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쳤는데 로그아웃이 안 된다니요-88화 (88/149)

#88

나는 사전 신청을 한 이들이 모이는 곳으로 향했다. 사전 신청을 한 사람이 대부분인지 2/3 정도 되는 사람이 내 줄로 모였다.

“한 줄로 서서 나를 따라오도록.”

기사가 앞서가자 사람들이 어미 닭을 쫓는 병아리처럼 그 뒤를 따랐다. 기사는 어디 외국 지방 도시 공항에서 가져온 듯한 허름한 검사대를 통과하더니 말했다.

“신호하면 한 명씩 들어오게.”

기사가 맨 앞에 선 남자에게 손짓했다. 남자가 잔뜩 긴장해 뻣뻣해진 자세로 걸음을 옮겼다.

“통과, 다음.”

“……이대로 통과인 겁니까?”

남자가 당황해 물었지만, 기사는 일에 염증을 느끼는 공무원처럼 두 번째 남자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두 번째 사람이 지나가고, 세 번째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문은 꺼진 것처럼 고요했다. 그러나 네 번째 사람이 지나가자 검사대가 흰색으로 빛나며 날카로운 경고음을 냈다.

“탈락, 돌아가도록.”

“왜, 왜 탈락입니까?”

“이유는 규칙상 말해 줄 수 없다. 다음에 다시 도전하도록.”

남자는 억울해 보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황궁 기사에게 덤빌 정도로 호기롭지도 않았다. 남자가 물러가고 다음 사람이 검사대를 통과했다. 여덟 번째, 열두 번째, 열넷, 열다섯, 열여섯 번째 지원자가 경고음 소리와 함께 죄다 떨어져 나갔다. 탈락자의 성별과 체형, 종족이 다양해 그 이유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아까보다 더 긴장한 듯 다리를 떨거나 팔꿈치를 만지작거렸다. 나 역시 긴장되기는 매한가지였다.

이런 게 있다고 미리 좀 알려 주면 어디 덧나냐. 공정성을 이유로 마티어스는 사전 시험에 대해 입 하나 뻥긋하지 않았다. 대신 내 귓가에 대고 이런 말을 남겼지.

‘떨어져서 마검사나 마법사 뭐 그런 시시껄렁한 거로 토벌에 참여하는 순간, 너는 토벌 내내 나랑 단련해야 할 줄 알아.’

“통과, 다음.”

“……반드시 통과한다.”

나는 이를 악물고 검사대를 향해 서서히 걸음을 옮겼다. 검사대를 지나는 것과 동시에 민들레 솜털처럼 작고 미세한 무언가가 나를 훑고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마나인가.

그리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통과, 다음.”

내가 기사를 바라보자 그는 무미건조한 낯으로 뒤로 가라 눈짓했다. 그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던 나는 남자가 가리킨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통과한 사람들이 어정쩡하게 거리를 두고 서서 서로를 탐색하듯 보고 있었다. 마치 상대의 전투력을 가늠하는 늑대 같은 모습이었다. 아니, 늑대까진 아니고 코요테나 들개 정도일까.

나는 통과하고 나서도 한동안 검사대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대체 통과 기준이 뭐였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마지막 지원자가 검사대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레이피어를 든 깡마른 남자였는데, 수염 하나 없이 솜털만 보송보송한 턱이 소년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앙다문 입과 끓는 듯한 눈동자가 강단 있다 생각하고 있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떨어지겠군.”

뒤를 돌아보니 풍채 좋은 남자가 팔짱을 끼고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지만 저건 좀 심하지.”

“글쎄요, 내 생각은 좀 다른데.”

내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남자와 내 쪽으로 집중되었다. 남자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저 깡마른 몸을 좀 봐. 생쥐 한 마리나 잡겠어?”

“그럼 내기할까요?”

나는 주머니에서 동화 하나를 꺼내 튕기며 말했다. 남자가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내가 선수를 쳤다.

“빨리요, 통과하기 전에.”

남자가 어깨를 으쓱이며 주머니에서 동화 하나를 꺼냈다. 덩달아 다른 사람들도 마지막 지원자를 주시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지원자는 시원시원한 걸음걸이로 검사대를 통과했다.

“통과, 이상 끝.”

“보셨죠? 제가 이겼네요.”

나는 망연자실한 남자의 손바닥에서 동화를 빼앗아 들며 말했다. 남자가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너 저 검색대의 조건을 알고 있나?”

“아뇨, 모르는데.”

“그런데 왜 이길 거라는 걸 확신했지?”

“눈빛이 좋아서요.”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남자는 황당해했지만 진짜였다. 내가 얼마나 많은 동태 눈깔을 보고 살아왔는데. 저 정도 눈을 가진 애는 이 세계에서 원하는 건 대부분 할 수 있거든.

“1차 시험 합격을 축하한다, 제군들. 시험은 총 5단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2차는 체력 시험, 3차는 가상 토벌, 4차는 대련이다. 그 이후 면접을 통해 최종 합격 여부를 가릴 예정이다. 이상. 질문 있나?”

고요한 침묵 끝에 맨 앞에 서 있던 드워프가 손을 들었다.

“말하게.”

“다른 던전 토벌에 비해 기준이 좀 빡빡한 것 같은데,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번 토벌에는 폐하와 마티어스 님을 포함한 고위급 인사가 대거 참여한다. 황족과 귀족들이 있는 만큼, 안전에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또, 다른 질문?”

“검색대를 통과하는 기준이 뭡니까?”

조금 전 내게 동화 한 닢을 뜯긴 남자가 질문을 던졌다.

“그건 알려 줄 수 없다. 다음 질문 있나?”

남자는 분한 듯 나를 노려보았다. 남자가 무섭진 않았다. 남자의 뒤에 있는 패거리까지 나를 노려보는 게 좀 난감했을 뿐.

아니, 그 동화가 그렇게 소중한 거였어? 그럼 내기를 하지 말든가.

남자의 패거리는 꽤 많아 보였다. 적어도 예닐곱 명은 될 듯했다. 저 중 몇 명과는 동료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 난감해졌다. 눈에 띄고 싶지 않은데. 나는 한결 공손해진 태도로 남자에게 동화를 내밀었다.

“이거, 돌려드릴까요?”

남자가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고 동전을 빼앗아서는 바닥에 내던졌다. 작은 돌과 부딪힌 동전에서 맑은 소리가 났다. 동전은 데구루루 굴러가더니 공터 구석에서 회전을 멈추었다.

“이게 누굴 거지로 아나.”

“아니, 필요하신 거 아닌가 싶어서…….”

그 말이 남자의 화를 더 돋운 듯했다. 남자가 뒤에 있는 이들에게 눈짓했다. 그들이 슬금슬금 내 곁으로 다가와 나를 둘러쌌다. 기사들의 눈을 피할 요량인 듯했다. 남자가 거칠게 내 멱살을 거머쥐었다. 나는 단박에 달랑 끌어 올려졌다.

“웬만하면 다음 시험은 포기하는 게 좋을 거야. 네 인생 피곤하게 만들기 싫으면.”

확실히 그 넷이랑 지내며 정신이 단련되긴 했나 보다. 이런 상황이 전혀 무섭지 않은 걸 보면. 나는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기사님! 질문 있습니다!”

남자가 내 셔츠에서 황급히 손을 떼어 냈다. 기사가 눈매를 가늘게 좁히며 말했다.

“누구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번엔 나를 둘러싼 인파들이 흩어졌다. 나는 옷매무시를 고치며 씩 웃었다.

“죄송합니다. 까먹었습니다.”

기사는 내가 자신을 놀리는 거라 생각했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더 질문이 없는 것으로 알고 이만 끝내겠다. 이상. 다음 시험장으로 이동한다.”

기사들이 이동하자 지원자들도 뒤따르기 시작했다. 내 멱살을 잡았던 남자가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너…….”

“갑자기 질문이 하고 싶어진 걸 어떡합니까.”

“이 새끼가!”

“앗, 기사님! 왜 다시 오셨어요?”

물론 거짓말이었다. 나는 남자가 내가 가리킨 쪽을 보는 사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 * *

“아까도 말했듯 2차는 체력 시험이다. 극한의 환경 속 적응 여부를 시험한다.”

기사들이 우릴 데리고 간 곳은 거대한 산맥 앞이었다. 지원자들을 불러 모은 공터가 수도 외곽에 있어 의외다 싶었는데, 2차 시험장이 여기라서 그런 모양이었다.

“알다시피 이 산맥에는 많은 동물과 몬스터가 살고 있다. 이곳에서 일주일간 생존하면 된다. 이상.”

생각보다 파격적인 방식이었다. 뭐 이런 거야 환영이지. 부평초처럼 떠돌아다니던 1년이었다. 생존은 자신 있었다. 그때 기사가 다음 말을 덧붙였다.

“2차 시험의 합격자는 200명이다. 일주일 뒤까지 몬스터의 심장을 가져오면 된다. 참고로, 웨어울프 심장의 가치는 고블린의 심장 10개와 동일하다.”

몬스터의 심장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돌처럼 딱딱했다. 고위급 몬스터일수록 그 심장은 루비처럼 선명한 분홍색을 띠었다. 또한 마나의 원천이었기에 마법 도구의 재료로도 사용되었다.

머리 잘 썼네.

대대적으로 토벌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몬스터 심장이 아주 많이 필요했다. 작은 마법 폭탄부터 거대한 마법 결계에까지 심장은 두루두루 쓰였으니까. 그걸 이번 시험으로 좀 채우려는 모양이었다. 누구 머리에서 나왔는지는 몰라도 머리를 잘 굴렸다고 볼 수 있었다.

“이번 시험에서는 사망이나 부상에 대해 보상해 주지 않는다. 그러니 무리라는 생각이 들면 지체하지 말고 포기하길 바란다.”

기사는 그 말을 마치고 뒤돌아 절도 있는 걸음걸이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군중들이 모인 자리는 폭탄이 떨어진 듯 고요했다. 그러나 아무도 포기하려 드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속속들이 자리를 떠나는 지원자들을 따라 산속으로 향했다.

* * *

고민 끝에 나는 수천 년은 묵은 듯한 거대한 고목 위에 자리를 잡았다. 가지가 넓어 자기 좋을 것 같아 택한 건데, 잎사귀도 풍성해 주변과 차단되는 효과가 있었다. 간이 오두막을 올리고 한숨 자려 누웠는데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나무에 진동이 일었다. 몬스터인가 싶어 고개를 빼꼼 내밀고 내려다보니, 아까 내 멱살을 잡은 남자의 패거리들이 나무 아래서 회의를 열고 있었다.

“여기가 좋을 것 같군.”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여기 좋긴 하지. 근데 이미 자리 있는데. 나는 남자가 다른 마음을 먹고 돌아가 주었으면 했지만, 남자들은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가지를 잡고 박쥐처럼 매달려 그들에게 쏙 얼굴을 보였다.

“죄송한데 여긴 제 자린데요.”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