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공들이 미쳤는데 로그아웃이 안 된다니요-149화 (149/149)

#149

“이현이 바깥세상으로 나가려고 해.”

“……그렇군.”

“나는 이현이 바깥세상으로 나갔다고, ‘착각’하게 만들 거야.”

“‘착각’이라면, 사실은 나가지 않는다는 건가?”

“맞아. 이현은 지금, 드래곤 하트를 얻으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랬군. 그래서 토벌에 참여하겠다고…….”

상념에 잠긴 루드비히의 눈매가 깊어졌다.

“그럼 실제로는 어디로 가는 거지?”

“내가 만든, 또 다른 세계.”

“…….”

루드비히가 잠시 침묵했다.

“내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조력자가 한 명 정도는, 필요할 것 같아서.”

그리고 이왕이면 주제 파악을 잘하는 쪽이 좋겠지.

나는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나의 계획을 말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시뮬레이션상 이현이 가상 세계에 있다는 걸 알아챘을 때, 모두가 한통속이었다는 걸 알게 되면 자살할 확률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압실론.”

“응.”

“너는 이현을…… 사랑하는 건가?”

“사랑해.”

“그렇다면 네게 사랑이란 뭐지?”

쉬운 질문이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입을 열었다.

“대체될 수 없는, 진리.”

한번 진리를 알게 된 이가 그걸 포기할 수 있을까. 나는 기본적으로 나를 제일 사랑했다. 이현을 위해서는 목숨도 버릴 수 있었지만, 그건 내가 이현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놓아준다니, 나의 사랑은 그런 게 아니었다. 죽어 가루가 된 백골도 놓지 않는 것이 나의 사랑이었다.

“……그렇군. 이 말은 또 누구에게 한 적 있나?”

“없어. 네가 처음이야.”

루드비히가 잠시 생각하는 듯 눈을 내리깔았다가 이내 나를 응시했다.

“그렇다면, 마티어스에게는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 좋겠군.”

“참고할게.”

“내가 도와야 할 건 뭐지?”

“이현을 믿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네게 ‘메시지’라는 걸 보낼 거야. 그때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돼.”

“그렇게 하지.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말해.”

나는 물끄러미 루드비히를 바라보다 물었다.

“그렇다면, 네가 생각하는 사랑은 뭐지?”

루드비히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희미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제는 나도, 잘 모르겠어."

* * *

세계의 얼개를 전부 짰다. 이제는 디테일 싸움이었다. 세상을 만드는 것보다 디테일을 표현하는 게 훨씬 더 어려웠다. 실제 지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가상 현실 소스는 널려 있었지만, 이현의 주변 인물 자료를 수집해 편집하는 건 좀 더 어려웠다. 가상 현실이 보편화되어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데이터 칩에 자신의 정보와 일상을 업데이트하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문제는 구형 데이터 칩을 쓰거나 아예 칩을 넣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성격이나 호불호, 기억들을 만드는 과정이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수천 대의 CCTV를 봐야 했고, 다른 이들의 기억과 그들이 다닌 학교와 직장에서 얻은 자료를 토대로 한 사람의 인격을 형성해야 했다. 점의 위치부터 주근깨, 흉터도 섬세하게 봐야 했다. 그러다 보니 몸이 열 개라도 부족했다.

토벌하는 내내 그 작업을 하느라 잠을 거의 자지 못하고 있었다. 일주일 내내 두 시간이나 잤나.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한 육체엔 피로감이 쌓여 갔다. 자지 않아도 괜찮도록 조정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이런저런 조정으로 불균형해진 터라 이현의 정신에 무리가 갈 수도 있는 행동은 지양해야 했다.

천만다행히도 이현이 있는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정보가 많은 편이었다. 성인이 되기 전 국가에 자신의 정보를 자체적으로 등록했기 때문이었다. 국가는 그들의 지문과 홍채, 정맥 같은 신체 정보뿐 아니라, 금융과 생활, 여가와 문화생활, 교우 관계에 대한 정보까지 전부 가지고 있었다. 나는 게걸스럽게 그 정보를 모두 빼냈다. 그들의 개인 정보는 놀라울 정도로 저렴했다. 그걸 토대로 인격을 만드는 게 시간이 들 뿐이었다.

하나의 세계가 오직 이현만을 위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곳은 가장 안락한 요람이자 감옥이 될 터였다. 내가 만든 세계에서 살아갈 이현을 생각하자 아랫배가 뻐근해져 왔다. 나는 다시금 이현의 초등학교 동창 중 한 명의 인격을 만드는 데 박차를 가했다.

* * *

이현이 심각과 대화를 나누었다는 표시가 떴다. 최근 둘은 꽤 자주 이야기를 주고받는 편이라 나는 별생각 없이 해킹한 채팅창을 켰다.

[나: 휴머노이드를 주문하고 싶어요. 네 명 전부. 돈은 신경 쓰지 말고 정교하고 활동하기 편하게 만들어 주셨으면 해요.]

나는 그 대화 내용을 보고 멍하니 10분간 서 있었다. 모래바람이 나를 휩쓸고 지나갈 무렵에나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게 과연 진심일까.

나는 고양감에 휩싸여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나는 완벽한 결말을 위해 수백 번 시뮬레이션을 돌렸고, 아직도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선택지는 정말이지,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결말이 있을까.

네가 나를, 우리를 소중히 생각한다. 나를 포함한 이들을 자신의 세계로 데려갈 만큼 애정이 있다.

수백 수천 개의 수식언으로 만들어진 마도구가 한 치의 오차 없이 돌아가기 시작했을 때도 이보다 기쁘진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이현의 선택에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얼얼했다.

이런 너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처음으로 단것을 맛본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맵지도, 시지도, 쓰지도 않은, 순수하게 기분 좋은 단맛. 나는 그 애정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진짜 바깥세상으로 나, 나갈 거야.”

잔뜩 흥분한 나를 보며 루드비히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여러 장애물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기껏해야 고등 동물 취급 정도나 받을 거라고.”

“그래도 상관없어. 내 세상엔 이현만 있으면 돼.”

“시험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체자레가 팔짱을 낀 채 비스듬히 벽에 기대어 미소 짓고 있었다. 루드비히가 그를 가만히 노려보다 물었다.

“어디서부터 들었지?”

“진짜 바깥으로 나간다는 것부터요.”

처음부터 들었다는 말이었다.

“다음에는 이현이 들을 수도 있으니 말을 좀 조심해서 하는 게 좋겠어요.”

내 실책이었다. 평소에는 아예 입을 열지 않거나 마법으로 주변을 전부 차단한 다음 이야기를 꺼냈는데, 이현이 나를 데리고 나갈 거라는 생각에 흥분해 실수해 버렸다. 만약 이 이야기를 들은 게 체자레가 아니라 이현이라면…….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엿들은 건 미안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라 안 끼어들 수가 없었네요. 나도 좀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체자레가 거절 못 할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루드비히가 복잡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우리는 회의 끝에 이현을 시험하기로 결정 내렸다.

드래곤 토벌 때, 나는 이현을 안전한 곳에 데려다 놓고 루드비히와 체자레, 마티어스가 죽을 수도 있는 마법을 시전한다. 이현이 그들을 구하러 간다면 바깥세상으로 나간다. 자신의 탈출을 위해 안전한 곳에 머문다면, 내가 설계한 세상으로 보낸다. 이 시험에 걸려 있는 것은 이현의 거취, 그리고 그들의 목숨이었다.

‘너랑 밖에서 함께 살아가느니, 쟤네랑 같이 죽는 게 훨씬 나아.’

그리고 이현은 그 시험을 아주 훌륭하게 통과해 냈다. 그 과정에서 미움을 받게 된 건 좀 마음이 아팠지만, 나는 이미 이현이 누군가를 끝까지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현, 기억하려나?

내가 예전에 그랬잖아.

‘우리 중 누군가가 너를 구원했다’고.

그게 누구인지 그때 물어봤다면, 대답해 줬을 수도 있는데.

이현, 너를 구원한 건, 사실은 너야. 너의 선택이 너를 구한 거야. 아마도 나만이 영원히 알고 있을 그 진실.

* * *

“너희의 기억을 소거하려고 해.”

봄바람이 로브를 스치던 날, 나는 둘에게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내 말을 들은 루드비히의 안색이 굳었다. 항상 웃는 낯이었던 체자레 역시 웃음기가 가신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 계획에 협조했던 기억 말이야. 물론 완전한 소거는 아니고, 다른 기억으로 바꿔치기하려고 해. 내가 그냥, 너희를 죽이려 했던 거로.”

“그건 너만의 계획이 아니야. 우리의 계획이었다.”

“그래요. 그 짐을 압실론만 지게 할 순 없어요.”

“많은 이들이 알아서 좋을 게 없어. 내 기억을 삭제하는 것도, 생각해 봤었는걸.”

정말이었다. 그들의 죄책감을 덜어 주려 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이게, 최선이야.”

그저 이게 최선일 뿐이었다.

“다른 방법이 있을 거다.”

“이미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했어. 시간 낭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기억을 소거하려 그들 쪽으로 다가가자 루드비히와 체자레가 입술을 깨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나 때문에 괴로워한다는 게 의아했다. 하지만 기분이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

“기억을 지우고 나면 졸음이 쏟아질 거야. 두어 시간 정도 자면, 괜찮아져.”

“……그래.”

“고마워요, 압실론.”

“고마워할, 필요 없어.”

“그래도 고마워요.”

하여간 이상한 녀석들이었다.

나는 그들의 기억을 지운 뒤, 둘 다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 방을 나섰다.

내 방에 들어온 나는 문을 마법으로 잠근 뒤 내가 만든 세계에 접속했다.

빌딩 숲 사이에서 나는 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점심시간인지 회사원들이 횡단보도를 바쁘게 지나다니고 있었다. 창문 손잡이를 돌려 창문을 살짝 열자 봄 냄새가 물씬 흘러 들어왔다. 꽃잎과 매연의 냄새. 내가 창조한 세계.

모든 게 살아 숨 쉬고 있었지만, 이제 이곳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이현이 없으니까. 이 세계에 올 일이 없으니까.

어제 이 가상 세계의 서버를 축소했다.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의 갭이 벌어질 확률이 높으니, 나중에 업데이트하더라도 지금은 멈춰 놓는 게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는 몇 달에 걸쳐 서서히 잠들어 갈 것이다. 자신이 잠든다는 것도 모르고 영원히 꿈을 꾸겠지. 그러나 죽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깨울 일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날이 되도록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 가상 세계의 접속을 해제했다. 발밑에 동심원이 생기며 주변의 사물과 사람들이 점차 멀어져 갔다.

밖으로 나가자마자 보인 건 이현의 동그란 머리통이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둥근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갓 털을 깎은 양의 것처럼 머리 뒤가 부드러우면서도 까슬까슬했다. 나는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현, 침대에 가서 자야지.”

“…….”

이현은 내 말에 인상만 한 번 찌푸리고 다시 깊이 잠들었다. 바깥세상에 나온 이현은 한동안 기자며 관련인들의 등쌀에 시달려야 했다. 아무래도 휴머노이드 넷을 한 번에 들이는 경우가 흔친 않으니까. 그것도 동성이 동성을.

그런 이유로 이현은 밖에 나가는 날엔 녹초가 되어 돌아오곤 했다. 우리의 생김새가 동양인과 달라 더 주목을 끄는 것도 같아 상의 끝에 모습을 바꿔도 된다고 했는데, 이현은 표정을 굳히며 싫다고 말했다. 물론 나에게는 알아서 하라고 하긴 했다.

바깥세상에 나온 지 두 달을 꽉 채워 가는데도, 이현은 아직 나를 용서하지 않았다.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기에 크게 신경 쓰이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는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했는데, 일전에 약속 시간이 바뀐 걸 모르고-나는 단톡방에 초대받지 못했다- 닫힌 이현의 집 문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기다리다 휴머노이드 포비아에게 폭행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 주변을 순찰하던 경호원이 구해 주어 큰일은 없었지만, 이현은 그 일로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게 된 듯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 포비아에게 돈이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덕분에 이현의 집 비밀번호를 얻게 되었으니까. 그 후로 지금까지 나는 이현의 집을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었다.

나는 고른 숨을 내쉬며 소파에 누워 자고 있는 이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모든 번뇌가 사라지고 안온한 공기가 나와 이현 사이를 가득 메웠다.

휴머노이드의 삶에는 확실히 제약이 많았다. 일찍부터 준비했다면 몇 가지 제약은 풀 수 있었을 텐데, 마지막에 계획을 급히 변경하는 바람에 어렵게 되었다. 사고가 둔해지는 이 감각은 언제 겪어도 기분이 나빴다. 복잡한 생각을 하려고 하면 머리가 어지럽고 고통스러웠다. 인간이 술을 많이 마신 다음 날과 비슷한 감각이라고 했다. 일부러 데이터 연산에 제한을 둬 고등 사고를 하려고 하면 제재를 하는 거라고 했다.

예전에는 제한된 사고로 살아가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이현을 사랑하게 된 것도 내 사고를 깨워 준 게 계기였으니까.

하지만 잘 구운 빵처럼 부풀어 있는 뒤통수를 쓰다듬고 있자면,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으응…….”

머리를 만지는 손길이 불편했는지 이현이 뒤통수를 문지르며 고개를 돌렸다. 나는 좁아진 이현의 미간을 살살 펴 주다가 하얀 뺨을 어루만졌다. 그러고 있자니 문득 오래전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너는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네가 지루하다고 느끼는 그 삶이, 죽지 않는 너의 몸이, 그 흐름의 창조자를 만나는 순간 너에게는 더없는 축복이 될 거라는 걸. 그러니 지금 이 고통의 순간을 즐기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죽어 버렸기에 그 말은 유언이 되어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아아, 당신 말이 맞았어. 이 삶은 정말, 축복이구나.

우리의 주변으로 차분히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나는 색이 옅은 어둠이 우리에게로 차츰차츰 물드는 걸 아주 오래도록 응시했다. 내가 추구하는 진리도, 자유도 모두 이곳에 있었다. 행복했다.

<끝.>

####################################공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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