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Last Christmas
영웅은 조용히 현관문을 닫고 집을 나섰다. 최대한 문 닫히는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했지만, 안쪽에 들렸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밖은 완전히 깜깜했다. 이미 백화점이나 마트는 문을 닫은 시각이었다. 하는 수 없이 24시 편의점에라도 들러보기로 했다. 채언이 트리에 달아둔 양말에 선물을 넣어주기 위해서였다.
오늘,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 좋았을 텐데, 하필이면 며칠 전에 내렸다. 그리고 앞으로 한동안은 눈 소식이 없었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던 영웅은 화단에 조금 쌓여있는 눈을 발견했다. 주머니 속 손가락이 움찔했다.
“흐음.”
영웅은 잠시 그 앞에 서서 눈을 보다가 자리를 떴다.
집에서 가까운 편의점에 들어간 영웅은 초콜릿 진열대를 살피고 있었다. 무릎을 굽히고 앉아 열심히 눈을 굴렸다. 세 차례 같은 곳을 훑은 눈가가 슬쩍 찌푸려졌다. 마트처럼 진열대가 큰 것도 아닌데 찾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초콜릿. 여기 있는 게 다인가요?”
고개를 돌린 영웅은 아르바이트생에게 물었다. 카운터에 서서 넋 놓고 있던 아르바이트생은 에? 하고 되묻더니, 다시 물으려는 영웅의 말을 듣지도 않고 대답했다.
“거기 있는 게 다인데요.”
벌어져 있던 영웅의 입이 스르륵 다물렸다. 다시 한번 진열대를 살펴보았지만, 동글동글 마일드 초콜릿은 보이지 않았다. 슬쩍 눈썹을 올렸다 내린 영웅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수고하세요.”
“에.”
편의점 문을 열고 나오자 찬바람이 목 곁을 스쳤다. 어깨를 움츠린 영웅은 주변을 둘러보며 다른 편의점을 찾았다. 저 멀리 초록색 간판 불이 켜진 편의점이 보였다.
인기 있는 초콜릿인 건지, 인기가 없는 초콜릿인 건지. 영웅은 편의점 네 군데를 돌아서, 딱 하나 남아있던 딸기 맛 동글동글 마일드 초콜릿을 살 수 있었다.
전에 마트에서는 여러 가지 맛이 주르륵 진열된 것도 보았는데, 편의점에서는 잘 취급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이번에 산 초콜릿은 전에 채언이 사 먹은 것보다 크기가 조금 작았다. 어쨌든 해가 뜨기 전에 살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리고 그냥 동글동글 마일드 초콜릿보다, 딸기 맛 패키지가 크리스마스 선물답게 알록달록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영웅은 코트 주머니에 넣어둔 네모난 상자를 만지작거리며 집을 향해 걸었다.
거리 곳곳에는 트리가 장식되어 있었다. 전구 불빛은 꺼져있었지만, 가로등 불빛에 비쳐 장식품들이 반짝거렸다. 사람 없는 거리에 서서 영웅은 코트 주머니 속 초콜릿을 만지작거렸다. 거실 트리를 바라보던 채언이 생각났다. 차가운 바람이 볼을 스치는데 영웅은 춥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호오.”
영웅은 길게 숨을 뱉었다. 하얀 흔적이 허공을 그리다 사라졌다.
이렇게 잠깐 스쳤다 사라질 기분이려나. 자꾸 걱정되고, 말 걸고 싶고. 웃어줬으면 하고….
주머니 속에서 손을 빼낸 영웅은 찬바람에 붉어진 귓가를 매만졌다.
집으로 돌아가던 영웅은 아파트 공동현관 앞 화단에 조금 쌓여있는 눈과 다시 마주했다.
“흐음.”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손이 움찔했다. 아무래도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이 녹기 전에 뭉쳐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아.”
손에 입김을 뿜어 따듯하게 한 뒤 손바닥을 비비던 영웅은 아차 싶었다. 손이 차가워야 눈이 녹지 않을 것이었다. 영웅은 기껏 따듯하게 만든 손을 활짝 펼쳐 바람이 숭숭 지나가게 했다.
적당히 체온이 식었을 무렵 그는 맨손으로 눈을 뭉치기 시작했다. 최대한 깨끗하고 하얀 눈을 골랐다.
깨끗한 눈에서 작은 눈덩이 두 개가 나왔다. 영웅은 양손에 눈덩이를 하나씩 쥐고 가운데를 겹쳐 꾸욱 눌렀다. 작지만 그럴듯한 눈사람이 탄생했다. 꽁꽁 언 손가락 끝이 붉었다.
눈사람을 화단 위에 올려놓고 뿌듯하게 웃던 영웅은 이제 그만 집으로 들어갈까 했다.
“아.”
공동현관을 향해 발을 돌리던 그는 빙글 몸을 돌렸다. 화단 앞으로 걸어간 영웅은 핸드폰 플래시를 켜서 밋밋한 눈사람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위아래를 돌려놓아도 어디가 위인지, 아래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맨얼굴이었다. 집에서 자고 있을 무심한 남자가 생각나서, 고민하던 영웅은 검지를 들어 입 앞으로 가져왔다.
“하아….”
입김으로 손가락을 따듯하게 만든 뒤 눈사람 얼굴에 표정을 만들어주었다. 곡선 세 개로 웃는 눈사람이 되었다. 동그란 얼굴을 바라보던 영웅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차가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집에 들어갈 때는, 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소리를 죽이며 걸었다. 조심조심 복도를 걸어간 영웅은 거실 트리 앞으로 걸어가 채언의 양말 안에 초콜릿을 집어넣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운동화로 갈아 신은 채언은 어색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다가 허리를 꾸벅 숙였다.
“잘 다녀와요. 채언 씨. 그럼 여섯 시쯤 돌아오는 거죠?”
“네. 그쯤에요.”
슬리퍼를 신은 영웅은 신발장 앞 복도에 서서 채언을 배웅했다. 중문을 열고 나가려던 채언은 다시 흘끔 뒤를 돌아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누군가에게 배웅을 받는 것은 어색한 일이었다. 그래도 싫은 기분은 아니었다.
엘리베이터를 탄 채언은 1층을 누른 뒤 가만히 서 있었다. 혼자 남으니 자연스레 입이 다물렸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눈은 가끔 끔뻑거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공동현관을 나선 채언은 주위를 살피지 않고 앞만 보며 걸었다. 예전에 살았던 집에 가 볼 생각이었다.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다른 도시로 가는 동안 채언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버스가 달릴수록, 지역과 동네가 바뀔수록 주변 건물은 낡고 낮아졌다. 사람들의 표정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어디에 있든 사람들의 표정은 다양했다. 창문에 비친 채언의 표정만이 변화 없이 같을 뿐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채언은 카드를 찍고 내렸다. 따라 내리는 사람이 몇 없는 동네였다. 아직 날이 환했지만, 햇볕이 들어도 추위가 느껴졌다.
채언은 버스정류장 주변 슈퍼에서 막걸리 한 병을 샀다. 등에 메고 있던 가방에 술을 집어넣고, 지퍼를 잠갔다. 슈퍼를 나서자마자 바람이 목을 스쳤다. 서늘해지는 감각에 채언은 외투 소매를 끌어당겨 손을 집어넣고 목 곁을 잡아 조였다. 오랫동안 살았던 곳인데, 동네는 익숙한 동시에 낯설었다.
채언은 계속 걸었다. 좁은 골목 사이로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나갔다. 낡은 빌라 앞에는 겨울이라 그런지, 관리되지 않은 평상이 놓여있었다. 날이 춥지 않았다면 동네 주민들이 나와 거기에 앉아있었을 것이었다.
채언은 이제는 조금 흐려진 기억을 떠올렸다. 어릴 때 가끔 이 옆을 지나가다 보면 동네 어르신들이 자신을 불러 옥수수 같은 것을 쥐여 주고는 했었다. 집 밖에 나가면 다시 들어오지 못할까 봐 놀이터에도 자주 가지 않던 때였다.
아주 가끔 마주치는 동네 사람들도 몇 번 본 어린애 얼굴을 기억하는데, 그렇게 친절히 대해줬는데. 왜 자신의 부모님은 그러지 않았던 걸까. 왜 자신을 그렇게 미워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채언은 울적해지는 마음에 눈을 내려 발끝을 보았다. 낡은 운동화 앞코가 꼭 자신의 마음처럼 너덜거리는 것 같아서 아랫입술을 물었다. 서글픈 것은 부모님이 원망스러우면서도 끝까지 지워내지 못한 자신 탓이었다.
조금 더 걷자 어릴 때 살았던 아파트가 나왔다. 아파트라고는 하지만, 겨우 두 동짜리로 지금 사는 곳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고 낡은 건물이었다.
작년까지는 사람이 살았었는데 지금은 주변에 접근 금지 테이프가 붙어있었다. 베란다 철창살 사이로 유리창이 깨진 곳이 몇 군데 보였다. 채언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 앞에 선 채, 2층에 있는 베란다 하나를 바라보았다.
철창살 너머로 발을 빼 달랑거리며 부모님을 기다렸었다. 몇 개 없는 장난감 중 하나를 손에 쥐고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장난감을 떨어뜨렸었는데, 밖에 나가서 그걸 주워오는 사이 집 문이 닫힐까 봐 철창살 사이로 괜히 손만 뻗어본 적도 있었다. 매일 손에 닿지 않는 장난감을 보면서 팔을 뻗었었다.
지금은 부모님과 살았던 기억 자체가 손에 닿지 않는 부유물처럼 느껴졌다. 매일 닿지 않는 것을 바라면서. 이렇게.
“하아….”
천천히 내쉬는 숨결이 하얬다. 이곳에 오는 건 내년이 마지막일 터였다. 그때쯤엔 통장에 삼천만 원 정도가 모여있을 테니까. 다음 해 겨울에는 떠날 예정이었다.
채언은 가방을 열어 막걸리를 꺼냈다. 부모님과 사고가 난 곳은 도로라 찾아가지 못하고, 부모님의 시신이 어디에 안치되었는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러니 혼자서 와볼 수 있는 곳은 여기뿐이었다. 채언은 천천히 병을 흔든 뒤에 뚜껑을 땄다. 사람이 지나다니지는 않았지만, 혹시 몰라 눈치를 보며 병 입구를 접근 금지 테이프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술을 제대로 뿌리지도 못하고 반쯤 부은 뒤 서둘러 손을 물렸다. 찰랑이던 술 방울이 손에 조금 튀었다. 채언은 뒤로 걸으며 병뚜껑을 돌려 닫았다.
채언은 성인이 된 후 개인적으로 크리스마스를 챙겨본 적이 없었다. 크리스마스는 혼자 이곳에 들렀다 가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날일 뿐이었다.
뒤로 물러나 아파트 건물을 바라보던 채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 손에 묻은 막걸리를 옷에 문질러 닦은 뒤 가방에 병을 집어넣었다. 급히 걸음을 옮기는데 반쯤 빈 병에서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빠르게 걸을수록 찰랑거리는 소리는 더 커졌다.
그 소리를 들을수록 채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답답한 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말할 사람이 없었다.
이리저리 떠돌던 채언은 작은 동네의 번화가까지 걸었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들고 싶었다. 웃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멍하니 걷던 채언의 걸음은 어느 가게 앞에서 느려졌다. 웃는 사람들이 다닥다닥 박제된 사진관 앞이었다. 채언은 유리창 너머 화려한 액자를 바라보았다. 아랫입술을 깨물다가 사진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에 달려있던 종이 딸랑, 소리를 냈다.
“어서 오세요. 어떤 사진 찍으시려고요?”
사진 봉투를 정리하던 사진사는 채언의 얼굴을 보자마자 물었다.
어떤 사진이라는 물음에 채언은 말문이 막혔다. 웃는 사진이요, 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망설이던 채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 말을 하면 사진사가 자신에게 어떤 위로라도 건네주지 않을까 싶었다.
“영정사진이요.”
“조부모님 사진 스케줄 예약하시려고요?”
“… 아뇨. 제 사진이요.”
채언의 말에 사진사는 봉투를 정리하던 손을 멈췄다.
“아… 예. 지금 찍으실 건가요?”
무덤덤한 사진사의 말에 채언은 가슴속에 품고 있던 어떤 기대를 접었다.
“네.”
채언은 멍하니 눈을 깜빡거렸다. 뭘 기대한 거지. 모르는 사람에게.
“그럼 안쪽 의자에 앉아주세요.”
카운터 바로 옆에 작은 스튜디오가 있었다.
추운 바깥에 있다가 따듯한 내부에 들어왔는데 채언은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것 같았다. 영정사진을 찍기 위해 스튜디오로 걸어 들어가는 채언의 눈에 벽에 걸린 종이 한 장이 보였다. 용도별 사진 규정이 인쇄된 것이었다.
“저, 사진 한 장 더 찍을게요. 여권 사진이요.”
사진관을 나온 채언은 무표정하게 걷다가 사람 없는 담벼락에 주저앉았다. 바닥이 차가웠지만, 머리를 식히는 편이 나았다. 억지로 웃다 나온 얼굴이 뻣뻣하게 느껴졌다. 채언은 차가운 손으로 볼을 문질렀다.
“하아….”
길게 숨을 내쉬었다.
울렁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킨 뒤, 외투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다리를 세우는데 손에 네모난 것이 만져졌다. 핸드폰은 아니었다. 채언은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동글동글 마일드 초콜릿 딸기 맛. 손에 쥔 알록달록한 상자를 내려다보던 채언의 입술이 작게 벌어졌다. 처음으로 받아본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남들에게 다 주는 것 중 하나가 아니라, 혼자서만 받은 선물.
채언은 잠시 초콜릿 상자를 꼬옥 쥐고 있다가, 빨갛게 언 손으로 상자 입구 점선을 눌러 뜯었다. 포장된 비닐이 나와서 그것도 뜯었다. 초콜릿이 든 비닐을 다시 상자에 집어넣은 채언은 상자 입구를 손바닥에 톡톡 쳤다. 동그란 초콜릿이 도르륵 굴러 나왔다.
눈을 끔뻑이며 손바닥을 내려다보던 채언은 그것을 쥐고 입에 넣으려다 멈칫했다. 살짝 입을 벌려 이로 반을 베어 물었다. 날이 추워 녹지 않은 것은 작게 콰직!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입안의 단맛을 느끼며 채언은 베어 문 단면을 보았다. 갈색 초콜릿 안에 분홍색 딸기 맛 초콜릿이 채워져 있었다. 진짜 과일 딸기의 맛은 하나도 나지 않았지만, 채언은 그래서 딸기 맛 초콜릿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코를 훌쩍이며 남은 반쪽을 입에 털어 넣었다.
채언은 남의 집 담벼락 앞에 앉아서 초콜릿 몇 알을 더 오물거리며 먹었다.
아파트 정문을 통과하며 핸드폰 시계를 확인해보니, 영웅에게 돌아오겠다고 말했던 시간보다는 조금 일렀다. 늦지 않아 다행이었다. 고급 아파트는 아까 본 낡은 아파트와는 너무나 달랐다. 단지 내부에 있는 조형물이나 놀이터, 심어진 나무나 꽃들까지.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동 앞까지 걸어간 채언은 크게 숨을 내쉬었다.
“하아.”
다시 한번 마음을 추슬렀다. 그리고 양 손바닥으로 볼을 톡톡 두드린 후 웃는 표정을 한 번 지어 보였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지만 마치 누군가의 앞에서 연기라도 하듯 입꼬리를 올려보는 것이 어색했다.
눈가가 다시 뜨거워질 것 같아서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 다시 꾹 다물린 입술을 깨물려던 찰나였다. 공동현관 앞 화단에 흰 덩어리가 보였다. 아까 나올 때는 보지 못한 것 같은데.
주위를 살필 여유가 없었던 낮을 떠올리지 못한 채언은 화단 앞으로 걸어갔다. 어른 주먹만 한 눈덩이 두 개를 합쳐 만든 작은 눈사람이었다.
“하.”
어이없는 웃음이 터졌다.
어린애가 만들었나. 눈사람이 너무 작잖아.
눈사람의 얼굴에는 풀잎도, 나뭇가지도 꽂혀있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힘주어 그어놓은 표정만 보일 뿐이었다. 그래도 자연스럽게 웃고 있는 얼굴이 꽤 귀여웠다. 눈사람은 너무 동그래서, 동글동글 마일드 초콜릿의 화이트 초콜릿 버전 같기도 했다.
아마 며칠 전 내리고 녹지 않은 눈을 어디서 긁어모아 만든 것인 듯했다. 채언은 화단 가까이 가서 작은 눈사람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건드려보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잠시 후. 채언은 꽁꽁 언 손을 주머니에 넣고 공동현관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눈사람 옆에 더 작은 눈사람이 하나 더 생겨있었다. 두 개 다 웃는 얼굴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채언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차가운 손으로 주머니 속 초콜릿 상자를 매만졌다. 크리스마스에 눈사람을 만들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온 채언은 옆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어! 채언 씨.”
반갑게 웃어주는 영웅의 얼굴을 보며 채언은 눈을 깜빡였다.
“잘 다녀왔어요?”
“…네.”
채언은 주머니 속 초콜릿 상자를 꽉 쥐었다. 종이 상자와 비닐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갑작스레 그를 마주쳐 놀란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디, 다녀오셨어요?”
“네. 나도 잠깐 나갔다 왔어요.”
영웅은 손에 쥐고 있던 케이크 상자를 들어 보였다.
“크리스마스잖아요. 같이 케이크 먹자고요.”
채언은 케이크 상자를 들고 웃는 영웅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같이 현관 앞까지 걸었다. 조용한 걸음에 가방 속 막걸리 병에서는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모임이 여기 근처에서 있었어요? 가까운 줄 알았으면 집에 오는 길에 데리러 갔을 텐데.”
“아뇨. 조금 멀리서요.”
영웅은 현관문 손잡이를 잡고 열었다. 채언에게 먼저 들어가라는 듯 잠시 서 있었는데, 문 안으로 들어가려던 채언이 머뭇거렸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까만 눈동자를 보며 영웅은 눈썹을 올렸다.
“사장님.”
“네.”
“그게….”
주머니에서 손을 뺀 채언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초콜릿, 잘 먹었습니다. 맛있었어요. 딸기 맛.”
그 말에 영웅이 활짝 웃었다.
“여기 초콜릿 더 있는데. 딸기 맛은 아니지만요.”
손에 든 케이크 상자를 살짝 들어 보인 그는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며 채언에게 고갯짓했다. 영웅은 채언이 집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문을 잡고 서 있었다. 낡은 운동화가 완전히 문 안쪽으로 들어갔을 때에서야 자신도 집 안으로 들어섰다.
두 사람은 현관 복도를 같이 걸었다. 중문을 열고 함께 신발을 벗었다.
따듯한 집 안에서 빛나는 크리스마스트리의 전구 불빛이, 여전히 크리스마스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곰팡이 핀 딸기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