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티아 (25)화 (25/130)

#25

몸을 일으킨 대공이 침대맡에서 무언가를 집어 들고 있었다.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 무릎으로 버티어 선 그의 미끈한 실루엣 가운데에 흉흉한 무언가가 솟구쳐 있었다.

처음에 아리안은 그의 팔이 이상한 데에 돋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다음에는 자신이 잘못 보았다고 생각했다. 둘 다 아니었다.

대공의 손에는 폭이 두꺼운 팔찌 같은 것이 들려 있었다. 그것은 어린아이의 팔뚝에 맞을 듯한 크기였으나 팔찌치고는 조금 투박했다.

‘뭐 하는 거지?’

아리안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그를 노려보다시피 바라보았다.

그가 팔찌를 그곳에 끼웠다. 아리안의 눈이 더 커졌다.

그 시선을 눈치챘는지 대공이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대공의 눈꼬리가 밑으로 떨어지며 흐릿한 눈웃음이 떠올랐다. 속눈썹 밑으로 길게 그림자가 떨어졌다. 드문 미소에 아리안의 숨이 가빠지고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대공이 천천히 다가오며 그의 몸이 어둠 속에서 조금씩 윤곽을 드러냈다.

씨근덕거리던 아리안의 가쁜 호흡이 뚝 멎었다.

아리안은 멍청히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대공은 아리안과 마찬가지로 나신이었으며 직선만으로 이루어진 듯한 유려한 실루엣 위로 그의 발기한 남근 윤곽이 어슴푸레하게 떠올라 있었다. 그것은 완전히 발기해 배꼽 근처까지 올라붙은 채였다. 두꺼운 귀두는 번들번들 젖어 있었고 울퉁불퉁한 힘줄이 굵은 기둥을 휘어 감고 있었다. 완벽하게 좌우대칭인 그의 이목구비와 달리 그것은 약간 한쪽으로 휘어 있었고 그 부조화스러움이 그것을 더욱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했다.

‘왜….’

아리안은 멍청히 생각했다.

‘이제 와서 저걸 어쩌려고?’

그런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그것은 성교를 위한 것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위협적으로 보였으므로 아리안은 그가 그것을 가지고 무슨 짓을 하려는지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대공이 그에게로 다가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괜찮아.”

“뭐, 뭐가?”

아리안은 엉겁결에 그렇게 되묻고 말았다. 대공이 대답 대신 야릇한 눈짓을 보냈다. 아리안은 멍청히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사납게 발기한 그의 남근 뿌리에 두꺼운 고리가 끼워져 있었다. 아리안이 팔찌라고 착각했던 그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그것이 도무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바로 다음 순간까지는.

“깊게 삽입하지 않을 테니 네가 다칠 일도 없지.”

대공의 시선이 아리안의 긴장으로 홀쭉해진 아랫배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제야 아리안은 대공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렸다.

그의 얼굴이 삽시간에 사색이 되었다. 그는 곧장 몸을 뒤집었다. 침대 밖으로 달아나려고 밑으로 드리워진 휘장을 움켜잡은 순간 대공이 그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몸이 시트째로 주르르 끌려갔다.

대공이 발버둥 치는 그의 다리를 우악스레 벌리고 엉덩이 사이에 장미 기름을 부었다. 절반쯤 빈 향유 병이 침대 구석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졌다. 기름으로 미끄덩거리는 엉덩이 살집을 딱딱한 손이 거세게 잡아 벌렸다. 살이 벌어지며 가운데가 드러나고 기름이 안쪽으로 흘러들었다. 그곳은 아리안의 팔꿈치나 입술, 젖꼭지와 같은 빛깔이었다. 대공의 눈이 그 크기를 가늠하듯 가느스름하게 좁아졌다.

“모, 못 해. 이런 거 못 해….”

바로 조금 전까지 어째서 대공이 삽입을 하지 않는지 의아해했던 것이 무색하게 아리안이 필사적으로 중얼거리면서 손을 아래로 뻗어 구멍을 가려 보려고 했다. 대공이 그의 손목을 잡아 옆으로 누르고 대신 그곳에 자신의 성기를 꾸욱 눌렀다.

“히익….”

아리안의 목이 움츠러들며 겁에 질린 신음이 튀어 나갔다.

굵은 귀두가 항문에 닿았다. 아리안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아, 안 돼…!”

다급한 비명과 함께 그가 다시 손을 내려 그곳을 가리려 했다. 대공은 이번에는 그 손목을 잡아 치우는 대신 한 팔로 아리안의 가슴팍을 꽉 끌어안고 몸을 바짝 붙였다. 다리가 얽히고 아리안의 등에 그의 흉곽이 맞닿으며 두툼하게 발기한 남근이 아리안의 벌어진 다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대공이 헐떡이는 아리안의 턱을 잡았다. 공포와 충격으로 달아오른 뺨에 느리게 입술이 눌렸다. 그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느릿느릿한 입맞춤이 연달아 떨어졌다.

아리안은 눈을 깜빡거리면서 고개를 약간 옆으로 돌려 그를 바라보려 했다. 눈이 마주치는 대신 입술이 붙었다.

“우으음….”

아리안이 목을 울리며 낮게 신음했다.

그 순간 대공이 허리에 힘을 주어 남근을 아리안의 몸속으로 밀어 넣었다. 기름으로 미끈대는 구멍 안쪽으로 귀두 끝이 미끄러져 들어왔다.

“아…!”

그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며 몸이 흠칫 굳어졌다.

비명으로 벌어진 입술에 대공이 다시 키스했다. 아리안의 가슴팍이 빠르게 들썩거렸다. 힘없는 손가락이 자신의 가슴팍을 끌어안은 팔을 긁어 댔다.

삽입은 길고 진득했다.

다른 도움 없이도 삽입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하게 발기한 남근이 천천히 몸속으로 꽂혀 들어왔다. 코가 아플 정도로 농후한 장미 기름 향기가 풍겼다.

어느샌가 아리안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어둠 속에서 허옇게 떠오른 몸뚱이에 번들거리는 광채가 맴돌았다.

대공이 그 흰 어깨에 입술을 눌렀다.

“그, 그만….”

아리안이 입술을 떨면서 속삭였다.

남근은 이미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깊은 곳까지 들어와 있었다. 씨근거리는 호흡이 이어질 때마다 홀쭉하게 오므라드는 배꼽 밑으로 어렴풋이 남근의 윤곽이 떠올랐다.

아리안은 헐떡거리면서 무의식적으로 손을 밑으로 내려 삽입이 이루어진 곳을 더듬었다. 남근에 끼워진 고리가 손끝에 닿았다. 그는 더듬거리면서 그것의 두께를 가늠했다. 족히 손가락 한 마디는 되는 굵은 고리가 그 이상의 삽입을 막고 있었다. 이것이 없었더라면 아리안은 그야말로 찢겨 버렸을 것이다.

충격으로 녹색 눈에 눈물이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 아파. 아파….”

아리안이 흐느끼면서 시트에 젖은 얼굴을 비볐다.

“움직이면 안 돼, 움직이지 마….”

그는 섹스에 대해 잘 알았다. 이제 대공은 그의 엉덩이를 움켜잡고 짐승처럼 허리를 흔들어 남근으로 그의 몸을 찢으려 들 것이다.

아리안은 자신의 몸이 그것을 버텨 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최소한 몸이 어느 정도 이 사나운 페니스에 적응할 때까지는 기다려야만….

“아…!”

그때 대공이 그의 뺨에 다시 키스했다. 그 입술이 아리안의 아랫입술을 부드럽게 빨았다.

이는 아리안의 예상과 달랐다.

몸이 파도에 올라탄 것처럼 조금씩 흔들렸다. 몸속에 들어온 남근은 우악스레 그를 쑤셔 대지도, 그를 찢을 듯이 사납게 피스톤질해 대지도 않았다. 대공은 아리안을 등 뒤에서 끌어안고 입술을 붙여 키스하면서 천천히 움직였다. 굵은 페니스가 몸속을 오가며 내벽이 달아올랐다. 아리안은 자기도 모르게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아프도록 벌어진 항문이 벌름거리며 배꼽 안쪽이 지끈댔다.

“아, 아, 아….”

저절로 입이 벌어지고 혀 밑에 침이 고였다. 아리안은 자신을 휘어 감은 대공의 팔을 할퀴어 대면서 몸을 비비 꼬았다.

“그, 그만… 아….”

대공의 손이 아리안의 가슴을 더듬어 유륜을 긁었다. 딱딱한 손끝이 유륜의 접힌 살 틈을 헤집어 억지로 유두를 발기시켰다.

“으응…!”

예민한 유두가 자극당하는 야릇한 고통에 아리안의 발끝이 거세게 오므라들었다.

“흐으, 흐으응….”

그가 낮게 울면서 발끝으로 침대 시트를 밀었다.

“하지 마, 하지 마아…아… 아….”

어느샌가 그의 페니스는 정액을 줄줄 토해 내고 있었다. 진득한 정액이 침대 시트와 자신의 아랫배 사이에 끼인 페니스에서 흘러나와 가랑이를 축축하게 적셨다.

“이런.”

그것을 눈치챈 대공이 낮게 웃었다. 그가 아리안의 아랫배를 더듬어 내려와 그 페니스를 가볍게 어루만졌다.

“벌써 싸면 어떡해.”

갈라진 목소리가 아리안의 귓가에 속삭였다.

“일부러 아까는 봐줬는데.”

“하아, 하아… 뭘… 봐줘…?”

아리안이 간신히 되묻자 대공이 대답 대신 그의 뺨을 가볍게 깨물었다.

***

다시 한번 말하자면, 아리안은 섹스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했다. 그 방법과 과정, 소요 시간 같은 것 말이다.

따라서 이것은 아리안이 아는 섹스에서 이미 까마득하게 멀어진 형태의 어떤 것이었다.

“이, 이제 그마아해애….”

아리안이 꼬인 혀를 애써 달싹거렸다.

눈물이 넘쳐 눈앞이 뿌옜다.

대공은 결코 거칠게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집요했다. 그의 남근은 마치 그대로 뿌리를 내린 것처럼 아리안의 몸속에서 빠져나갈 줄을 몰랐다. 이제는 그것이 그저 삽입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몸이 벌벌 떨리고 손발이 꼬였다. 뚜렷하게 불거진 귀두가 예민한 좁은 지점을 짓이기듯 눌러 올 때마다 저절로 비명이 새어 나갔고 엉덩이가 들썩였다. 그 선단 끝의 갈라진 균열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내벽이 민감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눈물이 흘러넘쳐 뺨이 축축했다.

아리안이 더는 버틸 수 없는 극점, 몸이 주체할 수 없이 경련하며 구멍이 마구 남근을 씹어 대는 그 시점, 그때가 되어서야 대공은 삽입한 남근을 잠시 빼내 주었다.

그리고는 아리안의 몸을 쓰다듬고 부드럽게 키스하며 애무를 이어 가다가, 아리안이 약간 진정되어 호흡이 원래의 박자를 되찾게 되자 다시 삽입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