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쳤는데 로그아웃이 안 된다니요-87화 (87/149)

#87

“꺼져!”

마티어스가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며 압실론에게 일갈했다. 압실론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치사하긴.”

마티어스가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며 나를 얹은 채로 몸을 일으켰다. 얼떨결에 함께 일어난 나는 생각했다. 코어 좋네, 마티어스. 그가 내 젖은 입술을 엄지로 훑으며 물었다.

“어디 다친 덴 없고?”

“어? 어……. 괜찮아.”

“됐어. 그럼 훈련이나 하러 가자.”

“……엥?”

아직 흐트러진 차림새를 정돈하기도 전이었는데, 마티어스의 모습은 완벽한 교관의 그것으로 변해 있었다. 당황해하는 나를 마티어스가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일으켜 세웠다. 웃는 걸 보고 입을 맞추고, 귀를 깨물고, 별짓을 다 하다가 갑자기 훈련하러 가자고? 나는 황당한 시선으로 마티어스를 올려다보았다. 마티어스의 귀 끝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

아, 이거 혹시 부끄러워하는 건가?

“마티어스…….”

“빨리 나가자니까!”

마티어스가 거의 끌듯이 나를 데리고 나갔다.

맞나 보네.

나는 키들키들 웃으며 미적대던 걸음 속도를 높였다. 압실론이 긴 로브를 끌며 우리의 뒤를 따랐다.

* * *

“흐읏…….”

“힘을 빼.”

“아픈데 어떻게 힘을 빼?”

“긴장을 풀어. 힘을 빼고 받아들이면 아프지 않을 거야.”

“네, 네가 너무 거칠게, 윽, 하니까…….”

“평소 힘의 반의반도 안 준 거야. 한 번만 어깨에 힘을 풀어 봐. 그럼 오히려 기분 좋을걸.”

“싫어. 너 말고 다른 애로 바꿔 줘. 저번에 너 없었을 때 대신 해 줬던 그 시종 잘하던데.”

“절대 안 돼.”

“이상한 데서, 흐으, 독점욕 부리지 마.”

“독점욕이 아니야. 내가 제일 잘하는 걸 너한테 해 주고 싶을 뿐이지.”

마티어스가 내 어깨를 살짝 깨물며 말했다. 나는 엄살 부리는 개처럼 비명을 지르며 어깨를 감싸 쥐었다.

“뭐 하는 짓이야. 아프잖아.”

“엄살은. 별로 세게 깨물지도 않았어.”

나는 물린 어깨를 쓸어 보았다. 손끝에 아주 미세하게 남은 잇자국이 느껴졌다. 나는 부루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계속 아프게 하니까 이것도 아픈 것처럼 느껴졌잖아.”

“지금 이렇게 풀어 두지 않으면 내일은 더 아프게 될걸.”

“알아. 그니까 이렇게 네 밑에 얌전히 깔려 있잖냐.”

“…….”

등 위로 시선이 느껴졌다. 마티어스의 투박한 손이 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온몸의 솜털이 일시에 일어나며 소름이 일었다.

“수작 부리지 마.”

“무슨 수작이야. 뭉친 데 찾고 있는 건데.”

그 말이 완전히 거짓은 아니었는지 마티어스의 엄지가 뭉쳐 있던 근육을 꾹 눌렀다. 자판기처럼 저절로 신음이 튀어나왔다.

“아윽……!”

“대련은 잘해 놓고, 이런 게 아파?”

나는 고개를 돌려 마티어스를 바라보았다. 마티어스가 소년처럼 삐딱한 웃음을 건 채 나를 보고 있었다. 잔뜩 약이 오른 나는 그의 밑에 깔려 발버둥 쳤다.

“나와 봐. 이번엔 내가 해 줄 테니까.”

“됐어. 아직 안 끝났어.”

“아, 나와 보라니까!”

내 태도가 강경하자 마티어스가 내 위에서 물러나며 가운 리본을 풀었다. 마티어스의 움직임과 몸 선을 보며 나는 몰래 감탄을 터트렸다. 나는 탁상 위의 오일 통을 꺼내어 그것을 손바닥 위에 쭉 짰다. 금빛으로 반짝거리는 오일이 손바닥 위에 가득 고였다. 나는 손을 비벼 오일을 따뜻하게 데우고는 마티어스의 등에 펴 발랐다. 손바닥과 등이 마찰하자 마티어스가 기분 좋은 신음을 냈다.

“하아…….”

그게 못내 분했던 나는 힘주어 그의 날개뼈 부근을 문질렀다. 일부러 뼈 주변을 누르는데도 마티어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돌덩이 같은 등을 누르느라 오히려 내 손이 더 아플 지경이었다.

“뭐 해? 간지럽혀?”

나는 주먹을 쥐고는 마티어스의 등을 퍽 쳤다. 그런 것쯤 전혀 아프지 않다는 듯 마티어스가 낄낄 웃었다.

“더 해 보지, 왜.”

하라면 못 할 줄 알고.

나는 아예 마티어스의 등을 마구 내리쳤다. 그때, 불시에 뒤돈 마티어스가 나를 숨 막히도록 끌어안았다.

“켁!”

나는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 버둥거렸지만, 마티어스는 그럴수록 몸을 더 단단히 조였다. 몸을 씻은 후 얇은 가운만 입고 있었기에 서로의 몸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마티어스의 허벅지를 찰싹찰싹 내려치며 말했다.

“항복, 항복!”

“그러게 왜 까불어.”

마티어스가 킬킬 웃으며 나를 끌어안았던 손의 힘을 살짝 풀었다. 나는 오일로 젖은 침대를 매만지며 인상을 찌푸렸다.

“침대가 미끈미끈해졌어.”

“시트야 갈면 되지.”

나는 졸음이 몰려오는 눈을 비비며 하품을 했다.

“귀찮아. 피곤해서 그냥 이대로 잠들고 싶었는데.”

“그럼 내 방에 가서 자든가.”

마티어스의 말에 졸음이 확 달아났다. 내가 둥그렇게 눈을 뜨고 마티어스를 보자 그 역시 자신이 한 말의 의미를 알아챘는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아니, 난 여기서 자도 되니까 너 불편하면 내 방 가서 자라고.”

“……됐어. 그냥 좀 이따 시트 갈아 달라고 할래.”

“그래, 그래라.”

요즘은 뭐만 조금 하면 이런 분위기가 되어 버리곤 했다. 그게 부담스러우면서도 어쩐지 긁을 수 없는 부분이 간질간질해지기도 해 나는 얌전히 마티어스의 품에 안겨 있었다.

살짝 열어 놓은 창문 사이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내가 작게 기침하자 마티어스가 시트를 끌어 올려 내게 덮어 주었다. 바스락거리는 재질의 시트는 따뜻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사이로 바람이 스며 시원했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마티어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여름도 다 지나갔는데, 이불이 좀 얇지 않아?”

“어차피 좀 있으면 여길 떠날 텐데, 뭐.”

“그래도 며칠이라도 따뜻하게 덮고 있어. 토벌 떠나면 제대로 된 이불도 못 덮을 텐데.”

“그건 그렇네. 한동안 이 푹신한 침대도 안녕이구나.”

마티어스가 나를 도롱이벌레처럼 이불로 돌돌 말고는 꽉 끌어안았다.

“그럼 시종한테 말해 놓는다?”

“알았어.”

나는 내 손바닥에 붙은 굳은살을 가만히 매만져 보았다. 일반 병사 모집일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날이 지날수록 마음이 조급해졌다. 연습량을 점진적으로 늘렸다. 마티어스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 대부분을 날 훈련하거나 나와 대련하는 데 썼고, 나는 자는 시간 외에는 대부분 체력 단련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게 재능이 있었던 건지, 아니면 노력이 빛을 발한 건지 실력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물론 그것도 마티어스에게 댈 바는 아니었지만, 이젠 가끔은 그를 긴장시킬 수 있게 되었다.

“나 합격할 수 있을까?”

“누가 가르쳤는데.”

“우쭐하긴.”

나는 킥킥 웃으며 마티어스의 콧잔등을 툭 쳤다.

“농담 아냐.”

“맞아. 너 잘 가르쳐.”

“그래. 그러니까 떨어지면 그건 전적으로 네 잘못인 거야.”

“……뭐, 임마?”

마티어스가 내 양 볼을 감싸 쥐었다. 악력에 짓눌린 입술이 벌어지며 뽁 소리가 났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마티어스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마티어스가 흘러내린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귀 뒤로 넘기며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러니까…….”

* * *

일반 병사 모집일, 공터는 토벌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인원들로 가득했다. 나는 나의 경쟁자들을 스치듯 바라보았다. 우락부락한 사람, 한 대만 쳐도 쓰러질 것 같은 사람, 허리가 굽어진 노인,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소년, 머리가 긴 남자와 머리를 아예 밀어 버린 여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구름처럼 모인 인파에 기가 질리고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이 사람들은 던전에 드래곤이 있는 건 알고 있을까. 모집서에 그런 내용은 없었던 것 같긴 한데. 어쩌면 경쟁자들을 좀 쫓을 수도 있겠는걸.

이 많은 사람들과 별로 정정당당하게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나는 내 옆에서 무구를 닦고 있는 남자에게 슬쩍 말을 흘렸다.

“우리가 토벌 가는 던전에 드래곤이 나온다는 게 사실이에요?”

옥수수수염처럼 생긴 노란 수염을 양 갈래로 땋은 남자가 내 쪽을 돌아보지도 않고 계속 방패를 닦으며 퉁명스레 말했다.

“나야 모르지.”

“그게 아니라도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던데요.”

그제야 남자가 나를 힐끗 돌아보았다. 위아래로 훑는 시선이 썩 보기 좋진 않았다.

“너, 토벌 처음이야?”

“네? 아니요.”

“아니긴, 딱 봐도 처음이구만. 토벌은 원래 다 목숨 걸고 하는 거야. 여기 그거 모르는 놈들 없어. 특히 우리 같은 놈들이야 파리 목숨이지.”

“그, 그런가요?”

대답할 가치도 없다 느꼈는지 남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방패를 닦는 데 열중했다. 우리의 대화에 호기심을 느꼈던 다른 이들도 시선을 돌렸다. 의기소침해진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말을 걸어 볼까 하다가 관두었다.

정복을 차려입은 기사 둘이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소란스러웠던 주변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단상 위에 오른 기사가 양피지를 펼치고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먼저 목숨을 걸고 이번 토벌전에 지원한 이들에게 제국을 대신해 감사를 전한다. 누군가는 돈을 위하여, 누군가는 명예를 위하여, 누군가는 어떠한 신념을 위하여 이곳까지 걸음 했으리라 생각한다. 이유는 제각기 다르겠으나 토벌을 위한 마음만은 같으리라 여긴다. 이 던전의 끝을 함께 보는 동료가 되길 바란다. 이상.”

기사가 양피지를 접고 사람이 없는 공터를 가리켰다.

“사전 신청을 한 이들은 이쪽으로, 하지 않은 이들은 이쪽으로 모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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