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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는데 로그아웃이 안 된다니요-111화 (111/149)

#112

“언제쯤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압실론에게 전서구가 왔어. 곧 데리러 온다더군. 섣불리 나가기보다는 여기서 대기하고 있는 게 나을 것 같아.”

“다행히 잘 정리된 것 같군요.”

“아직 긴장의 끈을 풀기엔 일러. 잔당들이 남아 있을 확률이 높아.”

턱을 쓰다듬던 루드비히가 불현듯 나를 쳐다보았다.

“검 말고 다른 능력은 없나?”

아마 마법을 말하는 것 같아 뜨끔해진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검 실력이 형편없던데, 적이라도 만나면 죽기 좋겠군.”

“……형편없어서 죄송합니다.”

“그러니 웬만하면 나가지 마. 누가 오면 내 뒤에 있고.”

“걱정된다는 말을 왜 그렇게 해요? 그러다 이미 한 번 잃어 놓고서.”

체자레가 웃는 낯으로 말했다.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둘의 대화를 들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루드비히가 체자레를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다정하게 대해도 결말은 똑같다는 걸 너를 보며 알게 되었지.”

“…….”

대화하는 건 저 둘인데, 애먼 내 심장에 칼이 푹푹 꽂히는 기분이 들었다.

“두 분 얘기하시게 저는 나가 드릴까요?”

“아니.”

“내 말을 뭘로 들은 건가. 나가지 말라니까.”

나는 어쩐지 전생의 업보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자식들, 사실은 다 알고 나 찔리라고 얘기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러나 절대 떠볼 수는 없었기에 나는 얌전히 구석에 앉아 그들의 대화를 들어야만 했다.

나는 최대한 흐린 귀를 하며 흘끔흘끔 루드비히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상태가 아주 나쁜 건 아닌 것 같은데, 이따금 아픈 듯 눈가를 문지르는 게 어쩐지 거슬렸다. 나는 둘이 잠시 대화를 쉬는 사이 불쑥 질문을 던졌다.

“눈, 다치셨어요?”

의외의 질문이었는지 루드비히가 한동안 대답하지 못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 때문에 생긴 상처인 것 같은데, 어떻게 신경을 안 써. 도대체 어떻게 한 건진 몰라도 좀 보고 싶은데.

나는 루드비히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그러자 루드비히가 움찔하며 한 걸음 뒤로 옮겨 갔다. 오기가 생긴 내가 한 걸음 더 앞으로 향하자 루드비히가 경고하듯 손을 뻗었다.

“무엄하다. 가까이 오지 마.”

“……저 기절하기 전에는 끌어안기도 하셨잖아요.”

“그땐 위급 상황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너, 냄새나.”

냄새? 무슨 냄새?

나는 화들짝 놀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아 보았다. 확실히 시큼한 땀 냄새가 나긴 했다. 옷도 갈아입지 못한 데다 못 씻었으니 이 정도 냄새는 날 수 있는 거 아닌가. 던전에 들어왔으니 꼬질꼬질하긴 다 매한가진데.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려는 개수작인 건 알지만, 진짜 냄새가 나긴 해 좀 의기소침해졌다. 동굴 속만 아니었어도 어떤 상태인지 좀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잘 때를 노려 봐야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체자레가 갑자기 기침을 했다. 나는 거센 기침 소리에 화들짝 놀라 옆을 돌아보았다. 기침을 하느라 가린 체자레의 손바닥에 무언가 고여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체자레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 틈으로 무언가가 주르륵 쏟아졌다. 동굴 안에 피 냄새가 훅 풍겼다.

“각혈인가?”

“네. 다 나은 줄 알았는데, 좀 무리한 모양이네요.”

“……격한 운동이라도 한 건가?”

루드비히가 망설이다 조심스러운 태도로 물었다. 상대에 대한 걱정은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듯한 물음이었다. 그 상대가 방금 피를 토했는데도. 체자레가 웃다가 다시 기침을 터트렸다.

“엉큼하긴. 그랬다면 좋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아니에요.”

“앞으로도 아니었으면 좋겠군.”

“장담할 수 없어서 죄송하네요.”

“…….”

얘네 지금 날 앞에 두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얼굴이 벌겋게 익는 기분이었다. 나는 셔츠 밑단을 북 찢어 체자레에게 건넸다.

“입, 닦으세요.”

그 김에 말을 좀 안 해 주면 더 좋고.

“고마워.”

체자레가 천을 받아들고 입을 닦아 냈다.

“어디 다치신 건가요?”

“너 잠들어 있을 때 주변 돌아다니다가 처음 보는 독초들을 좀 발견했거든. 그래서 실험해 봤지.”

“아아…….”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체자레는 원래 그런 녀석이었으니까. 그래도 이런 위급 상황에서는 실험을 좀 자제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전에 없이 비실거리는 루드비히와 체자레를 보며 나는 여차하면 내가 나서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눈 좀 붙이세요. 제가 불침번을 설 테니까.”

자기 좋을 대로 실험하다 이렇게 된 거지만, 나는 피를 토할 정도로 아픈 사람에게 불침번을 시킬 정도로 독하진 않았다.

“그럴래? 기특하네.”

“예. 뭐 따와야 할 거나 할 일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고요.”

“그런 건 없어. 음식도 아직 있고, 물도 충분하고. 졸리면 깨워. 바꿔 줄 테니까.”

“네, 그럴게요.”

나는 새삼 이곳이 판타지 세계라는 걸 실감했다. 군대로 치면 일반 병사가 쓰리 스타 깨워서 불침번 서라는 거잖아. 그러고 보면 저기엔 포 스타도 있네. 등에 짊어진 별의 무게가 새삼 묵직했다. 이 약골들을 어떻게든 지켜내 보리라. 나는 주먹을 쥐고 굳게 결심했다.

* * *

“열이 안 떨어지네…….”

나는 혀를 차며 체자레의 이마에서 손을 떼어 냈다. 체자레가 온몸이 땀에 젖은 채 옅게 신음했다. 배가 아픈지 가끔 복부를 부여잡고 새우처럼 몸을 둥글게 말기도 했다. 진통제도 이미 먹였는데……. 나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입술을 깨물고 그의 등을 토닥였다. 이러다 죽는 건 아니겠지? 그러게 왜 낯선 약초를 먹어 가지고는……. 심란해진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윽…….”

옆에서 루드비히가 신음을 억누르는 듯한 소리를 냈다. 밤까지는 이를 악물고 참더니, 새벽이 되고 설핏 잠이 들자 조금씩 앓는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진짜 아픈가 보네. 약초라도 찾으러 가야 하나 싶었지만, 내가 나가려고 채비하자 둘 다 함께 나오려고 하는 통에 포기했다.

그럼 잠든 건가. 나는 바닥에 무릎을 대고 살금살금 루드비히를 향해 기어갔다. 긴 속눈썹이 얌전하게 감겨 있었다. 그의 얼굴 앞에 손바닥을 휙휙 가져다 대도 미동이 없었다. 슬며시 그의 눈가로 손을 뻗는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대지 마.”

날카로운 말투가 나를 찔러 왔다. 나는 화들짝 놀라 뻗었던 손을 치웠다. 루드비히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나는 짧게 숨을 들이켰다.

“귀찮게 하는군.”

부욱, 셔츠를 찢은 루드비히가 이내 그것을 눈가에 대고 단단히 묶었다. 그의 한쪽 눈이 완전히 가려졌다.

“아니, 저는 그냥 걱정이 돼서…….”

“네 걱정 받을 정도 아니니 관심 끄도록.”

살벌하기 그지없는 말투에 나는 루드비히의 눈을 살피고 싶은 의지를 상실했다. 그래, 관심 끄자. 내가 여기서 관심 가져 봤자 뭐 하겠어. 마법 써서 치료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알겠습니다.”

관심 없다는 표시로 손을 떼고 있는데 루드비히가 중얼거렸다.

“……온다.”

“네?”

루드비히가 내 머리를 누르며 납작 엎드리게 했다. 나는 평정심을 찾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체자레 역시 언제 일어났는지 우리의 옆에 와 있었다.

순간 화산 지대의 꼭대기에 올라선 것처럼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며 불길이 들이닥쳤다. 어두웠던 동굴 속이 삽시간에 붉은빛으로 가득 찼다. 화염은 우리가 있는 곳에서 고작 3~4m 떨어진 곳까지 왔다가 차츰차츰 물러갔다. 루드비히가 내 눈을 가리며 귓가에 속삭였다.

“눈 감아. 화상 입을 수도 있으니.”

“뭐, 뭐예요?”

“아직 모르겠네. 가고일은 아닌 것 같은데.”

체자레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가고일이라기엔 화염의 규모가 컸다. 우리가 있는 자리는 동굴에서도 꽤 안쪽이었다. 이곳까지 닿을 정도의 브레스를 쓴다면 가고일일 확률은 희박했다. 한 가지 운 나쁜 가설을 떠올리자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드, 드래곤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군.”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앉았다. 대군을 이끌고 와도 성공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게 드래곤 토벌인데, 환자 둘과 나 하나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심지어 그 환자들 앞에서 마법을 쓸 수 없다면 더더욱.

내가 잔뜩 긴장해 있자 체자레가 내 어깨를 쓸며 말했다.

“걱정 마. 너 죽을 일은 없게 할 테니까.”

“어떻게요?”

“노력해 봐야지.”

“…….”

“그래도 최소한 세 번째로 죽을 테니 긴장은 좀 풀리지 않겠어?”

체자레는 이런 걸 농담이랍시고 건넸다. 분위기가 아까보다 더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루드비히가 한심하다는 듯 체자레를 바라보았다. 쿠웅, 쿵. 동굴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진동이 연속해서 들려왔다. 그때마다 돌가루와 종유석이 머리 위로 떨어졌다. 루드비히가 내 머리 위로 망토를 둘렀다.

<동굴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동굴의 내구도가 떨어집니다. 46332/50000>

<동굴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동굴의 내구도가 떨어집니다. 46251/50000>

<동굴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동굴의 내구도가 떨어집니다. 46171/50000>

시스템 창이 삑삑거리며 시끄럽게 울려 댔다. 동굴의 내구도가 실시간으로 훅훅 깎이고 있었다. 다행히 동굴의 내구도가 높은 편이라 바로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한 번 들이받을 때마다 100씩 깎이는 걸 보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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