내가?”

“옷을 벗으라고 했을 때도 얌전히 벗었잖아.”

“흐음. 고작 그걸로?”

그의 손은 이제 아리안의 어깨를 덮은 이불 밑으로 기어들어 가 매끄러운 어깨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리고….”

아리안이 한참을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내, 내, 거길, 때렸잖아.”

사타구니를 맞으며 사정했던 일에 생각이 미치자 퍽 억울한지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였다.

다리 사이를 빨거나 가슴을 아프도록 괴롭히는 것을 좋아할 때부터 의심했지만 설마 그곳을 때리기까지 하다니…. 혹시, 정말, 설마….

대공에게서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아리안이 실눈을 뜨고 그를 힐끔거렸다. 대공은 마치 무언가를 고심하는 듯 미묘한 얼굴로 아리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것에 용기를 얻은 아리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짓까지 난 다 참았어. 그러니까 연회에 날 데려가야 해.”

대공이 기어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가 커다랗게 소리 내 웃었다. 그런 것을 처음 본 아리안의 눈이 휘둥그레진 순간 대공이 아리안을 이불째로 당겨 안고 손가락으로 입술을 더듬으며 키스를 퍼부었다.

“이런 짓은 어디서 배웠어? 응?”

진득한 입술이 입 안으로 파고들 듯이 겹쳐지며 키스가 농밀해졌다. 혼비백산한 아리안이 대공의 어깨를 밀었다.

“아, 안 돼! 이제 못 해!”

그가 엉덩이를 뒤로 꾸물꾸물 물리면서 대공의 입술에 대고 속삭였다.

“아, 아래가 아파. 상처가 났나 봐….”

“상처는 없었어. 그냥 약간 부은 것뿐이다.”

“배도 아파….”

“아직도?”

대공이 그렇게 되물으며 아리안의 배꼽 언저리를 어루만졌다. 아랫배가 홀쭉하게 납작해지며 아리안이 할딱할딱 긴장된 숨을 내뱉었다.

거듭된 오르가즘 탓에 아직까지도 발갛게 윤기가 도는 얼굴이 대공을 올려다보았다.

“다, 당신이 너무 세게 했잖아.”

서러운 듯이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였다.

“이상한 거 하고… 또, 또, 거, 거길 그렇게 아프게 때리고….”

결국 억울함을 참지 못한 아리안이 시선을 피하며 작게 속삭였다.

“변태 같아….”

그 순간 대공이 아리안을 덮쳐 누르며 키스했다. 발버둥 치던 아리안의 몸이 잠잠해지며 곧 두 팔이 대공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한참을 열정적으로 입 맞춘 뒤 대공이 아리안의 젖은 입술을 어루만지면서 작게 속삭였다.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여기가 불편하면 네 방으로 돌아가도 좋아. 오스발이 연회 음식을 가져다줄 거다.”

***

물론 아리안은 포기하지 않았다.

다행히 그에게는 대공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연회에 들어갈 수단이 있었다.

그는 초소 탑에서 싸구려 술을 약간 받아 왔다. 거기에 몇 가지 허브와 나무껍질을 넣어 지독한 냄새를 없앤 다음에 천으로 불순물을 다섯 번 걸러 맑은 부분만 병에 담았다. 그것과 담뱃잎을 한 줌 싸서 얼굴을 아는 젊은 일꾼에게 가져다주었다.

이 뇌물의 대가로 일꾼은 자신의 옷을 아리안에게 흔쾌히 내주었다. 아리안은 그의 옷을 입고 그릇을 나르는 일꾼인 척 연회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연회장은 가로로 긴 커다란 직사각형 형태였고 북쪽에 일꾼들이 드나들며 정리를 할 수 있는 방이 붙어 있었다. 그 방은 길을 잃은 귀족들이 실수로라도 들어오지 않도록 두 번 꺾어진 복도와 짧은 회랑을 사이에 두고 연회장과 떨어져 있었다.

아리안에게 맡겨진 일은 연회장에서 빈 접시를 가져오는 일이었다. 조금 더 말쑥하게 차려입은 하인들은 귀족들에게 술을 따라 주는 일을 맡았다.

아리안은 쓸데없이 귀족들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으므로 지금 맡겨진 일에 매우 만족했다. 더구나 이 일은 쉴 새 없이 연회장을 들락거려야 했기 때문에 연회장에서 사람을 찾기에도 적격이었다.

커다란 연회장은 북적북적했다. 사람들이 백 명도 더 넘게 있었다. 아리안은 이 많은 귀족들이 평소에는 어디에 숨어서 코빼기조차 비치지 않는지 궁금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파살리아 성은 항시 적막에 잠겨 있었고 그가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병사들이나 어린 종자들, 일꾼, 성을 드나드는 상인들, 아주 이따금씩 기사 몇 명 정도였다. 그가 성에서 얼굴이라도 보는 사람들 중에서 단 한 번 본 국왕을 제외한다면 가장 높은 사람은 대공이었고 그다음은 닛사, 그리고 다음이 오스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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