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쳤는데 로그아웃이 안 된다니요-113화 (113/149)

#114

“찾으셨어요?”

“응. 근데 빠져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 좀 좁아서.”

체자레가 갑자기 내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당황했지만 생각보다 손길이 담백해 가만히 있었다.

“너 정도면 통과할 수 있겠다.”

“저만요?”

“아무래도 우리는 체격이 있으니까. 일단 루드비히 회복되는 대로 같이 가 보자.”

“네, 그럴게요.”

루드비히의 이마에 손을 댄 체자레가 짧게 혀를 찼다.

“아직 열이 심하네. 해열제랑 진통제도 다 떨어져 가는데…….”

“얼마나 버틸 수 있나요?”

“여섯 시간 정도.”

과연 그사이에 압실론이 도착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일단 다시 눈 좀 붙여 둬. 쉴 수 있을 때 쉬어 둬야 하니까.”

체자레가 망토 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런데 꼭 이 망토 속으로 들어오셔야 하는 건가요?”

“왜? 싫어?”

“불편하고 좁잖아요…….”

“종유석 맞고 다칠 수도 있잖아. 몸져누운 사람이 둘이면 네가 좀 힘들지 않겠어?”

“체자레 님도 똑같은 망토 있잖아요.”

그랬다. 체자레에게도 루드비히와 똑같은 망토가 있었다. 디자인은 달랐지만 화염 저항, 냉해 저항 등 각종 저항력과 방어력을 가진 망토가 있단 말이다. 근데 왜 이쪽으로 기어들어 오냐고.

“불시에 같이 움직이려면 가까이 있어야지. 당연한 걸 모르네.”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왔다. 체자레가 뻐끔거리는 나를 보다가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니면, 가까이 붙어 있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솔직히 말하는 편이 낫나?”

“……좀 졸리네요. 잘게요.”

직구에 답할 수 없었던 나는 어물쩍 말을 돌리는 걸 택했다. 내 반응에 체자레가 웃음을 터트리며 나를 더 꽉 끌어안았다.

“잘 자. 내 꿈 꾸고.”

꾸면 분명히 악몽이다. 체자레 꿈은 절대 꾸지 말아야지. 나는 가물가물하게 감겨 오는 눈꺼풀을 내리며 굳게 결심했다.

* * *

쿠웅-!

설핏 잠이 들었던 나는 땅이 흔들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뭐, 뭐야.”

<동굴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동굴의 내구도가 떨어집니다. 36286/50000>

<동굴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동굴의 내구도가 떨어집니다. 36127/50000>

<동굴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동굴의 내구도가 떨어집니다. 36021/50000>

시스템 창이 시끄러운 경고음을 울려 댔다. 부딪힐 때마다 동굴 천장에서 종유석과 돌가루가 마구 떨어져 내렸다. 나는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지진이 난 것처럼 사방이 흔들려 몸을 가누는 것조차 어려웠다.

쿠웅, 쿵, 쿵-!

“하나가, 아닌 것 같은데.”

“최소 둘 이상.”

혼자서 동굴을 무너트릴 수 없으니 더 데려온 모양이었다. 동굴의 내구도가 빠르게 깎이고 있었다. 겨우 몸을 일으키는데 천장의 종유석이 내 머리 위로 떨어졌다. 루드비히가 나를 끌어안은 채 망토를 씌웠다.

“위험해.”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전, 화염이 동굴을 타고 들어왔다. 쓰나미가 몰려오듯 들어온 화염에 동굴이 뜨거워지는 것과 동시에 훅 밝아졌다. 덕분에 나는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잠시나마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

얼어붙은 나를 보고 루드비히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눈가를 감췄다. 나도 못 볼 걸 본 것처럼 시선을 피했다. 잘못 본 걸 거야.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루드비히가 결심한 듯 갑옷을 바로잡으며 말했다.

“내가 상대할 테니 그 틈을 봐서 빠져나가.”

“그 몸 상태로 어떻게 상대하려고요.”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거, 그걸 줘.”

루드비히의 물음에 체자레의 낯이 살짝 굳었다. 루드비히가 말한 건 나도 알고 있는 약이었다. 일시적으로 체력과 마력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켜 주는 대신, 먹고 나면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일주일 정도 앓아눕는 건 물론, 쓰는 사람에 따라 영구적인 장애가 남을 수도 있었다. 체자레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독에 익숙한 나도 쓰고 나면 일주일은 앓아누울 만큼 독한 약인데……. 지금 몸 상태로 쓰면 죽을 수도 있어요.”

“셋이 죽는 것보다 하나가 죽는 게 낫지. 이대로는 셋 다 개죽음이야.”

“차라리 내가 먹을게요.”

“나는 어차피 여기까지다. 도주는 불가능해.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잠깐만요. 저도 여기 있다는 거 좀 알아주시면 안 될까요.”

나를 투명 인간 취급하는 녀석들 사이에서 나는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그제야 둘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는 시선은 아니었고, 이 소중한 짐덩어리를 어떻게 지키면 좋을까 하는 것에 가까웠다.

“제가 체자레 님이 말씀해 주셨던 또 다른 출구로 빠져나가서 쟤네를 유인할게요. 그사이 입구로 도망치세요. 하나쯤 남아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건 두 분이 알아서 하시고요.”

“그건 안 돼.”

둘이 동시에 입을 모아 말했다. 그래,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논리적으로 생각하세요. 거기로 빠져나갈 수 있는 건 저밖에 없을 것 같다면서요.”

“너를 어떻게 논리적으로 생각해?”

“낭만적인 말씀은 나중에 하시고요. 일단 그쪽으로 안내해 주세요. 혹시 모르죠. 셋 다 빠져나갈 수도 있잖아요.”

체자레가 고민하는 새 동굴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체자레의 소매를 잡고 재촉했다.

“빨리요!”

“하아, 이쪽으로 와.”

결국 체자레가 길 안내를 하기 시작했다. 나와 루드비히가 한 망토를 덮어쓰고 그 뒤를 따랐다.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

“네.”

동굴에 갑자기 가팔라지는 공간이 있었다. 나는 냉큼 먼저 기어 올라가 루드비히에게 손을 내밀었다.

“잡고 올라오세요.”

그러나 루드비히는 코웃음을 치며 한 손으로 위쪽을 짚고 훌쩍 올라왔다.

“…….”

뭔데 아픈데도 저렇게 끝까지 잘났는데.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는데 루드비히가 내 머리 위로 망토를 덮어씌웠다. 우리는 다시금 부지런히 체자레의 뒤를 따랐다.

“여기야.”

이윽고 발걸음을 멈춘 체자레가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는 틈새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라고요?”

나는 까치발을 들고 체자레가 가리킨 쪽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사람 하나 정도 지나갈 수 있을 법한 통로가 있긴 했다. 나는 좀 더 가까이 다가가 통로의 크기를 가늠하며 말했다.

“셋 다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중간부터 길이 좁아져.”

“무너트릴 수는 없나요?”

“무리일 것 같아. 동굴 전체가 무너질 확률도 있고, 소리를 듣고 몬스터들이 몰려올 수도 있어서.”

아, 그렇겠구나.

“그럼 방법이 없네요. 제가 아까 말한 대로 할게요. 두 분은 입구에서 대기하고 계세요.”

“안 된다고…….”

“그래, 다녀와.”

일관적인 루드비히와는 달리 체자레가 아까와는 상반된 의견을 냈다.

“체자레.”

“맡겨 보죠. 생각해 보니까 꽤 잘 해낼 것 같더라고요.”

싱긋 웃은 체자레가 기묘한 말을 내뱉었다.

“내 시종은 수줍은 편이라 우리가 있으면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거든요.”

“헛소리…….”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한 명이라도 내 편이 있을 때 빨리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재빨리 달려 나갔다.

“으앗.”

“조심해야지.”

그리고 주르륵 미끄러지며 대차게 실패했다. 출구가 높고 좁은 편이라 들어가는 데 난도가 좀 있는 편이었다. 뻘쭘해하고 있는데 체자레가 출구의 밑부분에 손을 가져다댔다.

“딛고 올라가. 받쳐 줄 테니까.”

“아, 감사합니다.”

나는 다섯 걸음 뒤에 서서 루드비히를 바라보았다. 루드비히가 가쁜 숨을 쉬며 내게 다가왔다. 나를 말리려나 싶어 경계하고 있는데 루드비히가 내 머리 위에 망토를 둘러 주었다. 뺨과 어깨 위에 닿는 푹신한 감각에 나는 어리벙벙하게 루드비히를 바라보았다.

“그냥 도망쳐. 나는 괜찮으니. 죽지 마라.”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루드비히의 말은 가끔 이렇게 나를 거슬리게 했다. 이 세계에서 가장 지고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태도가 싫었다.

너는 네가 왜 그렇게 안 소중해.

나는 힘껏 달려 체자레의 손에 발을 디뎠다. 체자레가 요령 있게 손을 튕기며 나를 올려 주었다. 나는 출구에 안착해 뒤를 돌아보며 선언했다.

“동굴 앞에서 기다리세요. 구해 드릴 테니까.”

말을 마친 나는 빛을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 * *

확실히 출구는 좁았다. 나한테도 살짝 끼는 편이라 체자레나 루드비히는 들어오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이 길이 더 좁아지지 않길 기도하며 앞으로 향했다. 바람 소리가 짙어지고 있었다.

“푸하-!”

마지막엔 폭이 너무 좁아져 거의 숨을 참은 채 움직여야 했다. 마침내 밖으로 빠져나오자 맑은 공기가 나를 반겼다. 나는 몸을 빼내는 것과 동시에 격하게 숨을 들이쉬었다. 흉곽이 크게 부풀었다 가라앉길 반복했다.

주변은 언제 반란이 일어났냐는 듯 조용하기만 했다.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내리쬐는 모습이 이렇게 평화로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숨을 고르자마자 그 평화를 등지고 곧장 동굴 입구 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동굴 입구까지는 거리가 꽤 됐다. 마법을 최대한 지양해야 했기에 그냥 달려야 했는데, 최대 속도로 10분 넘게 뛰었는데도 예전만큼 숨이 차지 않았다. 평소에 체력을 단련해 두길 잘했다고 새삼 느꼈다.

쿠우웅! 쿵!

시야에 드래곤 아종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더럽게 크네.”

드래곤 아종은 한 마리가 웬만한 방 하나 크기였다. 그런 녀석들 세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동굴 입구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파충류의 것을 닮은 붉은 가죽에 푸른 점이 점점이 박혀 있는 모습이 징그러웠다.

마법을 쓸까 고민하던 나는 메고 있던 가방 안에 폭탄 달팽이 껍데기가 들어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아까 동굴 탈출하면서 갖다 버리고 싶은 거 참고 가져오길 잘했지. 나는 폭탄 달팽이 껍데기를 최대한 세게 내리친 뒤, 추진력을 받도록 빙빙 돌다가 드래곤 아종을 향해 내던졌다.

툭, 데구르르……. 콰아앙-!

두 번의 타격을 받은 폭탄 달팽이 껍데기가 큰 소리를 내며 즉시 터졌다. 드래곤 아종들이 행동을 멈추고 주위를 살폈다. 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남은 폭탄 달팽이 껍데기를 모두 던졌다.

콰앙, 쾅, 콰아앙-!

주위를 살피던 드래곤 아종 중 하나가 나를 발견했다. 동공이 대번에 가늘어지며 나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가운데가 세로로 길게 찢어진 노란 동공을 마주하자 소름이 끼쳤다.

<드래곤 아종이 나를 발견했습니다. 표적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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