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심각으로서는 압실론을 휴머노이드 안에 가둬 두는 게 이득이었다. 사람을 자신의 세계에 가둬 놓을 수 있는 데다 가상 현실 기계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녀석이니, AI로 두는 것보다는 휴머노이드의 몸에 집어넣어 제약을 만드는 편이 나았다. 아니면 모르지. 옮겨 준다고 말만 그렇게 해 놓고 데이터를 소멸시켜 버릴지도.
압실론도 나름대로 보험을 들어 놓았겠지만, 인간을 당해 낼 수 있을까. 그러니까, 나같이 어리바리하고 허접한 인간 말고 진짜 똑똑한 인간들 말이다.
아니지, 내가 압실론을 뭐 하러 걱정해. 쥐가 고양이를 왜 생각해. 나를 다시 가둬 놓을 수 있는 존재가 소멸하는 거니 내 삶은 더 안전해지는 거지.
그런데 정말 괜찮나?
그래도…… 괜찮나?
나는 정말, 로그아웃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아갈 수 있을까?
한참 상념에 빠져 있는데 뒤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나는 화들짝 놀라 대화 창을 종료했다. 수풀에서 검은 머리카락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이혀언.”
“압실론?”
너도 양반은 못 되는구나. 압실론은 어디선가 한 번 구른 듯한 모양새로 나타났다. 검고 긴 머리칼 여기저기에 나뭇가지며 나뭇잎이 줄줄 달려 있었다. 요즘 왜 갑자기 물가에 내놓은 애처럼 구는 건지.
“이리 와.”
내 말에 압실론이 순순히 내 앞에 섰다. 나는 그의 머리카락에 붙은 이파리를 떼어 주다 괜스레 그의 머리칼을 쭉 당겼다. 압실론이 얌전히 당해 주며 평소보다 조심스러운 태도로 물었다.
“나 또 뭐 잘못했어……?”
“짚이는 구석이 있나 보다?”
압실론은 대답하는 대신 멋쩍은 듯 배시시 웃었다.
“없진 않지…….”
“자랑이다.”
“자랑은 아닌데…….”
“그 뜻이 아니라…… 됐다.”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압실론이 내 곁으로 다가와 앉으며 말했다.
“이혀언, 무슨 고민 있어?”
“있지, 아주 많지.”
“뭔데? 루드비히 눈?”
“그것도 그런데…….”
내가 말끝을 흐리자 궁금하다는 듯 압실론이 이것저것 물어 왔다. 하여간 호기심 많은 녀석이었다.
“우리 토벌 못 할까 봐?”
“그것도 있고…….”
“걔가 죽어서?”
“누가 죽어.”
“이현이 그때 어깨동무했던 걔.”
어쩐지 압실론의 말투가 싸늘했다. 누구랑 했던 어깨동무를 말하는 거지? 아, 리로겠구나. 나중에 전해 듣기로 산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 리로였다. 주동자였기에 심문을 위해 살려 놓았지만, 무언가를 말하려 해서 재갈을 풀어 주니 혀를 끊어 자진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던 체자레가 아쉬워했다. 자신이었다면 절대 죽이지 않았을 거라는 말과 함께. 리로의 시체는 다른 시체들과 함께 쌓여 화장되었다. 목이 걸리거나 갈기갈기 찢기지 않은 것만 해도 자비를 베푼 셈이었다.
나는 리로가 화장되기 전, 마지막으로 그의 얼굴을 보았다. 역시나 내가 알던 얼굴이 아니었다. 나는 망설이다 리로의 상태 창을 열어 보았다.
[이름: 루이제 (Lv. 87) (사망)
나이: 24
직업: 그리체 제국 병사 (리트레야 반란 조직의 일원)
호감도: ???
체력: 0%
마력: 0%
스킬: 스킬 ‘친근한 외모’ Lv. 54 – 상대가 친근하게 느끼는 외모로 느끼게 만듭니다. 스킬 ‘최면 호감’ Lv. 32 – 상대가 강한 의심을 품기 전까지 자신에게 은근한 호감을 느끼게 합니다. 스킬 ‘화술’ …더보기
상태: 사망했습니다.
마음 엿보기: 마음 엿보기를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상태 창을 보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모든 게 거짓이었다. 이름도, 나이도, 외모도. 정말이지 감쪽같이 속았다. 의심이 많은 나를 의심하지 않게 만들었을 때부터 조심했어야 했는데.
아셀에게도 성질부리던 내가 리로에게 마냥 잘해 주고 싶어졌을 때에는 이유가 있었던 법인데. 나는 나의 멍청함에 짧게 조소했다. 병사가 물러나라고 하며 시체들 위에 횃불을 던졌다. 기름에 젖은 시체들이 화르르 타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화마에 스러져 가는 리로의 시체를 무심히 응시했다. 낯선 얼굴이라서인지 슬픔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편을 들어 줄 수는 없었지만, 그를 이해했다. 그를 동정했다. 진짜든 가짜든 나는 그를 제법 좋아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그가 조금 미웠다.
나는 그가 죽이려고 한 이들을…… 아꼈다.
어쩌면 타이밍에 따라 그들과 같은 편이 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로는 무슨 생각으로 나를 따랐을까.
나와 함께하며 리로의 사고는 확장되었을 터였다. 스킬의 레벨이 일반 AI보다 훨씬 높아 나를 속일 정도였으니까. 헤일러가 알고 있었기에 리로 역시 넷이 전쟁 상황에서 제국민을 다루는 방식을 알고 있었을 확률이 높았다. 아니, 어쩌면 리로가 헤일러에게 알려 줬을 수도 있다. 다른 이들과 대화하는 것도 이젠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자신의 구원자라고 생각했었댔지. 확장된 사고로 내가 제 구원자가 아니라, 그들의 구원자라는 걸 깨달았을 때 리로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나를 죽이고 싶었을까? 무슨 마음으로 나를 죽이는 걸 유예했을까. 그도 나를 조금은 좋아했을까. 싫어했다면 그 마음을 어떻게 숨길 수 있었을까.
리로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마음이 복잡했다. 내가 생각해도 그 넷은 이 나라 사람에게 죽어 마땅한 놈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루드비히를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리로가 미워졌다. 미워할 대상인 리로는 이미 죽고 없는데도. 그건 아마도, 루드비히가 내게 의미 있는 사람이어서겠지.
리로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압실론이 짝, 박수를 치며 말했다.
“아, 체자레 때문이구나!”
“체자레가 왜?”
다 나은 거 아니었나? 의아해진 내가 되묻자 압실론이 실수했다는 듯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냐,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말해.”
“진짜 아무것도, 아닌데…….”
“일단 들어 보고 내가 판단할게.”
내 말에 압실론이 눈치를 보며 말했다.
“내가 체자레 치료 못 하는 거,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무슨 소리야. 치료됐잖아. 아니, 이미 다 나은 거 아니었어?”
“흡수된 독은 해독 못 해. 흉터처럼. 이현도 알지 않아……?”
하지만 넌 좀 다르잖아. 시스템까지 건드릴 수 있는 녀석이 그걸 치료 못 한다고? 나는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
“죽진 않아. 이현이었으면 죽을 수도 있었는데, 체자레는 이미 독에 내성이 있었거든. 그냥 흡수된 독이 몸을 돌아다니면서 내장에 상처를 내는 것뿐이야.”
“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
“사흘…… 아니,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각혈, 할 것 같은데……. 안 할 수도 있고.”
사흘이라는 말에 내 표정이 어두워지자 압실론이 냉큼 일주일로 말을 바꿨다. 그러나 신뢰가 가지는 않았다. 내가 착잡해하자 압실론이 내 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다.
“이현이 아픈 것도 아니잖아.”
“…….”
정말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낫게 할 방법은 없는 거야?”
“신성력은 좀 다를 수도 있긴 한데, 잘될진 모르겠어.”
“왜?”
“이현 사라지고, 신 같은 건 없다면서 루드비히가 종교 탄압했거든.”
나는 얼굴을 감싸 쥐었다. 자업자득이었다. 하필이면 업보 쌓은 놈들한테 감겨 가지고는…….
깝깝한 머릿속에 섬광 같은 생각이 스쳤다.
“아, 너 시간 왜곡 마법 쓸 수 있잖아. 그거 쓰면 안 돼?”
“안 돼.”
“사람한테 쓰는 건 안 되는 거야?”
“사람?”
내 말에 압실론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건 아닌데, 우리 넷은 이 세계의 중심축이거든. 하나도 아니고 둘한테, 그런 마법을 쓰면 플레이어인 이현의 정신이, 붕괴될 확률이 높아.”
그러니까 나 때문이라는 거네. 마음 한구석에 무거운 돌이 얹힌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희망을 잃지는 않았다. 나는 압실론의 소매를 잡고 다급하게 물었다.
“그러면 내가 사라지고 난 뒤에는? 그땐 정상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거지?”
“그럴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압실론이 조심스러운 태도로 하나도 조심스럽지 않은 말을 내뱉었다.
“그럴 필요라니.”
“어차피 이현 로그아웃하면 곧 다 죽을 텐데…… 그럼 눈이 한쪽 안 보이든, 장기가 망가지든 상관없잖아.”
“…….”
훌륭한 답변 진짜 고맙다, 미친 새끼야.
“너는 아닐 거라는 듯 말하네.”
“나는, 이현이 있는 세상으로 가니까.”
숨길 의도도 없었다는 듯 압실론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럴 거면 나 뭐하러 심각한테 재고 따지면서 물었지.
“몸이라도 약속받았어?”
“응, 포함해서 뭐…… 이것저것.”
압실론이 꿈꾸는 소년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너도 참 순진하긴 하구나. 너같이 위험한 애를 그 똑똑한 인간들이 정말 그대로 밖으로 꺼내 줄까? 연구 대상이나 안 되면 다행이지.
휴머노이드 권리가 아무리 상향되었다지만, 인간은 대부분 AI를 정당한 거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 세계에서 제일 똑똑한 녀석이 바깥세상에서는 어린아이 같을 걸 생각하니 뭔가 착잡해졌다. 압실론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숨을 푹 쉬는 날 바라보았다.
“이혀언.”
“왜.”
“내가 걱정돼?”
어떻게 알았지.
내가 뜨끔한 표정을 짓자 압실론이 내게 치대며 천진하게 웃었다.
“나는 이럴 때, 이현이 정말 좋아.”
“……너 걱정해 주는 것 같을 때?”
“응. 그럴 때면, 나를 조금은 안 싫어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좋아.”
“…….”
미치겠네. 요즘 애들 왜 이러냐.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압실론에게 가만히 안겨 있었다.
“맞다, 압실론. 나 물어보고 싶은 거 있어.”
“뭔데? 말해 봐.”
“내가 얼마 전에 좀 신기한 경험을 했는데……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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