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공들이 미쳤는데 로그아웃이 안 된다니요-134화 (134/149)

#134

“마티어스!”

나는 날카롭게 마티어스의 이름을 불렀다. 저 높이에서 머리부터 추락하면 목뼈가 부러져 죽을 수도 있었다.

공중에서 겨우 균형을 잡은 마티어스가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 얼음 수정에 박아 넣었다. 카가가각! 단검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얼음 수정을 긁다가 콱 박혀 들었다. 마티어스의 발목이 2m 남짓한 공중에서 달랑거렸다. 마티어스가 단검의 반동을 이용해 살짝 위로 떠오르며 안전하게 착지했다.

“체자레!”

“준비됐어요.”

체자레가 루드비히의 손으로 도움닫기를 하며 단숨에 얼음 수정을 타고 올라갔다. 그런 체자레의 손가락 사이사이에는 방금 제조한 듯한 약병들이 끼워져 있었다. 병 안에 든 약물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마티어스가 뚫어 놓은 구멍까지 도달한 체자레가 망설임 없이 약병을 구멍 안으로 내던졌다. 드래곤의 머리에 닿기도 전 플라스크가 펑 소리를 내며 깨졌다. 날카로운 유리 파편과 보라색 액체가 뒤섞여 드래곤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약물이 닿자마자 치이익, 고열에 고깃덩어리가 타는 듯한 소리가 나며 드래곤의 머리 가죽이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끼아아아아아아아아!

드래곤이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흔들어 댔다. 그러나 그럴수록 약은 얼음 수정 안의 드래곤에게로 파고들 뿐이었다. 얼음 수정은 이제 드래곤을 보호해 주는 기능을 상실했다. 드래곤 역시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얼음 수정을 깨트렸다.

파사삭, 단단했던 얼음 수정이 수십만 개의 얼음 조각으로 화했다. 찬 바람이 둥지에 휘몰아치며 기온이 훅 내려갔다.

그와 동시에, 압실론이 캐스팅을 마쳤다.

“화염 운석.”

마나가 요동치며 주변의 소음이 멎어 들었다. 소름 끼치도록 고요한 공간에 압실론과 나만이 있었다. 이번에는 제발 효과가 있기를. 깍지를 끼고 기도하고 있는데 압실론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의미심장한 시선을 마주하자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압실론.”

“응.”

“네게 받은 증표가 있으면…… 이번 마법도 보호받는 거 맞지?”

“…….”

압실론은 이번에도 대답 대신 침묵을 택했다.

“대답해.”

말이 없는 그가 어쩐지 불길하게 느껴져서 나는 재차 되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대답 대신 붉은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이 개새끼가…….

나는 불안감에 압실론의 멱살을 잡으며 새된 목소리로 물었다.

“대답하라고!”

“보호 못 받아. 화염 운석은 마법이 아니라 소환이라, 마법 대미지와 물리 대미지가, 동시에 적용되니까. 그런데, 이현.”

압실론이 생글생글 웃으며 내게 물었다.

“어차피 나갈 건데, 나가면 이제 쟤네는 필요 없잖아?”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압실론이 이런 새끼라는 거 진작부터 알고 있었으면서도 나는 나도 모르게 나의 기준으로 그를 짐작하고 있었다.

분노가 새파랗게 끓어 올랐다. 나는 참지 못하고 그의 뺨에 주먹을 날렸다. 압실론은 예상했다는 듯 순순히 맞아 주었다. 입술을 잘못 맞았는지 압실론의 입술이 터져 피가 났다. 피 묻은 입술을 하고도 압실론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 모습이 기괴해 소름이 끼쳤다. 나는 압실론을 밀치고 그들에게 소리쳤다.

“이쪽으로 와-!”

나는 그들에게 소리를 치며 손짓했다. 내 말을 들은 사람들이 내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급한 마음에 뛰쳐나가려는데 압실론이 내 손목을 쥐었다.

“이현, 멀리 나가면 안 돼. 거기서 한 걸음만 더 나가도 좌표에 속하게 돼. 여기만 안전해.”

“닥치고 이 손 놔.”

나는 날을 세우며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손목을 쥔 손아귀 힘이 너무 억셌다. 손목이 잡히자마자 숨이 가빠지며 몸에서 힘이 빠졌다.

“이현…….”

“씨발, 놓으라고!”

쿠구궁. 화염 운석이 둥지의 천장을 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젠 정말 시간이 없었다.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하게 될 것 같았다. 나는 있는 힘껏 압실론의 정강이를 찼다.

“……윽!”

“너랑 밖에서 함께 살아가느니, 쟤네랑 같이 죽는 게 훨씬 나아.”

불시의 공격을 받은 압실론이 일순 손아귀 힘을 풀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바깥의 풍경이 내 피부에 생생하게 와 닿았다.

체자레가 제조한 약물은 드래곤의 머리 가죽 일부와 눈알 하나를 완벽하게 녹여 놓았다. 드래곤이 고통에 신음하며 마구잡이로 마법을 쏘아 댔다. 전격 마법과 빙결 마법, 심지어 화염 마법까지. 이지를 잃고 쏘아 내는 마법이라 피하는 데 큰 무리는 없었지만, 둥지가 좁다 보니 이따금 마법에 당하는 이들도 있었다.

“마티어스, 루드비히! 체자레!”

나는 그들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며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스쳐 지나가는 시선 속에 체자레가 보였다. 나는 체자레를 향해 외쳤다.

“이현, 왜 나왔…….”

“압실론 옆으로 가!”

그와 동시에 동굴의 천장을 뚫고 시뻘건 화염 운석이 떨어졌다. 화재 현장 한가운데 있는 듯한 열기가 나를 감쌌다. 화염 내성이 있는 망토를 입지 않았다면 잔열만으로도 불에 타죽었을 것 같았다. 저쪽으로 가기엔 이미 늦어 있었다.

“아니야, 가지 마. 여기 있어.”

나는 입술을 깨물고 마나를 가늠해 보았다. 남은 마나는 35%. 마지막으로 드래곤을 해치우기 위해 남겨 두었던 마나였다.

세계가 멸망하는 날처럼 나를 둘러싼 주위 풍경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다들 내 옆으로 와!”

나는 내게 달려오는 마티어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끝이 닿는 것과 동시에 나는 마티어스에게 와락 끌어안겼다. 그렇게 루드비히와 마티어스, 체자레와 채 압실론이 있는 쪽으로 가지 못한 토벌대원들 몇몇이 내 옆으로 모였다. 나는 좌표를 잡자마자 주문을 외쳤다.

“끝없는 보호.”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8클래스 보호 마법이었다. 주문을 외는 것과 동시에 마나가 전에 없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원래 하던 대로 마나를 먼저 돌게 한 뒤 주문을 외우는 편이 마나 효율 면에서는 더 나았지만, 시간이 촉박해 여유가 없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정신을 붙들고 나는 수식을 정신없이 풀어내었다. 마티어스가 당황해 말했다.

“너, 코피…….”

뇌에 과부하가 걸렸는지 코피가 흘러내리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대답할 새가 없었다.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으며 나를 가리키는 손가락을 쥐었다. 크기가 커 화염 운석을 정통으로 맞고 있는 드래곤이 끊임없이 비명을 질러 댔다. 그것의 가죽과 살이 불길을 품은 운석에 움푹움푹 파여 갔다.

“젠장!”

수식 하나를 계속해서 틀리고 있었다.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옆에서 화염 운석이 떨어지며 파편이 튀었다. 부서진 화염 운석 파편 하나가 공중으로 튀어 올라 루드비히가 친 보호막을 때렸다. 쿵! 보호막이 형편없이 우그러들며 소멸했다.

마티어스와 체자레, 루드비히가 나를 감싸고 있었기에 나는 외부의 풍경을 거의 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아직까지 운이 좋아서 살아 있는 거였다.

그러나 그것도 곧 끝인 것 같았다. 뻥 뚫린 천장으로 운석 하나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수식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였다. 지금 입력하는 게 마지막 기회였다. 이 입력마저 틀리면 마법 자체가 취소되었다. 두려움이 몰려와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미안해. 우리 다 죽을지도 몰라.”

이쪽으로 오라고 할 게 아니라 좀 위험하더라도 압실론이 있는 쪽으로 가라고 했으면 몇 명이라도 살 수 있었을 텐데. 내 말에 체자레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현과 함께할 수 있어 즐거웠어요. 그러니 후회하지 말아요.”

“너와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게 내 오랜 소원이었다.”

루드비히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마티어스는 내 이마에 뜨거운 입술을 붙이며 나직이 속삭였다.

“너 할 수 있어.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마. 내가 마지막까지 옆에 있을 테니까.”

기어코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었다.

나는 손을 뻗어 마지막으로 수식에 답변하기를 도전했다. 화염 운석이 나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숫자를 입력하는 것과 동시에, 수식이 빛을 내며 사그라들었다. 정답이라는 뜻이었다.

콰과과광! 견고한 빛의 장막이 생성되며 아슬아슬하게 화염 운석을 막아 냈다.

화염 운석을 막아 낸 자리로 빛의 불꽃이 튀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도 그 풍경은 아름다웠다. 우리는 넋을 놓고 보호막 위로 화염 운석이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화염 운석은 점차 멎어 갔다. 그러나 체력도 정신도 이미 한계였다. 나는 마나를 확인한 뒤 탄식했다. 남은 마나는 3% 남짓. 마나 쇼크로 언제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드래곤, 드래곤은 어때?”

나는 마티어스의 셔츠 깃을 잡고 물었다. 드래곤을 확인한 마티어스가 기쁨에 차 말했다.

“해치운 것 같아.”

“……하.”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압실론이 시전한 운석이 드래곤을 쓰러트렸다면, 나는…… 이 세계에 이렇게 계속 갇혀 있게 되는 걸까.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하겠지만, 다가올 현실이 내겐 벅찼다. 나는 뒤늦게 절박해졌다.

“나, 가 봐야겠어.”

“어딜 간다는 거야. 아직 화염 운석 파편이 남아 있어서 위험해.”

“내가…… 마지막으로 해치워야 한단 말이야.”

내 울음 섞인 말에 마티어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나는 아차 싶어 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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