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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공들이 미쳤는데 로그아웃이 안 된다니요-124화 (124/149)

#124

압실론과 나는 전서응이 날아가는 곳을 향해 달렸다. 언덕과 구덩이가 번갈아 나오는 바람에 전진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마티어스는 드래곤 아종을 처리할 수 있을 만큼 검을 잘 썼다. 그가 돌아오지 못하는 데에는 최소한 드래곤 아종보다 더 큰 위험이 산재해 있을 확률이 높았다. 한시라도 빨리 가서 그를 구해야만 했다.

30분 정도 달리자 전서응이 전진을 멈추고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며 길게 울었다.

“왜 저러는 거야?”

“여기서 전서응을, 날려 보냈다는 뜻이야.”

나는 자리에 서서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았지만, 있어야 할 이들의 털끝 하나 보이지 않았다. 찾기 위해 섣불리 소리를 질렀다가는 몬스터를 마주칠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일단 조용히 주변을 탐색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았지만, 절벽 밑의 호수인지 바다인지 모를 곳에서 파도치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돌아가고 있는 길인 걸까?”

“그건 아닐걸. 우리가 이동한 장소를 모르잖아.”

“아…… 그렇겠네.”

난감한 마음에 나는 마른 입술을 혀로 핥았다.

“……!”

그때, 파도 소리에 섞여 누군가의 비명이 들렸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를 잘못 들었나 싶어 옆을 돌아보니 압실론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나를 보고 있었다.

“너도 들었어?”

“응. 절벽 밑에서 난 것 같아. 내려가 보자. 이리 와, 이현.”

압실론이 나를 향해 팔을 벌렸다. 나는 얌전히 압실론의 품에 안겼다. 압실론이 나를 가볍게 안아 든 채 절벽에서 급강하했다. 팟, 압실론이 허공에 발을 뻗을 때마다 추락 방지 마법을 걸어 놓은 신발 밑에 마법 진이 생성되었다가 사그라들었다.

거의 뛰어내리는 셈이다 보니 까마득한 절벽을 내려오는 데에는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압실론이 나를 안은 채 물과 약간의 간격을 두고 둥실둥실 떠 있었다. 그는 나를 한 손으로 고쳐 안고, 자유로워진 다른 손끝을 물에 적신 뒤 냄새를 맡았다.

“바다는 아니야. 짠 내가 안 나.”

“으음, 여기 빠진 건가?”

“잘 모르겠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압실론은 나를 안은 채 바다 위를 성큼성큼 걸어 다녔다. 나는 압실론에게 안긴 채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지만, 기사들의 머리카락도 마티어스의 붉은 머리카락도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마티어스가 수영을 못 하는 애는 아닌데……. 나는 내가 있던 무인도를 향해 무섭게 헤엄치던 마티어스의 모습을 기억했다.

“저기서 난 것 같아.”

압실론이 나를 한 손으로 안은 채 수중 동굴을 가리켰다. 물이 반쯤 찬 동굴이 우리를 환영한다는 듯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었다. 주변에 발을 디디고 설 암초가 없었기에 절벽에서 떨어진다면 자연스레 저쪽을 향해 갈 것 같기는 했다.

“흐아아악!”

그때 동굴 안쪽에서 다시 비명이 들려왔다. 확실히 마티어스의 비명은 아니었다. 나는 안도하는 나 자신이 조금 싫어졌다.

“가 보자.”

“그래.”

동굴은 옆으로 넓고 안쪽으로 긴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물 위에 뜬 채로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준비됐어?”

“응.”

압실론이 신발에 걸려 있는 추락 방지 마법을 껐다. 그와 동시에 몸이 물 밑으로 추락했다. 풍덩! 순식간에 뼛속까지 시릴 만큼 서늘한 물살이 정수리까지 차올랐다. 다리를 차며 팔로 물살을 가르자 몸이 다시금 차츰차츰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나는 참았던 숨을 내뱉으며 몸을 떨었다.

“이혀언, 괜찮아?”

“괘, 괘, 괜찮아.”

괜찮다는 말과는 반대로 너무 추워 몸이 덜덜 떨렸다. 머리카락이 벌써 바삭하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조금만, 참아. 올라가는 대로 조치해 줄게.”

“아, 알았어.”

우리는 안쪽으로 나아갔다. 다행히 동굴은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오르막이었다. 가슴까지 찼던 물이 눈 깜짝할 새 종아리 밑으로 내려갔다. 물에서 나오자마자 압실론이 가방에서 아티팩트 하나를 꺼냈다. 내 눈꺼풀 위를 젖은 손으로 덮은 압실론이 나직이 말했다.

“입 잠깐만 열지 말고 있어.”

쨍그랑, 아티팩트가 깨지는 소리가 나더니 따뜻한 바람이 몸 주위를 휘돌았다. 물에 젖어 무거웠던 옷이 햇볕에 말린 것처럼 보송보송해졌다. 바람이 사라진 후 압실론이 내 눈꺼풀 위를 덮은 손을 서서히 떼어 냈다. 압실론의 옷 역시 바싹 마른 채였다.

“돈이 좋긴 좋다.”

나는 신기하다는 듯 뽀송한 망토를 매만지며 말했다. 압실론이 그런 나를 보며 수줍게 웃었다.

“안쪽으로 들어가 보자.”

“잠깐만 기다려 봐.”

압실론이 그렇게 말하며 가방을 내렸다. 압실론이 가방에서 꺼낸 게 뭔지 알게 된 나는 잠깐 눈을 의심했다.

“이거 신어, 이현.”

“…….”

압실론이 꺼낸 건 그가 신은 것과 완벽히 똑같이 생긴 신발이었다. 추락 방지 마법 및 점프 강화 등 다양한 마법이 걸려 있는 신발은 모양만 신발이었지 마도구에 가까웠다. 압실론이 한쪽 무릎을 꿇고 내게 직접 신발을 신겨 주기 시작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 압실론의 동그란 머리통을 내려다보았다.

“출발 전에 하나 더 없냐고 물었을 땐 없다고 했잖아?”

“없다고는, 안 했어. 대답을 안 했지.”

“왜 대답 안 한 건데?”

“그래야 이현이 이런, 상황이 생겼을 때 나한테 얌전히, 안겨 있을 거 아냐.”

“……그럼 지금은 왜 줬는데?”

“이젠 좀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까.”

진짜 어이없는 놈이네. 내가 압실론을 흘겨보는 새 그는 내 신발 리본을 양쪽 다 완벽하게 묶어 놓았다. 살짝 큰 듯했던 신발이 끈을 다 묶자 내 발 크기에 맞게 줄어들었다. 군화에 비해 착화감이 훨씬 편안하고 푹신했다.

“이것도 찰래?”

압실론이 내게 브레이슬릿을 내밀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질색했다.

“너 같으면 차겠냐?”

“나는 이현이 학습 능력이, 있어서 좋으면서도 좀 슬퍼.”

나는 헛소리를 하는 압실론의 말을 뒤로하고 망설임 없이 어두운 동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압실론이 신겨 준 신발은 앞쪽에 불이 켜져 앞에 뭐가 있는지 어렴풋하게 가늠할 수 있었다. 진짜 별 기능이 다 있네. 아마 자기가 제작한 거겠지. 이런 거 꼼꼼하게 잘 만드는 녀석이니까.

동굴은 넓긴 했지만 갈림길이 많고 복잡했다. 얼마 가지 않아 나타난 세 개의 갈림길을 보며 우리는 자연스레 멈추어 섰다.

“어디로 갈까?”

압실론이 내게 의견을 구하듯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동굴 안에서 밖까지 비명이 들릴 정도면 상대가 가까이 있다는 소리일 거야. 첫 번째 갈림길로 들어갔다가 10분 내로 아무것도 안 나오면 돌아와서 두 번째 갈림길로 가자.”

“응, 좋은 생각이야.”

우리는 자연스레 첫 번째 갈림길로 향했다. 압실론이 내 손을 깍지 낀 채 앞서갔다.

“어두우니까 손 놓지 마, 이현.”

“……알았다.”

손을 꼬물거리는 모양새가 다소 끈적했다. 어둠 속이니 손을 잡는 게 맞지만, 사리사욕을 채우는 건지 진짜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인지 의심스러워 경고를 날렸다.

“수작 부리지 말고 얌전히 손만 잡고 있어.”

“……어떻게 알았어?”

“네가 잡고 있는 게 누구 손인 것 같냐.”

“치……. 알았어.”

압실론이 입술을 삐죽이며 수작질을 멈추었다. 그 후로는 삐졌나 싶을 정도로 아무 말이 없었다. 딱히 풀어 줄 생각은 없었기에 말없이 걸으며 소리에 집중하고 있는데, 압실론이 내 손을 점점 세게 쥐었다.

“뭐야? 아프잖아.”

“…….”

짜증을 내고 있는데 압실론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자유로운 손으로 압실론을 밀어내 보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몸의 체온이 순식간에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꽤 들어오지 않았던가?

왜 돌아가자고 하지 않지?

“……압실론.”

나는 멈추어 서서 조용히 압실론의 이름을 불렀다. 그대로 나를 끌고 가는 건 아닌가 싶어 걱정했는데, 다행히 압실론은 자리에 멈추어 섰다. 숨 막히는 고요와 긴장감이 우리 사이에 맴돌았다. 나는 그대로 서서 압실론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아까와는 달리 동그란 뒤통수가 낯설었다.

“뒤돌아 봐.”

“…….”

“뒤돌아 보라니까.”

내 명령에 압실론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고개를 돌리는 방식이, 옆으로가 아니라 위로라는 것에 있었다.

압실론은 기괴한 방향으로 목을 꺾으며 나를 거꾸로 바라보았다. 아니, 그걸 ‘본다’고 할 수 있을까. 압실론의 얼굴에는 눈, 코, 입이 없었다. 움푹 파인 눈도, 코와 입술의 굴곡도 없이 그저 새하얀 낯뿐이었다. 나는 단숨에 압실론의 손을 뿌리치고 반대쪽으로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악!”

동굴이 귀신의 집이면 귀신의 집이라고 말을 해 줘야 할 거 아냐! 빛이라고는 압실론의 신발 앞코에서 나오는 것밖에 없는 상황이라 동굴 안은 온통 어둠뿐이었다. 나는 사방에 몸을 부딪쳐 가며 달리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자 압실론이 그 달걀귀신 같은 모습으로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찰랑거리는 검은 머리와 민둥민둥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소름이 쭉 끼쳐 왔다.

나는 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빛이 살짝 보이나 싶더니 발이 푹 꺼졌다. 말랐던 몸이 다시 흠뻑 젖는 건 금방이었다. 그러나 아까와 달리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져 왔다. 마치 꿈속에서 달리기를 하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었다. 나는 허우적거리다 이내 차츰차츰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 * *

“허억.”

기도로 물이 한 움큼 들어오는 감각과 함께 나는 눈을 떴다. 침대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무슨 꿈을, 그렇게 꿔?”

옆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내며 옆을 돌아보았다.

“……압실론.”

“오라고 해서 왔더니, 잠만 자고 있네.”

압실론의 목소리가 묘하게 날이 서 있었다. 나는 묘한 위화감에 침대에 앉아 압실론을 바라보았다. 압실론은 현대의 셔츠와 바지를 입고 있었다. 구두와 시계, 넥타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왜 그런 옷을 입고 있어?”

“무슨 소리야. 아직 잠이 덜 깼어?”

“아, 아니. 아까까지만 해도 로브 입고 있었잖아. 그래, 그 동굴. 동굴에 들어갔었는데…….”

내가 횡설수설하자 압실론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헛소리 그만하고 본론이나 말해. 왜 부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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