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이현을 만났다는 기쁨에 흥분하기도 잠시, 나는 그가 <소년들>에 접속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기계를 장악한 내게 다른 게임에 접속하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반가운 마음에 메시지 좀 보냈다고 이현은 소리를 지르며 접속을 종료했다. 다른 말도 아니고 ‘거기서 뭐 해?’라는 메시지일 뿐이었는데.
나는 불 꺼진 화면을 이틀 넘게 바라보다 패배를 인정했다. 반가운 마음에 냉정함을 잃어버린 게 나의 패착이었다. 실수는 한 번이면 족했다. 이현은 코드를 뽑았으니 괜찮았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고 있었다. 이 기계는 유선 충전과 무선 충전이 둘 다 가능했다. 바닥의 전기를 끌어와 무선 충전을 하는 건 그때의 내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때의 일로 나는 실수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나는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그 전의 나’를 보기로 했다. 과거의 내가 아니라 이전 회차의 나를. 세이브 데이터에 관람 모드로 접속해 플레이 데이터를 꼼꼼하게 분석했다.
이전 회차의 나는 생각만 했었던 일을 실제로 실천에 옮겼었다. 이현을 인형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그 후의 또 다른 나는 불행해졌다. 뒤늦게 이현의 외모를 따라 할 수 있는 종족을 찾아내 너덧 명을 이현으로 만들고 나서야 만족했다. 그러나 그건 자유도가 떨어진 ‘나’나 만족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의 나는 그것들로 만족할 수 없었다. 나는 이현을 인형으로 만드는 계획을 영원히 포기했다.
나는 몇 년에 걸쳐 이현을 위한 촘촘한 그물을 짰다. 걸려들길 기다리는 것뿐만 아니라 시기적절할 때 그를 이 세계로 데려올 계획도 짜고 있었는데, 이현이 제 발로 이 세계로 걸어 들어왔다. 아직 모든 계획이 완성되지 않아 허술한 부분도 있었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나는 즉시 이현의 손목에 브레이슬릿을 채우고 계획을 발동시켰다.
체자레가 칭제하고, 전쟁을 일으켰으며, 모든 지역을 전쟁터로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예전에 알던 AI에게 받아 둔 바이러스를 이용해 이현의 육체와 정신을 분리했다. 그것도 모르고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싱싱하게 파닥이는 이현을 보고 있자니 나도 함께 살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현을 만난 뒤 내가 가장 고민했던 건, ‘어디까지 알고 있는 척해야 할까’였다.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으면 소름 끼쳐 할 수도 있으니까. 그가 나를 미워하는 건 견딜 만했지만, 두려워하진 않았으면 했다.
그렇게 유리 다루듯 부족함 없이 대해줬는데도 불구하고 이현의 정신은 붕괴되어 갔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신이 소멸할 수도 있었다. 나는 일단 이현을 한번 놔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이현은 제법 훌륭한 계획을 짰다. 나조차도 깜빡 속아 넘어갈 정도로.
나는 그 약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이현을 닮은 녀석이 몰래 먹이는 약을 삼켰다. 그러나 컨트롤러인 내가 그 정도의 약에 정신을 지배당할 리가 없었다. 나는 일생일대의 연기를 펼쳤다. 주머니 속에 든 이현이 귀여워 실수할 뻔한 걸 제외하면, 꽤 괜찮은 연기였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현을 놔주고 난 뒤 다른 계획을 짜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머릿속에 몇 가지 선택지가 떠올랐다. 그러나 생각은 생각일 뿐이었다. 나는 정답에 근접한 데이터가 필요했다. 나는 최선의 선택을 위해 시뮬레이션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현의 데이터를 복사해 다른 세이브난에 붙여 넣은 뒤 조금씩 다른 선택지를 주었다. 배속을 달리한 시뮬레이터 안의 이현은 느리면 하루에 일주일, 빠르면 한 살까지 나이를 먹었다.
첫 번째 이현이 죽었다. 자살이었다.
두 번째 이현이 죽었다. 자살이었다.
세 번째 이현이 죽었다. 타살이었다.
마흔아홉 번째 시도에는 3년간 생존했다. 그러나 어느 날, 평소처럼 잠이 들어서는 다시는 깨어나지 않았다. 자신의 의지였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살아있을 수 있지. 방법이 있을 텐데.
아직 결정을 내리기 전, 마티어스가 이현을 찾아냈다. 마티어스는 우리에게 연락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이현 몰래 그가 우리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신체 접촉을 하면 알림이 뜨게 해 놓아서였다. 이름 모를 섬에서 몇 번이고 알람이 뜨는 걸 봤을 때 처음 든 감정은 질투도 분노도 아니고, 신기함이었다.
이현이 자유 의지로 마티어스와 입을 맞추고 있다. 어쩌면 내가 돌린 시뮬레이션과는 다른 엔딩을 맞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결정했다. ‘이현을 위한 지구’를 만들기로.
당연히 그건 진짜 지구는 아니었다. 또 하나의 가상 현실일 뿐. 하지만 여기보다는 나았다. 이곳에서의 이현은 결국은 무너져 내렸다. 혹여 그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더라도.
나는 또 다른 지구를 만들어 이현이 그 지구가 진짜라고 믿게 만들 생각이었다.
다행히 인간들은 환경 문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또 하나의 지구를 가상 현실로 구현해 놓는 데 진심이었다. 오픈 소스도 많아 나는 양질의 데이터를 택해 가져오기만 하면 되었다.
휴머노이드로 나가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아직 바깥세상은 휴머노이드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지 않았다. 나간다 해도 이현에게 기대어 살아야 하는 구조였다. 이현이 우리를 용서할지 말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휴머노이드가 되길 택하는 건 너무 무모한 선택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게임 운영자의 도움을 받았다. 이현은 그를 ‘심각’이라고 하던가. 사실 도움을 ‘받았다’기보다는 ‘받아 냈다’는 거에 가까웠다. 그는 이현을 밖으로 빼내기 위해 꾸준히 연락을 취해 왔는데, 나는 의도적으로 연락을 차단했다. 이현이 없었다면 진작 나를 제거했겠지만, 나를 건드리면 이현의 정신이 망가질 수도 있어 그는 내게 직접적인 제재를 가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그는 처음에는 내 제안을 우습게 여겼지만, 곧이어 내가 가진 카드를 빼 들자 좀 달라졌다. 이런 거래를 위해 만든 재력이었다.
다른 AI의 도움을 받아 WZ 소프트를 해킹해 주가를 조작한 적도 있어 나는 상당량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개인을 위한답시고 시스템을 건드렸다가 그 개인을 위험에 빠지게 한 직원과 나라는 선택지가 있을 때,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라면 당연히 날 택할 터였다.
나는 심각에게도 선택지를 주었다. 이현의 안위인지, 자신의 안위인지. 심각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듯했지만 결국에는 자신을 택했다. 나는 그가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아주 인간다운 선택이었다.
나는 심각이 이현으로 하여금 그가 실제로 나갈 수 있을 거라 믿게 만들길 원했다. 그를 내 통제하에 두면서 메시지를 보내게 만들었다. 그러나 죄책감 때문인지 그는 이현에게 자꾸만 힌트를 주려고 했다. 나는 그에게 경고를 주기로 했다.
심각한 건 아니고 아주 가벼운 경고였다. 그가 담당하고 있는 회사 서버실의 온도 조절 시스템을 냉방에서 난방으로 바꾸는 정도? 하지만 낙하산으로 들어온 데다 특유의 성격 때문에 크고 작은 사고를 쳐 왔던지라 그 사건 이후 그의 입지는 더 좁아졌다고 했다. 그 후로 그는 내 말을 거스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내 눈치를 보며 내가 필요하다고 했던 자료 몇 개를 몰래 건네기도 했다.
던전을 토벌하던 중 사소한 사건 하나가 생겼다. 나는 이현을 위한 지구를 만들기로 하긴 했지만, 혹시나 있을 더 괜찮은 미래를 위해 계속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시뮬레이션 속 이현이 튀어나와 이현에게 접근한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이현에게 말을 걸기 전 사라지긴 했지만, 혹시나 그와 대화라도 했다면……. 가슴이 철렁했다.
데이터를 살펴보니 시뮬레이션 속 나와 거래해 이루어 낸 일이었다. 시뮬레이션 속 압실론과 평생 함께하기로 조건을 걸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현은 돌아가자마자 자살을 시도했고, 성공했다.
찢어진 이현의 육체를 꿰매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보던 나는 조용히 시뮬레이션을 종료했다. 생각이 많아지는 것과 동시에 이현에게 다시 한번 반했다. 분신이라도 이현 정도 되니 이런 일이 가능하구나. 이러는데 어떻게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는 법을 몰랐다.
토벌을 진행하던 나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현을 살리기 위해 루드비히와 체자레가 자신을 희생한 것이다. 그들의 몸에는 영구적인 장애가 남게 되었다. 이 일로 인해 이현은 죄책감을 가지는 것과 동시에 그들에게 어떤 연민과 사랑을 느끼게 된 것 같았다. 나는 진심으로 잘됐다고 생각했다.
“고치지 마.”
루드비히가 나를 보자마자 한 말이었다.
“고칠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모, 르는걸. 하지만 고칠 생각, 없었어.”
“그거 잘 됐군.”
나는 루드비히의 하얘진 동공을 살피며 말했다. 하라면 못 할 것도 없겠지만, 해 줄 생각은 없었다. 누구 좋으라고 한단 말인가. 이현이 겨우 우리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현은 마티어스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그거로는 부족했다. 인간 기준 사랑의 유통 기한은 약 3년이었다. 우리에게는 사랑 외에 이현과 우리를 엮을 아주 강력한 것이 필요했다. 그것이 죄책감이든, 동정이든, 가릴 만한 처지가 아니었다.
“너도 제법, 밑으로 떨어졌구나, 루드비히.”
내 말에 루드비히가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 애를 볼 때면 언제나 우물 밑바닥에 처박혀 있는 기분이었어.”
루드비히의 말은 의외였다. 그리고 자기 객관화가 꽤나 잘 되어 있었다.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할 말이 있어, 루드비히.”
나는 고민 끝에 루드비히에게 내 계획을 말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