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티아 (24)화 (24/130)

#24

“하, 하지만… 어째서….”

눈앞의 유혹에 당장 몸을 던지기에는 죄책감이 아직까지도 아리안의 몸을 옥죄고 있었다.

대공이 미소 없는 얼굴로 아리안을 내려다보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네가 바란 게 이런 거라면 못 이뤄 줄 것도 없지.”

넌 내 저주를 치료했고, 그 대가로 네가 바라는 것이 고작 이런 것이라면…. 그 흐릿한 속삭임에 아리안은 그를 응시했다. 고작이라니. 이 강인하고 아름다운 남자를 비록 단 한 번이라도 갖는 행위를 두고 고작이라니….

기어이 아리안은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그의 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끝이 대공의 매끄러운 가슴팍에 닿았다. 그는 가만히 아리안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그것이 아리안에게 더 용기를 주었다. 아리안은 손을 조금 더 움직여 그의 등을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손가락이 움푹하게 팬 척추를 따라가 그의 몸에 남은 깊은 상처에 닿았다.

그 상처를 만지는 순간 아리안의 가슴팍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는 눈을 위로 올려 이 아름답고, 그만큼 위험천만한 생물체를 쳐다보았다. 푸르스름한 광채를 발하는 눈동자가 아리안을 물끄러미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아리안은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올려 그의 뺨에 조심스럽게 키스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술을 서서히 내렸다. 입술과 입술이 포개졌다.

부드러운 입맞춤이 이어졌다. 자신도 깨닫지 못한 사이에 어느샌가 아리안은 속옷 한 장 없는 알몸이었다.

그의 몸은 이제 완전히 이완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준비되었다고 생각했다.

대공이 연체동물처럼 흐느적대는 아리안의 몸 위로 자신의 몸을 겹쳤다. 아리안은 저번에 그랬던 것처럼 다리를 활짝 벌렸다. 이번은 저번 같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하지만 그때 대공이 알 수 없는 짓을 시작했다.

그가 아리안의 다리 사이로 팔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위아래로 비벼서 그곳을 천천히 마찰했다. 아주 기이한 애무였다.

아리안은 감았던 눈을 뜨고 다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 뒤에 아리안은 그의 두 손이 모두 자신의 몸 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약간의 혼란과 의문에 빠져 아리안은 오른손을 밑으로 뻗었다. 가랑이 사이에 문질러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려고 했는데 그때 대공이 그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가 두 팔을 아리안의 등 뒤로 돌려 꽉 끌어안았다. 몸이 붙으며 입술도 다시 붙었다. 아리안은 몸을 떨었다. 입술의 까슬한 면이 마찰하며 오한이 꼬리뼈에서부터 시작되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그가 재차 아리안의 다리 사이에 그 무언가를 넣었다. 그것이 음낭 사이에 짓눌러 왔다. 아리안은 한 번 더 그것의 정체를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 손을 아래로 내렸지만 두 몸이 너무 바짝 붙어 있어서 손을 비집어 넣을 틈이 없었다. 그의 손끝은 대공의 허벅지 바깥쪽을 약간 더듬었을 뿐이었다.

“이게 뭐….”

아리안이 그것의 정체를 물으려는 순간, 대공의 한쪽 허벅지가 아리안의 다리 사이로 들어오며 발목이 서로 얽혔다.

그가 한 손으로 아리안의 허벅지 바깥쪽을 세게 눌러 다리를 좀 더 바짝 붙이도록 했다. 그리고 살이 맞붙은 틈으로 그것을 자꾸 문질렀다. 뜨겁고 딱딱한 것이 아리안의 페니스를 짓누르고 음낭 뒤편까지 불쑥불쑥 찔러 댔다.

“으으응….”

아리안의 페니스가 다시 느리게 발기했다. 선액이 조금씩 흘러 회음부 틈으로 스며들었다. 다리 사이가 축축하게 젖어 이제 그것이 그의 다리 사이를 오갈 때마다 치덕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아까보다 더 단단하고 더 뜨거웠다.

아리안은 이제 궁금하고 불안해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손을 찰싹 달라붙은 아랫배 틈으로 비집어 넣었다. 손끝에 그의 음모가 걸렸다. 단단한 복부가 움찔 긴장했다. 조금 더 손을 내리자 남근 뿌리에 닿았다. 거기까지였다. 대공이 아리안의 손목을 잡아 또다시 위로 올렸다.

아리안이 저항하듯이 팔에 힘을 주어 버티자 대공이 아예 그의 몸을 뒤집었다.

아리안은 종잇장처럼 침대에 털썩 엎어졌다. 등 뒤에서 대공이 그를 가슴팍으로 짓눌렀다. 딱딱한 손바닥이 그의 허벅지 안쪽 살집을 움켜잡아 벌렸다. 그리고 벌어진 살 틈으로 다시 그것을 밀어 넣었다.

이번에는 자세 때문에 그것이 아리안의 엉덩이 사이를 파고들어 가랑이 전체를 짓눌러 왔다.

아리안은 이제야 ‘그게’ 뭔지 알 것 같았다.

“잠깐… 아….”

대공이 아리안의 양 허벅다리를 침대에 세게 눌러 고정한 채 조금 더 빠르게 그것을 밀어 넣었다가 빼는 동작을 반복했다.

몸이 눌리면서 그 젖은 끝이 음부를 세게 찔러 댔다. 그때마다 쩍, 쩍, 하는 젖은 마찰 소리가 울렸다.

‘이상하다.’

아리안은 혼란에 빠진 채 눈을 껌뻑거렸다.

이런 짓이 지나치게 오랜만이기 때문에 그가 그것을 실제 이상으로 크게 느끼는 것일까?

그는 그것의 실제 크기를 확인하기 위해 팔을 아래로 뻗어 사타구니 틈을 드나드는 그것을 손에 쥐어 보려고 시도했다. 모두 실패했다. 그래서 그는 대공이 과거 몇몇 고대 왕조의 남자들이 그랬듯이 그곳에 짐승의 뿔이나 금속으로 만든 과장된 남근 모양의 장신구를 끼우고 있을 것이라 추측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리안이 이곳 차원의 풍습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 하더라도 이것이 몹시 불편하고 어색하다는 사실만은 명백했다. 그것은 딱딱했고 요철이 심해 아팠다.

“하아, 하아… 아….”

아리안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몸을 꿈틀거렸다. 두 뺨은 모두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꽉 붙은 사타구니 틈은 마찰에 찢어질 듯이 뜨거웠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페니스는 어느샌가 발기해 선액을 진득하니 흘리고 있었다.

“아파, 이제 아파….”

쾌감인지 고통인지 알 수 없는 감각에 아리안은 헐떡거리면서 가슴팍에 둘러진 대공의 팔을 긁었다. 대공이 움직임을 멈췄다.

오래도록 마찰된 가랑이 사이가 얼얼했다. 아리안은 고통을 줄여 보려고 다리를 조금 벌렸다. 페니스 끄트머리에서 흐른 진득한 체액이 시트를 흠뻑 적시고 있었다.

그때 대공이 손을 내려 그것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힉….”

아리안의 어깨가 파드득 떨렸다. 그는 허둥지둥 대공의 손등에 자신의 손을 겹쳐 그를 멈추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대공의 손등을 약간 간지럽히는 데서 그쳤다. 대공이 탱탱하게 힘을 얻은 페니스를 위아래로 쓰다듬다가, 벌떡 상체를 일으켜 아리안을 밑으로 깔아 누이고는 그것을 입에 넣었다.

아리안은 이번에야말로 비명을 올렸다.

“아, 안 돼… 안 돼…!”

이전의 가혹하리만치 집요한 구음을 기억하는 몸이 빳빳하게 굳어지고 발끝이 움츠러들었다.

아리안은 대공의 머리를 밀어 그를 떨어트리려고 했다. 그러나 손가락이 짧은 머리카락 사이를 빠져나갔을 뿐이었다.

조금 전까지 믿기지 않게 달콤한 입맞춤을 나누던 입술이 아리안의 성기를 난잡하게 빨아들였다. 후르륵 하는 소리가 울릴 정도로 거센 구음이었다. 절반 이상 발기했던 페니스가 삽시간에 완전히 단단해졌다. 대공이 그 뿌리를 꽉 움켜쥔 채로 선단을 거세게 빨았다.

“흐으… 아파….”

아리안이 힘없이 속삭였다.

그러나 그 호소는 고통과도 같은 쾌감으로 진이 빠진 탓에 조르는 듯이 들렸다.

대공은 한참 동안 그의 페니스를 빨면서 구멍에까지 손가락을 넣어 쑤셔 댔다. 기어이 아리안이 사정하자 그것을 망설임 없이 삼키기까지 했다.

“하아, 하아….”

아리안이 눈물 젖은 눈으로 대공을 쳐다보았다.

대공은 어딘지 나른한 얼굴이었다. 흐릿하게 상기된 조각 같은 뺨에는 음탕한 기색마저 서려 있었다. 그가 아리안을 똑바로 내려다보면서 눈을 가늘게 접어 슬쩍 눈웃음쳤다. 그것은 흥분보다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아리안의 가슴팍이 오르락내리락 발랑거렸다.

그는 대공이 저번처럼 집요하게 자신의 페니스를 괴롭힐까 봐서 황급히 몸을 구부려 그것을 어떻게든 숨겨 보려 했다.

하지만 천만다행히도 오늘은 이것으로 끝인 모양이었다.

대공이 아리안의 무릎을 놓고 옆으로 몸을 돌렸다.

아리안은 그의 벗은 옆모습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지쳐서 숨을 몰아쉬는 와중에도 아리안은 이곳 차원의 성교 풍습이 참으로 기이하기 이를 데 없다는 생각을 했다. 대공이 그의 가랑이 사이를 물고 빨았던 것에 비하면 그는 대공의 것을 구경도 못 했다.

‘보고 싶냐고 하면 그건 아니지만….’

어쩌면 이곳 차원에서는 남자끼리의 성교에 굳이 삽입이 수반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일반적인지도 모른다. 단지 대공은 전혀 즐거운 것 같지 않았는데 이 일방적인 성교가 대체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아무튼 이것은 아리안이 기대한 바와는 약간 달랐지만, 지난번과는 감히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그들은 사랑을 나눈 것이었다. 비록 아리안의 일방적인 소망을 대공이 들어준 것에 불과할지라도.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깨닫자 갑작스러운 여운이 그를 휘감았다.

팔다리가 노곤히 가라앉았다. 양털을 가득 채워 넣은 이 침대는 한없이 빠져들 듯 푹신했으며 비단 시트는 부드럽게 피부에 감겨들었다. 금방이라도 잠들 것만 같은 피로와 함께 야릇한 충족감이 밀려왔다. 이대로 대공을 끌어안고 함께 잠들고픈 강렬한 충동이 솟았다.

아리안은 힐끔거리며 대공의 눈치를 보았다. 어쩌면 이곳에서 같이 잠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까?

그때 아리안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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