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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공들이 미쳤는데 로그아웃이 안 된다니요-145화 (145/149)

#145

이현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이내 인상을 썼다.

“그게 너라는 개소리하려는 거면 하지 마라. 안 궁금하니까.”

이현이 나를 손가락질하며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리고 밥 먹을 땐 말 걸지 마. 밥맛 떨어져.”

“알았어.”

나는 얌전히 대답하고는 중앙에 놓인 사과를 집어 들었다. 사과를 한 입 베어 문 뒤 다시 쳐다본 이현은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찌나 깊이 생각에 잠겼는지 내가 대놓고 빤히 바라보는데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을 구원한 게 누구인지 고민하고 있겠지. 그런 점도 귀엽다니까. 그런 이현이 귀여워 조금 더 놀려 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양 뺨 가득한 빵을 씹지도 않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자니 문득 옛날의 이현이 떠올랐다. 지금보다 볼살이 조금 더 통통하고 눈매가 좀 더 둥글었던 너.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눈을 감지 않아도 나는 우리의 첫 만남을 떠올릴 수 있었다.

어떻게 잊을까, 나를 새로 태어나게 한 그날을. 세상에서 너만 반짝이던 그때를.

그거 알아, 이현? 너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너만이 내 세계에서 유일하게 빛을 내고 있어.

* * *

처음 기억은 지하실이었다.

기억나지 않을 때부터 나는 고문과 실험을 반복해 당하고 있었다. 아프고 괴로웠냐고 물으면, 아프진 않았고 괴롭긴 했다고 답하겠다. 고통은 친근했다. 괴로운 건 따로 있었다.

삶이 지루했다. 자의로 끝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더 그랬다.

지금의 나와는 다르게 그때의 나는 누군가와 같이 있는 시간을 꽤 좋아했다. 지루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를 때리고 실험하는 이들이 내뱉는 말을 게걸스럽게 빨아들였다. 문장뿐 아니라 단어와 한숨의 부스러기까지도.

말을 배운 적 없는 내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건 그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다음 날이면 죽어 없어질 실험체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붙였다. 실험체들과의 대화는 보통 이런 식이었다.

“죽었어?”

“끄으으으…….”

“안 죽었으면, 마, 말 좀 해 봐. 너는, 무슨 말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해.”

“제기랄, 이, 괴물 새끼…….”

“……주, 죽었네.”

그렇게 말을 쓰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비속어를 꽤 많이 알게 되었다.

실험체들이 다 죽어 고요한 밤이면 그들과의 대화를 복기하고 또 복기했다. 어려울 건 없었다. 떠올리기를 원하면 그날의 장면은 내 머릿속에 바로 떠올랐으니까.

하지만 금세 지루해졌다. 그들의 대화에는 패턴이 있었다. 연구원들에게 시선을 돌려 그들을 일부러 도발해 본 적도 있었으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그들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지겨워.

달에 백 명 이상 죽어 나가는 지하실에서 내가 가진 생각은 그것뿐이었다.

왜 죽음을 택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더 심한 강도의 실험을 당하는데도 다른 이들과 다르게 숨이 끊어지지 않아서 나는 죽지 않는 몸인 줄 알았다고 하겠다.

실험체가 매일 죽는 건 아니었기에 종종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때도 있었다.

내가 가장 오래 대화했던 상대는 70대의 마법사였다. 그는 원래 마탑에서 괴짜로 유명한 이였는데, 사소한 일로 황제의 미움을 사 이곳에 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곧 죽음을 맞이할 걸 알고도 초연했다.

“너는, 죽음이 두, 렵지 않아?”

이렇게 물으면 그는 혀를 찼다.

“네가 나한테 이렇게까지 버르장머리 없이 구는 모습을 보자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될까 싶어 두렵긴 하구나.”

음, 그는 정말 이상했다. 흑마법 실험 부작용으로 고통스러워 가슴을 쥐어뜯는 실험체를 일부러 죽이기도 했다. 숨이 끊어진 실험체를 내려다보며 나는 물었다.

“그 사람은, 어, 어차피 주, 죽을 텐데 왜 죽, 이는 거야?”

“조금이라도 고통을 줄여 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해 주는 게 맞는 거다, 이 녀석아.”

그러나 그가 실험체를 죽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바람에 그는 죽기 전까지 더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궁금해졌던 나는 그에게 제안했다.

“내가, 너를…… 주, 죽여 줄까?”

내 말에 그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네 녀석의 동정을 다 받고.”

“어떻게, 죽고 싶어?”

그의 말을 긍정으로 알아들은 나는 그를 죽일 방법을 생각했다. 내가 봐도 그의 상태는 심각했다. 팔다리는 애초에 부서졌고, 내장은 전부 망가져 죽 한술 뜨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됐다, 이 녀석아.”

“왜? 주, 죽는 게 무서워?”

“내 나이가 몇인데 죽는 게 무섭겠냐. 나는 고통에서 기쁨을 얻는 편이라 괜찮아.”

“아, 그렇구나.”

“……농담이다.”

그는 낄낄거리면서 웃다가 쿨럭쿨럭 기침을 했다. 손바닥에 걸쭉한 피가 섞여 나왔다. 우리는 둘 다 그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직감했다.

“그러고 보니 너는 통 죽지 않는구나.”

“나는 아마, 주, 죽지 못하는 거, 같아.”

그가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럴 수도 있겠군…….”

그가 흥미로운 생명체 보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시선이 나를 실험하는 사람의 시선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아마 같이 갇힌 신세가 아니었다면 그에게도 실험당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봐. 너,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아나?”

“그, 정도는 나, 나도 알아.”

“안다고? 어디로 가는데?”

“소각장.”

나는 자랑스럽게 어깨를 펴고 말했다. 그가 황당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킬킬거렸다.

“그거 말고, 영혼 말이야.”

“영혼? 그게, 뭐야.”

“사람은 육체와 영혼이 나누어져 있단다, 아가야. 육체는 죽더라도 영혼은 불멸하지.”

“불멸이 뭐, 뭔데?”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말이다.”

내 육체가 죽지 않듯 사람들의 정신도 죽지 않는다는 걸까? 그의 말은 어딘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때때로 그는 마법사나 학자가 아니라 종교인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저, 정말 지루, 하겠다.”

“뭐가 말이냐?”

“영, 원히 산다는, 거.”

“사는 게 지루하냐? 하긴, 여기 계속 갇혀 있으면 그럴 법도 하겠지. 하지만 말이다, 나는 네가 죽지 않는 데에 어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거든.”

“무, 슨 이유?”

“이 세계엔 큰 흐름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그 흐름에 휩쓸려 태어나고 죽음을 맞이하지. 하지만 때때로 그 흐름을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이 태어나.”

그때 나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면서 정신없이 그의 말을 삼켰다. 그의 호흡과 구강에서 나는 냄새, 문장과 연음, 낱말의 부스러기까지 전부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나는 네가 그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래. 지금까지 지켜봐 온 바로는 그럴 것 같구나. 부러워 죽겠다, 이 녀석아.”

갇혀서 평생 실험이나 당해 온 내가 뭐가 부럽다는 걸까.

“흐름을 조, 조종해서, 뭐에 쓰, 는데?”

“선택할 수 있게 되겠지. 흐름을 직접 조종할 것인지, 아니면 흐름을 만드는 사람의 옆에 있을 것인지. 내가 너라면 흐름을 만드는 사람의 옆에 꼭 붙어 있을 거다. 그 사람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해질 테니까.”

“마, 말 좀 쉽게 해 봐.”

“쯧쯧, 이 돌대가리를 봤나.”

나는 어이가 없어 입을 벌렸다. 나보고 미쳤다는 사람은 있어도 머리가 나쁘다고 했던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 그런 말은 처음 드, 들어 봐.”

“모든 걸 기억하면 뭐 하누. 맥락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에는 영 젬병인데. 아무튼 너는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뭐, 뭘 말이야.”

“네가 지루하다고 느끼는 그 삶이, 죽지 않는 너의 몸이, 그 흐름의 창조자를 만나는 순간 너에게는 더없는 축복이 될 거라는 걸.”

그때 우리를 실험하는 이들이 실험 도구를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무언가를 직감한 듯 사슬을 질질 끌고 내게 다가와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러니 지금 이 고통의 순간을 즐기렴.”

그날의 실험에서 살아남은 것은 나뿐이었다. 그렇게 그 말은 그의 유언이 되었다.

그리고 정확히 3일 뒤, 나는 이현과 만나게 되었다.

나는 이현과 만나기도 전 이미 그가 오는 걸 알고 있었다. 무언가 거대한 게 다가오는 듯한 감각. 그 느낌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새카만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내게 고래 떼가 접근해 오는 느낌이라고 할까.

아니, 그때 내 세상은 이현보다 작았으니 그 말은 적절하지 않다. 씨앗에 비유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이현과 만나기 전의 나는 두꺼운 껍질에 싸인 씨앗이었다. 그러나 이현을 만난 순간, 씨앗은 발아해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배고프지? 일단 이거라도 먹고 있어.”

이현은 부서진 감옥 안으로 가장 먼저 들어왔다. 씻지 않아 더럽고 냄새나는 내게 모포를 덮어 주고 새빨간 사과 한 알을 건네주었다. 그 모포는 아직도 가지고 있으며, 사과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되었다.

그들은 내게 선택권을 주었다. 자유롭게 사는 것과 그들을 따라가는 것. 흐름의 조종자라 한들 흐름의 창조자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나는 당연히 이현과 함께하는 것을 택했다. 그렇게 나는 루드비히의 반란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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