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ce in Credit Cookieland 2
직장인이 가장 졸리다는 시간 오전 10시 30분. 출근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지영은 퇴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키보드를 두드리던 지영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내 카페를 찾아간 지영은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는 두 남자를 보았다. 앤드류와 데이빗이었다.
두 사람은 무언가 말하고 있었는데 심각한 이야기라도 하는 것인지 앤드류는 주먹 쥔 왼쪽 손을 입가에 댄 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또 무슨 일이래?
매실에이드를 주문한 지영은 톡톡 튀는 음료를 마시며 다시 일을 하러 돌아갔다.
점심시간. 오늘 사내 식당 한식 A 코스의 메인은 매운 찜닭이었고 양식 B 코스의 메인은 치즈피자, 중식 C 코스는 소고기 브로콜리 볶음이었다.
지영은 곧바로 한식 줄에 가서 섰다. 그런데 자신의 뒤로 누군가 졸졸 따라왔다. 뒤를 돌자 남자의 가슴팍이 보여 지영은 고개를 들었다.
“앤드류? 여기 한식 줄인데요?”
“네, 알아요.”
“양식은 오늘 치즈피자인데요?”
“그렇더라고요.”
지영은 영웅과 매일 같이 밥을 먹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자주 같이 먹었다. 그래서 그가 어떤 음식을 선호하는지 대충은 알고 있었다. 한식이든 중식이든 어디서 뭐가 나오든 양식 코스에 치즈피자가 나올 때면 영웅은 항상 양식 줄에 가서 서고는 했다. 그런 그가 왜 자신의 뒤에 서 있는지 의문이었다.
혹시 피자는 하도 먹어 질린 걸까? 아파서 하루 쉬고 오더니, 입맛이 바뀌었나? 고개를 갸웃한 지영은 패드에 사원증을 찍었다.
메인 메뉴를 뺀 나머지 반찬은 뷔페처럼 자율적으로 가지고 올 수 있었다. 매운 찜닭을 받은 뒤 곁가지 반찬을 조금씩 떠 온 지영은 아까 자신의 뒤에 서 있었으면서 먼저 자리를 잡고 앉은 영웅의 맞은편에 앉았다.
영웅의 식판에는 매운 찜닭을 뺀 나머지 반찬과 국, 밥이 담겨 있었다. 지영은 도통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왜 찜닭은 안 받았어요? 받는 걸 까먹었어요?”
수저로 밥을 뜨던 영웅은 지영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안 까먹었어요.”
“그럼 오늘 한식에 나오는 그 반찬들이 먹고 싶어서 그걸 받은 거예요? 피자 좋아하지 않아요? 피자 나오면 맨날 피자 먹었잖아요. 다 아니다 싶으면 카페 가서 샌드위치 드셨고.”
“피자랑 샌드위치는 손으로 집어 먹어야 하잖아요.”
너무 당연한 소리를 하는 영웅 때문에 지영은 혼란스러웠다.
“그렇죠.”
하지만 그는 평소에 피자나 샌드위치를 나이프로 잘라 먹던 사람도 아니고 지금까지 손으로 음식을 잘만 집어 먹던 사람이었다.
“손에 기름이나 소스가 묻어서 더러워지는 건, 좀 그래서요.”
곤란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인 영웅의 모습은 지영의 눈엔 어쩐지 하나도 안 곤란해 보였다. 거기다 묘하게 다른 말을 더 하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면서 말은 안 하고. 이상했다.
왜 저러지?
“아, 그래요?”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런가 보다 하며 지영은 새빨간 찜닭을 젓가락으로 바르기 시작했다. 외부에서 먹는 것처럼 매운 정도가 세지는 않았지만 스읍, 침이 고일 정도로 매콤한 찜닭이었다.
한참 밥을 먹던 중 영웅의 요란한 젓가락질이 지영의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는 젓가락질을 얌전히 잘하던 사람인데 오늘따라 젓가락질이 서툴러 보였다.
숟가락으로 바꿔 들 때는 좀 나았는데 그래도 이상했다. 그는 마치 귀족이 손수건이라도 꺼내듯 흐느적거리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뭐야, 숟가락 잡는 손이 왜 저렇게 우아해? 지영은 닭 뼈를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그때였다. 형광등 불빛에 영웅의 손가락이 반짝 빛났다.
“반지 끼셨네요?”
탁. 젓가락을 내려놓은 영웅은 갑자기 사레라도 들린 듯 주먹 쥔 손으로 입가를 가리더니 헛기침을 했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모습이었다. 저게 왜 익숙하지? 아! 아까 카페 앞에서 데이빗 맞은편에 앉아 있을 때! 지영은 뼈를 뱉는 척 웃음을 참았다.
어쩐지, 그래서 그랬구만. 이제 보니 젓가락질도 왼손으로 하고 있고. 얼마나 자랑을 하고 싶었으면.
“커플링인가 봐요?”
“예쁘죠?”
보여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왼손을 내민 영웅은 오른손으로 왼손을 느리게 쓰다듬었다. 그의 표정에는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지영은 그가 낀 반지를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얼리에 관심이 없는 자신도 알 정도로 유명한 명품 브랜드의 반지였다. 실물로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예쁘긴 정말 예뻤다.
“어떤 분이 골랐는지는 몰라도 안목이 대단한데요? 진짜 예뻐요.”
“그렇죠? 정말 대단해요.”
지영의 칭찬에 영웅의 입꼬리가 물결쳤다. 반지를 보는 눈빛은 애틋하기 그지없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그 사람이 고른 반지구나 싶었다.
심채언이라는 사람을 딱 한 번 봤는데 지영은 그가 친구라도 된 듯 친숙했다. 집에서든 직장에서든 그에게 안달 난 사람을 매일 만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영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밥이나 먹어야지.
그나저나 그저께 그가 한 이야기는 영화 이야기를 빙자한 본인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영화 이야기였나 보다. 그때 한 짐작과 달리 앞에 앉아 있는 남자의 애정 전선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니 말이다.
내용이 잘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한 번 봐서는 이해가 안 되는 영화라니. 원래도 볼 생각이 없었지만 정말 안 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야. 그래도 한번 봐볼까? 아직 상영 중인가 모르겠네.
영웅이 반지와 사랑에 빠진 사이 지영은 매운 찜닭을 부지런히 먹어 치웠다. 스읍, 하…. 정말 맛있었다.
곰팡이 핀 딸기 외전: Painkiller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