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티아 (13)화 (13/130)

#13

“십 년 전에 헤어진 어리기만 하던 동생이 이제 장성한 사내가 되어 돌아왔구나! 형님 된 도리로 질 수는 없지.”

그가 태피스트리가 드리워진 상석 뒤편을 향해 검지를 까닥이자 거기에 서 있던 쌍둥이 오누이가 다가왔다. 이 쌍둥이 남매는 둘 다 놀라우리만치 아름다웠고 중성적인 모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일처럼 발등을 덮는 긴 튜닉을 입고 소매 달린 가운을 입어서 더더욱 성별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둘 중 한 명이 나일의 잔에, 다른 한 명이 대공의 잔에 술을 따랐다.

나일이 술잔을 내밀어 건배하며 물었다.

“어떠한가?”

“좋은 술이군요.”

“아니 그거 말고.”

그가 폭소를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다시금 술잔을 단번에 비워 낸 그가 술잔을 식탁에 쿵 소리가 날 정도로 거칠게 내려놓았다. 아름다운 쌍둥이 중 한 명이 그의 술잔을 거듭 채웠다.

“이 쌍둥이 미인 말이야. 아주 아름답지? 응?”

“아….”

대공이 새삼스러운 듯이 그들의 시중을 들고 있는 쌍둥이에게 시선을 던졌다.

쌍둥이가 마치 그린 것처럼 똑같은 미소를 생긋 지어 보였다. 대공은 그들이 형제인지, 자매인지, 그도 아니면 남매인지 알아내기 위해 잠시 미간에 인상을 썼다.

“하하하하! 너희들 미모에 내 동생이 놀란 모양이야. 응?”

나일이 쌍둥이 중 왼편에 서 있는 쪽의 손을 잡아끌어 은어처럼 매끈한 손등에 입술을 묻었다. 쌍둥이의 그림 같은 얼굴에는 균열 한 조각 가지 않았다.

“내가 최근 총애하는 아이들이지. 모드론 영주의 양자들인데. 응? 어느 쪽이 계집앤지 한번 맞혀 봐.”

그가 친근한 척 수작을 걸어 왔다.

대공은 눈썹을 찌푸리고 제법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 놀음이 흥미로운 것은 아니었으나 진실로 그들은 성별을 말하기 힘든 모호한 외모였다.

나일은 그것이 퍽 재미있는지 또다시 폭소와 함께 한 손으로 상을 쾅쾅 내리쳐 댔다. 그들 주위에 늘어앉은 다른 귀족들이 배를 잡고 따라서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어렵지? 응? 맞아. 나란히 벗겨 보기 전까진 나도 몰랐거든. 음. 사실 나도 이렇게 입혀 놓은 걸 보니 잘 모르겠어.”

그러면서 그가 다시금 붙잡아 끌어다 놓은 손등에 요란스러운 소리가 날 정도로 키스를 퍼부었다.

그때 상석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나일이 그를 발견하고는 반색을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오! 에머릭! 에머릭이 왔군! 이리 오게, 이 친구야.”

“대공작 전하! 파살리아의 망나니! 우리 가게의 가장 큰손! 위대하신 파티광을 뵙습니다!”

또 다른 공작새가 걸어 들어와 나일을 향해 과장되게 허리를 숙였다. 그녀는 파도처럼 흘러내리는 우윳빛 드레스를 입고 백금을 엮고 진주를 꽂은 휘황한 관을 썼다. 나이는 나일보다 다섯 살쯤 많아 보였고 손끝부터 발끝까지 통통하게 살이 올라 마치 물에서 막 건져 낸 은어처럼 보였다.

나일은 조금 전 대공에게 한 것처럼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아 상석으로 이끌었다.

“이쪽은 내 동생, 도르센 대공. 너도 알지?”

“알다마다요!”

에머릭이 까르륵 웃으며 허리를 깊숙하게 숙였다.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아이참. 제가 다 부끄러울 정도로 몹시 잘생기셨군요. 저희 친구들이 보면 매우 좋아라 하겠어요.”

나일이 방금 전까지 자신의 반대편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귀족을 옆으로 밀쳐 내고 거기에 에머릭을 앉혔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들은 마치 무슨 의식처럼 커다란 컵으로 포도주를 세 잔 연거푸 들이켰다.

“음. 애들은 데려왔고?”

“당연하지요. 가장 예쁘고 잘생긴 애들만 데려왔지요. 망나니의 연회에 오면서 그 정도 준비도 안 했을까요?”

“이 친구! 역시!”

그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우정을 과시하는 동안 대공은 자기 앞에 놓인 식사용 칼로 비둘기를 해체했다.

연회는 에머릭이 데려온 창부들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더 고조되었다.

“그래, 도르센은 어떤가? 파살리아하곤 많이 다르지?”

“다르지요.”

대공의 대답에 나일의 취해 느슨해진 눈에 호기심이 스쳤다. 그 주위에 둘러앉은 다른 이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거긴 추운가요?”

“음식은 어떻습니까?”

“미인은 많나요?”

“뭐가 유행인가요?”

안타깝게도 대공은 그런 호기심에 답해 줄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는 피식 웃으면서 술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그의 입술이 비스듬히 기울어지자 잘 벼려진 칼날 같은 외모에 아주 달콤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은 평화에 물든 파살리아 귀족들에게는 몹시도 위험천만하게, 동시에 몹시도 매력적으로 비쳤다.

“사람들이 궁금해하잖아. 얘기 좀 해 보라구. 도르센에 대해서.”

“별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형님. 거긴 정말 그냥 시골입니다. 파살리아에는 댈 것조차 없죠.”

대공이 어깨를 으쓱했다.

“도르센 사람들은 재미를 모릅니다. 이런 연회도 없습니다. 생활은 항상 똑같습니다. 사백 년간 그래 왔듯이요.”

“그럼 네가 열었어야지!”

나일이 안타깝다는 듯이 발을 굴렀다. 그러면서도 호기심 어린 시선을 감추지는 못했다.

“어떻게 똑같은데?”

“봄에는 경작을 하고 여름에는 성벽을 보수하고 가을에는 추수를 하지요.”

“겨울엔?”

“전쟁을 합니다.”

나일이 김이 빠졌다는 듯 콧김을 뿜었다.

“아니 그게 말이 되나? 응? 거기 놈들은 어떤 걸 하고 노느냐?”

그의 목소리에 음란한 기색이 섞였다.

“내가 듣기론 도르센에선 창부들을 아주 독특하게 교육시킨다면서? 끈에 매달아 놓고서….”

“꺄아아아! 무슨 말씀이세요, 전하!”

그 순간 에머릭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가 묵직한 술잔 바닥으로 식탁을 쿵쿵 내리쳐 댔다.

“어떻게 그런 말씀을….”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대공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잘랐다.

“도르센의 창부들은 여기하고는 조금 다릅니다.”

그러면서 그가 연회장을 한번 둘러보았다. 그의 시큰둥한 표정에 나일의 눈이 커졌다. 그가 안달하듯이 대공 쪽으로 상체를 기울이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다르다니? 어떻게?”

“도르센의 창부들은 부끄럼 많은 처녀처럼 행동하도록 교육받지요.”

그 나른한 목소리에 나일이 허, 허, 하고 웃음을 애써 이어 나갔다.

“포주들이 아주 수완이 대단하군. 창부들을 조신한 처녀처럼 교육시킨다고? 그런 게 가능한가? 응, 에머릭?”

그가 에머릭을 돌아보며 물었다. 에머릭이 손사래를 쳤다.

“도르센의 포주들에게 제가 한 수 배워야겠군요. 비결이 대체 뭐라던가요?”

대공이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포주가 아니라 그것까진 모르겠군요.”

“어머 참 내 정신도… 물론 우리 전하께서는 당연히 포주가 아니시지만….”

“하지만 형님 말씀이 일정 부분 맞습니다. 도르센에서는 창부들을 교육시킬 때 가죽끈으로 매달아 놓거든요.”

그 말에 여기저기서 즐거운 듯한 비명이 올랐다.

“그렇다고 저희 애들을 끈에 매달아 놓으시면 안 돼요. 알겠죠, 두 분 전하? 저희 애들은 나비처럼 섬세하답니다.”

“나비는 무슨. 암말처럼 날 올라타더만.”

나일이 이죽거렸다.

“그래도 어찌 우리 파살리아의 연약한 미인들을 도르센과 비교할까? 네 애들을 묶을 땐 가죽이 아니라 비단 끈으로 묶어 매달도록 하지.”

그 말에 에머릭이 흥분된 콧김을 뿜으면서 꺄악 꺄악, 하고 비명을 질러 댔다. 그리고서 왕자과 포주는 또다시 둘이 얼싸안고 술잔을 나누며 우정을 주위에 과시해 댔다.

연회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가히 전쟁터에서 퇴각하는 것에 비견할 만했다.

나일과 에머릭은 번갈아 가며 대공에게 술을 권했다. 대공은 그들이 만취해 미끈한 구릿빛 피부의 미남을 함께 더듬고 있을 때 간신히 자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나마도 수월하지는 않았다. 쌍둥이 남매가 그를 가로막았다. 그들은 대공의 망토를 벗기고 허리띠를 풀어 주려고 했다. 이곳이 은밀한 내실이 아니라 연회장 한가운데임을 생각한다면 몹시 놀라운 일이었으나, 사실 연회장 꼬락서니를 볼 때는 그다지 대범한 행동 축에도 끼지 못했다.

“저희가 시중을 들겠습니다.”

“대공작 전하께서 방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저쪽으로 가시지요.”

정부를 공유하는 것이 파살리아 궁정식 유행인 모양이었다. 물론 대공은 손위 형제의 정부를 공유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는 버들가지처럼 하느작거리면서 그의 팔과 허리에 달라붙어 오는 쌍둥이 오누이를 밀치고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놓았다.

혼란스러운 연회장 외곽에서 닛사와 오스발이 그를 맞이했다.

“아주 즐거우셨던 모양입니다.”

오스발이 대공의 뺨과 목덜미에 남은 입술 자국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대공은 아무렇지도 않게 소매로 그 입술연지 흔적을 문질러 닦았다.

“아주 대단하더군요.”

닛사가 몹시 불쾌한 어조로 말을 이어받았다.

“어서 이곳을 떠납시다.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그래.”

대공은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예상보다 지나치게 이 난잡한 연회장에서 시간을 지체하고 만 것이다.

오늘 밤 그에게는 몹시 중요한 일이 예정되어 있었다.

오늘은 아리안이 예고한 두 번째 치료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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