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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는데 로그아웃이 안 된다니요-102화 (102/149)

#102

“노움, 입니다. 직위는…… 그냥 일반 병사입니다.”

“나이는?”

“스, 스물하나입니다.”

“아직 어리군.”

“죄송합니다…….”

마티어스의 말을 들은 노움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어린 녀석이 뺨을 때린 걸 그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마티어스는 그럴 녀석이 아니었다.

“일주일 뒤에 10인장 심사를 받도록 해.”

“……예?”

“실력은 나쁘지 않은데, 귀는 좀 안 좋은 것 같군. 일주일 뒤에도 살아 있으면 10인장 심사 받으라고. 웬만하면 합격시킬 테니까.”

뜻밖의 행운에 노움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마티어스를 올려다보았다. 노움의 시선에 마티어스가 퉁명스레 물었다.

“뭐 할 말이라도 있나?”

“하, 하지만 저는 평민인데요……?”

노움의 악의 없는 말에 마티어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게 뭐. 나도 평민이었는데. 내 지위에 불만 있나?”

자신의 실언을 깨달은 노움이 당황해 손을 내저었다.

“아, 아, 아닙니다. 없습니다. 불만 전혀 없습니다.”

“내 직속 기사단의 귀족 비율은 3할이다. 신분 같은 건 따지지 않으니 그런 거 생각할 시간에 실력을 키워.”

“……예!”

노움이 잔뜩 감동해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티어스가 그런 노움을 들어 그대로 원 밖으로 내던졌다. 얼떨결에 흙바닥에 꽂힌 노움이 황당하다는 듯 마티어스를 올려다보았다. 마티어스가 손을 털며 여상히 말했다.

“원 안에 있을 땐 방심하지 말아야지.”

마티어스가 다음 순번의 병사들을 향해 손짓했다. 병사들은 쭈뼛거리면서 들어오긴 해도 아까처럼 마냥 겁에 질려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회를 잡은 승냥이들처럼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진짜 대련의 시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 * *

“다음. 아, 이게 마지막인가?”

마티어스가 텅 빈 줄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런 마티어스의 옆에는 초주검이 된 병사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병사들은 어느새 마티어스를 동경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압도적인 자연의 힘에 정복욕보다 경외심이 들듯, 마티어스에게는 사람을 동경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나름 최정예만 뽑았다고 들었는데, 실력 있는 놈들이 왜 이리 적지.”

마티어스가 턱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불만스레 중얼거렸다.

“몇 년 전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심각하네.”

“기사들 대기시킬까요?”

병사들과의 대련이 끝났으니 이제 기사들 차례라는 듯 마티어스와 친하게 지내던 기사 하나가 물었다. 나와 체자레를 번갈아 보던 마티어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제부턴 네가 상대해라.”

“……예?”

“지는 놈은 나가고 이기는 놈이 원 안에서 계속 다음 사람 상대해.”

“그럼 이기는 사람이 금방 지치지 않을까요?”

“난 안 지쳤어. 할 일 하러 가는 거지.”

“…….”

말문이 막힌 기사가 가만히 서서 마티어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티어스는 내가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는 굳이 나와 체자레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앉았다. 체자레와 내가 마티어스를 동시에 쳐다보자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뭐, 여기가 그늘이라 앉은 거야.”

“귀여워요, 마티어스.”

“……아, 네.”

“아니, 진짜 더워서 그런 거라니까? 방금 대련 끝내고 온 거 안 보여? 이거 봐, 땀 흘린 거. 아, 보라고!”

당황해서 끝도 없이 길어지는 마티어스의 말에 체자레의 미소가 짙어졌다. 이러니까 놀려 먹지. 나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 * *

오후가 되자 수색을 떠났던 기사들이 돌아왔다. 전투가 일어나지 않았기에 사상자는 없었다. 루드비히는 돌아오자마자 모두에게 알아낸 정보를 통지했다.

“예상과 같이 근처에 가고일 서식지가 있었다. 가고일의 수는 300마리 이상으로 추정되며, 그중 성체는 최소 200마리 이상이다.”

루드비히의 말에 주위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200마리라니, 많긴 했다. 인원을 생각해 봤을 때 전력을 다한다면 해치우지 못할 숫자는 아니었지만,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었다. 다음 몬스터가 또 나올 수도 있고, 드래곤을 상대할 무렵에는 수가 적어져 토벌에 실패할 수도 있었다.

사실 시스템 창을 켜서 던전 설계를 어떻게 했는지 심각에게 물어보면 됐다. 위험 요소가 많은 만큼 조만간 시스템 창을 켜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자꾸만 주저하게 되었다.

아니면 압실론한테 귀띔해 줬을 수도 있겠구나. 이따 저녁에 만나면 얘기해 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루드비히 옆에 서 있는 압실론에게 시선을 주던 나는 깜짝 놀랐다. 압실론의 로브가 먼지 구덩이를 구른 것처럼 엉망이 되어 있었다. 결 좋은 흑발도 한참 뛰어놀다 들어온 아이처럼 삐죽빼죽해져 있었다.

“…….”

쟤는 왜 저런 꼴이 되어 돌아온 걸까. 다행히 상처는 없어 보이긴 한다만. 발 헛디뎌서 어디 구르기라도 한 걸까. 압실론의 과거를 생각하면 꽤 그럴듯한 추리였다. 게임 캐릭터가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은지, 압실론은 틈만 나면 공상을 해 댔다. 한번은 전쟁터에서도 사색에 잠기는 바람에 마티어스가 그의 뒤통수를 후려친 뒤 옆구리에 끼고 구해 온 적도 있었다.

“탐색 도중 서식지를 피해 지나갈 수 있는 샛길을 발견했다. 동트기 직전, 가고일들이 깊은 잠에 빠질 때 이동하려고 한다. 잠깐 휴식을 취한 뒤 4시 정각에 그 샛길을 향해 출발할 예정이다. 이상. 질문 있나?”

잠깐의 침묵 끝에 기사 하나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4시가 새벽 4시를 말씀하시는 거 맞습니까?”

“그렇다. 가고일은 야행성이지만 샛길이 서식지와 가까워 낮에 이동할 시 발각될 확률이 높다. 그 때문에 새벽에 이동하는 게 더 나을 거라 판단했다. 더 질문 있나?”

막힘없이 이어지는 답변에 기사가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루드비히가 좌중을 돌아보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이렇게 마음에 안 들어 하면서 왜 시종으로 들이려고 한 거야.

그의 시선을 받고 싶지 않았던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어쩐지 이 던전에 들어오고 바람 잘 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수색을 다녀온 인원을 제외한 모든 인원이 정비에 매달렸다. 샛길을 발견하긴 했지만, 가고일에게 발각되어 전투를 하게 될 확률도 높았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검을 갈고 갑옷의 이음새가 튼튼한지 확인했다. 원래는 체자레 것도 해야 했지만, 독이 묻어 있으니 자신이 하겠다고 말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쳤다. 독에 왜 이렇게 예민하냐 하면, 일전에 심각과 나눈 대화 때문이었다.

[GM: 지금 이현 씨의 몸과 칩이 분리되어 있다고 했죠? 그래서 게임 속에서 죽으면 정말로 사망할 확률이 높아요.]

[나: 아니,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예요???? 게임 속에서 죽는다고 진짜 죽는다고요?]

[GM: 네. 정신 전이 증후군에 걸린 사람들의 정보를 수집해 본 결과, 사망 원인 1순위가 자살이었어요. 로그아웃할 수 없으니 자신의 죽음으로 강제 종료를 시키려고 했던 사람들은 약 8할의 확률로 죽음을 맞이했어요.]

[나: 그게 말이 돼요?]

[GM: 인간의 정신은 강한 듯 약하고, 약한 듯 강하니까요. 바로 죽는 게 아니더라도 돌아갈 육체가 없으니 게임 속 세상을 시체나 영혼의 상태로 떠돌아다니다가 정신이 붕괴되고, 사망하게 되는 거예요.]

[나: 그러면 죽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GM: 네, 그동안 죽지 않으셔서 정말 다행이었던 거죠. 물론 죽기도 쉽지 않았을 거예요. 증후군에 걸린 사람들 대부분이 감각 과잉을 겪거든요.]

[나: 감각 과잉이요?]

[GM: 실제 겪는 감각보다 조금 더 예민하게 느끼는 거예요. 아무래도 게임 속 세상은 의도적으로 감각 기관을 자극하도록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 세상보다 조금 더 예민하게 느끼게 됩니다. 실제 감각이 1이라면 1.5 정도, 예민한 사람은 3까지도 느낄 수 있어요. 즉, 실제보다 더 많은 고통을 느끼면서 죽게 되는 거죠.]

[나: …….]

[GM: 어찌 되었든 살아남아 주셔서 감사해요.]

[나: 감동적인 분위기 연출하지 마세요. 나가면 그쪽부터 죽이고 싶어질 것 같으니까.]

[GM: ……오늘은 더 이상 대화 안 할래요.]

[나: ㅎㅎ 장난인 거 알죠?]

떠올리기 싫은 과거를 떠올려 버린 나는 미간을 좁히며 한숨을 푹 쉬었다. 죽어도 안 되고, 아무것도 안 해도 안 됐다. 토벌 참가는 필수 불가결했으며, 탈출을 위해서는 나를 가둔 이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

나는 가만히 내 뺨을 쓸어 보았다. 온기가 도는 살갗 밑에 내 것이 아닌 얼굴 윤곽이 만져졌다.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 뇌가 아닌 칩으로 유지되는 정신. 게임 속 죽음이 진짜 죽음이 되는 현실. 나는 저 멀리 천막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루드비히와 무언가 쓰고 있는 체자레, 검을 정비하는 마티어스, 바위에 앉아 사색을 즐기고 있는 압실론을 번갈아 하나씩 바라보았다.

나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숲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칩 속 데이터에 불과한 정신이 이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절차가 복잡하긴 했지만 칩 속 데이터는 복제가 가능했다. 그렇다면 복제된 데이터와 진짜인 나, 게임 캐릭터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인간과 같거나 그 너머를 사유할 수 있는 AI는 인간과 얼마나 다른 거지? 사실 내가 복제된 데이터는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내가 복제된 데이터에 불과할 뿐이라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나. 그 삶에는 어떤 의미가…….

“……으앗!”

숲을 빙글빙글 돌면서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땅이 푹 꺼졌다. 당황해 허우적거리는데 누군가가 나를 우악스레 잡아챘다. 흔들리는 시야에 붉은 머리가 들어왔다.

“마, 마티어스?”

마티어스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한 손으로 내 팔을 붙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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