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티아 (51)화 (51/130)

#51

그것은 대공이 그야말로 예측지 못했던 부탁이었다. 대공의 시선이 단번에 아리안을 향했다. 시선이 아리안을 위아래로 한 번 훑었다. 예리한 시선이 눌러쓴 모자 아래 살짝 달아오른 아리안의 두 볼에 닿았다.

대공의 눈이 가늘어졌다.

“안 돼.”

단호한 거절에 아리안의 눈이 커졌다. 거절당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왜? 귀찮게 하지 않을게.”

“네가 갈 만한 데가 아니야.”

“귀족들만 가는 데라서?”

정답이 아니었으나 대공은 귀찮은 나머지 그냥 그래, 하고 대답했다. 아리안이 발을 동동 구르면서 대공의 곁을 정신 사납게 왔다 갔다 했다.

“어떻게 안 돼? 아무래도 안 되는 거야?”

그 끈질긴 부탁에 대공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가 팔짱을 꼈다.

“연회에 가고 싶은 이유가 뭔데?”

“그게….”

아리안이 잠시 말꼬리를 흐리더니 슬쩍 대공을 올려다보았다.

“이유가 타당하면 데려가 줄 거야?”

“아니.”

아리안의 어깨가 처졌다.

대공의 눈빛이 번들거렸다. 그가 팔을 뻗어 손이 닿을 거리에 있는 아리안을 끌어당겼다. 모자를 벗기자 머리칼이 출렁 밑으로 떨어졌다. 그는 그 머리칼 사이에 손가락을 넣어 쓸어 넘겼다. 희고 둥근 이마가 드러났다.

아리안이 옆으로 슬쩍 머리를 돌리면서 그를 곁눈질했다. 여전히 눈치를 보는 태도였다. 대공의 눈이 스윽 가늘어지더니 두 손이 자못 거친 동작으로 아리안의 몸을 한바탕 더듬었다. 외투의 단추는 꽁꽁 잠겨 있고 옷에는 풀렸던 흔적이 없다. 모든 것을 거듭 확인한 뒤에도 그는 의심을 감추지 못했다.

“왜 연회에 가려는 거지?”

그가 이번에는 약간 누그러진 투로 물었다. 거기에서 희망을 읽었는지 아리안이 반짝 고개를 들었다.

“연회가 화려할 거라고 해서 보고 싶었어. 그리고… 호수의 요정들이 와 있다면서?”

아리안이 숨기지 못하고 내비친 본심을 대공은 놓치지 않았다.

“요정 일족 말이군.”

대공이 아리안의 표정을 집요하게 살피며 물었다.

“그래. 와 있지. 왜? 만나 보고 싶나?”

그의 속내를 추호도 짐작하지 못한 아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대공의 눈빛이 쑥 차가워졌다. 아리안이 그것을 미처 알아차리기 전, 그가 등을 돌렸다.

“안 돼.”

더는 매달려 볼 엄두도 나지 않는 냉정한 등에 아리안이 고개를 떨어트린 순간, 대공이 번개같이 팔을 뻗어 그를 낚아챘다. 악, 하는 비명이 미처 입술 밖으로 빠져나가기 전 대공의 입술이 그를 덮쳤다.

입술이 겹쳐지고 혀가 안으로 들어왔다. 아리안의 무릎에 힘이 빠져나갔다.

혼이 빠져나가리만치 격렬한 입맞춤 끝에 대공이 입술을 뗐을 때 아리안은 이미 혼자서 서 있을 수도 없는 상태였다. 흐물거리는 아리안을 팔로 안아 지탱한 대공이 엄지로 아리안의 젖은 입술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다시 물었다.

“왜 그렇게 연회에 가고 싶은 거지?”

“흐으….”

대답 대신 눈물이 그렁거리는 눈동자가 대공을 올려다보았다.

힘없이 벌어진 입술 틈새로 대공이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검지와 중지가 새의 부리처럼 조그마한 혀를 애무하듯이 쓰다듬었다. 대공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혼잣말했다.

“그런 데를 궁금해할 것 같지는 않은데….”

“으으응….”

못이 배긴 딱딱한 손가락이 섬세한 입 안 점막을 더듬는 야릇한 느낌에 아리안이 몸을 떨었다.

“하아, 후음, 후으으….”

“입을 더 벌려.”

그 명령에 아리안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서 입술을 더 벌렸다. 작은 입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온 손가락이 입천장을 거쳐 혀뿌리 깊숙한 곳을 쑤셨다.

“으음, 으읏, 으…!”

가느다랗게 좁아진 아리안의 눈꼬리로 눈물이 배어들었다.

침이 철벅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정교의 소리를 닮았다. 민망함에 얼굴이 점점 달아올라 이제는 두 뺨이 완전히 새빨갛게 물들었다.

손가락이 마치 성교하듯이 목구멍을 쑤실 때마다 대공의 몸에 마주 닿은 아리안의 아랫배가 꿀렁거리고 목구멍이 조여들었다. 한참 끝에 결국 참지 못한 아리안이 몸부림치면서 대공의 손목을 양손으로 긁어 대기 시작했다. 눈물이 터져 뺨을 적셨다.

대공이 손가락을 아리안의 입 안에서 빼냈다. 곧장 아리안이 심하게 기침하면서 허리를 구부렸다.

“흐읏, 흐으, 흐윽… 흐으….”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이 원망스럽게 대공을 쏘아보았다.

“또, 또… 또 이상한 짓 하구….”

대공의 시선이 원망의 말을 토로하는 아리안의 입술 사이에 가서 닿았다. 벌어진 두 입술 사이 부드럽고 축축한 혀가 달싹거리는 것이 고스란히 보였다. 그 시선을 눈치챘는지 아리안이 손등으로 자신의 입술을 가렸다.

대공이 낮게 웃으면서 아리안의 턱을 잡아 그 손바닥에 키스했다. 아리안의 어깨가 움찔 굳어졌다. 손바닥에 입술을 진득하게 눌러 비비자 아리안이 참지 못하고 발가락을 꼬면서 머리를 뒤로 물렸다.

“하지 마.”

다른 손이 대공의 얼굴을 밀었다.

대공이 짧은 숨을 내뱉으면서 그를 놓았다. 놓여나자마자 아리안은 후다닥 뒤로 달아났지만 발이 꼬여 멀리 가지는 못했다. 고작 서너 발자국 달아난 아리안이 경계하는 태도로 대공을 힐끔거렸다.

대공은 여유로웠다. 그가 아리안을 놔둔 채 탁자로 걸어갔다. 은으로 된 컵에 독한 포도주를 따르면서 그가 아리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침 잘됐군. 거기서 벗어 봐.”

“뭐… 뭐?”

아리안의 눈이 커졌다. 대공은 태연했다. 반듯한 얼굴 위 눈썹 하나도 까딱하지 않았다. 단정한 입술이 믿기지 않는 소리를 다시 지껄였다.

“거기서 벗어서 다리 사이를 보여 보라고.”

아리안은 무심코 두 손으로 자신의 옷자락을 꽉 움켜잡았다. 두 눈이 불안한 듯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가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짰다.

“아, 아직 낮이야….”

“무슨 상관이야. 이렇게 어두운데.”

“누가 오면 어쩌려고….”

그 말에 대공이 하하하, 하고 유쾌한 듯 웃었다.

설령 누군가 여기까지 왔다 하더라도 감히 허락 없이 대공의 침실 문을 열어젖히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아리안에게 알려 주는 대신 어깨를 으쓱했다.

“싫으면 안 해도 돼.”

아리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옷자락을 부여잡고 갈등하던 그의 머릿속에 조금 전의 연회에 대한 화제가 떠올랐다. 시키는 대로 하면 어쩌면 대공이 마음을 바꿔 그를 연회에 데려가 줄지도 모른다.

아리안은 잠시 대공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옷자락을 움켜잡은 손가락에 힘을 풀었다.

대공은 술을 마시면서 그가 옷을 벗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아리안은 매우 느릿느릿 움직였다. 부끄러움 때문이겠지만 도리어 그것이 보는 사람을 자극했다. 떨리는 손가락이 허리띠를 벗고 옷의 매듭을 하나씩 풀어 냈다. 곧 눈부시게 흰 속살이 드러났다.

대공의 눈이 집요하게 조금씩 드러나는 그 피부 위를 살폈다. 다른 자국이 남아 있지는 않은지 그가 모르는 흠집이나 흔적은 없는지 살피는 동안, 속옷 차림이 된 아리안이 머뭇거리면서 대공을 보았다. 그에게서 대답이 없자 아리안이 결국 그 속옷마저 벗었다.

목덜미가 새빨갰다. 손끝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곧 아리안은 몸을 가리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나신이 되었다.

어깨에서 팔꿈치까지 떨어지는 선은 일직선이었고 열 손가락 끝은 모두 희미한 분홍색을 띠고 있었다. 반대편 벽에 걸린 램프 불빛이 그의 몸에 아른거리는 그림자를 남겼다. 그것은 마치 나신을 더듬는 검은 손처럼 보였다. 수그린 얼굴에는 긴 속눈썹에서 떨어지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으며 입술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두 뺨은 먼 거리에서도 확연하게 보일 정도로 붉었다.

대공은 술을 마시면서 그 눈부신 나신을 눈으로 훑었다. 아리안이 원망스레 대공을 흘겨보았다. 그다지 박력은 없었다.

대공이 잔을 내려놓으면서 또 터무니없는 지시를 내렸다.

“침대에 한쪽 발을 올리고 다리 사이를 보여 봐.”

그 지시에 아리안이 멍하니 대공을 올려다보았다.

대공은 조금 전 터무니없이 음탕한 명령을 내린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게 반듯하고 차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명정했으며 표정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아리안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그를 바라만 보자, 대공이 그를 채근했다.

“빨리.”

어쩔 줄 몰라 하던 아리안이 결국 오른발을 침대 위로 올렸다.

가랑이 사이가 훤히 드러났다. 얌전하게 수그린 성기는 가슴이나 겨드랑이와 같은 연한 빛깔이었고 그것이 사타구니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 어둑한 틈 사이를 대공의 시선이 핥듯이 바라보았다.

“읏….”

얼굴이 터질 듯이 뜨거웠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고 그 혼란은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갈팡질팡 흔들리는 눈이 축축하게 젖어 들면서 아래 속눈썹에 눈물이 고였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런 수치스러운 상황에서 점차 몸을 휩싸는 열기였다.

아리안의 몸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대공은 느긋하게 포도주를 마셔 가면서 그것을 감상했다.

대리석 덩어리 같은 몸뚱이가 서서히 분홍색으로 달아오르며 성기가 힘을 받아 갔다. 그것이 느리게 머리를 들어 올렸을 때, 아리안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몸을 수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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