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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는데 로그아웃이 안 된다니요-91화 (91/149)

#91

다행히 끝까지 우리를 추적하는 오크들은 많지 않았다. 숲으로 들어가자 엄폐물이 많아져 몸을 숨기기도 좋았다.

“저 위로 올라가요.”

리로가 200년은 족히 넘은 듯한 나무 한 그루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크 마을 근처라 그런지 나무를 차지한 사람도 없었다. 우리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높은 가지 위로 올라가 숨을 죽였다. 오크들이 바삐 움직이며 우리를 찾느라 이따금 잎사귀 틈새가 어른어른했다.

다행히 오크들은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 보니 심장은 어떻게 됐지.

“처치했어?”

리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묵직한 천 주머니를 들어 보였다. 고블린이나 여타 다른 오크들의 심장보다 훨씬 큰 것이 딱 봐도 고급 몬스터의 심장 같았다.

“다행이다. 아까 들키는 바람에 못 처리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

“들어가자마자 처리했어요. 혼자 있던데요.”

피를 뒤집어쓰고도, 염원하던 목표를 이루고도 리로는 여전히 평온해 보였다. 나는 그런 리로를 꽉 끌어안아 주었다. 하여간 귀엽다니까. 리로가 당황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뭐 하시는 겁니까…….”

“장하다, 우리 리로.”

뿌듯한 마음에 나는 리로를 끌어안고 토닥이기 시작했다. 마음 놓고 예뻐할 수 있는 조카가 생긴 느낌이었다. 아셀 때에는 예민해서 마음 놓고 예뻐할 수도 없었는데 그때 죄책감이 들었던 기억 때문인지 리로에겐 자꾸만 애정을 쏟아붓게 되었다.

“놔, 놔주세요…….”

리로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민망한 모양이었다. 귀엽긴. 나는 씩 웃으며 리로를 놓아주었다.

“알았어. 이제 슬슬 내려갈까?”

“……네.”

우리는 나무에서 내려와 제국 측에서 높이 꽂아 놓은 깃발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얼마간 걷다가 리로가 멈추어 서더니 나를 불렀다.

“잠시만요.”

리로가 가방 속에서 천 주머니를 하나 더 꺼내어 내게 건넸다. 나는 얌전히 그것을 받아 들었다. 이 천 주머니엔 지금까지 리로가 소소하게 사냥한 몬스터들의 심장이 들어 있었다. 오크 왕의 심장을 가지게 되면 모아 온 심장을 전부 주겠다고 리로가 일전에 내게 약속한 바 있었다.

“덕분에 안전하게 통과하겠네.”

나는 묵직해진 천 주머니를 달랑거리며 말했다. 리로 역시 기분이 좋은지 희미하게 웃었다.

“최종 합격까지 갈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럴 거야.”

서로 덕담을 나누며 깃발이 있는 쪽을 향해 걸을 때였다. 발목에 무언가가 걸리는 감각과 함께 우리는 동시에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크하하하!”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급히 일어나려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내 머리통을 뭉툭한 무기로 강타했다.

“윽…….”

뒤통수에 지독한 통증이 일었다. 시야가 흐려지는 틈을 타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밧줄로 칭칭 감았다. 뿌예지는 시야에 산적처럼 생긴 패거리가 만면에 웃음을 띤 채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푹- 쉬고 있다가 이런 식으로 가져가면 된다고.”

간신배처럼 생긴 남자가 말했다. 제일 사납게 생긴 남자가 흙바닥에 뺨을 대고 있는 나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동안 고생했네.”

“뭐, 하는 짓이야. 이거 안 풀어?”

머리가 어질어질해 스펠도 잘 생각나지 않았다. 머리를 맞았던 게 뭐가 잘못되었는지 울컥 토기가 치밀었다.

“우욱……!”

먹은 걸 죄다 쏟아내는 바람에 남자의 구두에도 일부 토사물이 묻었다.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구둣발로 내 뺨을 툭 쳤다.

“아, 더러워. 이 새끼 토했잖아.”

“허, 헉. 이 미친놈이……! 처리할까요?”

하수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곤봉을 들고 내게 다가왔다.

“됐다. 받은 것도 있으니 이쯤에서 넘어가기로 하지.”

“쳇, 운 좋은 줄 알라고.”

“그나저나 몬스터 심장 양이 많아. 어쩌면 전부 통과할 수도 있겠어.”

“이런 식으로 한둘만 더 털어 보자고요.”

그들은 우리의 가방을 풀어 쓸 만한 건 죄다 챙기기 시작했다. 묶인 손을 풀려고 시도했지만, 어찌나 꽉 묶어 놨는지 풀기는커녕 피도 잘 통하지 않았다.

“이건 뭐야? 웬 달팽이?”

내 바로 옆에서 짐을 풀고 있던 남자가 천 주머니 속을 들여다보다 혼잣말했다. 나는 잴 틈도 없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발을 들어 주머니를 내리쳤다. 안에 든 무언가가 부서지며 퍽 소리를 냈다.

“아, 깜짝이야! 뭔데?”

“뭐야, 풀었어?”

“아뇨, 이 새끼가 갑자기 난동을 부려서. 쓰읍, 가만히 있으라니까!”

“그건 남겨 줘! 그거 없으면 우리 다 굶어 죽는다고!”

내 말에 오히려 호기심을 가진 듯 남자가 물었다.

“그게 뭔데?”

“몰라요. 뭔 달팽이 껍데기 같은데. 반짝반짝하니 비싸 보이긴 합니다만.”

“그래? 그럼 일단 그것도 챙겨.”

“남겨 달라고 하면 남겨 줄 줄 알았냐? 멍청하긴.”

나는 이를 악물고 최대한 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천 주머니의 끈을 당겨 오므리며 내 앞의 남자가 나를 비웃었다.

“그럼, 힘내라고.”

“이거 풀어 줘-!”

나의 절규가 즐거운 듯 그들은 낄낄거리며 떠나갔다. 리로와 나만 남은 장소는 시간이 정지한 듯 고요했다. 그러나 뒤에서는 둘 다 끈을 풀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먼저 끈을 풀어낸 건 리로였다. 리로는 품속에 숨겨 두었던 주머니칼을 꺼내 몸을 묶었던 끈을 마저 잘라 낸 뒤, 내 손목을 묶고 있던 끈도 잘라 주었다. 나머지 끈도 풀라는 의미로 리로가 주머니칼을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몸을 칭칭 감은 끈을 서걱서걱 잘라 내며 물었다.

“괜찮아?”

“네, 형은요?”

“머리를 잘못 맞았는지 좀 어지럽긴 한데 괜찮아.”

투둑. 몸을 휘감고 있던 끈이 전부 끊어졌다. 나와 리로는 뻐근해진 어깨며 팔다리를 주무르고 옷의 흙먼지를 털어 냈다.

“아까 치신 거, 폭탄 달팽이 껍데기죠?”

“맞아. 세게 쳐 놨으니 곧 터질걸.”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조금 전에 친 천 주머니 안에는 폭탄 달팽이 껍데기가 가득 들어 있었다. 폭탄 달팽이 껍데기는 충격을 가하면 도화선에 불이 붙듯 안부터 불이 붙기 시작해 겉까지 다 탔을 때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다. 살상력은 없지만, 소리가 크고 시끄러워 시골 아이들이 장난칠 때 종종 썼다. 아셀도 내게 이 폭탄 달팽이를 가져와 장난친 적이 있어 그때 그것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타격 세기에 따라 터지는 속도가 달라지는데, 세게 쳤으니 곧 어디선가 터지는 소리가 날 터였다.

퍼엉-!

저 멀리에서 폭탄 달팽이의 소리와 남자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나는 리로와 눈을 마주치고 씩 웃었다.

“찾았네.”

* * *

뒤를 쫓아 우리의 물건을 뺏은 이들을 다시 시야에 담았을 때, 그들은 오크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뭐야, 계속 쫓아오잖아!”

“왜, 왜 이러는 거야!”

비명을 지르는 이들의 이마에는 큼지막한 붉은 인장이 하나씩 찍혀 있었다. 오크 마법사가 조금 전 새긴 인장인 듯했다. 그리고 저 인장은 아마도 평생을 갈 것이다.

오크 일족은 기본적으로 모계 사회다. 짝짓기를 한 오크 왕은 몸속에 담아 둔 정자로 계속해서 자식을 낳는다. 자식들은 대부분 남성체이며 아주아주 희귀한 확률로 여성체가 나온다. 만약 여성체가 나오지 않고 오크 왕이 사망하면 그 부족은 필연적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다. 그 경우 그 부족은 오크 왕을 죽인 자들에게 인장을 찍고 평생 그들을 쫓는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이것이 오크 왕의 심장이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사람들이 섣불리 오크 왕을 죽이지 않는 이유였다.

“인간, 죽인다!”

“끝까지, 따라간다!”

“여, 여기 혹시 오크 왕의 심장이 담긴 거 아니야?”

“아이 씨, 재수 옴 붙었네. 빨리 갖다 버려!”

그들은 몸에 붙은 벌레를 털어 내듯 쥐고 있던 주머니를 내던지고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인장은 그들의 이마에 박힌 뒤였다.

우리는 조용히 그 일행과 오크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가 뒤에서 그 물건들을 챙겼다. 심장이 어디에 들어 있는지 몰라 쥐고 있던 물건들을 죄다 버려서인지 우리는 빼앗기기 전보다 더 많은 양의 물건들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그들이 버린 가방을 열어 안의 내용물을 살폈다. 딱히 그들이 모은 몬스터의 심장이 적지도 않았다. 충분히 안정권이었는데, 욕심을 부리다 스스로 재앙을 불러온 셈이었다.

“이크, 늦겠다.”

“뛰죠.”

우리는 전보다 더 두둑해진 가방을 들고 깃발이 있는 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 *

깃발을 꽂은 장소에 발을 디디자 산에 왔던 첫날에 비해 반의 반절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가 들어오고 얼마 되지 않아 마감을 알리는 종이 쳤다.

“지금까지 살아남느라 고생 많았다. 모아 놓은 심장은 팻말 앞의 주머니 속에 제출하도록. 3차 시험은 이틀 후 수도의 지정 구역에서 진행된다. 그때까지 상태 조절에 힘쓰기 바란다. 준비된 자들은 이동 마법진을 타고 이동하게.”

그때까지 말을 듣고 있던 지원자 하나가 손을 들었다.

“저어, 그런데 이런 식으로 제출하면 어느 게 누구 거인지 어떻게 구별합니까?”

“그러고 보니 그걸 이야기하지 않았군. 2차 시험은 7일간 숲에서 생존한 시점에서 이미 통과다.”

사람들이 한차례 웅성거렸다.

그 사람들, 진짜 헛짓거리했네.

나는 아직도 오크들에게 쫓기고 있을 남자들을 생각하며 조금 고소해했다.

오크 왕의 심장을 얻기 위해 고생했던 리로는 아쉬워하는 기색이었지만, 별다른 말을 얹지는 않았다. 하지만 속상하겠지. 눈에 띄고 싶었을 텐데. 나는 그런 리로의 어깨를 토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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