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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는데 로그아웃이 안 된다니요-105화 (105/149)

#105

병사를 쥔 손을 놓은 마티어스가 내 쪽으로 돌아섰다. 마티어스의 낯에 후회와 죄책감이 어렸다. 바스러진 꽃 때문에 흥분해 나를 두고 왔던 걸 까맣게 잊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떻게 빠져나왔…… 아, 압실론.”

마티어스가 난감한 기색으로 말을 잇다가 어느새 내 옆에 서 있는 압실론을 보며 이마를 쓸어 올렸다. 마티어스가 복잡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에게 조금 번거로운 존재가 된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의 혼란을 주고 싶지 않았던 나는 마티어스에게 부러진 화살을 내밀었다.

“이거, 거기서 주워 온 화살이야.”

나는 마티어스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소곤거렸다. 마티어스는 화살을 받고도 한동안 침묵했다.

“미안.”

마티어스가 짧게 사과를 하고 돌아섰다. 사과를 받자 내가 어쩐지 정말로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녀석 짐을 뒤져 봐.”

마티어스가 부러진 화살을 든 채 옆에 선 기사들에게 병사를 턱짓하며 말했다. 기사들이 고개를 숙이고 병사가 거주하던 천막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병사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나는 그가 범인이라는 걸 확신했다.

“찾았습니다. 부러진 화살과 같은 재질의 활대와 화살촉입니다.”

기사들이 병사의 짐을 가져와 땅바닥에 내려놓은 뒤 말했다. 마티어스가 어금니를 꽉 문 채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석궁과 화살통은 내다 버렸어도 저건 아직 처리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검을 빼 든 마티어스가 검 끝으로 활대를 툭 짓눌렀다. 검의 압력에 깎다 만 활대가 부러지며 각자 다른 방향으로 튕겨 나가 흙바닥에 나뒹굴었다. 무릎을 꿇고 있던 병사가 부러진 활대를 보며 사지를 덜덜 떨었다.

“더 이상의 변명은 필요 없겠군.”

“짐승인 줄 알았습니다!”

병사가 마티어스의 앞에 납작 엎드린 채 외쳤다. 마티어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가 짐승으로 보였다고? 그딴 눈깔로 잘도 석궁을 다뤘군.”

“아니, 아닙니다! 마티어스 님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몬스터가 짐승인 줄 알았습니다!”

병사의 말에 마티어스가 멈칫했다. 검을 쥔 손에 힘이 살짝 빠진 걸 알자 자신의 마지막 기회라는 걸 깨달았는지 병사가 줄줄 말을 토해 냈다.

“맹수든 초식 동물이든 잡으면 가죽이든 고기든 얻겠구나 싶어서 석궁을 쐈는데…… 맹세코 그 앞에 사람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바로 쓰러지시기에 죽은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무서워서, 무섭고 두려워서 도망쳤습니다. 석궁과 화살도 그래서 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마티어스가 건조한 시선으로 병사를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들었다 그 시선을 정면으로 응시한 병사가 이내 땅에 머리를 찧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럴 의도는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병사가 눈물 콧물을 쏟으며 용서를 구했다. 병사의 이마가 찢어져 가느다란 핏줄기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마티어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병사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몰랐다. 확실한 건 지금 마티어스가 병사의 목을 베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거였다. 마티어스는 그저 운이 좋아 살아남았을 뿐이었다. 마티어스 대신 꽃이 희생되었다는 게 그에겐 크나큰 불행이라 할지라도.

토벌이나 전쟁 중 사령관을 죽이는 건 본인은 물론 3대를 멸할 중죄였다. 다들 숨을 죽인 채 마티어스의 행동을 주시했다. 가만히 그 병사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던 마티어스가 불시에 그의 이마와 땅 사이에 제 군화를 가져다 대었다.

“억…….”

병사가 짧게 신음하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마티어스를 올려다보는 병사의 낯에 희망이 차올랐다. 그러나 수 초가 지나도 마티어스가 말을 하지 않자 다시 그 눈동자가 거멓게 죽어 가기 시작했다.

“일어나라.”

마티어스의 말에 병사가 주춤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티어스가 손을 들어 병사의 뺨을 후려쳤다. 눈 깜짝할 새 일어난 일이었다. 병사가 신음도 하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졌다.

“일어나.”

병사가 겁에 질린 채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티어스가 망설임 없이 다시 병사의 뺨을 후려쳤다.

“윽…….”

병사는 버티는 힘은 없어도 눈치는 빠른지 다시 일어나 꼿꼿하게 섰다. 그 행위가 다섯 번 반복되었다. 병사의 뺨 위로 실핏줄이 터져 피멍이 올라왔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병사가 비틀거리자 기사 둘이 옆에서 병사를 일으켜 세웠다.

“네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지, 진실입니다…….”

“실수였든 고의였든 사령관급 이상을 공격한 자는 이유 불문 사형인 건 알고 있겠지.”

“아, 알고 있지만…….”

“하지만 나는, 널 죽이지 않겠다.”

마티어스의 말에 병사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안도감에 쏟아지는 눈물이었다.

“……우리는 이 토벌의 끝에서 드래곤을 죽여야 한다.”

마티어스가 망설임 끝에 말을 꺼냈다. 최종 보스 몬스터의 정체에 관해 알음알음 소문이 돌긴 했지만, 총사령관의 입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되자 파급력이 컸는지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드래곤을 토벌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겨우 몇 주 만난 거로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래서 나는 너를 믿는 것부터 시작해 보려고 한다.”

마티어스가 병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병사가 기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믿음에 보답하라.”

“……예. 그러겠습니다.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병사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3대가 죽어 나갈 중죄를 뺨 몇 대로 끝났으니 감사할 만도 했다. 마티어스가 그대로 병사를 지나쳐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마티어스가 가는 길을 터 주었다. 압실론이 마티어스의 뒤를 따르고, 내가 약간의 간격을 두고 따라붙었다. 압실론이 따라붙어 마티어스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처리할까?”

“넌 조금 전에 내가 한 말 뭐로 들었냐.”

마티어스가 기가 찬다는 듯 압실론을 노려보았다. 아직 뒤에 내가 있다는 사실은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싹은, 제거해 두는 게 좋아. 황제도 루드비히 안, 죽여서 죽었는걸?”

“됐어.”

귀찮다는 듯 제 머리를 쓸어 올린 마티어스가 말을 뱉었다.

“……이미 너무 많이 죽었어.”

메마른 목소리에 죄책감이 어려 있었다. 비단 토벌에 한정된 말이 아니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압실론이 전혀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물었다.

“진짜 죽는 것도, 아니잖아? 다시 살아나는데, 뭐.”

“하여간 소름 끼치는 새끼. 그러니까 너랑 내가 안 맞는다는 거야.”

마티어스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압실론을 노려보았다. 압실론은 신랄한 비난에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내 안의 뭔가가 무너지고 있는 기분이 들어. 이대로 괜찮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더는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아.”

“괜찮을 것 같아서, 시작한 거 아니잖아. 이대로는 다 죽을 것 같아서, 시작한 거지.”

“……알아. 젠장, 안다고.”

“기억해. 너는 안 그래도, 좋은…….”

압실론의 말이 이어지기 전, 나는 누군가의 시선에 뒷목이 따끔거리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뒤를 돌아보자 그 시선은 곧 사라졌다. 마티어스를 쏘았던 병사가 사람들의 부축을 받고 걸어 나가고 있었다. 고개를 올린 병사가 무심코 나를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피했다. 나는 그들이 나를 지나가고 나서야 병사를 부축하는 사람 중 하나가 리로였다는 걸 깨달았다. 어쩐지 서늘해진 기분에 나는 목덜미를 문질렀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듯한 불안감이 차올랐다.

* * *

“누구 찾아?”

체자레가 내게 불쑥 질문해 왔다.

“에, 예?”

나는 딴짓을 하다 들킨 학생처럼 눈을 깜빡이며 말을 더듬었다.

“마티어스.”

“네? 아닌데요? 제가 왜요?”

나는 당황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가 야식 배급받으러 안 왔던데. 무슨 일 있나?”

“…….”

체자레가 능청스레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진짜 한 대만 쥐어박고 싶다. 내가 노려보자 체자레는 더 크게 웃기 시작했다.

“미안. 귀여워서 자꾸 놀리게 되네. 그런데 마티어스가 그렇게 좋아?”

“아뇨, 좋을 일이 뭐가 있겠어요. 이번 토벌 때 처음 뵈었는데요.”

“흐음, 첫눈에 반하는 일이 잦아?”

제발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들어라. 나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그런 일 없습니다. 저 밥 다 먹어서 이만 가 볼게요. 준비할 게 많아서요.”

사실 마티어스 걱정에 거의 밥을 먹지 못했지만 나는 핑계를 대고 자리를 치우기 시작했다. 체자레가 느른하게 앉아 나를 바라보다 물었다.

“……히 다음엔 나일 줄 알았는데.”

“네? 뭐라고 하셨어요?”

“나로 하는 건 어떻냐고.”

“뭐가요?”

“육체 관계든, 사랑이든, 나라면 네가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보여 줄 수 있어.”

즐거울 거야, 라고 말하며 체자레가 내게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 매끈하고 훌륭한 독버섯 같으니. 나는 의심에 찬 시선으로 체자레를 응시했다. 너는 즐거울 거라 했지만…… 그게 정말 나한테 즐거운 일일까, 체자레야?

나는 못 들은 척 체자레의 식판과 내 식판을 들고 뒷걸음질 쳤다. 체자레가 깍지를 낀 채 물었다.

“마티어스한테 가는 거야?”

“절대 아닙니다.”

내가 단호하게 부정하자 “솔직하지 못하긴.” 하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체자레는 혼잣말하는 척했지만 나를 향한 말임은 분명했다. 뭐래. 진짜 안 갈 건데. 혹시나 체자레가 붙잡을까, 나는 천막을 벗어나자마자 부리나케 달리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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